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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성희롱을 당할 수 있다 │ 내가 겪은 성희롱…'성희롱을 당했다(고 느꼈다)'

성희롱은 남 일이었지

주위 여자 동료들이 늘 겪는 문제겠지만, 주변에서 '문제화'된 경우를 듣는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결정적 사건으로 내가 기억하는 건 2건이다. 하나는 선배B가 겪은 일, 다른 하나는 후배C가 겪은 일이었다. 모두 사건이 발생하고 한참 후에 알았다. 후자의 건에는 나도 약간 불쾌한 방식으로 관련되어 있었다(나중에 안 일).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그 사건을 겪었던 분들의 상처를 다시 일깨울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 두 사건은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고 묻혔다. 전자는 형식적인 조처로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기고 마무리지어졌다. 후자는 내부에서 제한적인 공론화와 조치가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미흡한 것에 불과했다(오로지 내 느낌). 가해자가 학교를 떠난 것도 아니고 단지 마주치지 않도록 분리 조치가 되고 각자 공부는 계속하게 되었으니까. 결국 학계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을 게다. 누군가가 떠나지 않는 이상.

내가 존경하거나 아끼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는데, 나는 '누군가를 편드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 멀찍이 바라만 봤다. 사실 내가 나설 수도 없었다. 피해자의 상처를 크게 만들 뿐일 오지랍이었을 테니. 그 사건들은 쉬쉬해야 할 '우리 공동체의 치부'로 여겨졌다. 나도 '에효, 어쩔 수 없지... 그동안 보아온 정이 있는데, 누군가 인생을 망칠 수 없지', '선배들 사이의 그 유대가 미온적 조처를 어쩔 수 없게 만드는 것 같구나' 정도로 이해했다.

나는 그 문제들에서 철저히 방관자로 남아 있었다. 제삼자의 모호함, 그 속에서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로 묻어두기'를 함께 받아들였다. 내 주위 사람에게 벌어진다고 해도 '남 일'로서의 한계를 가졌던 것 같다. 나는 '피해자'의 입장을 미루어짐작하고 상상할 수 있었을 뿐이지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했다.

'왜 그들은 그 이야기를 바로 이야기하고 공론화해서 해결하려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먼저 떠올렸으니까. '왜 틀린 걸 틀렸다고 말을 못할까'라고 생각했으니까. '왜 정식으로 책임을 묻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건의 당사자들은 그 문제를 잘 통제된 방식(피해자가 추가적인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으로 '바람직하게'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결과는 물론 피해자들이 짐을 다 짊어지는 식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일지도).

 

그나마 비슷한 개인적 경험은?

힘의 차이가 있을 때, 힘 쎈 사람이 약한 사람을 함부로 하는 일,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폭력 문제'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여성 동료(선후배)들의 성폭력 이슈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는 내게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일을 당한 경험'이었다. 사실 굉장히 비슷한 방식으로 그런 문제들이 처리된다.

가해자와 피해자, 누가 가해자인가 누가 피해자인가의 싸움이 등장한다. 쌍방폭행론이 등장하는 것이다(성폭력 문제에서는 사귀었네, 먼저 꼬리쳤네 류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리고 쉬쉬하는 분위기. 공론화는 결국 '우리 공동체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요, '자기 얼굴에 침뱉기'요, 공동체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로 여겨진다. 요식행위와 같은 사과 퍼포먼스, 그렇게 사건은 피해자에게 굴욕감을 남긴 채 마무리된다.

큰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한동안 잠을 잘 수 없었으니). 누군가에게 '마음의 화를 내려 놓아라', '그 화를 안고 있으면 너만 손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분노에서 쉬이 탈출하진 못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빠져 나왔지만.

아, 성폭력과 일반 폭력 문제가 비슷한 구석이 있구나, 그렇게 느꼈던 경험이었다.

공부하는 사람이 '폭력을 쓴다'는 게 납득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공부하는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이다. 누군가 분노 조절이 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나보다 약자라고 여겨진다' 혹은 '내가 어떻게 해 봐도 불이익이 없겠다' 싶으면 막 나갈 수 있다. 뭐, 거기에 나도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장담은 못하겠다.

