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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기억의 오귀인(misattribution) 현상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3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 ∞∞∞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 말은 통상 괴테가 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중에서 누가 한 말인지 적지 않은 경우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책 제목으로도 많이 회자된 표현입니다. 어쨌든.. 괴테가 한 말이 아닙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누가 한 말인가?│오귀인 사례 (4) ")을 참고하시고요. 출처를 찾아보면, 리처드 L. 에반스라는 라디오 아나운서이자 작가(우리에게 몰몬교로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십이사도 정회원이기도 했음)의 책-- Faith in the future (1963)--에서 'Direction is more important than speed.'라는 표현으로 등장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Life is a Matter of Direction, Not Speed.'는 콩글리시 버전이고요). 에반스가 처음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표현의 유행이 시작된 시기에 찾아 볼 수 있는 명확한 출처로 그의 책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명확한 사실입니다. 심리학 분야에서 출처를 잘못 대는 기억의 오류를 기억의 오귀인(misattribution of memory), 그 중에서도 '출처 혼동(source confusion)'이라고 합니다. 명언 사례에서 풍부하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만, 명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 책, 디자인 등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이런 현상들이 벌어집니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오류'로 취급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메커니즘이 가진 특성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말은 세상의 반 바퀴를 여행할 수 있다, 누가 한 말인가┃오귀인 사례 (6)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은 세상의 반 바퀴를 여행할 수 있다. (A lie can travel halfway around the world while the truth Is putting on its shoes.) 이 말은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이 명언을 검색해 보면 어김없이 출처를 그렇게 밝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외국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명언웹(http://www.monfac.com/mq/page.php?sm=quote&qidx=1001) 출처: https://www.halcyongallery.com/exhibitions/15-fake-news-ernesto-canovas/  '가짜뉴스'(fake news) 주제의 그림 전시회를 소개하는 웹페이지에서 '가짜 정보'에 대한 명언을 오귀인한 '잘못된 정보'를 게시하고 있다. 이 명언은 표현이 다소 다른 버전들도 있다. 진실이 부츠를 신기 전에 거짓은 세상 반 바퀴를 여행할 수 있다. A lie can travel halfway around the world before the truth can get its boots on.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은 지구를 여행할 수 있다. A lie travels around the globe while the truth is putting on its shoes. 마트 트웨인이 했다고 하는 이 명언은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트웨인이 저 말을 1919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위의 두 번째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1910년에 죽었다. 물론 생전에 한 이야기를 기억해서 적었다고 하면 될 일일 수도 있지만, 저 명언의 출처 찾기는 제법 성공적이니 우리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것도 '오귀인' 사례라는 것을. Quote Investigator에서 이 명언의 출처를 조사한 바 있다(조사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누가 한 말일까? 스피노자인가 루터인가? │ 오귀인 사례 (5)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명언을 모를 사람이 있을까? 나는 어렸을 때 이 말을 스피노자라는 철학자가 했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구의 말인지 궁금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우연히 이 말의 최초 발화자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말도 오귀인(misattribution) 된 말인가,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찾아봤다. 그 결과를 정리해 본다. ─── ∞ ───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스피노자'가 한 말로 여겨진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통해서 찾아보면, 관련 언급을 1962년 4월 5일자 조선일보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來日 世界의 終末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스피노자」인가 누군가가 말했다지만.. 기사를 통해서 그 출처를 확인할 수 있지만 과연 기자가 지어낸 것인지, 어느 출판물에 언급된 것을 인용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과거에 국내의 최초 언급 사례로 1966년 기사가 지목되었는데(참고: [팩트체크] 내일 지구가 …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 조선일보 자료가 최근에(2020년) 서비스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최초 출처는 새로운 데이터가 나오면 향후에 충분히 업데이트 될 가능성이 있다.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의 발언자가 '스피노자가 아니다'라는 글들은 의외로 많이 보인다(구글검색 결과).  여러 글들을 검토해 보면, '스피노자가 한 말이다'라는 건 한국에서만 유행한 듯 싶다. 구글 검색으로 'Even if I knew ... apple tree'를 찾아보면 대부분 마틴 루터를 언급하고 있고, 일부 게시물에서 루터도 아니고 1944년 독일에서 해당 발언을 루터에게 돌리는 한 목사의 발언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Whi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누가 한 말인가?│오귀인 사례 (4)

문과vs이과 싸울 필요가 없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괴테말이 아니다. 'Direction is more important than speed'는 리처드 L 에반스의 Faith in the future (1963)에 나온다. 비슷한 괴테의 말이라 여겨지는 인용구(있는 자리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우리에게 낯선 올리버 웬들 홈즈 1세(Oliver Wendell Holmes Sr.)의 말이다. 문이과 대전으로 다시 소환되었던 이 명언은 일반적으로 '괴테'의 말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슈는 이 명언을 누가 했느냐가 아니라 '속도'라는 표현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속도가 아니라 속력임 (이 무식한...??) 속도는 벡터니까 방향을 포함하는 말이다. 방향과 대비되는 의미니 '빠르기'만 나타내는 '속력'(스칼라량)으로 표기하는 게 맞다. 지극히 이과스러운 지적이라고 하겠다. 이에 대한 논리적 반박(문과생일지는 모르겠으나) 중 가장 탁월한 것은 이것이다(출처: 문과vs이과, 논쟁의 현장 ).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즉,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벡터값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 방향만이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며, 이는 구성의 오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예시 :  *오빠, 고맙긴 한데 나는 가방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루이비통과 프라다를 좋아하는 거야. *아들아,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종이쪼가리가 든 봉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돈 봉투를 좋아하는 거란다. '속도' 사용이 별문제가 아닌 이유는 논리적 오류가 아니라는 반박 외에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있다. 일상과 학문, 구분 못하는 건 누구? 원문을 근거로 번역오류를 지적하는 것을 보자. 영어 원문이 'Life is a Matter of Direction, Not Speed.'로 되어 있다. 벡터인 veloci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헤밍웨이가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말 그런가?│오귀인 사례 (3)

