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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과 종교라는 개념에 담긴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미신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그게 무엇이냐 물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행위들이나 관념을 이야기합니다.

뇌과학자 정재승 선생님도 미신 이야기를 하면서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행위가 불길하다는 미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정재승 편
미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할 때, 이렇게 미신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시험 볼 때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시험 볼 때 포크를 선물한다'
'손 없는 날 이사해야 한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 팥죽을 먹는다'

그럼 '미신'은 어떤 것이냐 설명해 보라면, 아마 이런 말들을 늘어 놓게 될 겁니다.
https://engoo.co.kr/blog/먼나라이웃나라-세계-각국의-다양한-미신들/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로 그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미신' 항목
그런데 이런 개념은 일상에서는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쓸 수 없는 설명입니다.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게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경제적 판단과 믿음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관상은 과학이다', 'ABO 혈액형 성격론', '과시적 소비' 등등.

어떤 종교적 맥락에서 '이상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미신'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종교와는 다른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위 국어사전의 개념 정의는 종교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신과 종교가 구분되지 않는다면, 어딘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 '미신'은 과학적 개념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시하는 많은 개념은 편견의 산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서 그런 게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한국인과 외국인,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등등을 구분짓는 말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흑형, 여류작가, 초딩 등등.

미신이나 종교에 대한 판단에도 이런 기준이 작동합니다. 미신은 비정상적인 믿음, 신앙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거기에 객관적인 기준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저주 인형'에 다른 사람의 체모를 붙여 그 사람과 인형을 동일시하는 사고방식과 '국기'와 집단을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에는 어떤 질적 차이가 있을까요?
연합뉴스 외
전자는 '미신'으로 취급되지만, 후자는 '국기 모독죄'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 어원으로 보면?

'미신'이란 말은 한자문화권에서 본래 사용하던 개념은 아닙니다. 많은 근대 한자어가 일본인들이 외국어를 번역하면서 만들어 낸 말이듯이 '미신'도 superstition이라는 단어를 번역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말입니다. '迷信'을 풀이하면 '미혹시키는 믿음'입니다.

이에 견줄 수 있는 전통적인 개념은 '음사'(淫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부정한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superstition의 기원이 되는 말은 라틴어 superstitio(수페르스티티오)입니다. 이 말은 religio(렐리기오)와 견주어 이해해 볼 때 명확해 집니다. religio는 religion이 유래한 라틴어로 이해됩니다만,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종교'라고 말하기에는 약간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렐리기오'는 1)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의례, 2) 점치기 등의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참고: 최화선 2001). 그런데 '수페르스티티오'는 애초에 사람을 미혹시키는 믿음이나 '이상한 제사' 같은 뜻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본래 의미는 

지나간 과거를, 그곳에 직접 있었던 사람처럼 사실 그대로 말할 수 있는 능력

이었습니다. '렐리기오'가 점복, 전조를 다루는 기술을 뜻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수페르스티티오'는 '렐리기오'와 비슷한 함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키케로 같은 로마 공화정 말기의 문인들이 '렐리기오'와 대비적인 의미로 '수페르스티티오'를 사용하면서 '신의 숭배에 대한 정상적 형식'(렐리기오)과 '비정상적 형식'(수페르스티티오)의 구분이 굳어져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후자의 의미는 지금의 '미신'이란 말보다는 '음사'라는 말이 더 정확하게 대응되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종교와 그들의 종교라는 구분의 추가적 함의

그런 구분(정상적 형태와 비정상 형태)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외국에서 유입된 낯선 종교 의식의 유행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신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그리스의 신탁처럼 신이 무엇을 허용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새로 유입된 점복은 미래에 대한 생생한 예측이었고, 그것은 로마의 전통적 점복의 관점에서 볼 때,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식의 점복 의례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았을지는 뻔합니다. 새로 들어온 의식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항상 미래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키케로 등의 로마 공화정 말기의 문인들이 '수페르스티티오'를 부정적 함의를 가진 말로 사용하면서 외래 예언 문화를 비난한 것은 로마의 전통적 종교 관습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그게 정상이며 옳은 것이라는 선이해가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미신'이나 '종교'라는 말은 양자가 대비된 이래로 이러한 사회-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왜 그러한 행위를 지속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기에 부적합한 개념입니다. 편견을 가지고 그런 행위를 이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질문은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럼 '미신'으로 지칭되는 인간의 행동과 관념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

참고자료: 최화선,「로마 공화정 말기의 ‘종교religio’와 ‘미신superstitio’ 개념」, 『서양고전학연구』 17, 2001, 133-154.


댓글

  1. 우리가 널리 받아들이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중 수많은 것들이 편견이나 오해 혹은 오류나 강요된 이념 같은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합리적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수많은 생각들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합리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이러한 개념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도 또다른 문제가 되겠죠. 다음에 이어질 글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겠지만, 우선 개인적으로는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 가치있으리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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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도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제는 인간의 합리성이 편향되어 있다는 거죠. 저는 그런 인간의 인지적 편향을 종교적 상상과 행동에 적용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고요. '가르침'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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