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deepest fear'는 영화 〈코치 카터〉(2005)에서 티모 크루즈가 한 대사로 처음 접했다. 뭐 이래 멋있는 말이 다 있어?
영화 〈코치 카터〉의 한 장면 |
대사는 무척 길다.
Timo Cruz: 'Our deepest fear is not that we are inadequate. Our deepest fear is that we are powerful beyond measure. It is our light, not our dark that most frightens us. Your playing small does not serve the world. There is nothing enlightened about shrinking so that other people don't feel insecure around you. We are all meant to shine as children do. It's not just in some of us; it's in everyone. And as we let our own lights shine, we unconsiously give other people to do the same. As we are liberated from our own fear, our presence automatically liberates others.' so I just wanna say thank you. You save my life.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가 무능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 자신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정말로 두렵게 하는 것은 우리의 어둠이 아니라 우리의 빛입니다. 당신의 소심한 행동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움츠리는 데에 깨달을 만한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그러듯이 우리 모두는 고유한 빛을 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중 일부에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빛을 발하게 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것을 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두려움에서 해방 될 때,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도 다른 이들을 해방시킵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를 구해주셨습니다.
이 메시지가 전해주는 감동은 우리 내면의 더 좋은 것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데에서, 그러한 태도가 우리의 삶을 바꾸어서 심지어 우리를 구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데에서 만들어진다. 이것은 두려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다. 그렇지만 낯설지 않은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예수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고, 우리에게 더 낯설지 않은 것은 붓다의 이야기에서 이 메시지를 만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의 비극은 이 메시지가 상대화되는 자리이다. 자신의 빛을 끄집어 내서 우리 가 본 영화에서 다른 팀과의 경쟁에 승리하기를 바라듯이, 우리의 빛이 자유롭게 하는 '우리'의 실체가 인류를 뒤덮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피아, 적과 동지의 구분이 던져지는 자리에서 이러한 감동적인 인간 내면의 위대함의 빛은 '힘의 논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동력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
인간이 맛보는 내면적 위대성은 특정 상황의 위기를 돌파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마치 큰 고통에 빠진 환자에게 주어지는 몰핀처럼.
인간은 이러한 고양과 현실적 추락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진술은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으로도 넘어서기 어려운 "두려움"을 불러 내긴 한다. 그래도 '실존'의 인간에게는 'Our deepest fear' 수준의 감동이 큰 힘이 된다.
이런 감동적인 메시지를 듣게 된다면, 이 말의 출처를 찾고 싶어진다. 과연 누가 한 말일까? 어디에서나 '넬슨 만델라의 연설'이 그 출처라고 이야기한다.
유명인의 명언이라면 좀 더 구체적인 출처를 확인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찾고 또 찾아보니 '넬슨 만델라' 재단 홈페이지에서 이런 걸 볼 수 있었다.
만델라 재단의 'deepest fear'에 관한 설명 |
친절하게 'our deepest fear'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려주고 있다. 마리안느 윌리엄슨(Marianne Williamson)의 책 『사랑으로의 회귀: 기적 강좌의 원리에 대한 고찰(A return to love: Reflections on the principles of a course in miracles)』(1992)에 실린 내용이라고 한다. 기적이 등장하고, 목차를 보면 '신(하느님)', '지옥' 등이 나온다.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수필집이다. 이 책은 1976년에 나온 헬렌 슈크만(Helen Schucman)의 A Course in Miracle을 윌리엄스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사랑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3년 Paperback 표지(좌), 1996년 Paperback 표지(중), 목차(우) |
영화에 나온 버전은 'God' 운운하는 구절을 제거한 것이다.
Our deepest fear is not that we are inadequate. Our deepest fear is that we are powerful beyond measure. It is our light, not our darkness that most frightens us. We ask ourselves, Who am I to be brilliant, gorgeous, talented, fabulous? Actually, who are you not to be? You are a child of God. Your playing small does not serve the world. There is nothing enlightened about shrinking so that other people won't feel insecure around you. We are all meant to shine, as children do. We were born to make manifest the glory of God that is within us. It's not just in some of us; it's in everyone. And as we let our own light shine, we unconsciously give other people permission to do the same. As we are liberated from our own fear, our presence automatically liberates others.
이러 저러한 탐색을 통해서 내가 감지한 것은 오귀인이 (서구의) 기독교도에게서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참고가 되는 글이 있다. "Nelson Mandela's Speech"(2003)이다. 글이 실린 사이트는 존 마크 목사'John Mark Ministries'의 블로그이다. 부제를 '기독교 신앙에 관해 성숙하게 생각하기(thinking maturely about the christian faith)'로 적고 있다.
제목이 '넬슨 만델라의 연설'인데 인용된 내용은 'our deepest fear'였다. 이에 대한 반응들도 적어 놓고 있다. 윌리엄슨의 책에서 나온 내용이라는 지적과 만델라가 원출처는 아니지만 그가 연설에 사용한 내용이라는 설명이 공존하고 있다. 만델라의 연설에 해당 표현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글의 메시지와 만델라의 삶과 정치가 너무 찰떡 궁합이기 때문에 이러한 오귀인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내면의 성취, 평화, 화합의 정치, 그리고 해방의 서사를 가지고 있는 넬슨 만델라와 윌리엄슨의 글은 정말 딱 떨어지는 느낌, 인식의 산뜻함을 불러온다.
그러니 이 오귀인은 해당 글귀를 가장 '파급력 있게' 만들어 준다. 메시지의 감동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준다. 만델라의 삶과, 그 이야기, 그리고 신앙은 모두 일치하면서 '극적 효과'를 빚어내기 때문이다.
마리안느는 그저 책을 썼지만, 만델라는 그러한 삶을 살았고, 그러한 삶을 남아공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이끌어 나갔으며 위대한 정치를 보여주었다.
이 오귀인 사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어 유통되는 이야기가 지닌 독특한 정보의 취사선택, 그리고 재구성의 논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의 연설문에 해당 글귀가 없다고 하더라도, 만델라가 그러한 이야기를 했다고 하면, 그림이 근사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우리의 깊은 두려움'에 느꼈던 감동이 더욱 신뢰할 만한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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