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이단'과 미신은 비슷한 것을 말하는 듯하지만 약간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사이비와 이단이 유교에서 기원한 바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어떤 가르침(敎)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론이나 교리 같은 것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가르침 중에서 정도에서 벗어난 것이란 함의를 갖습니다.
반면 ‘미신’(superstition)은 음사와 마찬가지로 ‘초자연적 존재(신)에 대한 숭배의식’ 중에서 ‘잘못된 신에게 행하는 의식’이나 그냥 ‘잘못된 의식’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확장되어 그러한 종교적 관념과 실천을 일컫습니다.
‘죽을 먹으면 시험을 죽쑨다’는 것은 미신이라고는 하지만 사이비나 이단이라고 말하지는 않지요. 신에게 구원 받기 위해서 전재산과 온몸(가령 성상납 같은)을 바쳐야 한다는 가르침을 가진 종교 단체에 대해서 사이비나 이단이라 말하지만, 그런 가르침을 미신이라 말하지는 않습니다.
미신이 사고방식이라고?
미신으로 지칭되는 것은 어떤 종교적 관념과 실천입니다. 새 이빨을 얻기 위해서 뽑은 이를 지붕 위로 던지는 행위는 미신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신으로 부르는 종교적 관념과 실천은 대개 ‘직관적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과 ‘시험을 죽쑨다’, ‘빵’과 ‘빵점’. 이런 연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일본에선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카츠동’(カツ丼)을 먹는다고 합니다. ‘카츠’는 동음이의어 중에 ‘카츠’(勝)[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https://www.facebook.com/tonkachihk/
이런 연상법에는 ‘비슷한 것 묶기’(유감주술)가 있고, ‘연결된 것 묶기’(접촉주술)가 있습니다. 앞서 본 사례들이 비슷한 발음, 형태 등에서 연결이 이루어졌습니다. 후자의 사례는 집단과 연결된 깃발을 집단과 동일시하는 것(국기모독죄)이라든지 ‘빨간색 이름 안 쓰기’(사형수 이름 빨간색으로 쓴 문화적 기억에서 연유되었다고)라든지 ‘빵을 뒤집으면 안 된다’(프랑스, 과거 사형수에게 뒤집어진 빵을 준 관습에서 유래되었다고)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은 말 놀이나 문학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언어유희나 문학적 비유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뜬금없게 여겨지시겠지만, 김시습의 시 한 편을 볼까요?
二十樹下三十客 (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 서른(서러운) 나그네가 四十家中五十食 (사십가중오십식): 마흔(망할놈)의 집안(집구석)에서 쉰밥을 먹네 人間豈有七十事 (인간개유칠십사): 사람 사는 세상에 어찌 일흔(이런) 일이 있으랴 不如歸家三十食 (불여귀가삼십식):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설익은) 밥을 먹으리라
이런 유쾌한 언어유희도 있고, 시적 표현으로 ‘내 마음은 호수요/그대 노 저어 오오’ 같은 것도 있습니다. 이런 류를 ‘아재드립(개그)’으로 보기도 하지요. ‘맥주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은? 유언비어’
과학자들은 ‘미신’을 ‘범주 혼동의 오류’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빨간색 글씨’와 ‘죽을 운명’은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고의 비약을 과학자들은 ‘사고의 오류’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어유희나 문학적 비유도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을 연결시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그 경우에 우리는 ‘사고의 오류’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고의 패턴은 같습니다만, 가치판단은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이죠.
미신에 대한 중립적 정의
어쨌든 미신이라 불리는 것은 무관한 것을 연결시키는 사고 방식의 일종인데, 초자연적 인과관계를 기대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신적 존재의 어떤 역할을 기대하기도 하고(기우제), 어떤 결과를 야기시킨 신적 존재를 달래야 하기도 하고(신적 존재가 분노했기 때문에, 가령 역병 퇴치 의식), 초자연적 원리(빵과 시험 빵점, 주로 오염의 원리가 작동, ‘부정 탄다’는 관념)의 작동을 막거나 활성화시키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관념과 실천을 떠올리고 행하는 경우는 대체로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통제하고 싶지만 통제력이 없는 경우들입니다. 가령 과거에는 치통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에게 기도를 했지만, 지금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치통을 낫게 하기 위해서 기도나 어떤 의식을 행하지 않습니다.
https://www.facebook.com/SaintsOfToday.PH
질병 중에서도 병원에서 치료가 잘 되는 경우와 진단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 사람들의 행동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지요. 후자의 경우에 ‘동종요법’이라는 대체 의학적 처치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종교활동을 통해서 치병되기를 기대하는 경우도 많지요.
