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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 신전, 종교문화의 지층을 보여주는 사례┃델포이 신전의 E 심볼의 비밀(3)

※이 글은 얼룩소 글(23.6.15)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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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hn-uebersax.com/delphi/delphi1.htm
지금까지 '델포이 신전의 E 심볼'과 관련된 흥미로운 학계의 논의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봤습니다.
델포이에서 아폴로는 테미스를 쫓아냈을까?┃델포이 신전의 E 심볼의 비밀(1) - 베이츠의 가설
'델포이 신전의 작은 옴파로스'는 옴파로스가 아니다?┃델포이 신전의 E 심볼의 비밀(2) - 부스케의 가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격언의 출처를 탐색하다가('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 델포이 신전과 관련된 각종 흥미로운 이야기들(E 심볼, 옴파로스, 대지의 여신 등)을 보게 된 김에 관련 내용을 정리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부스케'의 가설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준 '드 보어(Zeilinga de Boer, 1934-2016, 미국 지질학자)'의 논의를 중심으로 해서 'E 심볼의 비밀'은 어떻게 되고, 델포이의 본래 신앙이 대지의 여신에 기초했던 것인지에 대해서 다룹니다.


델피의 작은 '옴파로스'에 관한 수수께끼
옴파로스에 대한 드 보어의 논문과 드 보어(인물 이미지 출처: https://patch.com/connecticut/middletown-ct/obituary-jelle-zeilinga-de-boer-longtime-teacher-wesleyan-university)

부스케의 시나리오를 다시 말씀 드리면요.

기독교 역사 초기에 프로스퀴니타리(작은 성소)의 돔으로 사용 된 구조물이 나중에 카스트리 지역(델포이의 옛 이름)의 벽이나 건물 수리에 사용되어 그 일부가 되었다가 산사태 또는 마을 철거 중에 어떻게든 사원의 셀라(cella)로 들어갔다. 20세기 초 이 돔이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작은 옴파로스'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드 보어는 부스케의 논리에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1) 작은 옴파로스의 재질(poros)은 델포이 지역에 흔치 않고, 프로스퀴니타리로 사용되지 않은 반면, 델포이의 고대 건축물에 사용된 것과 동일하다.
2) 작은 옴파로스가 재사용된 흔적이 비문이 쓰이기 전에 보여야 하지만, 그런 게 없다. (벽 등에 쓰였다면 거기에 맞는 가공 흔적이 있어야 한다)
3) 작은 옴파로스의 구멍은 위가 좁고 아래로 넓게 되어 있다. 십자가를 꼽기 위한 구멍으로 보기 어렵다.
4) 구멍에 끼워진 칼(χαντζάρες/xantzares)이 1860년에 만들어지고 귀중한 가보로서 작은 옴파로스 구멍에 끼워졌다고 할 때, 칼날의 양호한 상태는 의문이 남는다.
5) 작은 옴파로스에 새겨진 글자가 '파팔루(Papalou)'라는 이름으로 본 것(Bousquet, 1951)은 대지의 여신 이름 Ge와 관련된 단어라고 보는 것(Cook, 1925) 만큼 받아들이기 어렵다. 글자의 모양과 크기가 다른데, 이 돌이 새기기 어려운 돌이 아니라는 점에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6) 새겨진 글자는 풍화의 흔적으로 보인다. 이 흔적을 보면 작은 옴파로스가 거꾸로 상당 기간 놓였던 걸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부스케가 생각한 프로스퀴니타리로 쓰였다는 것과 상충한다(프로스퀴니타리로 쓰였다면 '거꾸로' 있을 수 없기에).
7) 부스케가 말한 '시멘트'가 칼슘 성분이 있는 지하수의 영향으로 형성된 퇴적 흔적일 수 있다.
 
이 설명으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드 보어가 쿡의 글자 이해에 근거한 베이츠의 '델포이 신전의 E 심볼'에 대한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작은 옴파로스에 새겨진 문자가 'E Γã(E Ga)'이고 그것은 대지신 ge를 나타낸다는 주장. cf. 베이츠 가설).

드 보어는 다른 옴파로스의 사례들을 살피면서 실제 옴파로스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확정하고 거기에 이 작은 옴파로스가 부합하는지를 검증합니다. 다른 아폴로 신전(클라로스, 델로스)의 옴파로스도 보고, 아폴로가 표현된 부조에 나타난 옴파로스의 형태도 살펴봅니다.
de Boer, 2007, p. 100의 fig. 5.
신상의 발목에서 무릎까지의 크기(AK, ankle to knee)와 부조의 옴파로스 높이(OH, omphalos height)의 비율을 계산합니다. 이를 통해서 여러 부조의 신상 크기와 옴파로스 크기의 비(AK/OH)는 0.8에서 1.4로 분포하고 평균은 1.14, 표준편차는 0.15라고 합니다. 이 비율이 특정 범위 내에 분포하는 것으로 볼 때, 당시 조각가들이 옴파로스라고 하면 염두에 둔 모습이 있었을 것으로 추론합니다.