그런 문제를 겪으면서 공동체 내 문제를 해결하는 건강한 방식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을 해 봤었다. 답은 못 찾았지만. 보통 공식 사과 및 상응한 징계, 재발방지 조치가 이야기되는데, 은폐-요식행위-피해자 내쫓기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과하고 명예롭게 책임진다,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쉬쉬한다. 명예훼손 걸릴라, 이러면서 말이다.

어쨌든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 문제를 가장 공감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 나만의 기준점은 바로 그 경험이었다.

문제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의외로 고려해야 할 문제는 많았고 복잡했다. '조용히 넘어가야 하나?'라는 물음을 떠올리기 십상이었다.

 

내가 겪은 성희롱

제목에 '-고 느꼈다'*를 붙인 이유는 가해자는 '좋다고, 예뻐해서 한 표현', '관례적으로 허용 범위 내에 있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게 '사실'일 수도 있을 가능성이 '0'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나만 불편한가...'의 상황일 수도 있으니.

* 이 글의 최초 제목은 '성희롱을 당했다(고 느꼈다)'였다.

그러나 성희롱 가해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늘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지 출처: POSCO 성윤리 교육자료

내가 들은 말은 이렇다.

'야, 우리 지금 뽀뽀나 할까?'(1:1로 들은 말이라 증인은 없다)

'그럼 우리 한 이불 덮고 자는 거야'(술자리에서 들은 말이라 들은 사람이 여럿 있다)

* 유의) 진술한 문장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실제 발화된 문장은 아니다. 핵심 메시지에 따라 회상된 문장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문장에서 '지금 우리 뽀뽀나 할까?', '야 뽀뽀나 하자'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뽀뽀'라는 단어나 '한 이불 덮고 잔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40대 아저씨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믿겠는가? 나한테 벌어진 일이다. ('이거 가지고 웬 난리야, 그게 더 이상하다'고 그게 더 믿기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술자리의 분위기를 고려해서 정색하고 따지거나 문제삼지는 않았지만... 게다가 그분의 그동안의 기행에 비추어보면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러려니 포기한 분위기가 없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긴 했다.

트위터에서 봤는데, 김어준이 '다뵈'에서 최근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익숙해지지 않기에요우리는 원래 기준대로 마땅한 기준대로 생각하고 살아야 해요그래야 되돌아 가지..

누군가의 빈번한 '선 넘는 행동'은 익숙해져서 덮이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 같다. 그럴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요지경 세상'이다. 내가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친 건지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아주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학부 때, 내가 머리를 기르고 다녔을 때가 있었는데, 학술대회 발표장에서 어제 저런 발언을 한 노교수(당시엔 중견 교수)가 내 신체를 터치한 적이 있다. 오해는 말자. 난 이쁘장한 타입, 미소년, 이런 거와는 거리가 멀다. 머리 길렀을 때, '야 너 누구 닮았다'로 마상 많이 입었었다.

'뭐 그냥 평균 이상 정도네' 수준. 동안 소리는 좀 듣는 편이지만. 친한 지인들은 '잘 생겼다', '동안이다'라는 소리에 열에 일고여덟은 입에 손가락을 넣을 테니.

그 일을 겪었을 때는 '이분 선 넘네' 정도의 헤프닝으로 여겼다. 어제의 일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니 동성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성추행'이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덧> 생각해 보니, 군대에서도 일이 없지 않았다. 남자에게 가해지는 동성 성추행/성희롱/성폭력이 가장 넘치는 곳이긴 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D.P.'에 나온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음담패설, 신체접촉 같은 건 있었다.]

 

고민의 시작

피해자 중심주의, '그 사람이 성희롱-성폭력이라고 느꼈으면 성희롱-성폭력이다'라는 애매한 문제를 체험하게 된다. '나는 모멸적인 성희롱의 대상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건 사실이다.

'가해자를 비롯한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다'는 건 100% 자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내 앞자리에 앉은 분이 '그분의 문제 발언이나 행동을 찍어 놓은 것 많이 있다'고 언급한 걸 보면, 나만의 느낌은 아니라 믿는다. (여기서 팩트 체크 들어가서 조사가 이루어질 때, 증언이 바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상황이 그렇게 전개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 상대방이 비겁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건 아니다)

피해는 증명되어야 할 문제다. 사실은 그 자체로 사실인 게 아니라 '공적 인정'을 통해서 사실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 사실은 '환상', '거짓', '조작'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야 말로 거짓이라 할지라도.

