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종교와 환각제(+마약), 그리고 마음의 비밀

※이 글은 얼룩소 글(23.6.27)을 옮겨온 것입니다.

━━━━━━ ♠ ━━━━━━


종교와 환각제의 관계는 그 비유적 의미('종교는 민중의 아편')에서 '중독'과 해악에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종교인들이 맹목적인 신앙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고 판단될 때, '종교의 중독적 성격'이 주목되곤 합니다("종교가 아편이 될 때").

'종교 중독(religious addiction)'이라는 표현은 개신교계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이 경우 '종교 중독'은 '해로운 신앙 생활'로 간주되며, 대체로 이단적인 신앙에 빠지는 것으로 이해됩니다("종교중독, 신앙의 열심으로 포장된 보이지 않는 질병", "유사종교 중독과 영지주의", "사이비 종교 세뇌, 마약중독 같아").
도박, 알콜, 컴퓨터, 약물 중독이 보통 중독의 대상으로 이야기된다. 출처: 헬스 경향, https://www.k-health.com/news/articleView.html?idxno=2453

그런데 종교와 환각제는 실질적 차원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지녀왔습니다. 종교 의식에 환각제가 쓰이는 경우가 있었고, 환각제 경험을 통해서 종교적 체험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 종교 활동과 환각제의 밀접한 관계

'종교적 체험'은 보통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체험과 분리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러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합리적인 의식 상태라고 부르는 정상적인 각성 상태의 의식은, 아주 얇은 막에 의해 의식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단지 하나의 특별한 의식 상태일 뿐이다. 반면에 거기에는 잠재적 형태의 의식상태가 전혀 다른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 그것들은 일상적 의식 상태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한길사, 1999), 470쪽.

윌리엄 제임스는 이런 정상 의식을 벗어난 상태의 대표적인 예로 종교적 신비 체험과 약물로 유도된 상태를 꼽았습니다. 이후에 종교심리학적 논의에서 종교적 체험(특히 신비 체험)을 '변성 의식 상태(altered states of consciousness)'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소위 '트랜스 상태'로 여겨지는 이 의식 상태는 샤먼(무당)이 접신할 때라든지, 종교적 신비 체험을 할 때에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맨 정신으로 다른 사람이 이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미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고려 중기 문관 이규보는 그의 시, 노무편(老巫篇)에서 무당의 접신과 공수 행위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동쪽 이웃에 늙은 무당이 있어 ..., 그 음란한 노래와 괴상한 말들이 귀에 들린다. ... (노무편의 서문에서)

...
목구멍 속의 새소리 같은 가는 말로 / 喉中細語如鳥聲
늦을락 빠를락 두서없이 지껄이다가 / 㘓哰無緖緩復急
천 마디 만 마디 중 요행 하나만 맞으면 / 千言萬語幸一中
어리석은 남녀가 더욱 공경히 받드니 / 騃女癡男益敬奉
...

한국 개신교의 방언/통성 기도도 외부자의 눈으로 보면, '기괴해' 보이는 신행인데, 내부자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목회자가 "우리 안에 날뛰는 무당들"이라는 제목으로 방언/통성 기도에 집착하는 한국 개신교계를 비판하는 데에서도 비슷한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큰 소리로 하는 방언기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기도에 대한 무속적 이해 때문에 ....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소리 지르며 하나님께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태도를 보인다. ... 세계와 존재의 심연을 고요히 들여다보며 그 가운데 흐르는 절대자의 숨결을 느끼는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
 - "우리안에날뛰는무당들"(출처 : 딴지 USA)

무당의 공수나 개신교의 방언 기도나 외부자의 눈으로 보면 '이상한', '정상에서 벗어난' 의식 상태의 행위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의식 상태는 통상 정서적 흥분 상태를 유발하는 행동으로 유도됩니다. 고행이 활용되기도 하고, 명상과 같은 활동이 활용되기도 합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는 반복적 행위(수피즘의 세마춤)나 자극적인 소리와 몸짓을 활용하는 경우입니다(무당의 공수와 방언/통성 기도의 사례).
종교적 변성 의식 상태 유도의 다양한 형태, 출처: mediabuddha.net, lifecrust.com, BBC News, stubbyplanner.com

그런데 인간의 역사상 특별한 물질(주로 환각제)을 활용해서 이런 상태를 유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일단을 신화 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힌두교의 베다 문헌에 언급된 소마(soma), 그리스 신화의 넥타르(Nectar), 조로아스터교의 하오마(Haoma)처럼 '신들의 음료'라고 불리는 특별한 물질이 회자되곤 했습니다.

