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얼룩소 글(23.5.4)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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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γνῶθι σεαυτόν [gnōthi seauton]
여기에서는 소크라테스 외에 이 격언의 지은이로 여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 본래의 출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을 말한 것으로 여겨진 고대 그리스의 현자들에는 프리에네의 비아스(Bias of Priene), 스파르타의 킬론(Chilon of Sparta), 린도스의 클레오불로스(Cleoboulos),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케나이의 미손(Myson of Chenae), 미틸레네의 피타코스(Pittacos), 피타고라스(Pythagoras), 아테네의 솔론(Solon), 밀레토스의 탈레스(Thales) 등이 있습니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 탈레스
소크라테스 전의 유명한 현자 7명이 모여서 아폴론 신전에 새길 글귀를 정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델포이 신전의 유명한 3개의 격언('너 자신을 알라', '과하게 하지 말 것', '보증은 파멸을 가져온다')*을 그들이 정해서 기둥에 새기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 격언의 저자는 이 '칠현자'일 수 있습니다.
* ΓΝΩΘΙ ΣEΑΥΤΟΝ (KNOW THYSELF), ΜΗΔΕΝ ΑΓΑΝ (NOTHING IN EXCESS), and ΕΓΓΥΑ, ΠΑΡΑ ΔΑΤΗ (SURETY BRINGS RUIN). 델포이 신전의 격언은 이 외에도 147개가 더 알려져 있습니다. cf. Delphic maxims.
- 일곱 현자들
다만 관련 연구자들은 이러한 출처에 대해서 의심스러워합니다. Parke와 Wormell(1956)에 따르면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세 격언의 실제 저자는 불확실한 채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것들은 아마도 유명한 속담일 것이고, 나중에 특정 현자들에게 귀속되곤 했을 것이다."*
* H. Parke and D. Wormell, The Delphic Oracle, (Basil Blackwell, 1956), vol. 1, p. 389. (Know thyself 영문 위키 참조).
'칠현자'를 말한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19,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정치가 겸 작가)와 파우사니아스(Pausanias: 2세기 그리스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가 꼽은 일곱 명은 각각 다르기도 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밀레토스의 탈레스, 프리에네의 비아스, 미틸레네의 피타코스, 아테네의 솔론, 스파르타의 킬론, 린도스의 클레오불로스, 스키티아의 아나카르시스(Anacharsis)를 꼽았습니다.*
* 플루타르코스, '7현인의 저녁식사', 『모랄리아』, 한길사, 2021.
파우사니아스는 밀레토스의 탈레스, 프리에네의 비아스, 미틸레네의 피타코스, 린도스의 클레오불로스, 아테네의 솔론, 스파르타의 킬론, 그리고 케나이의 미손(Myson)을 '칠현자'로 꼽았습니다.*
* Paus. Description of Greece, 10.24.1.
해당 격언의 지은이로 7현자를 말하는 기록은 신전이 지어지고 수백년이 흐른 뒤에 쓰였습니다. 그러니 그 기록을 '그럴 듯한 상상'의 결과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이 격언을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것은 단연 플라톤 때문입니다. 유명한 제자를 둔 덕분에 이런 '오귀인'도 일어난 것이죠. 플라톤은 Charmides(164D), Protagoras(343B), Phaedrus(229E), Philebus(48C), Laws(II.923A), Alcibiades I (124A, 129A, 132C)에서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를 언급하는 대화를 적고 있습니다(Know thyself).
소크라테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학자로 유명합니다. 이 격언도 그의 '무지에 대한 앎'(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을 이야기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메타-인지' 판단으로부터 확실한 앎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그의 철학적 사색과 대화의 요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은 주로 철학적이며 성찰적인 '자기 인식'의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이 오귀인 사례는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모르는 유명한 격언이 특별한 현자가 한 말로 여겨진 사례입니다. 누가 한 말인가는 많이 이야기가 되지만, 어디에 쓰인 것인가는 잘 이야기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경구가 '신전'에 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종교적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다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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