흥미롭다. 종교도 그런 것인데(난 종교학을 공부한다). 종교를 판타지(환상)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는 판타지는 사실의 힘을 갖는다. 그래서 종교는 마냥 판타지가 아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종교를 "상호 주관적 실재(reality)"라고 말한 이유이다.

그런데 우리가 겪는 많은 일들, 그중에서도 '공적으로 인정되는 것', 그런 사실이 판타지로서의 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긴 하다. 모두가 믿는 게 거짓일 수도 있다. 그게 거짓으로 판단되는 건 언제나 먼 미래의 일이지만. '지연된 정의'. 그런데 그건 사실 정의가 아니다. 적어도 살아있는 정의는 아니다.

그런데 사실 다른 가능성이 분명 존재하긴 한다. 제삼자로서는 무고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충격적 사건들은 21세기 뉴미디어 시대라고 해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보 생산자의 자기 이익에 따라서 '편집된/왜곡된 사실'이 현실 이해의 기본 정보가 되는 경우는 너무 비일비재하다. 나도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제삼자로서 '객관적 진실'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나는 피해를 겪었다고 인지하고 느꼈지만, 주변에서는 '뭐 저 사람 수준에서는 그리 과한 건 아니야.' 혹은 '야, 그거 관심을 표현하는 관례적인 수준 아니냐.' 혹은 '동성끼리 무슨 성추행-성희롱이냐.' 이럴 수도 있다.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유불리를 따져서 당시 상황을 부정하거나 왜곡해서 진술할 가능성도 있다. 권력관계가 그런 데에서 작동하기 마련이니까. 다른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보통 '피해망상'으로 치부되는 것이기도 하다.

객관적 물증이 없고, 피해자의 증언만 있었을 때, 그 사건은 과연 존재한 것일까? (내 경우 '우리 지금 뽀뽀나 할까?') 아니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것일까? (내가 미친놈이다,가 되겠지)

내가 겪은 일이지만 여기에 '인정 투쟁'과 '객관적 검증' 과정이 동반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이미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연구자로서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한 끗에 5억을 태워?'가 될 수도 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 The winner takes it all!

 

이거 완전 '도박'이다

피해자임을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말이다. 왜 그들이 말하기 어려워했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덧> 이런 문제 때문에 요즘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서 '무고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찬성하기 어렵다. 무고를 너무 엄정하게 따지면 애초 피해가 증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물론 성폭력 문제가 무기화 되어 사용된 예들이 없지 않고, 그렇게 어떤 남자들의 인생이 크게 망쳐졌다는 문제도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해법이 '무고죄 처벌 강화'여야 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피해자의 자기 주장에 근거한 판단이 갖는 맹점--내가 그렇게 느꼈으니 사실이다--을 그렇다고 무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여기 무짜르듯 경계를 가를 수 없는 모호한 영역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정치적-법적 해결의 한계를 고민하게 된다.

인문학 연구자 종특, '자 생각해 보자'로 마무리 짓는 걸 양해 바란다.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쓰고 이야기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논의하다보면 어떤 집단지성적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너무나 막연한 희망을 가질 뿐이다.]

 

뭘 느꼈냐고?

권력형 범죄(성희롱-성폭력은 강자가 약자에게 행사하니까)의 피해자가 되는 거, 상당히 굴욕적이고 자존감 떨어지는 일이라는 거.

그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는 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 잘 알고 지낸 사람들 사이의 인지상정의 감각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는 거.

정치적으로 비화된 사건들도 간단히 볼 수 없었다는 거.

늘 일상적으로 저런 문제에 노출되고 있는 여성 선후배 동료들의 고통을 조금은 더 잘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

이런 걸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앞으로 나는 성폭력 이슈에 대해 전사적으로 나서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에 앞장서겠다'는 다짐을 하진 못할 것 같다. 난 게으르고 싶고 게으를 것이다.

술자리에서 늘 선 넘었던 까마득한 선배 학자의 새삼스러운 성희롱 발언을 글로 썼으면, 양심껏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행동'했다고 믿는다. (근데 사실 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모든 걸 건 것이긴 하다. 젠장, 이 하찮은 비장함은 어쩔꺼냐;; 보는 사람은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피해자들은 아마 그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진실을 얻기 위해 인생을 건다.)

