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과 출생률은 어떻게 다른가┃출산율 0.75를 생각하며 (1)
출산율, 유독 한국이 낮은 이유는? 젠더 갈등?┃출산율 0.75를 생각하며(2) 에 이어서
새옹지마(塞翁之馬, 변방 노인의 말)
새옹지마 이야기는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말을 시작으로 일련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교차하면서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몰라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이에 비춰 볼 때, 초저출산이 마냥 나쁘기만 할까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일단 나쁜 게 눈에 크게 들어오겠지만.
성역할 고정관념, 정상 가족 신화가 깨진다
앞서 글(2번)에서 언급을 했지만 성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 정상 가족 패러다임의 붕괴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로부터 얻게 될(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으니) 유익이 될 것 같다.
'결혼은, 미친짓이다' 영화 포스터 |
결혼 해야 애를 낳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데, 결혼의 대차대조표가 엄청난 적자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주는 사회에서 누가 애를 낳겠는가. 조선일보 등 기성 언론들의 '요즘 젊은 친구들 애를 안 낳는다, 말세야'라는 논조의 이야기는 결국 '노예들아, 노예를 낳아라'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는 방향으로 악화시켜 온 언론 권력들이 그렇게 '경제 활동 인구'(그렇게 쓰지만 '노예'라 읽는) 감소에 혀를 차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위선적이다.
나도 노예지만 새로 태어날 아이도 노예가 된다, 물론 이런 인식만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나 살기도 팍팍한데 아이가 짐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 안 낳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2)번 글에서 살펴 본 대로, 한국 사회에서 초저출산의 주요 요인은 '비혼'으로 드러나고 있다. 비혼으로 이끄는 장애물을 치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에 뿌리 깊은 정상 가족의 신화가 깨질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동성 커플, 비혼 커플 누구나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게 가는 것이 맞다.
아, 물론 '이민청' 운운하는 거 보니까, 한국 사회는 인구 감소를 이민으로 손쉽게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다(관련 기사). 그렇게 되면 결혼관, 가족관은 바뀌지 않고, 인종갈등, 인종차별 문제만 우리사회에 폭탄처럼 던져질 가능성이 높다(관련 기사). 물론 경제 활력이 기대대로 잘 유지된다면 그 정도 폭탄에 그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겠지만, 고숙련 노동자 유입이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 있기에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부정적 전망도 있다.
일자리 감소
프레시안의 "낮은 출산율은 정말 재앙일까?"라는 기사는 일자리 감소 문제를 저출산 문제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렇다. 요즘 방송이나 신문에서 연일 기술의 발달로 일자리가 줄어든다, 몇 년 후면 어떤 일자리가 사라진다, 이런 이야기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온다. 취업 시장 문제는 비혼으로 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저출산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고민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숙고해 볼 만한 문제다.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문제는 돈이다, 집이다 말들이 많지만 소득과 연결해서 '양질의 일자리'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을 암담하게 생각하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가 '나 혼자 살기도 벅차다'는 인식이다. 직업 시장이 한 치 앞을 모를 상황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과 출신이라면 더욱 이 위기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내가 문과라서 하는 이야기다). 한국은 '문송'이 유행했고, 미국의 한 코미디언은 문과 출신을 아래와 같이 놀렸다.
코난의 문과 저격 조크('세상에 없던 생각' 유튜브 채널 해당 영상의 화면 캡쳐) |
일자리가 없다. 아마 그 중에서도 '양질의 일자리'를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없다는 게 큰 문제일 것이다. 문과 출신이 저렇게 놀림을 받지만 더 암담하게 하는 것은 기술 혁명 시대에 설 자리가 없이 내몰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 대학들에서는 인문대가 쪼그라들고 있다.
이과를 나온다고 해서 보장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스펙 경쟁에 치중하는 이유도 다 그런 것이겠다. 학력을 따지지 않고 능력을 본다고 하지만, 잘 체감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청년실업률은 2000년대 중반 10%를 오가던 것이 이제 7%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고통스러운 시기도 곧 사라질 전망이다. 기업들이 '구인난'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저출산' 때문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의도하지 않게 많은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그럼 중소기업은 죽어나가겠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면 역시 이쪽 해법도 '이민자'일까?)
이미지 출처: https://lifeandwork.tistory.com/47 |
이미지 출처: "우리도 일본처럼? 5년만 버티면 취업난 가고 구인난 온다는데"(조선일보, 2021.06.19) |
기후 위기 및 환경 이슈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슈는 '기후 위기'와 관련한 것이다. 이번에 합계 출산율 0.75명 소식을 듣고, 전화위복의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전에 카우스피러시와 씨스피러시 영상 리뷰를 하면서 언급을 한 제인 구달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모든 환경 문제는 500년 전의 인구 규모가 있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500년 전 세계 인구는 약 4억 2000만에서 5억 4000만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저출산이 이 목표를 달성하게 해 줄것이라 생각할 수는 물론 없다. 그러나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만으로 우리 강산에 부담을 얼마나 줄여줄 것인가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물론, 쓰레기 양도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한가하고 우활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기왕 초저출산 기조에 들어선 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탄소감축도 해야 하고, 에너지 체계 전환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인류가 지구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과거 경제 조건에 근거해서 '경제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면 답이 없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지구의 그리고 한반도의 최근 환경 위협에 대응한다는 자세에서 본다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스몰 사이즈의 인구 규모에 적합한 활력있는 경제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초저출산 위기 의식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창의적 상상력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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