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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search publications

논문 Journal articles


2024, 코딩을 활용한 종교문화 연구, 디지털 종교학의 가능성

2024, 북어는 액막이 부적인가, 행운의 부적인가?

2024, '문화 과학'의 유령 [서평논문] [비교문화연구소 링크]

2023, ‘갓생살기’라는 의례화된 행동의 출현과 변화, 그리고 그 시사점

2023, 성지 밈(聖地 meme) 소원 댓글의 유행과 온라인 종교문화상의 함의: ‘쿠키 닷컴’ 게시물 댓글 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

2023, 한국의 온라인 종교문화에 대한 시론적 연구: 온라인 종교활동과 종교적 표현상의 특이 사례를 중심으로(심형준·이원섭·오준혁·이유나 공저)

2022, 1883~1910년 한국의 ‘종교 (宗敎)’ 용례 특이성: 한국 ‘종교’ 개념 형성사 재고

2022, 정치적 종교와 종교적 정치: 공유된 현실과 존재 정당화의 종교-정치적 성격

2021, 종교와 사회성의 진화에 관한 최근 연구의 주요 쟁점과 종교학 분야에의 시사점

2019, 인물신 신격화 논의 재고: 초자연적 행위자와 망자, ‘집단 기억’과 상징화를 중심으로

2019, 사회성의 진화와 종교논의로 본 근미래의 종교문화: i세대/90년대생 담론과 새로운 종교문화 트렌드를 중심으로

2018, 밀양 송전탑 사건을 둘러싼 정당성 담론의 전개(심형준·김시연 공저)

2018, 한국 기독교 민속신앙론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지종교학의 관점이 말해주는 것

2018,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인 이종일의 상징화 사례 연구: 「묵암비망록」, 데마고기, 상징화 주체와 전략의 변화

2016, ‘신화적 역사’와 ‘역사적 신화’: 허구적 내러티브 생성의 일반적 조건과 신화 연구자의 과제

2016, 역사적 인물의 상징화와 신격화: 맥아더에 관한 두 개의 기억

2013, 강릉단오제 主神 교체 문제에 관한 고찰: 범일국사의 등장 문제

2013, 섹슈얼리티의 성스러움: 금기 너머의 더럽고 위험한 성스러움과정상(正常) 섹슈얼리티

2013, 아편(마약)과 종교: 아편의 비유, 그 이면을 찾아서

2009, 인간 성화 문제에 관한 시론: 조선시대 공인된 유교의 성현들을 통해서 본 성스러운 인간


학위논문 Thesis

[Ph.D] 2016, 성스러운 인간의 생성과 변형에 관한 연구: 조선시대의 사례를 중심으로

[M.A.] 2009, 종교 개념의 적용과 해석에 대한 연구: `삼교`, 유교, 무속을 중심으로(원문 보기 가능)


책 Books

2020, "우리는 왜 산에 가고, 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나",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산』 [알라딘]

2019, "‘종교’ 개념과 ‘종교하는 인간’의 차이를 생각하며", 『한국의 종교학: 종교, 종교들, 종교문화』 [알라딘]

2019, "밀양 송전탑 사건을 둘러싼 정당성 담론의 전개", 『밀양을 듣다: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의 담론과 현장』(심형준·김시연 공저) [알라딘]

2016, "종교학의 스펙", 『종교로 보는 세상』 [알라딘]

2013, "거친 기억 속의 '스승의 그림자'", 『정직한 이삭줍기: 소전 정진홍 교수의 종교 연구의 지평』 [알라딘]

2010, 『국역 차충걸추안: 도참을 믿고 생불을 대망했던 민중들의 심문 기록』(최종성, 구형찬, 심형준, 정재홍, 박병도, 조남욱 공역) [알라딘]

2010, 『국역 역적여환등추안』(최종성, 구형찬, 윤조철, 심형준, 정재홍, 박병도 공역) [알라딘]


기타 Other writings


2023, 청년층의 탈종교화 다르게 보기, ‘노잼 종교’의 여러 맥락

2023, 사이비 종교, 그 문제적 성격(스켑틱 34호 126-137)

2017, <스켑틱>이 종교학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2017, 광장, 중심이라는 경계 (web article)

2017, 폭력적 ‘입문식’과 어른에 대한 상념들: 물어지지 않는 물음을 찾아서 (web article)

2013, 거친 기억 속의 ‘스승의 그림자’

2006, 설림(說林): 종교학의 스펙 [원문]


블로그 글들 (추후 업데이트 예정)

출처 오귀인 주제 글들: 오귀인_MisAttribution

산 이야기 ...

