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180403/89428159/1 불안 과 분노, 그리고 ‘없는 물음’ 박사학위를 마치고 사회에 나왔다.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학위를 마치기까지 유예되었던 많은 것들의 만기가 도래했다.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갚을 길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위로를 삼아 보지만, 인간의 도리, 사회인의 도리, 자식 된 도리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무수한 비교와 평가에서 쉬이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창작의 고통’을 핑계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실상은 뿌리 깊은 불안 탓이 크다. 불혹이 코앞이다. 이립(而立)을 완수하지 못한 삶에서 불혹(不惑)은 언감생심이다. 20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불안(不安)이 있을 뿐이다. 불안은 여유를 잠식하고, 쉬이 분노케 한다. 20년 가까이 쌓인 불안은 내게 분노조절장애를 선물했다. 그리고 열등감과 콤플렉스는 뒤틀릴 대로 뒤틀려 버렸다. 위의 꼰대를 욕하며 아래로 꼰대 짓을 일삼는다. 밖에서 혁신과 평등 그리고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안에서는 압제와 폭력의 화신이 된다. 나는 ‘바른’ 혹은 ‘정상적인’ 어른으로 크지 못했다. 불혹이 눈앞이지만 이립조차 버거우니 말이다. 이런 자의식 탓에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종종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에 불을 지핀 이야기가 있었다. 소위 ‘요즘 아이들 문제’라는 내용으로 대학교 신입생들의 '폭력적 신고식’을 고발하는 기사들이다( 기사1 , 기사2 , 기사3 ). 그 신고식에는 폭음, 얼차려, 기타 가혹행위 등이 동반되었다. 분명 그러한 폭력적 신고식은 ‘나쁜’ 것이다. 신입생들에게 그러한 일을 시키는 선배들이 ‘나쁘다.’ 이러한 인식까지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뭔가 빠져있다. 중요한 질문이. 그 선배라는 친구들이 저런 짓을 왜,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제대로 묻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체 저런 짓을 어디서 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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