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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 제도 사람들은 종교도 없이 벌거벗고 있었다…출처를 찾아보니?

조너선 스미스의 이 글은 '종교개념사'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글 중 하나인데, 원출처를 확인해 보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발심을 하여 해당 내용의 원출처를 찾아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처음부터 나오는 저 말, 리처드 이든(Richard Eden, 1521?-1576)이라는 인물이 썼다는 저 글귀는, 서구의 religion 개념이 확장되어 나갈 때 초창기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들은 종교가 없다'.

카나리아 제도에 콜럼버스가 도착해서 경험한 바를 표현한 것이다. 이 제도를 지나간 것은 그의 모든 서인도 제도 탐험에서 서인도로 향할 때였다(1차: 1492–1493, 2차: 1493–1496, 3차: 1498–1500, 4차: 1502–1504). 그러니까 위 기록은 1492년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이미지 출처: "Voyages of Christopher Columbus", wikipedia

콜럼버스가 그곳에 처음 갔을 때, 그곳의 주민들은 부끄러움이나 religion 혹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도 없이 벌거벗고 있었다.

이 내용이 실린 책 A Treatyse of the Newe India(1553)를 시대가 좋아져서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세바스티안 뮌스터(Sebastian Münster, 1489-1552)라고 나오고 리처드 이든은 영역자로 나오는 것이었다!

Internet Archive에서 1553년 본을 찾아 보면,

길게 부제와 설명이 적힌 다음에 이렇게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Translated out of Latin into English. By Rycharde Eden

이걸 확인하고 조너선 스미스도 원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앞에서 인용한 문장을 보면, 1553년판에는 'religiō'로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알아보기 용이한 1885년판의 표지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책 타이틀은 '아메리카에 대한 최초의 영어책 3권'으로 되어 있고, 두 번째 책이 앞서 조너선 스미스가 인용한 책이다. 세바스티안 뮌스터가 두 번째 책의 저자로 언급되고 있으며 Cosmographer로 소개되어 있다. '우주지(志) 학자'로 번역이 될 텐데, 지금으로 보면 천문학과 지리학 분야에서 주로 '지도 제작'과 연관된 작업을 하는 전문가로 여겨진다.

그러니 '리처드 이든이 이렇게 썼다'는 잘못된 서술이다. 해당 내용은 세바스티안 뮌스터가 '이렇게 썼다'고 해야 맞다.

해당 글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분명 1553년판을 참고한 것으로 나오는데..

거장도 원문 확인은 소홀했던 것일까? 미스테리다.

가능한 답 중의 하나는 서지사항 체크를 아웃소싱한 결과가 아닐까? 조교나 비서가 체크한 결과로 글을 쓴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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