앞으론 회식, 뒷풀이 자리에서 여선배/후배가 성희롱 발언에 노출될 때, 적극적으로 그 발화자를 저지하거나 질타하거나 해서 도와주겠다,고 다짐할 수도 없다. (앞으로 그런 자리에 초대받지 못할 가능성이 클 것 같기도, 지레짐작이길 바랄 뿐이다)

나는 늘 게으르고 비겁하고, 그렇게 잘 사회화 된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할 테다.

그러나 고민하고 글은 쓰겠지 싶다.

다른 한편으로 성희롱/성차별적 발언을 해서 '가해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과거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건 경고'인데,라는 소리를 들었던 경험이 없지 않다. 남 탓 이전에 나나 반성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밀고 나가면, 사실 '침묵'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피해자이기보다 가해자였을 경우가 더 많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에. 아니, 그런 일이 사실이라면 나도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일일 게다.

그러니 내가 공범이었든, 가해자였든, 그런 과거가 있다고 해서 침묵하면 변할 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기록을 남기기로 한 것이기도 하다. 혹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질책을 겸허히 듣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것이다. 책임질 것이 있다면 책임도 지어야겠지.

이런 것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대응 방법은?

공적인 사과를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고 싸울 생각은 없다.

사과의 조건이 글을 내리는 것이라면 과연 사과를 받아야 할지도 고민이다. (김치국 드링킹 같은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과는 못 받고, 이 문제는 덮혀지고 잊혀지게 되지 않을까. 늘 그랬듯이. 그래도 아쉽지는 않다.

가장 가능성 높은 결론이지... 이 기록을 남기고도 그럼 난 살아남을 수? 당차게 손을 들었지만 결국 뒷머리를 쓰다듬게 될지도.

다만 이런 문제들(남자가 성희롱 피해자가 되는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내 성희롱/성폭력+권력형 폭력 문제)이 더 수면 위에서 다뤄지면서 공동체 내에서 이런 복잡한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논의가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게 최종해결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 논의가 발전해서 적어도 내가 속한 공동체(학문 공동체)에서 성희롱 등 성폭력 문제--폭력 문제 포함--를 피해자가 존중받으며, 그렇다고 가해자가 모든 걸 잃어야 하는 방식이 아닌 나름의 건강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게 되기를 소망한다. 각자가 받기에 합당한 평판을 얻는 정의로움 정도? 그게 '낙인'이 되진 않길 바라지만... 그게 또 쉽진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흠, 역시 인문학 공부한 사람답게 너무 이상적인,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은 것 같다.
가해자를 죄인, 파렴치한, 인간 쓰레기로 만들어서 사회에서 매장시키거나 법적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란 것도 모르는 혹은 기껏해야 헷소리 조금 들은 걸로 연구자 커리어를 망가뜨릴지 모를 일을 하는 것보다 펜 함부로 굴리지 않는 게 더 현실적인 해법이란 것도 모르는 사회화 덜 된 미성숙한 먹물의 한가한 소리였을 게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 꿈꿀 수 있는 자유는 누리겠다. '문송'의 대표주자인데 이정도 배짱은 튕겨도 되잖아!

일단 우리 학계의 자정 능력을 믿어 보련다.

앞서의 걱정들이 기우/망상 테크였길 기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 ∞ ───

누군가를 저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럴 유익도 없다. 오히려 이를 공개했을 때 나한테는 불이익이 큰 상황이다. 난 공부하는 사람이다. 학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자살행위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다. 학계는 동료평가 및 정규직 교수들, 선배 학자들의 평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스스로 평판을 떨어뜨리는 게 될 게 분명하다(떨어질 평판이 있을진 모르나... 있다고 믿어주면 좋겠다^^). 분명 난 지금 바보같은 짓을 하는 것일 게다. 분명 누군가의 조언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난 지르는 타입이니까. 사고를 칠 수도 있으니까. 내 딴에는 나만 정의라고 독단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의심, 자기검열에 의한 갈등도 느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엄청난 사명감과 의무감, 도덕적 감수성을 내세워 '투사'가 되고 싶은 의도도 없다(의심은 자유지만). 그런 건 부지런한 자들의 전유물이다. 나는 게으르다. 그런 건 부담스럽다. 적당히 쏘쏘하게 공부 계속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충분하다.

