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고전번역원 메일링 서비스로 우연히 보게 된 내용이다. 허목의 문집 《기언(記言)》에 실린 '어시재기(於是齋記)'라는 제목의 글이다.
'於是齋記' 원문(클릭하면 고전DB로) |
허목이 척주(陟州, 지금의 삼척 지역)의 부사로 재직할 때 전임 부사 임후에게 편지가 와 자신이 집을 하나 지어 '어시재(於是齋)'라 이름하였는데 허목이 기문과 편액을 적어 보내주면 좋겠다고 편지를 써 보냈다. 이에 허목이 임후에게 '어시재'라는 이름 내력을 알려달라 편지를 보냈다. 임후의 답장에는 아버지 묘 근처에 지은 집으로 여생을 보낼 곳이라 하며 이름의 내력이 되는 말을 이렇게 적었다.
아! 세상 사람들이 그른 것을 옳다고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은 문란한 일입니다. 누구나 다 ‘나는 옳은 일을 능히 하고 그른 일을 하고자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꼼꼼히 살펴보면 옳은 것은 적고 그른 것은 많으니, 저는 이것을 두렵게 생각합니다.
噫, 世之是非非是, 亂矣。人之言莫不曰吾能於是, 而不願於非。然考之行事, 則於是者寡, 於非者蓋衆也。僕乃大懼也。
허목(許穆), 〈어시재기(於是齋記)〉, 《기언(記言)》
(고전DB 디렉토리: 기언 > 기언 별집 제9권 > 기(記) > 어시재기(於是齋記))
'나는 옳은 일에 능하다(吾能於是)', '옳은 것이 적다(於是者寡)'에서 '옳은 일에'(於是)라는 말을 따서 집의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허목이 이 말을 보고 감탄하며 '기록할 만하다'하고 '기(記)'를 지었다.
경계할지어다 / 戒之哉
옳고 그름이여 / 有是非
옳은 것과 그른 것은 / 有是非
명철한 사람이면 가려낼 수 있다네 / 明者擇之
옳은 데 처하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 處是非難
확고하게 지키기가 어려운 법이라네 / 確於是爲難
강한 자라야 능히 할 수 있나니 / 剛者得之
경계하고 경계할진저 / 戒之哉
사실 이런 관찰은 흔하기는 하다. 그 말에 무릎을 칠 것이지만, 한 발 더 들어가긴 어렵다. 옳은 것은 '남들을 살펴 볼 때, 잘 분간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의 행동을 살펴 볼 때, 옳은 것은 적고 그른 것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행동을 보며 '옳은 것은 적고, 그른 것이 많다'고 여기기가 어려운 일이다.
법의 정의가 실소를 머금게 하는 작금의 세태를 보면 '정의를 심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시(於是)'를 자신을 보고 판단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아니 그렇다면 그들이 더욱 정의의 화신이 될까? 아, 역사를 망각했구나. 선(善)과 정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해 왔던 일들은 대체로 그랬었지.
'이것(말)이 사슴이 아니라 여기는 자 손(들어)'(저승행 편도열차를 태워주겠어)
지마위록(指馬爲鹿) 혹은 위록지마(爲鹿指馬)라 불리더이다('지록위마'가 아님에 주의).
요네즈 켄시(米津玄師)의 '馬と鹿(우마토시카)' 앨범 커버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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