도자기의 이미지에서 아폴로와 옴파로스가 나온 사례들에도 적용해서 살펴봅니다. 10개의 이미지에서 평균 0.96(표준편차 0.17)입니다. 다른 신과 옴파로스가 나온 사례 8개에서는 평균 1.01(표준편차 0.21)입니다. 동전에 등장하는 이미지 7개에서는 0.98(표준편차 0.14)라고 합니다.

반면 큰 옴파로스, 아디톤(신전의 지성소)에 놓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우리가 흔히 옴파로스라고 여기는 것은 다른 비율(0.3~0.7)을 보인다고 합니다.

델포이의 작은 옴파로스가 부조, 도자기의 AK/OH에 근접하게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 그래프로 보여줍니다.
de Boer, 2007, p. 100의 fig. 6.

상당히 간접적인 근거입니다만, 다른 간접 근거들과 함께 볼 때, 실제 옴파로스였을 가능성을 더 높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작은 옴파로스의 '구멍'은 어떤 용도인가?

드 보어는 작은 옴파로스가 대지신 ge에 대한 신앙의 유산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ge 신앙과 이 옴파로스의 연결은 특히나 '구멍'의 용도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스케는 '십자가 꼽는' 용도였다고 봤는데요, 드 보어는 델포이 신전이 있는 곳의 지질학적 특성과 피티아(Pythia, 신탁을 받는 무녀)의 신탁에 대한 고대 기록들을 연결해서 땅 속에서 나오는 환각을 일으키는 가스를 델포이 아폴로 신전에서 활용한 것으로 보고, 작은 옴파로스를 그 가스를 모아주는 깔대기 같은 장치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옴파로스와 삼발이(피티아가 앉았던 의자로 추정되었던)가 놓였을 것으로 보이는 바닥석의 모양과도 부합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옴파로스를 일종의 깔대기 장치로 이렇게 그려냅니다.
A가 삼발이, B가 작은 옴파로스, C는 옴파로스 도상에서 많이 보이는 깔개 판(위의 fig.5 참고), D가 위에서 본 바닥석입니다. de Boer, 2007, p. 102의 fig. 9.

과거에서 피티아가 이렇게 지하의 가스를 흡입한 것으로 상상했지요.
"Priestess of Delphi" by John Collier, 1891. 출처: https://www.worldhistory.org/image/186/pythia-of-the-oracle-of-delphi/

델포이 신전의 무녀 피티아가 땅 속의 가스를 흡입해서 환각 상태에 들어가 신탁을 전했다는 이야기는 고대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가령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과 상담하려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방은 자주 혹은 규칙적으로가 아니라 우연히 생긴 공기의 흐름에 의해 마치 그 원천이 가장 거룩한 곳에서 나온 듯한 즐거운 향기로 가득 차서 숭배자들에게 퍼져 간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 Plutarch, Moralia, 437C

19세기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이 부분이 확인이 되지 않아서 그저 옛 사람들의 문학적 표현으로만 생각했는데, 2000년 이후 델포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관한 연구─드 보어가 참여─가 진행되면서, 지금은 피티아가 지하 가스를 이용해 환각 상태를 유도했다고 보는 시각이 정설이 되었습니다. 그 연구는 델포이 신전이 단층대가 만나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과 지하 가스를 잘 발생시키고 활용할 수 있는 시설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이러한 연구를 소개하는 국내 논문으로 "델포이  신탁 프네우마(Pneuma)의 실체"가 있습니다).


델포이 신전의 E 심볼의 비밀은?

베이츠의 논의에서 'E'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만 빼고, 아폴로 신전이 대지신 신앙(ge/gaia*)을 대체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하 가스를 트렌스 상태를 유도하는 물질로 사용했다는 것은 이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대지신과 신탁은 그렇게 연결이 되는 것이죠.

* 참고로 '가이아'는 '게(ge)'와 어머니라는 의미의 '마이아(maia)'의 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말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E'의 비밀은 해소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종교 문제를 생각할 때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이슈가 델포이 신전, 옴파로스와 관련된 논쟁 속에 숨어 있습니다. 바로 '후대의 설명'이 사후 설명으로서 후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기초로 상상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왜 종교를 믿는가, 왜 종교적 행동을 하는가, 왜 종교적 상상을 하는가를 물을 때, 이렇게 상상된 이야기가 '원인'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럴 듯한 이유', 정당화를 위해 만들어진 이유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설명(주로 교리, 신학, 사상처럼 체계화된 정보)을 근거로 이해하려 들면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듭니다.

종교 행동과 관련된 '원인'을 탐색하고자 한다면, '이유'를 찾기보다는 원초적인 동기(생물학적 동인)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하나의 그럴 듯한 이유에 대한 이유의 썰이 만들어질 뿐입니다. 종교에 관한 많은 이론들이 이런 상태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또 그리스 종교 문화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그 종교 문화 지층의 가장 표층에 불과하는 점입니다. 대지신 신앙의 전파를 확인한 유적들(베이츠의 논의)을 보면, 관련 관념이 크레타라는 섬에서 유래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또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근동과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더 올라가게 되면 인류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원시 종교 문화와 만나게 될 테고요. 

그 시원적 패턴은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인간의 진화된 마음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일반적인 종교적 '본능'(진화의 산물입니다만)이라는 '심층'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종교)문화의 지층은 우리의 본능에서 시작한 다양한 상상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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