단지 남자로서 '성희롱'을 경험하는 게 쉽지 않고(가만히 생각해 보니 3장면이 떠오른다. 더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부 때 1번, 박사 마칠 때 쯤 1번, 최근 1번, 첫 번째와 마지막이 동일인 작품이다), 그래서 상시로 성희롱을 겪는 여자 동료들의 문제를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의미있겠다 느껴서 쓰려 한 것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꼴에 거 뭐 한 번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이리 난리를 치나'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 피해자성의 한계를 갖는 자의 대표성 시비가 있을 수 있겠다 싶다. 건 뭐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누군가를 죄인으로 낙인 찍고 책임을 물려 끝내는 게 아니라 서로 선 넘음에 대해 바로 사과하고 정정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는 수준 정도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충분히 '계산'하지 못하고 자못 치기 어리게 보일 수 있는 기록을 남기기로 한 것 뿐이다.

식사자리 테이블에 같이 앉은 여자 선배A는 '여기 여자는 나만 있네' 하며 불안해 하는 걸 흘려들었었다. 그런데 유독 한 분이 아슬아슬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다른 원로/선배 학자분들이 이를 제지하지 못했고, 나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이 글은 그 선배에 대한 사과의 의미도 있다.

누군가는 분명 불편하게 만들고 말 글일 게다. 그런 분들에게는 삼가 유감을 표한다. 당신을 공격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런 '아픔'이 있고, 서로 존중할 수 있다면 평화로운 해법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어 쓴 글이었음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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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2년 6월 18일에 작성된 것이었고, 이곳에는 다소 수정하여 올렸다. 애초 우려했던 것 중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가 현실화되었다. 글에 대해 몇몇 사람의 호응은 있었지만, 공식적인 논의나 어떠한 자정 움직임도 감지하지 못했다.

현재 해당 학회에 가해 당사자의 공식적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과 조치를 요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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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8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이 글은 Skeptic Korea의 " 정신의학의 오래된 과제, 과학적 치료와 처방 "에 관한 얼룩소글의 출처를 체크하고, 정신질환 치료의 현실에 대해 박한선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정래해 본 글입니다. ─── ∞∞∞ ─── 최근에 나온 글인 줄 알고 찾아봤더니 전에 나온 글이군요. 마침 어제(1/27) 정신과 의사 출신 인류학자 박한선 선생님을 통해서 관련 이야기를 듣고, 글쓴이부터 찾아 봤습니다. 다른 저자인 걸 보고, 정신의학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박선생님께서 정신병 진단과 치료에 '정신분석학'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 했었습니다. 심리학계(실험심리가 중심이 된)에서는 배우지 않게 된 분야로 알고 있어서 의학 분야에서도 당연히 퇴출되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인지 모르지만, 효과가 있다'는 면에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정신분석학'도 프로이트, 융 시절의 버전이 아니라 많이 업데이트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부분은 과문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제 박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도 떠올라 흥미롭게 이 스켑틱의 글을 읽다가 문득 출처가 궁금해서 찾아 보니, '한국 스켑틱'에는 14권(2018년)에 "정신의학은 과학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로 실려있었습니다. (스켑틱에서 얼룩소에 올리는 글이 최근호에 실린 글이 아니라는 걸 이제사 깨달은 거죠) https://www.badabooks.co.kr/SKEPTIC_magazine/?idx=54 글은 14권의 68~83쪽에 실렸습니다. 이 글을 일부 발췌해서 재편집한 것이 위의 얼룩소에 실린 글이더군요.

미신과 종교라는 개념에 담긴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미신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그게 무엇이냐 물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행위들이나 관념을 이야기합니다. 뇌과학자 정재승 선생님도 미신 이야기를 하면서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행위가 불길하다는 미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정재승 편 미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할 때, 이렇게 미신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시험 볼 때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시험 볼 때 포크를 선물한다' '손 없는 날 이사해야 한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 팥죽을 먹는다' 그럼 '미신'은 어떤 것이냐 설명해 보라면, 아마 이런 말들을 늘어 놓게 될 겁니다. https://engoo.co.kr/blog/먼나라이웃나라-세계-각국의-다양한-미신들/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로 그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미신' 항목 그런데 이런 개념은 일상에서는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쓸 수 없는 설명입니다.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게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경제적 판단과 믿음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관상은 과학이다', 'ABO 혈액형 성격론', '과시적 소비' 등등. 어떤 종교적 맥락에서 '이상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미신'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종교와는 다른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위 국어사전의 개념 정의는 종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