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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란 말은 마르크스만 한 말일까?

※이 글은 얼룩소 글(23.6.22)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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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출처 오귀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소문이나 가짜 뉴스를 사람들이 사실로 믿는 현상을 통해서 인간이 신화와 종교를 만들어 향유하는 방식을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 마르크스의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는 말의 참 뜻을 살펴본 김에 이 표현이 과연 마르크스의 순수 창작물로 볼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https://famosos.culturamix.com/historicos/karl-marx

칼 마르크스의 반종교적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던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라는 표현은 너무나도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사용자들을 떠올리는 것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비슷한 표현이 사용된 이전 사례는 많았습니다.

하인리히 하이네와 모세 헤스, 출처: 위키피디아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와 모세 헤스(Moses Hess, 1812-1875)라는 사람도 비슷한 말을 한 바 있습니다. (하이네는 괴테 시대에 활동한 시인으로 신랄한 풍자와 허무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합니다. 헤스는 마르크스와 같이 《라인 신문Die Rheinische Zeitung》을 만든 바 있는 인물입니다.)

하이네는 “종교를 갖게 된 걸 환영한다. 종교는 고통 받는 인류의 쓰디쓴 잔에 영적 아편의 달콤하고 최면적인 음료와 사랑과 희망 그리고 신앙의 음료를 붓는다”(1840)고 말했으며, 헤스는 “종교는아편이 고통스러운 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처럼 같은 방식으로 … 농노 신분의 불행한 의식을 견디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1843)고 말한 바 있습니다.
Löwy Micheal, The war of gods: religion and politics in Latin America, London; New York: Verso, 1996, p.5. 마이클은 “동일한 문구를 다양한 맥락에서 칸트, 헤르더, 포이어바흐, 브루노 바우어, 모세 헤스 그리고 하인리히 하이네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드와 노발리스, 출처: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아편의 비유의 초기 버전은 사드 후작(Marquis de Sade, 1740-1814)과 노발리스(Novalis, 1772-1801)의 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드의 용례는 그의 책 《쥘리에트Juliette》(1797)*의 5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제는 ‘쥘리에트 이야기, 혹은 악덕의 번영’Histoire de Juliette, ou les Prosperites du vice입니다. 악랄하고 음탕한 고아 쥘리에트가 악녀로 성장하고 제목대로 악녀 쥘리에트가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국내에 번역서가 있습니다(《악덕의 번영》, 김문운 옮김, 동서문화사, 2011). 다만 완역은 아닙니다. 문란한 성행위를 묘사하는 장면들이 생략되어 있어서 사드 이야기의 기괴함을 체험하기에는 다소 부족합니다. 이 책과 짝을 이루는 책은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Justine ou les Malheurs de la vertu》(1791)입니다. 사드의 이야기 속에서 쥘리에트와 쥐스틴은 서로 자매지간입니다. 쥘리에트가 언니입니다.

국왕 페르디낭이 펼친 정책의 결과를 힐난하는 장면에서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자연이 당신의 백성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그들은 궁핍한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 이러한 일반적인 마비는 당신의 정책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 당신은 천재들의 강렬한 눈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무지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백성들에게 주는 것은 아편입니다. 그렇게 아편에 취해서 그들은 당신이 가하는 그들의 상처를 느끼지 못합니다.*
* Marquis de Sade, Juliette, trans. by Austryn Wainhouse, 1968[orig., 1797], pp. 929-930.

이 이야기에서는 아편과 종교와의 연관성은 보여주지 않지만, 아편과 대중의 연결고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와 환상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것은 사드의 종교론을 담고 있는 1부의 내용입니다. 신을 실제 존재와 대비시켜 “추정적 존재”conjectural existence로 말하거나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환영과 유령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Juliette, pp. 36-37).

노발리스*의 사례는 그의 단편집 〈꽃가루〉(Blütenstaub)에 실려 있습니다.
* 노발리스는 Friedrich Leopold, Freiherr von Hardenberg라는 긴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필명이었습니다. 하르덴베르크는 만 29세가 되기 약 한 달 전에 죽어서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독일 후기 낭만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르덴베르크가 자신의 필명을 가족이 전에 사용했던 이름 ‘노발리’에서 차용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영역 제목 ‘잡다한 말들(Miscellaneous Remarks)’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단편적인 글의 모음집입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논픽션 철학서로 간주되는 작품입니다(Blüthenstaub). 각 단편마다 번호가 부여되어 있고, 영역본을 기준으로 아편의 비유에 해당하는 문장은 76번 단편에서 언급된 말입니다. 