실제로 환각 물질을 이용해서 종교 의식을 수행한 것으로 확인된 경우는 기원전 1500년 경의 고대 그리스의 엘레우시스 밀교의 키케온(Kykeon) 음료, 고대 그리스 아폴로 신전의 무녀 피티아가 맡았다고 하는 프네우마(pneuma)[땅 밑에서 올라온 환각성 기체], 중국 도교 도사들의 대마초, 비교적 최근 사례로는 멕시코의 마자텍(Mazatec) 사람들의 광대버섯(Amanita muscaria), 북미 인디언의 폐요테(Peyote) 선인장 등이 있습니다.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서 청동기 시대 인간이 종교 의식에 환각제를 사용한 흔적을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래 연구는 스페인의 발레아레스 제도의 메노르카 섬(아래 지도 참고) 매장 동굴에서 발견된 사람의 머리카락(약 3,000년 전 시기)에서 환각제 성분을 확인한 것입니다.
마약성 물질(환각제)이 특별한 의식 상태를 쉽게 유도했기 때문에 종교적 의식에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이죠. 환각제는 그러나 종교 의식과 관련없이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일상의 의식 상태를 벗어나 '변성 의식 상태'를 만드는 데에 마약보다는(법적 처벌이 따르기 때문에) 알코올(술)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피우는 것으로는 대마초보다 담배가 활용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 환각제와 종교적 체험, 문인과 예술가들의 경우

환각제(마약 등)는 손쉽게 변성 의식 상태를 만들어 줍니다. 환각제 경험을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과거의 문인과 예술가들은 그 의식 상태에서 겪는 신비한 체험에 대해서 다양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기록에서 우리는 빈번하게 '종교적 이미지'를 만나게 됩니다.
 
토마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 1785~1859)는 자신의 아편 복용 체험을 《어느 아편 중독자의 고백Confessions of an English Opium-eater》(1821)이란 책으로 내 놓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아편이 선사한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와 중독이 가져 온 고통을 기술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아편을 “공기와 같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성스러운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마틴 부스, 《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 오희섭 옮김, 서울: 수막새, 2004, 57쪽에서 재인용).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1821-1867)는 환각제에 의한 체험을 “인공적 이상향(Artificial Ideal)"이라고 부른 바 있습니다. 그에게 이상향으로 인도하는 체험을 불러일으킨 물질은 해시시와 아편이었습니다(Charles Baudelaire, Artificial Paradises: Baudelaire's masterpiece on hashish, trans. by Stacy Diamond, Secaucus, N.J.: Carol Pub. Group, 1996, p. 33.)
 
미국의 스탠드업 코메디언 레니 브루스(Lenny Bruce, 1925-1966)는 헤로인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헤로인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죽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하느님에게 키스하는 것과 같다”( 《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 112쪽에서 재인용). 그는 40세의 나이에 몰핀 과다 투여로 사망하였습니다. '신과의 키스'는 그만큼 위험한 일입니다. 
   
 
  • 보들레르의 '인공낙원'

보들레르의 환각제 체험에 대한 이야기는 특별히 주목해 볼 만합니다. 보들레르는 〈해시시의 시Le poème du haschisch〉(1858)를 썼습니다.
출처: amazon.com
그는 이 시에서 “정신과 감각의 예외적인 상태”를 “천상의 상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일반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성스러운 방법들’, 성실한 기도와 영적인 열정을 발휘하는 것 등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런 방법 중의 하나이지만, 다소 '나쁜 방법'으로 여겨질 수 있는 해시시를 이용한 무한의 체험(초월)을 이야기합니다.
 
