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뇌 회로는 친숙한 것, 중요한 것과 단순한 배경을 식별합니다."(논문 정리)

흥미로운 신경과학 연구 소개를 봤습니다. 친숙한 것과 중요한 것을 먼저 식별하는 뇌 경로에 관한 연구입니다. '신경종교학'에 참고가 되는 논문일 것으로 판단되어,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  *  *


Brain Circuit Identifies What’s Familiar, Important, or Just Background┃Neuroscience News.com

요약: 과학자들은 기억과 감정을 통합하여 감각 정보를 빠르게 평가하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뇌 회로를 발견했습니다. 내측후각피질(entorhinal cortex)과 해마(hippocampus) 사이의 이 직접 피드백 루프를 통해 뇌는 중요한 광경과 소리를 거의 즉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알려진 더 느린 경로와 달리, 이 회로는 관련 자극과 배경 소음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PTSD와 자폐증과 같은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발견은 뇌가 정보를 걸러내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감각 및 기억 관련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 


익숙한 것을 한눈에 알아보는 뇌 회로, 해마의 비밀


우리는 왜 친숙한 얼굴이나 물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요? 반대로 처음 보는 것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곤 합니다. 이런 능력 뒤에는 우리의 기억이 큰 역할을 합니다. 뇌의 해마(hippocampus)라는 부분이 과거의 기억을 보관하고 있다가, 현재 들어오는 감각 정보와 비교하여 이것이 익숙한지 새로운지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해마는 “이건 예전에 봤던 거야” 혹은 “처음 보는 거네”라는 신호를 뇌의 다른 부분에 보내 우리의 인식을 조절합니다. 이 덕분에 우리는 중요한 새로운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미 아는 것은 배경 소음처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해마는 특히 대뇌피질의 한 부분인 내후각 피질(entorhinal cortex)과 긴밀히 소통합니다. 내후각 피질은 오감에서 들어온 정보를 해마로 보내주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주로 내후각 피질 → 해마 방향으로, 즉 감각 정보가 해마로 들어가 새 기억을 형성하는 경로를 많이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해마 → 내후각 피질기억 신호가 되돌아가서 현재의 감각 처리에 영향을 주는 방식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익숙한 것을 더 잘 인식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해마가 감각 피질로 피드백(되먹임 신호)을 보내 중요도를 표시해줄 것이라는 추측만 있었을 뿐이죠.


연구 방법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뉴욕대학교 의과대학의 연구팀은 생쥐를 대상으로 뇌 회로를 탐구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위 논문). 연구진은 해마와 내후각 피질 사이의 신경 연결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기존에 알려진 간접 경로 외에 해마가 직접 내후각 피질로 신호를 보내는 새로운 길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이를 위해 뇌 세포를 형광 표지하거나 빛으로 자극하는 등의 최신 기법을 사용해 신경 회로를 추적하고, 해마에서 내후각 피질로 전달되는 전기 신호의 속도와 영향을 측정했습니다.

또한 연구진은 행동 실험을 통해 이 회로의 기능을 검증했습니다. 생쥐에게 새로운 물체를 보여주어 기억을 형성하게 하거나, 이미 본 물체를 다시 보여주어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해마의 신호가 내후각 피질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관찰했습니다. 실험 중에 특정 순간 해마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거나 활성화해서, 그 결과 생쥐가 물체를 기억하는 능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생쥐가 미로처럼 생긴 공간을 이동하며 학습할 때는 특수 현미경으로 뇌를 들여다봐서, 해마의 신호가 차단되었을 때 내후각 피질 세포들의 공간 정보 활동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확인했습니다. 이런 직관적인 접근을 통해, 연구진은 해마가 보내는 신호가 실시간으로 감각 처리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주요 발견

그 결과, 해마에서 내후각 피질로 향하는 두 가지 경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간접 경로로, 해마의 신호가 먼저 내후각 피질의 깊은 층(5층)에 도달한 후, 다시 표면 층(2/3층)으로 전달되는 우회로입니다. 이 경로는 중간에 거치는 단계가 있어 신호 전달에 약간 시간이 걸리며, 내후각 피질에 도착할 때쯤에는 신호의 타이밍이 늦춰질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직접 경로로, 해마의 신호가 곧바로 내후각 피질의 표면층(2/3층)에 닿는 빠른 루프(loop)입니다. 이 직접 되먹임 회로는 해마에 저장된 기억이나 감정 정보를 즉각적으로 내후각 피질로 보낼 수 있어서, 우리가 보고 듣는 감각에 빠르게 맥락을 부여해줍니다. 예를 들어, 위험한 상황에서 들었던 소리가 다시 들리면 해마가 즉시 해당 소리를 “중요한 신호!”로 표시하고, 익숙하고 안전한 배경 소음이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돼”라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경로의 작동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간접 경로를 통한 해마의 신호는 내후각 피질 세포들을 강하게 활성화시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마치 가속 페달을 밟아 신경 세포에 강한 “발사 신호”(활성 전기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이 경로는 새로운 감각 정보가 들어왔을 때 내후각 피질을 활발하게 자극하여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도록 도와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새로 발견된 직접 경로의 신호는 내후각 피질 세포를 바로 흥분시키기보다는 미세하게 조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경로를 통해 해마가 보낸 신호만으로는 내후각 피질 세포가 강하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대신 다른 감각 신호와 겹쳐질 때 효과를 나타내도록 세포들의 민감도를 조절했습니다. 쉽게 말해 브레이크파인 튜닝(fine-tuning) 장치처럼 작동하여, 현재 처리 중인 감각 정보에 기억의 영향이 살짝 섞이도록 한 것이죠.

