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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저작물을 베끼는 다양한 방법┃문란해진 표절 기준

※이 글은 얼룩소 글(23.5.22)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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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떤 글을 보고 동료 연구자를 떠올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글은 다른 사람이 쓴 것이었습니다. 문장을 정확히 옮겨 쓰는 식은 아닌 걸로 보였는데, 그 글을 보면 누굴 떠올릴지 뻔한 것이었습니다. 왜 그 사람이 제 동료 연구자의 아이디어, 논의를 그대로 활용해서 글을 썼는지 의아했습니다. 나름 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구자로 알고 있었기에 충격이 더 크더군요.

몇몇 주변 분들께 관련 사항을 물어보니 그 분의 전적이 화려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 자료를 활용해서 순발력 있게 결과물을 내는 식으로 학술 활동을 이어왔다고 하더군요. 연구자들은 이런 '약탈적 연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학계 퇴출 같은 조치를 취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현행 표절 기준으로는 다루기 어려워서 그런 것일 테지요.

표절자들이 제대로 검증되고, 평가받고, 그 책임을 지는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약탈적 연구자'들이 활동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논문 표절 감시시스템 '양심'이 유일"(경남도민일보,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77431)

표절은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의 표절 사건으로 나름 사회적 기준이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다른 사람 글을 인용할 때 출처를 밝히면 표절이 아니다라는 식이 대표적입니다. 어느 언론사 뉴스에서 표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앵커] 결국은 이걸 인용해서 쓴 것이냐, 아니면 베껴 쓴 것이냐의 차이는 인용한 것에 대한 표기 그러니까 출처를 밝히는 것에 있잖아요.
[기자] 사실 여기서 출처를 밝혔으면 형식적으로는 표절이 아니게 되는 셈인데요.
- JTBC 뉴스, 2021년 12월 28일자.

학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적인 기준은 그렇지 않습니다. 출처 표시를 해도 타인의 글을 베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면 표절로 판단됩니다. 다른 사람의 문장을 직접 가져오는 경우, 직접인용부호(큰따옴표)를 이용하든지(2-3줄), 인용단락으로 처리하고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은 표절입니다.

위의 기사를 직접 이용하는 방식은 앞서처럼 인용 단락으로 처리하든지, 다음과 같이 작성해야 합니다.

JTBC 뉴스에서는 표절 기준을 "인용해서 쓴 것이냐, 아니면 베껴 쓴 것이냐의 차이는 ... 출처를 밝히는 것에 있"다고 말해서 표절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심화시킨다.(주1) (주1: JTBC 뉴스, 2021년 12월 28일자*)
*출처 표기 형식은 학술저널 별로 상이합니다만, 대체로 뉴스나 기사의 경우, '기자, 타이틀, 매체, 날짜'로 적습니다. 여기서는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간접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은

JTBC 뉴스에서 잘못된 표절 기준을 제시하여 표절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심화시키고 있다(JTBC 뉴스, 2021년 12월 28일자).

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렇게 쓴다면 문제가 됩니다.

인용해서 쓴 것이냐, 아니면 베껴 쓴 것이냐의 차이는 인용한 것에 대한 표기 그러니까 출처를 밝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옮기더라도 출처를 밝혔으면 형식적으로는 표절이 아니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그대로 옮기면서 그대로 옮겼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있게 표시하지 않으면 표절입니다(밑줄은 베껴 쓴 부분을 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 쓴 것입니다). 여기에 출처를 표시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출처를 표기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쓴 말이라면 큰 따옴표를 넣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 '대학 국어' 시간에 배우는 내용입니다)

언론에서 표절 기준으로 '유사도 몇%' 이야기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몇%를 기준으로 표절을 판가름하고 그러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이것은 표절검사기의 폐단으로 보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표현 상에서 비슷한 것은 문제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중요한 내용인데 문장이 비슷하고 논리적 전개가 유사하다면 문제가 됩니다(같다면 보통 연구자들은 표절로 판단 받습니다. 학부 수업 시간에 베끼기를 하면 'F'학점을 받게 되고요).

교육부가 제시한 인문사회과학분야 표절 가이드라인을 보면,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경우
생각의 단위가 되는 명제 또는 데이터가 동일하거나 본질적으로 유사한 경우
타인의 창작물을 자신의 것처럼 이용하는 경우

를 표절로 제시하고 있습니다(참고 기사). 이 가이드라인에서 표절 유형으로 참고한 자료의 문장을 바꾸거나 짜깁기한 것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백한 표절 시비'의 회피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인데, 그것도 표절로 판단됩니다. 여러 학계에서 이를 '모자이크 표절'로 부르고 있습니다(참고 자료, '표절' 항목).

비슷한 생각을 비슷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고려하기 때문에 '여섯 단어 이상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경우'로 구체화해서 기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표절을 판단하고 그러한 연구부정행위에 대해서 '징계'하기 위한 기준일 뿐입니다.

기본은 '남의 것을 베끼면' 다 표절입니다. 출처 표기를 한다고 해서 베끼는 게 정당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출처를 표기해도 베끼기는 안 됩니다. 해당 내용을 자신의 논지에 맞게 정리·해석해서 표현해야 하는 것이죠.

직접 인용 방식이라고 해도 전체 논지 전개에서 주요 부분이 타인의 저작물 내용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몇 페이지씩 특정 저작물 혹은 특정 저자의 저작물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표절입니다. 저는 학부 때 그렇게 배웠는데, 어느 새 기준이 느슨해 진 것 같습니다.

선행 연구를 분석할 필요가 있어서 직접 인용이 느는 것은 어느 정도 예외가 적용되기도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보통 몇 문장 인용에 그치기 마련입니다(직접 인용-큰 따옴표 사용/인용 단락 처리- 혹은 간접 인용으로). 선행 연구 설명한다고 타인의 저작을 '도배'하는 것은 선행 연구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저 표절이죠.

특히 다른 사람의 문장을 가져다 쓰지 않더라도 타인의 저작물의 독창적인 아이디어(통상 주장, 논증)나 논의 전개 방식을 도용하는 경우까지 표절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 학계에서 이런 경우가 문제된 사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약탈적 연구자'가 심심치 않게 보이는 걸로 미루어 보면, 아이디어나 자료를 가져다 쓴 경우까지 문제 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표절 기준은 실제로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고, 온정주의적 판단이나 법적 기준에 맡겨버리는 듯한 모양새입니다. 이런 환경이니 타인의 아이디어나 자료를 가지고 쉽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없어지진 않겠지요.

이런 상황인데, 생성형 AI가 대중화 되니, 아이디어와 자료가 '약탈'되는 일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습니다. 학계에서 이런 문제에 엄정하게 대응해야 할 텐데, 법적 판단이 우선이 되면서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표절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세요.
학술논문에서 표절의 유형과 올바른 인용 방식에 관한 고찰(곽동철,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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