시간 이야기 ...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미신과 종교라는 개념에 담긴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미신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그게 무엇이냐 물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행위들이나 관념을 이야기합니다. 뇌과학자 정재승 선생님도 미신 이야기를 하면서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행위가 불길하다는 미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정재승 편 미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할 때, 이렇게 미신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시험 볼 때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시험 볼 때 포크를 선물한다' '손 없는 날 이사해야 한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 팥죽을 먹는다' 그럼 '미신'은 어떤 것이냐 설명해 보라면, 아마 이런 말들을 늘어 놓게 될 겁니다. https://engoo.co.kr/blog/먼나라이웃나라-세계-각국의-다양한-미신들/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로 그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미신' 항목 그런데 이런 개념은 일상에서는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쓸 수 없는 설명입니다.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게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경제적 판단과 믿음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관상은 과학이다', 'ABO 혈액형 성격론', '과시적 소비' 등등. 어떤 종교적 맥락에서 '이상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미신'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종교와는 다른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위 국어사전의 개념 정의는 종교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신과 종교가 구분되지 않는다면, 어딘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미신'은 과학적 개념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시하는 많은 개념은 편견의 산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서 그런 게...

미신에 대한 중립적 개념은 무엇일까?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5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 ∞∞∞ ─── 미신, 사이비, 이단 이 말들은 종교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들입니다. 미신은 종교적 의식(儀式)이지만, 종교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비과학적인 믿음을 통칭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이비(似而非), 말뜻은 ‘비슷하지만 틀린 것’이죠. 영어의 ‘pseudo-’에 대응되는 말입니다. 사이비 종교를 ‘pseudo religion’이라고 하지요. ‘가짜’라는 의미가 두드러집니다. '사이비'란 말은 『맹자(孟子)』, 「진심장구하(盡心章句下)」 편에 수록된 말입니다.  孔子曰: 惡似而非者(공자왈: 오사이비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을 싫어한다." 출처: 다락원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darakwonchild) 이 언급의 자세한 맥락은 다음의 글을 참고하세요( 사이비-나무위키 ). 겉만 그럴 듯하고 속은 빈 경우를 말합니다. 사이비란 말은 참된 종교와 거짓 종교를 말하는 맥락에서 많이 쓰이게 되면서 애초 의미에서 '거짓 가르침'으로 변하였습니다(사이비과학, 사이비종교 등등). 이단(異端), 말뜻은 ‘끝이 다르다’이고, 의미상으로 ‘사이비’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맹자집주』의 주자주(朱子註) 중 '맹자는 양주와 묵적과 같은 이단에게서 유교를 지켰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유교의 맥락에서 '이단'의 대표주자는 '양주와 묵적'입니다. 양주는 '위아설'(나만 위하면 돼), 묵적은 '겸애설'(모두 무차별적으로 사랑하라)로 이야기됩니다. 유가들이 곡해해서 '무부무군(無父無君)의 가르침'으로 평가되는 것이지, 그리 허무맹랑한 가르침은 아니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참고: 양주(전국시대)-나무위키 ...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은 많다?│시간과 종교적 본능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부제를 약간 수정) ─── ∞∞∞ ─── 1년의 시작점은 많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은 동지, 설, 정월대보름, 입춘 등입니다. 전에 이야기한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신년 기념일들처럼( 참고 ) 같은 나라 안에서도 여러 신년 기념일이 있는 경우는 특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원래 지역적인 단일성은 있었을 겁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1월 1일이다, 이 동네는 음력 설이다, 이 동네는 입춘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게 어떤 계기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지역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집단들이 묶여서 더 큰 집단으로 통합되면서 시간, 의례 등을 통합하는 과정이 뒤따르게 됩니다. 종교단체 수준에서도 진행이 되지만 국가 수준에서도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은 국가의 흥망성쇠, 종교단체의 흥망성쇠 등 집단 구속력의 변화에 따라서 부침을 겪으며 반복·중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에서는 16세기에 신년 기념일을 단일화하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19세기말 20세기에 시도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수준에서 한 해의 시작일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지만,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첫 날은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이를 문화적 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선조들이 해왔던 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나타남). 여러 신년 기념일은 그런 통합의 힘에도 어떤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과거의 전승이 살아남아 그 흔적을 남긴 덕분입니다. 다만 해당 기념일을 현재에 활용하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면 사라질 운명을 일 겁니다. 그럴 경우 '고유한 문화를 지키자'는 운동이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집단 정체성과 관련된 전통으로 선택되지 못하면 잊혀지는 것이고요. 동지 우리에게는 팥죽 먹는 날 정도의 의미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날도 과거에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기념되었습니다. 그런 동지 축제가 신년 축제인 사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