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얼룩소 글(23.5.12)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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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ΓΝΩΘΙ ΣEΑΥΤΟΝ, gnothi seauton*)라는 경구가 델포이 아폴로 신전의 어느 위치에 새겨져 있다고 볼 수 있는지를 다루면서 '델포이 신전의 심볼'로 여겨지는 'E'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지난 글). 이 심볼의 수수께끼에 대해서 제법 다양한 학술적 논의가 전개되었더군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ΣEΑΥΤΟΝ(seauton) 말고 ΣΑΥΤΟΝ(sauton)으로 쓴 경우도 많은데, 주로 책에 쓰인 경우였다고 합니다.
*ΣEΑΥΤΟΝ(seauton) 말고 ΣΑΥΤΟΝ(sauton)으로 쓴 경우도 많은데, 주로 책에 쓰인 경우였다고 합니다.
- 델포이 신전의 E가 가진 비밀
델포이 신전의 심볼 E는 우리에게는 낯선 것이긴 합니다만,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이 새겨졌던 곳 근처에 함께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무, 청동, 황금 버전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의 가운데 빨간 원 안의 기호가 '델포이의 E(delphic E)'로 불리는 것입니다. 다만 해당 기호는 최근에 유행하는 버전인 것으로 보이고, 과거에는 E의 모습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애초 기호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cf. 아래 그림6). 추정되기로는 기원전 수천년 전부터의 숭배 의식과 관련이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전후 기록을 토대로는 'E'라는 형태를 뚜렷이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현대의 학자들이 생각을 해 보게 된 것은 플루타르코스(46~약120)가 관련 기록을 남겼기 때문입니다(델포이 신전의 E 문양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플루타르코스는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서 사제로 봉직했었다고 합니다. 이때 신전 입구에 걸린 'E'에 관해서 생각하며 글을 남겼습니다(On the E at Delphi).
- 플루타르코스의 7가지 설명
델포이의 E에 관해서 언급한 대화록에서 그는 7가지의 가능한 설명을 '대화자들의 입'을 빌려서 제시하였습니다.
- 델포이 신전의 격언을 정한 현자들이 5명임을 보여준다(E, 엡실론은 그리스 알파벳의 다섯 번째/영어의 E와 마찬가지로).
- E는 모음으로서 두 번째이고, 태양은 두 번째 행성(달이 첫 번째로 여겨짐)이며, 아폴로는 태양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므로 E가 아폴로를 상징한다.
- 플루타르코스는 E의 발음을 'ei'로 보면서 'ei(εἰ*)' = "만일(if)"로 본다. 사람들은 그들이 성공할 것인지 또는 그들이 이것을 할 것인지 또는 저것을 할 것인지를 신탁으로 묻는 데 이 단어를 사용한다.
- EI는 종종 εἴθε(eithe) 또는 εἰ γάρ(ei gar)[=if only, ~이면 좋을 텐데]의 조합으로 신에 대한 소원이나 기도에 사용된다.
- EI, 곧 "if"는 논리학에서 필수적인 단어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저런 결과가 따른다.' 아폴로 신이 즐겨 사용했다.
- 5는 수학, 생리학, 철학,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다(E, 알파벳의 다섯 번째 문자). 아폴로 신은 그 분야들과 밀접히 관련된다.
- EI는 "thou art(you are)"를 의미하며 신(아폴로)이 영원한 존재라는 것을 나타낸다.
* εἰ는 고대 그리스어의 'if'.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αν(an)'.
이 심볼에 대한 현대적 논의를 이끈 고대 그리스 연구자 베이츠(William Nickerson Bates, 1867–1949)는 플루타르코스가 그럴 듯한 설명을 생각한 것이지 그 본래 의미를 알지는 못했다고 지적합니다(Bates, 1925: 241). 당시에 플루타르코스의 설명은 그가 엡실론(E)이라는 문자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합니다.
- 현대적 설명, 더 고대의 대지신(가이아)의 흔적?
베이츠는 보다 확실한 근거라고 판단했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델포이 신전의 E 심볼이 아폴로 신을 믿기 이전에 그곳에서 행해지던 대지신('가이아')에 대한 숭배와 관련된 것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내 놓았습니다.
델포이 신전에서 20세기 초에 발견된 옴파로스*에 새겨진 문자 E Γã(E Ga)를 기초로 해서, 'ga'는 'ge'를 말하는 것이고, 이는 'gaia'와 관련이 된다고 봅니다(ge/gaia가 고대의 대지모신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 때는 이 돌이 기원전 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 옴파로스는 '배꼽'이란 의미로 '세계의 중심'을 나타내는 표지로 놓인 종(혹은 벌집)모양의 돌입니다(아래 사진).
당시 접근 가능한 델포이, 크레타의 미노스,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등지의 유적과 유물로 확인할 수 있는 대지 여신의 도상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 및 연극 텍스트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20세기 전후로 크레타의 미노스 문명,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에서 대지의 여신 신앙이 공히 발견되고, 비슷한 도상을 갖는 유물이 델포이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델포이에 원래 대지모신(Mother Earth Goddess) 신앙이 있었고, 그 대지모신은 때론 가이아로 때론 테미스(Themis)로 불렸었다. 그러다가 크레타의 크노소스 사람들이 델포이로 이주하면서 아폴로 신앙이 들어와 이를 대체했다.
이런 시나리오를 제기하면서 베이츠는 델포이 신전의 E 심볼이 아폴로 이전 대지모신의 심볼이었는데, 아폴로 등장 이후에도 '재활용'되었고, 이후에 사람들이 그 내막을 잊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았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참 흥미로운 그럴 듯한 가설입니다. 그런데 이 주장은 1950년대에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바로 베이츠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던 옴파로스에 새겨진 글자가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며, 베이츠 등이 글자를 잘못 읽은 것일 뿐 아니라 그 돌은 옴파로스도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어 나가겠습니다.
참고자료
Bates, William Nickerson, 1925, "The E of the Temple at Delphi," American Journal of Archaeology 29(3): 239–246. (이 논문에 대한 요약은 여기를 참고)
Bousquet, Jean, 1951, "Observations sur l'« omphalos archaïque » de Delphes," Bulletin de Correspondance Hellénique 75: 210-223.
ON THE E AT DELPHI, Plutarch's Morals: Theosophical Essays
The E at Delphi, CONRAD H. ROTH's Blog(Varieties of unreligious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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