실존적인 문제(생존, 건강, 시험, 연애 등등)에 직면했을 때, 절박하게 좋은 결과를 얻고 싶은데, 그 결과를 보장할 방법이 없다면, 사람들은 연상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어떻게든 원하는 결과가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이 소망이라는 것이죠.
아시아경제
그러므로 우리가 ‘미신’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보다 중립적으로 표현한다면, 생의 위기 상황에서 위기 극복을 바라며 관념연합(비슷한 것, 인접한 것)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떠올리는 관념과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사용되는 인간의 상상 능력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뇌가 정보 처리를 하는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덧>
종교와 미신은 같은 층위의 개념이 아닙니다. 미신이라 불리는 것은 인간의 사고방식이자 행동방식이고, 종교는 그것을 이용하는 문화적 체계(조직, 신념체계 등을 갖는 문화적 복합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 안에 미신적 사고방식과 실천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제도화되어 하나의 전통/의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미신적 사고와 실천을 할 수 있는 것이고요. 다만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수준이나 정도로 미신적 사고와 실천을 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미신적으로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지요. 그러나 미신에서 100퍼센트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미신과 사이비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신이든 사이비이든 혹은 과학적 사실이나 최첨단 이론이든, 그것에 대한 '믿음'이란 것의 의미와 본성에 대한 깊은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닐 세스가 '우리가 공동으로 빠져 있고 공동으로 인정하는 환각상태를 '현실'이라고 부른다'고 말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진짜 현실로 작용하는 것처럼 여겨진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러한 공동의 '믿음'에 의하여 만들어진 현실이 지난 역사상 우리가 객관적이라 생각해온 현실이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립하여 객관적 실재를 찾고 증명하고 설명을 제시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노력도 분명 있어왔죠.
옥스포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는 “그 어떤 이상적 지식의 근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다고 믿었던 지식이 이따금 우리가 오류를 범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인간은 오류를 발견하고 제거하는 객관적인 설명을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하죠. '믿음'이 생성해낸 공동의 환상 vs 객관적 실재에 대한 지식을 향한 탐구, 이런 식으로 문명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소 거칠고 세부적인 것이 생략된 것이지만요) 오늘 글도 재미있었고, 감사히 읽었습니다.
'믿음'은 상당히 불투명한 개념이죠. 인간의 믿음이 어떤 특성을 가진 것인가는 상당히 복잡한 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종교적 행동과 관념에 대해서 볼 때, 기본적 동기(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요인)와 그 행위와 관념에 대한 '이유'(사후적으로 추론되는)는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으며, '믿음' 운운하게 되는 것은 대개 후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미신적 행동과 사고는 그러나 전자와 관련됩니다. 종교를 말하는 맥락에서 '미신'도 그 말 자체에 '믿음' 개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이 경우 사람들의 실제 행위나 상상 양식은 직관적 특성을 가집니다. '달에는 홍학이 살고 있지 않다는 믿음' 같은 믿음이죠. 누구나 그런 추론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을 애써 기억하고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믿음은 아니죠.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미신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그게 무엇이냐 물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행위들이나 관념을 이야기합니다. 뇌과학자 정재승 선생님도 미신 이야기를 하면서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행위가 불길하다는 미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정재승 편 미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할 때, 이렇게 미신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시험 볼 때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시험 볼 때 포크를 선물한다' '손 없는 날 이사해야 한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 팥죽을 먹는다' 그럼 '미신'은 어떤 것이냐 설명해 보라면, 아마 이런 말들을 늘어 놓게 될 겁니다. https://engoo.co.kr/blog/먼나라이웃나라-세계-각국의-다양한-미신들/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로 그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미신' 항목 그런데 이런 개념은 일상에서는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쓸 수 없는 설명입니다.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게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경제적 판단과 믿음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관상은 과학이다', 'ABO 혈액형 성격론', '과시적 소비' 등등. 