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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신'은 어떤 기능을 할까: 신조어 속 신 개념 이야기

 ※이 글은 얼룩소 글(23.3.18)을 옮겨온 것입니다. ━━━━━━ ♠ ━━━━━━ 종교 개념의 일상어화 종교의 언어가 일상의 언어가 되는 사례는 예부터 적지 않았습니다. 가령 유교의 주요한 개념들은 우리가 일상어에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 한이 없을 정도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기운’, ‘음기’, ‘예의’, ‘윤리’, ‘의리’, ‘사양(辭讓)’, ‘인간’, ‘천하’, ‘신주단지’ 등입니다. '순리에 따라라.' '오늘 왜 이렇게 기운이 없지?' '객기 부리지 마.' '예의 좀 챙기세요.' '너는 의리가 있어.' '뭘 그리 신주단지 여기듯 하니?' 이런 말들은 이미 유교적 맥락을 떠나서 우리의 일상어가 되었습니다. 한편 불교도 한국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교 용어가 일상어가 된 사례들도 많습니다. 가령 ‘건달’, ‘야단법석’, ‘이판사판’ 같은 말입니다. 물론 불교적 의미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건달'은 '간다르바gandharva'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건달바(乾闥婆)' 등으로 음차된 말입니다. 애초 "긴나라(緊那羅)와 함께 제석천(帝釋天)을 모시면서 음악을 담당하는 천신(天神)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그 외의 불교적 의미에 대해서는 이 글 을 참고), 지금은 "하는 일 없이 빌빌거리며 노는 사내나 난봉이나 부리고 다니는 불량한 사람 혹은 폭력을 휘두르며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됩니다. ‘야단법석’ 같은 경우 애초 의미는 법당 밖에서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법회를 위해 마련한 야외 법단을 일컫는 말인데, 일상어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떠들썩하고 어수선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의미 변형은 조선조 유가의 편견어린 왜곡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박재양, 「일상어 속의 불교 유래어 연구」, 『어원연구』 3 (2000), p.

'종교'라는 개념이 인간의 종교문화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걸림돌인 이유

 ※이 글은 얼룩소 글(23.3.11)을 옮겨온 것입니다. ━━━━━━ ♠ ━━━━━━ '종교'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문화·제도적 실체로서 물질적 형태로 확인되는 것들, 경전, 신전, 상징물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것이 사람들이 상상해서 만든 문화적 관념을 다수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실체가 있다'고 여겨진다는 점을 놓치게 됩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를 멋들어지게 '상호주관적 실재(inter-subjective reality)'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https://www.andyhinesight.com/the-future-and-reality/ 종교라는 대상은 우리가 그 존재를 동의하기 때문에 실재성을 얻는 그런 개념입니다. 물론 그런 개념을 낳은 '물질적 현상', 객관적 실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포착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이 개념의 한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religion이든 번역된 말 '종교(宗敎)'든지, 어떤 자연적 현상을 지칭하지 않고, 사람들이 모여서 벌이는 행위나 공유하거나 퍼져있는 관념을 일컬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문화적 편견의 산물이라고 거칠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 religion, 그 어원으로 여겨지는 라틴어 religio의 의미 변화 과정만 살펴보아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그런 개념의 초기 버전을 찾아가면, 만국 공통의 종교적 관념과 행동 방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무언가 인간에게 좋지 않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초자연적 존재의 힘을 빌리는 모종의 행위를 일컫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감각, 인식에서 하나의 물질적 현상[생리-화학적, 진화생물학적 기제]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의 맥락

음수 이해의 역사와 개념을 이해하는 문제

오늘 우연히 '(서양에서의)음수 수용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이너스)라는 개념이 중국에서는 기원전 기록에서부터 확인되고(BCE 200), 이것이 인도와 이슬람 세계를 통해서 유럽에 전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1800년대까지 이 음수는 수로서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이야기가 되지만 실생활에서는 경험해 볼 수 있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잘못된 수'로 이해했다고 한다. 꾸역꾸역 대응시켜 본 것이 '이익'과 '빚'으로 +와 -를 이해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경우는 (-1)x(-1)=+1 같은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익-빚 모델은 -(-1)=+1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이라고 한다. (빚이 1 있다. 채무자 -1. 채무자의 빚이 감소하는 것을 -로 표현할 때, -(-1)은 빚이 없어진 것이고 채권자는 다시 +1이 되므로 위 식을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유적 이해는 오로지 저 식을 '납득'해 보자는 취지이니 조건을 조금만 달리해도 현실의 문제와 수식은 불일치 한다. 가령 채무자의 경우만 보면 -(-1)이 아니라 (-1)+(+1)=0으로 생각할 수 있다. (-1)x(-1)은 위치나 위상을 고려할 때 우리가 구체화해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지금 우리는 위의 문제를 수직선[수를 나타내는 직선]에 나타내서 이해한다. 음수를 더 쉽게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화씨의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Daniel Gabriel Fahrenheit, 1686–1736)가 온도계를 만들면서 0도 아래에 음수를 표기하면서 대중들이 음수 개념을 0 아래의 '어떤 위치'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위 영상 참고). 수학자들조차도 현실에 대응되지 못하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수백 년이 걸렸고, 결국 낯선 개념이 일상에서 친숙해지는 어떤 계기를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