이 글은 2017년 6월 19일에 작성된 글을 수정하여 올린 것이다. ━━━ ∞∞∞∞∞∞ ━━━ 이미지 출처: theunivisted.in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 헤밍웨이. 과연 그런가?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했던가? 영화 '코치 카터'의 경험 , 네팔 지진 고아 사진 (실제로는 베트남 아이들)에 대한 경험이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유행하는 기억은 '전형화'라고 불릴 수 있는 어떤 수렴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인용구도 그런 특성에 따라 출처가 구성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다.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대번에 이런 게시물을 볼 수 있었다. 들어가 보면 이렇다. 옆에 붙어있는 광고에는 '헤밍웨이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책이 소개되고 있다.  문제의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글을 보면, 인용 조사자에게 이 말을 누가 한 것인지 묻는 질문이 나온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순화한 번역임), 이 말을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했는지, 아놀드 새뮤얼슨이 했는지, 버나드 맬러머드가 했는지, 아니면 출처가 불분명한지 묻는다.  이런 물음은 이 사이트의 전형적인 '형식'이 아닌가 싶다. 저렇게 사람들을 나열하면서 하는 질문자라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사람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헤밍웨이 산문의 문체, 여백과 직설이 여러 번 초고를 고쳐 써서 얻었기에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이 그에게 돌려지고 있다고 한다. 인용조사자는 답변을 한다(이하 거의 번역에 가까움). 헤밍웨이는 1964년 사망했다. 아놀드 새뮤얼슨은 헤밍웨이 사후에 헤밍웨이에 대한 회고록(1984), '헤밍웨이와 함께: 키웨스트와 쿠바에서의 한 해(With Hemingway: A Year in Key West and Cuba)'라는 글을 출간했다.  해당 글에서 헤밍웨이가 '

네팔 지진 고아로 알려진 사진 속 주인공이 베트남 아이들이었던 반전│오귀인 사례 (2)

이 글은 2015년 5월 8일에 작성된 글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 ∞∞∞∞∞∞ ―― 얼마전 BBC기사에서 봤던 사진, 처음에 봤을 때 네팔 지진 피해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해당 기사("Haunting 'Nepal quake victims' photo from Vietnam")를 보면, 이 아이들 사진은 Na-Son이라는 베트남의 프리랜서 사진작가가 한 마을에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Na-Son은 그의 트위터에 이렇게 밝혔다. 이것은 Ha Giang 지방에서 2007년에 촬영된 베트남의 Hmong족 아이 둘에 관한 내 사진이지, 네팔에 관한 게 아닙니다. 오해, 유언비어, 사람들의 몰상식? 사람들의 '오해'로 해괴한 헤프닝이 벌어졌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위 BBC기사를 보면 이 사진이 2011년에 발생한 '시리아 내전' 때도 '시리아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로 유행했던 전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의 아이들은 고아들이 아니었다. 사진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먼 곳으로 부모는 일을 나가 있었고, 아이들은 집 앞에서 놀고 있었다고 한다. 낯선 사람(사진작가)이 다가오니 여자 아이가 무서워하며 오빠에게 안긴 것이고, 큰 아이도 약간의 불안을 보이면서 동생을 안고 있는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말했다시피 이 사진을 시리아 내전의 전쟁고아, 네팔 지진 고아의 모습으로 유통시켰다. 악의적으로 이 사진을 이용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여러 사람들이 부화뇌동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 인간 본성적 차원의 기제가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왜?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었기에.   이거 어디서 본적 있어 예전에 영화 <코치 카터>의 명대사, "Our deepest fear"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Coa

'Our deepest fear' speech와 넬슨 만델라│오귀인 사례 (1)

'Our deepest fear'는 영화 〈코치 카터〉(2005)에서 티모 크루즈가 한 대사로 처음 접했다. 뭐 이래 멋있는 말이 다 있어? 영화 〈코치 카터〉의 한 장면 대사는 무척 길다. Timo Cruz: 'Our deepest fear is not that we are inadequate. Our deepest fear is that we are powerful beyond measure. It is our light, not our dark that most frightens us. Your playing small does not serve the world. There is nothing enlightened about shrinking so that other people don't feel insecure around you. We are all meant to shine as children do. It's not just in some of us; it's in everyone. And as we let our own lights shine, we unconsiously give other people to do the same. As we are liberated from our own fear, our presence automatically liberates others.' so I just wanna say thank you. You save my life.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가 무능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 자신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정말로 두렵게 하는 것은 우리의 어둠이 아니라 우리의 빛입니다. 당신의 소심한 행동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움츠리는 데에 깨달을 만한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그러듯이 우리 모두는 고유한 빛을 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