어떤 종교적 맥락에서 '이상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미신'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종교와는 다른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위 국어사전의 개념 정의는 종교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신과 종교가 구분되지 않는다면, 어딘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미신'은 과학적 개념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시하는 많은 개념은 편견의 산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서 그런 게...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부제를 약간 수정) ─── ∞∞∞ ─── 1년의 시작점은 많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은 동지, 설, 정월대보름, 입춘 등입니다. 전에 이야기한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신년 기념일들처럼( 참고 ) 같은 나라 안에서도 여러 신년 기념일이 있는 경우는 특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원래 지역적인 단일성은 있었을 겁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1월 1일이다, 이 동네는 음력 설이다, 이 동네는 입춘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게 어떤 계기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지역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집단들이 묶여서 더 큰 집단으로 통합되면서 시간, 의례 등을 통합하는 과정이 뒤따르게 됩니다. 종교단체 수준에서도 진행이 되지만 국가 수준에서도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은 국가의 흥망성쇠, 종교단체의 흥망성쇠 등 집단 구속력의 변화에 따라서 부침을 겪으며 반복·중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에서는 16세기에 신년 기념일을 단일화하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19세기말 20세기에 시도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수준에서 한 해의 시작일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지만,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첫 날은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이를 문화적 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선조들이 해왔던 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나타남). 여러 신년 기념일은 그런 통합의 힘에도 어떤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과거의 전승이 살아남아 그 흔적을 남긴 덕분입니다. 다만 해당 기념일을 현재에 활용하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면 사라질 운명을 일 겁니다. 그럴 경우 '고유한 문화를 지키자'는 운동이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집단 정체성과 관련된 전통으로 선택되지 못하면 잊혀지는 것이고요. 동지 우리에게는 팥죽 먹는 날 정도의 의미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날도 과거에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기념되었습니다. 그런 동지 축제가 신년 축제인 사례도...
미신과 사이비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신이든 사이비이든 혹은 과학적 사실이나 최첨단 이론이든, 그것에 대한 '믿음'이란 것의 의미와 본성에 대한 깊은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닐 세스가 '우리가 공동으로 빠져 있고 공동으로 인정하는 환각상태를 '현실'이라고 부른다'고 말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진짜 현실로 작용하는 것처럼 여겨진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러한 공동의 '믿음'에 의하여 만들어진 현실이 지난 역사상 우리가 객관적이라 생각해온 현실이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립하여 객관적 실재를 찾고 증명하고 설명을 제시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노력도 분명 있어왔죠.
답글삭제옥스포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는 “그 어떤 이상적 지식의 근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다고 믿었던 지식이 이따금 우리가 오류를 범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인간은 오류를 발견하고 제거하는 객관적인 설명을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하죠. '믿음'이 생성해낸 공동의 환상 vs 객관적 실재에 대한 지식을 향한 탐구, 이런 식으로 문명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소 거칠고 세부적인 것이 생략된 것이지만요) 오늘 글도 재미있었고, 감사히 읽었습니다.
'믿음'은 상당히 불투명한 개념이죠. 인간의 믿음이 어떤 특성을 가진 것인가는 상당히 복잡한 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종교적 행동과 관념에 대해서 볼 때, 기본적 동기(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요인)와 그 행위와 관념에 대한 '이유'(사후적으로 추론되는)는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으며, '믿음' 운운하게 되는 것은 대개 후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미신적 행동과 사고는 그러나 전자와 관련됩니다. 종교를 말하는 맥락에서 '미신'도 그 말 자체에 '믿음' 개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이 경우 사람들의 실제 행위나 상상 양식은 직관적 특성을 가집니다. '달에는 홍학이 살고 있지 않다는 믿음' 같은 믿음이죠. 누구나 그런 추론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을 애써 기억하고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믿음은 아니죠.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