그들의 종교라는 것은 단지 마취제Opiat로 기능할 뿐이다. 격려하고, 달래주고, 허약함에서 오는 고통을 가라앉힌다.*
원문은 “Ihre sogenannte Religion wirkt bloß wie ein Opiat: reizend, betäubend, Schmerzen aus Schwäche stillend.”입니다. Werke und Briefe, München: Winkler, 1953.

여기에서 노발리스가 말하는 ‘그들’은 일상의 삶에 지친 하층 사람들philister*을 말합니다. 그들에게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는 아침밥과 저녁밥과 같은 생활의 필수 요소이고, 그들이 상상하는 천국은 화려한 교회 장식 등의 외관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갈망을 해소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진 종교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 philister는 독일어로 ‘속물’ 또는 ‘소시민’을 의미합니다. 영역본에는 ‘Philistine’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꽃가루>의 번역자는 이 표현이 당시 사용되던 학자들의 속어로서 저급한 중간 계급의 가치를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편’을 비유로 사용하는 용례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위와 같이 종교를 이해했던 시대적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 이렇게 강력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로는 헤겔(Georg Wilhelm F. Hegel, 1770~1831), 특히 헤겔 좌파,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포이어바흐(Ludwig A. Feuerbach, 1804-1872)를 꼽을 수 있습니다.

헤겔과 포이어바흐, 출처: 브리태니카 백과와 Deutchlandfunk

통상 마르크스의 종교관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 헤겔, 브르노, 포이어바흐 등이 언급됩니다. 헤겔은 소외 관념과 관련해서, 브르노는 대비되는 입장으로, 포이어바흐는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 배영기, 〈칼 마르크스의 종교관에 대한 연구〉, 《윤리연구》 24호, 1987, 89-92참고.

포이어바흐의 작품 중에서 종교에 대한 철학적 작업으로 유명세를 탄 것은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1841)이었는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종교비판은 이 책의 영향이 컸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파헤친다는 구도의 논의였습니다. 그 본질로서 제시된 것은 인간의 본질이었습니다. 

신에 대한 의식은 인간의 자의식이며, 신의 의식은 인간의 자기인식이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기독교의 본질》, 66쪽. 또 “신은 인간의 거울이다.”(135쪽)와 같은 표현도 볼 수 있다.

종교와 아편의 연결고리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가령 1판 서문에서 포이어바흐가 “종교에서는 형상(Bild)이 그 자체로 사실이다”라고 말하면서 종교의 형상을 “형상으로서” 고찰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 대목일 겁니다(32-33쪽). 옮긴이의 설명을 참고하면 “형상은 개념(Begriff)에 대비되”는 말로 “종교의 형상이란 인간의 마음속에 환상적으로 나타나는 가상”이라고 합니다(30쪽 역자주).

게다가 1판 서문 말미에는 책의 목적을 “정신적 물치료술(pneumatische Wasserheikunde)”에 있다고 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서문을 마무리 합니다.

진리라는 평범한 정신을 허위라는 위선적인 문예정신보다 높이 평가하는 사람, 진리를 아름다운 것으로 허위를 추한 것으로 보는 사람만이 신성한 물세례를 받을 가치와 능력이 있다.*
*《기독교의 본질》, 36쪽.

종교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비꼬는 말이죠. 거짓말을 믿는 사람에게나 세례와 같은 종교적 치료술이 의미 있을 거라는 이야기니까 말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 마르크스가 아편의 비유를 완성하는 데에 포이어바흐가 충분한 자양분을 제공했을 거란 걸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마르크스 평전》의 저자 프랜시스 윈은 이 비유가 “1839년부터 1842년까지 영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 ‘아편 전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 사례들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될 필요가 있겠지요. 다만 그런 표현의 유행이 큰 역사적 사건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을 수는 있을 겁니다.
프랜시스 윈, 《마르크스 평전》, 정영목 옮김 (서울: 푸른 숲, 2001), 86쪽.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는 표현이 마르크스의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히 확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마르크스가 자연스럽게 아편의 비유를 떠올릴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표현들은 주목되지 않았지만, 마르크스가 사용한 표현만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비록 아류일지라도 사람들에게는 전범(典範), 모범적 사례로 각인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의 논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상은 제가 과거에 쓴 글인 〈‘아편’(마약)과 종교: 아편의 비유, 그 이면을 찾아서〉(2013)에서 일부 발췌 및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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