해당 시에서 보들레르는 해시시 복용 후의 증상을 3가지 단계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효과가 늦게 나타난다고 초심자들이 불평을 일삼게 되는 “폭풍을 알리는 잔잔한 바람”의 단계 입니다. 그리고나서 복용자는 불현듯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고 합니다. 이때 복용자는 과도하게 즐거움을 느끼고 악의 없는 비난을 퍼붓게 된다고 합니다. 이 단계의 발언들은 그 복용자의 상태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혹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로 이행하는데, 이때 흥분이 가라앉고 몸이 차가워진다고 합니다. 몸과 머릿속이 혼미해지고 나른해지고, 그러면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섬세해지고 예민해진 감각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이 예민해진 감각이 환상으로 인도한다고 하죠. 환상의 해일 속에서 복용자는 압도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상념과 환상의 파노라마가 그를 계속 지배하게 된다고 하고요.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환영에 동반되는 키에프(kief)의 단계라고 합니다. “고요하고 움직일 수 없는 지복, 영광스러운 체념”을 느끼게 하는 단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보들레르가 주목하는 “도덕적 환각(moral hallucination)”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마지막 단계가 ‘마약’(해시시)를 통해서 영적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라고 보들레르는 설명합니다(Artificial Paradises, pp. 41-58).

마지막 단계에서는 “자신이 신성을 지녔다”고 믿는 경우도 확인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느끼는 감각 속에서 복용자는 자신의 죄든 타인의 죄든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 죄의 사함을 받거나 내릴 수 있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더 이상 고통이 의미 없는 상황에서 인간이 누리게 될 충만한 감각이 그를 신격화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그 고양된 감각이 휩쓸고 간 다음날은 비참한 인간이 더욱 선명하게 그의 가슴과 머릿속에 각인된다고 합니다. 준비된 추락의 고통은 마약(해시시)을 복용하여 환각적 자기 신격화를 경험한 자에 대한 우주의 법칙과도 같은 결과라고 보들레르는 말하고 있습니다(Artificial Paradises, pp. 58-71).


  • 스트레스와 위험/고통에 대응하는 인간 의식의 특성

환각제를 활용하여 종교 의식을 하기도 하고, 환각제를 통해서 종교적 체험을 떠올리기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종교=아편'이라서일까요? 그럴 리는 없겠지요. 종교적 체험과 환각제 체험이 겹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변성 의식 상태'라는 것이 두 상태(종교 활동, 환각제 복용)에서 구분되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응당 우리 몸의 특성(특히 뇌)과 관련이 될 겁니다.

환각제나 종교적 체험은 모두 우리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합니다.
출처: 아시아경제

그리고 환각제나 종교적 체험은 모두 우리의 일상적인 통제감, 제어감을 만들어 내는 의식을 끄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를 통해서 자연이나 신적 존재 혹은 집단과의 일체감을 쉽게 느낄 수 있거나 심란한 불안 요소로부터 관심을 돌려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해 줍니다(명상도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환각제나 종교적 체험은 우리 마음의 특정한 성향을 이용합니다. 보상 회로 활성화나 전두엽의 주의/통제 기능 끄기는 위험 요소에 맞닥뜨렸을 때 인간이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나 사회적 갈등에 대처하는 맥락에서 진화된 마음의 능력으로 보입니다. 정상적인 범위에서라면,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당하며 대처하는 데에 기여하는 마음의 기제입니다. 이것을 회피 행동으로서 과도하게 활용하게 되면, 역기능(ex. 중독의 폐해)이 발생하게 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인간의 역사상 종교와 환각제의 밀접한 관계는 사실상 우리 마음의 특성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종교 행동의 역기능(ex. 종교 중독)을 '사이비'나 '이단'의 문제, 즉 종교적 편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Psychedelics, Sociality, and Human Evolution
The Mechanisms of Psychedelic Visionary Experiences: Hypotheses from Evolutionary Psychology
Religious Beliefs Activate Neural Reward Circuits in Same Way As Sex and Drugs
"종교는 인민의 아편"…과학으로 입증됐다(아시아경제, 카드뉴스)
What religion does to your brain
LSD 르네상스를 꿈꾸는 사람들
Religion as a Product of Psychotropic Drug Use
델포이 신전의 무녀는 마약을 했을까?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마약으로 신을 만났을까
Direct evidence of the use of multiple drugs in Bronze Age Menorca (Western Mediterranean) from human hair analysis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ChatGPT에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를 물어 보았다.

