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죽음에 관한 '진짜 목사' 이야기 + 사족

※이 글은 얼룩소 글(23.7.20)을 옮겨온 것입니다.

━━━━━━ ♠ ━━━━━━


저의 은사님이었던 노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노선생님께서 여든이 넘으셨을 때, 70대 중반의 동생이 치명적인 암(완치가 어렵고 생존기간이 짧은)으로 투병하던 중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미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재산을 비롯한 신변 정리를 마치고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병원에서 노선생님과 그 동생은 동생 사후 장례식, 화장 등 죽음 이후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이때는 의사가 요양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죽음이 머지 않아 그냥 병원에 있게 한 후로 환자와 그 가족은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때였습니다.

그때 동생 분이 다니시던 교회의 목사와 신도들이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출처: 뉴스앤조이

'하느님, 000 성도의 병을 낫게 해 주세요.'

목사와 신도들이 돌아간 후에 형제는 목사의 '낫게 해 달라'는 기도의 엉뚱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래 동생의 딸이 병문안을 왔다고 합니다. 그 조카는 미국 동부의 백인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였습니다. 

조카 목사는 기도하기 전에 환자에게 먼저 이렇게 물었습니다.

'00삼촌, 뭐에 대해서 기도하고 싶으세요. 제가 같이 기도해 드릴께요.'

조카 목사가 돌아가고 나서 동생은 형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00은 진짜 목사네요.'

____________

이미 죽음을 운명, 신이 정하여 놓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신에 의한 치병의 기적'을 요구하는 기도가 얼마나 황당한 일일까요? 오히려 공감의 위로가 큰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로 '치병의 기도'를 하는 목사가 항상 '진짜 목사'가 안 된다고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불치병, 난치병에 걸린 신자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치병의 기적을 꿈꾸는 경우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다만 신자의 '필요'를 확인하는 건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에 두 번은 맞추는 고장 난 시계 같은 꼴이 되겠지요.

종교의 고매한 가르침이 보여주는 우러러봐야 할 이상도 있습니다만, 종교의 값어치를 십분 느끼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을 감내하는 힘'을 주는 위로와 공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태백산, 산당, 서낭당 그리고 사람들┃답사 후기

[2017년 6월에 태백산 일대의 답사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답사는 6월 3일부터 6월 4일까지. 후기 작성일 2017. 6. 7.] · · · 태백산에 다녀왔다. 천제단, https://www.khan.co.kr/local/Gangwon/article/202204281434001#c2b 난 답사를 싫어한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왜 가야 하나'에 적절한 답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학부 때는 '학술'을 가장한 MT같은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싶었는데,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그마저도 관심이 시들해졌다. '학'은 사라지고 '술'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또 굳이 갈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실제 답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답사에서 무언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박사수료 후부터 조금 달라졌다. 이제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재미가 있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역시 수준 높은 연구자들과 함께 가서 그런 것 같다. 혼자 갔다면 도저히 그곳의 이야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터다. ('자기 문제의식'이 명료화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것 같기는 하다) '산악신앙'은 상식적으로는 '원시신앙'으로 학술적으로는 자연신앙 내지는 마을신앙과 관련된 민속신앙으로 이야기된다. 고도의 신학적 이야기, 그래서 인생의 의미를 음미하는 따위의 것이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상당히 빈곤하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번에 태백산 답사를 가서, 거기에 '인간'을 들여다 보는 '어떤 창'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산은 '신성한 곳'이다 태백산 같이 높은 산, 주변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은 특히 그렇다. 그런 산들은 일단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위험'하다. 맹수로부터 목숨을 위협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높...

"명상 수련이 뇌와 면역 체계에 급속한 변화를 일으킨다"(논문 이미지 설명)

 신심미약종교학 채널 에서 다뤘던 " Neural and molecular changes during a mind-body reconceptualization, meditation, and open label placebo healing intervention " 논문 리뷰글에 이어서, 해당 논문의 핵심 메시지를 논문의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이곳에 정리한다. 논문 소개 Neurosciencenews.com 기사 "마음과 몸의 재개념화, 명상 및 공개 라벨 위약 치유 중재 과정에서의 신경 및 분자적 변화"(2025)의 연구 실험 설계를 담고 있는 그림1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2003-025-09088-3 Fig. 1: Study design, participants, data collection, and recruitment에 대한 설명 이 그림은 7일간의 집중 명상 프로그램이 인간의 뇌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연구의 전체적인 설계를 보여주고 있다. A. 연구진은 먼저 뇌와 신체의 생물학적 변화를 포착하기 위한 다양한 측정 방법을 준비했다. 뇌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MRI를 통한 기능적 연결성과 구조적 변화를 측정하고, 신체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혈액 샘플에서 신경 성장 인자, 대사 물질, 단백질, 그리고 엑소좀 내 RNA까지 광범위하게 분석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B. 연구에는 총 20명이 참여했는데, 이 중 14명이 여성, 6명이 남성이었으며 평균 연령은 46세였다. 참가자들은 명상 경험 수준에 따라 초보자와 숙련자로 구분되었고, 각 참가자의 생체 표지자 수준도 사전에 측정되어 분류되었다. C. 프로그램은 9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실제 개입 프로그램은 Day 1부터 Day 7까지 7일간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은 매일 4-6시간의 명상, 2-4시간의 재개념화 교육(고통과 치유에 대한 인식 전환), 그리고 1시간 내외의 치유 의식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천문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1월 1일은 왜 새해 첫날이 되었을까?

천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1월 1일은 참 애매한 날입니다. 지난 번에 '크리스마스와 동지 축제'라는 시리즈 글을 다루면서 동지가 '시간의 마디'로 인식된 측면(참고: 절기, 시간의 마디와 의례 본능 )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만, 천체의 움직임(태양이나 달)과 1월 1일은 사실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태양 고도의 극점(solstice)이나 평분점(equinox)은 시간 사이클 상에서 변화의 기준점 역할을 하지만 달력에는 애매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21, 22일 혹은 22, 23일입니다(2023 춘분: 3월 21, 하지: 6월 21일, 추분: 9월 23일, 동지: 12월 22일).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역사적 기원으로 이야기하면 율리우스력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새로운 역법을 정할 때 1년을 365.25일로 정하고(소수점 시간은 윤년으로 처리), 춘분을 3월 23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1월 1일이 신년의 첫날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춘분을 4월 1일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럼 동지가 1월 1일이 되었을 겁니다. 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 궁금합니다. 천문학적 기준점을 왜 새해 첫날로 삼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은 계속 해소되지 않습니다. 고대 로마 달력 https://www.througheternity.com/en/blog/history/beware-ides-march-assassination-julius-caesar.html 율리우스력의 기원이 되는 이집트력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집트력은 농경 생활과 천문 지식의 결합을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달력 https://historicaleve.com/ancient-egyptian-calendar/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범람 주기, 천문 현상의 변화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한 달을 30일, 1년을 365일(3개 계절-범람기Akhet, 발아기Peret, 추수기Shemu)로 하는 역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