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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시작하는 날은 많다?│시간과 종교적 본능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부제를 약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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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시작점은 많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은 동지, 설, 정월대보름, 입춘 등입니다. 전에 이야기한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신년 기념일들처럼(참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여러 신년 기념일이 있는 경우는 특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원래 지역적인 단일성은 있었을 겁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1월 1일이다, 이 동네는 음력 설이다, 이 동네는 입춘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게 어떤 계기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지역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집단들이 묶여서 더 큰 집단으로 통합되면서 시간, 의례 등을 통합하는 과정이 뒤따르게 됩니다. 종교단체 수준에서도 진행이 되지만 국가 수준에서도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은 국가의 흥망성쇠, 종교단체의 흥망성쇠 등 집단 구속력의 변화에 따라서 부침을 겪으며 반복·중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에서는 16세기에 신년 기념일을 단일화하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19세기말 20세기에 시도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수준에서 한 해의 시작일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지만,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첫 날은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이를 문화적 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선조들이 해왔던 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나타남).

여러 신년 기념일은 그런 통합의 힘에도 어떤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과거의 전승이 살아남아 그 흔적을 남긴 덕분입니다. 다만 해당 기념일을 현재에 활용하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면 사라질 운명을 일 겁니다. 그럴 경우 '고유한 문화를 지키자'는 운동이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집단 정체성과 관련된 전통으로 선택되지 못하면 잊혀지는 것이고요.

동지

우리에게는 팥죽 먹는 날 정도의 의미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날도 과거에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기념되었습니다. 그런 동지 축제가 신년 축제인 사례도 세계적으로 보면 많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게르만의 율(Yule) 축제가 그러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https://www.npr.org/2019/12/21/788997324/happy-winter-solstice-at-last-weve-made-it-to-the-shortest-day

우리 민속 전통에서나 고대 중국(주나라)에서 동지를 한 해의 출발점으로 삼은 예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태음태양력)의 모태가 된 중국의 시헌력은 시간의 기준을 동지로 삼고 있지만 그 달을 11월로 정하고 있습니다.

역법의 변화, 민속의 변화에 따라서 천문학적 기준점은 인간이 향유하는 문화적 기준점과는 차이가 생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인식하고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의 리듬은 달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음력 정월, 정월 대보름 등 달을 기준으로 한 해의 시작을 가늠하는 게 민속적 맥락에서는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지는 기록이나 전래 동요 속에서 '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뿐 현대 사회에서는 신년 기념일과는 관련성을 잃어 버렸습니다. 축제일의 감각은 크리스마스가 점유해 버렸고요.

정월대보름

현재는 부럼 먹는 날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설보다 더 신년 축제로서 의미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액막이 음식, 놀이,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과 놀이가 펼쳐졌습니다. 부럼이나 팥밥을 먹는 것도 새해의 무탈과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팥밥은 동지 팥죽처럼 악귀를 쫓는다는 주술-종교적 의미를 가졌습니다.

다리밟기, 더위 팔기, 석전(투석전), 줄다리기, 달맞이, 달집 태우기, 복토 훔치기, 쥐불놀이 등 다양한 정월 대보름 놀이들은 개인의 건강과 마을 집단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음력이 일상에서 중요했던 시절에 '첫 번째 만월'은 지금의 1월 1일 일출처럼 '한 해의 소원'을 빌 만한 천문 현상이었습니다. 달맞이에서 소원 빌기를 빼 놓을 수는 없죠.

양력 체계가 정착되고, 음력 설의 가치가 높아지고, 농경 인구가 감소하면서 이 기념일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민속학적 의미를 가진 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고유 문화라는 맥락에서 향유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https://sanders.tistory.com/75

참고로 일본에서는 이 날을 '코쇼우가츠(小正月, こしょうがつ, '작은 설')'라고 해서 기념을 하는데, 이때 팥죽을 끓여 먹었다고 합니다. 귀신 쫓기의 종교적 의미가 있었던 거죠. 우리의 동지 풍습과 유사한 모습이죠?

신년 기념일이 아니지만 유지되는 축제일

같은 의미에서는 새로운 경쟁자(양력 1월 1일)를 이길 수는 없을 겁니다. '새해의 시작점'들은 새로운 의미와 문화적 기능을 갖게 되면 존속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월 대보름이 한 해의 출발점이 아니라 민속 기념일 같은 의미로 살아남는 것이죠.

이 유명한 케이스는 핼러윈과 만우절입니다. 이전에 쓴 "핼러윈, 크리스마스, 만우절의 공통점"이란 글에서 핼러윈과 만우절도 신년 기념일이었다는 점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들은 이제 신년 첫 날의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죠. '망자의 날'과 '거짓말의 날'이라고요. 소비문화 축제, 장난스러운 놀이의 날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애초 축제의 의미는 사라져버린 것이죠.

그 날 했었던 어떤 전승(죽은 자들과의 만남, 지나친 장난)들 중에서 지금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문화적으로 선택된 것이죠. 모두 액막이라는 주술-종교적 의미를 가진 행위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은 배경에 머무르고 미디어의 흥미거리, 소비문화의 아이템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습니다.

원초적 본능과 표현 방식의 다양성

신년을 향유하는 문화에는 나이테와 같은 흥미로운 흔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초적인 종교적 본능이 재해석되고 변형되면서 다양한 놀이-종교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간관을 갖는지, 어떤 생업을 향유하는지, 여가는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서 놀이-종교 문화는 그 얼굴을 계속 바꿔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간의 마디에서 활성화되는 인간의 근원적 동기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댓글

  1. 감사히 읽었습니다. 천문 현상이라는 규칙적인 시간을 인간이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에 의하여, 신년이나 다른 특별한 날을 기념하게 된 것이겠죠. 이런 날들의 변천은 인간의 세상에 대한 이해방식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고,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변화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인간의 근원적 동기'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천문지식들, 이를테면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 변화 및 세차운동과 고대 문명의 관계를 추적하는 연구도 있죠. 이를테면 Giorgio de Santillana교수(MIT교수였던 것으로 압니다)와 Hertha von Dechend의 "Hamlet's Mill: An Essay Investigating the Origins of Human Knowledge and Its Transmission Through Myth"같은 연구서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햄릿의 맷돌'로 불리죠) 이 분야도 깊게 들어가보면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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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게다가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해 주신 것도요. 천문학과 신화가 만나면 정말 흥미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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