요즘 핫하다는 '챗GPT'에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를 물어보았다. https://openai.com/ 나: 크리스마스가 동지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챗봇: 크리스마스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축제일이며 종종 북반구에서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와 관련이 있다. 동지는 보통 12월 21일 또는 22일 경에 발생하며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하는 것, 즉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을 표시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원래 기독교 이전의 동지 축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종종 태양의 재생과 낮이 더 길어지는 시기의 복귀와 관련이 있다. 고대 로마인과 고대 켈트족을 포함한 많은 고대 문화에는 동지와 태양의 귀환을 중심으로 한 전통과 축제가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및 종교적 영향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지가 축제일의 기원에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는 광범위한 종교적, 문화적 전통과 연관되어 현재 전 세계의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기념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에 대해서 비교적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지 축제와 관련성을 '논증'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보(동지 축제와 관련되지만 현재는 역사/문화/종교적 설명이 복잡하게 얽혀있다거나 복잡하게 변화했다)는 대체로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인지진화적 설명은 관련 문서가 부족하기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디테일이 부족한 것도 한계라 할 수 있겠지만, 간단한 답변으로서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챗GPT가 3문단으로 설명하는 것을 나는 A4 몇 페이지로 설명했던가. 대학 등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나 시험문제를 내줄 때 이제 안일하게 내면 AI가 답을 써주는 시대가 되어버린 듯하다. ─── ∞∞∞ ...

'정신병', 스캡틱, 박한선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8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이 글은 Skeptic Korea의 " 정신의학의 오래된 과제, 과학적 치료와 처방 "에 관한 얼룩소글의 출처를 체크하고, 정신질환 치료의 현실에 대해 박한선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정래해 본 글입니다. ─── ∞∞∞ ─── 최근에 나온 글인 줄 알고 찾아봤더니 전에 나온 글이군요. 마침 어제(1/27) 정신과 의사 출신 인류학자 박한선 선생님을 통해서 관련 이야기를 듣고, 글쓴이부터 찾아 봤습니다. 다른 저자인 걸 보고, 정신의학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박선생님께서 정신병 진단과 치료에 '정신분석학'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 했었습니다. 심리학계(실험심리가 중심이 된)에서는 배우지 않게 된 분야로 알고 있어서 의학 분야에서도 당연히 퇴출되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인지 모르지만, 효과가 있다'는 면에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정신분석학'도 프로이트, 융 시절의 버전이 아니라 많이 업데이트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부분은 과문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제 박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도 떠올라 흥미롭게 이 스켑틱의 글을 읽다가 문득 출처가 궁금해서 찾아 보니, '한국 스켑틱'에는 14권(2018년)에 "정신의학은 과학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로 실려있었습니다. (스켑틱에서 얼룩소에 올리는 글이 최근호에 실린 글이 아니라는 걸 이제사 깨달은 거죠) https://www.badabooks.co.kr/SKEPTIC_magazine/?idx=54 글은 14권의 68~83쪽에 실렸습니다. 이 글을 일부 발췌해서 재편집한 것이 위의 얼룩소에 실린 글이더군요....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은 많다?│시간과 종교적 본능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부제를 약간 수정) ─── ∞∞∞ ─── 1년의 시작점은 많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은 동지, 설, 정월대보름, 입춘 등입니다. 전에 이야기한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신년 기념일들처럼( 참고 ) 같은 나라 안에서도 여러 신년 기념일이 있는 경우는 특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원래 지역적인 단일성은 있었을 겁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1월 1일이다, 이 동네는 음력 설이다, 이 동네는 입춘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게 어떤 계기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지역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집단들이 묶여서 더 큰 집단으로 통합되면서 시간, 의례 등을 통합하는 과정이 뒤따르게 됩니다. 종교단체 수준에서도 진행이 되지만 국가 수준에서도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은 국가의 흥망성쇠, 종교단체의 흥망성쇠 등 집단 구속력의 변화에 따라서 부침을 겪으며 반복·중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에서는 16세기에 신년 기념일을 단일화하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19세기말 20세기에 시도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수준에서 한 해의 시작일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지만,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첫 날은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이를 문화적 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선조들이 해왔던 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나타남). 여러 신년 기념일은 그런 통합의 힘에도 어떤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과거의 전승이 살아남아 그 흔적을 남긴 덕분입니다. 다만 해당 기념일을 현재에 활용하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면 사라질 운명을 일 겁니다. 그럴 경우 '고유한 문화를 지키자'는 운동이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집단 정체성과 관련된 전통으로 선택되지 못하면 잊혀지는 것이고요. 동지 우리에게는 팥죽 먹는 날 정도의 의미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날도 과거에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기념되었습니다. 그런 동지 축제가 신년 축제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