이러한 차이는 행동 실험에서도 드러났습니다. 해마가 내후각 피질의 깊은 층으로 보내는 신호를 방해하자 생쥐는 새로운 물체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반대로, 해마의 직접 신호가 도달하는 표면 층 경로를 막았을 때는 생쥐가 전에 본 물체를 알아보는 능력, 즉 기억을 떠올리는 능력이 떨어졌습니다. 이는 해마→내후각 피질의 깊은 층 경로가 새 기억 형성에 중요하고, 해마→표면 층의 직접 경로는 기억 회상에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공간 미로 실험에서는 해마의 활동을 일시적으로 억제하면, 내후각 피질에서 특정 위치에서만 강하게 반응하던 신경 신호가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즉, 해마의 되먹임 신호가 없으면 내후각 피질이 주변 환경의 장소 정보를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는 것이죠. 종합하면, 해마가 보내는 빠른 피드백 신호가 실시간으로 감각 입력을 걸러내고 중요한 부분에 태그를 달아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뇌의 감각 처리 출력(내후각 피질의 활동 양상)을 지속적으로 형성하고 다듬는다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입니다.


연구의 의미

이번 연구는 우리의 뇌가 과거의 경험(기억)을 활용하여 현재의 감각 정보를 어떻게 선별하고 강조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를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해마와 내후각 피질을 잇는 새로운 직접 되먹임 회로 덕분에, 우리는 익숙한 것을 더 빨리 알아보고 중요하지 않은 자극을 걸러내며, 낯선 상황에서는 빠르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끌벅적한 파티에서 멀리서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를 금방 인지하거나, 책상 위 여러 물건 중에서 매일 쓰는 물건이 유독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은 모두 해마가 보내는 기억 신호가 감각 처리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대조하면서 우리의 주의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발견은 단순한 이론 이상으로, 여러 방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주의력과 학습 측면에서 보면, 뇌의 이러한 “정보 필터링 시스템”을 이해함으로써 사람들이 집중을 향상시키거나 더 잘 기억하도록 돕는 전략을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정보를 강조하고 어떤 것을 무시할지 뇌가 결정하는 원리를 알게 되면, 교육이나 학습법을 개선하는 데도 응용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AI는 카메라나 센서로 입력을 받지만, 인간처럼 과거 경험을 활용해 무엇이 중요한지 즉각 판단하는 기능은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뇌의 메커니즘처럼, AI에도 이전에 학습한 정보를 활용해 현재 입력의 중요도를 평가하는 피드백 구조를 넣어준다면 보다 인간에 가까운 인지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의 집중”이라는 인간 두뇌의 장점을 모방해, 새로운 환경에서도 더 빠르고 똑똑하게 대응하는 AI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뇌 질환 연구 측면에서도 이번 발견은 의미가 큽니다. 우리의 뇌 회로가 어떻게 중요도 신호를 주고받는지 알면, 이 기능이 잘못되었을 때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는 폭죽 소리 같은 현재의 무해한 자극에도 과거 트라우마 기억이 떠오르면서 극심한 불안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는 원래라면 해마가 보내는 피드백으로 “이 소리는 예전 위험한 소리와 다르다”고 구분해줘야 하는데, 해당 회로의 이상으로 과거의 공포 기억이 현재 상황에 과도하게 덧씌워지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뇌가 감각 과부하를 걸러내지 못해 사소한 소리나 빛에도 압도되는 일이 흔한데, 이것 역시 해마-피질 간 되먹임 회로의 기능 이상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회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단순 배경인지 뇌가 구분하기 어려워져 모든 자극에 똑같이 예민하게 반응하게 될 수 있는 것이죠.

더 나아가,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에서는 해마와 주변 피질이 먼저 손상되어 기억력 저하공간감각 문제가 나타납니다. 해마의 직접 되먹임 회로가 망가지면 익숙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익숙한 집 주변에서도 길을 헤매는 증상이 왜 생기는지 이해하는 데 이번 연구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질환에서 기억-감각 회로를 회복시키거나 강화하는 새로운 치료 접근을 고안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해마가 내후각 피질로 보내는 빠른 신호라는 새로운 회로를 밝힘으로써 우리의 뇌가 과거의 기억을 이용해 현재의 중요 정보를 가려내는 원리가 한층 명확해졌습니다. 이 지식은 우리의 기억과 주의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설계부터 뇌 질환 치료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참고자료


*  *  *


익숙하고 중요한 정보를 선별하여 기억하는 두뇌 메커니즘은 종교적 신념의 형성과 유지에도 깊이 관여합니다. 이러한 통찰은 종교적 기억 및 신념 형성을 연구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실제로 인지신경과학의 연구자들은 믿음(belief)과 기억이 밀접히 얽혀 있음을 지적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는 결국 기억을 통해 유지되고 표현된다고 합니다​(Bridging the Gap Between Believing and Memory Functions). 

다시 말해, 종교적 신념이라는 것도 뇌가 중요하다고 간주해 저장한 기억들의 산물이며,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행동과 태도를 지배하는 기억의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 신경과학은 종교 경험 시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측정하고 분석함으로써 왜 어떤 사람들은 깊은 신앙을 갖게 되는지, 종교적 확신이 어떻게 강화되는지를 밝히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경신학(Neurotheology)으로 불리는 분야는 뇌과학과 신학의 협력을 통해 뇌와 종교 경험 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탐구합니다(Neurotheology). 예컨대 뇌 영상 연구를 통해 기도나 명상 중에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찾아내고, 이러한 활동이 기억 및 감정 처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연구합니다.

이러한 학제적 연구는 종교적 믿음이 형성되는 신경학적 과정을 규명함으로써, 종교 현상을 인간 두뇌 보편의 작용으로 이해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요컨대, “중요한 것을 우선 기억하도록 설계된 두뇌”라는 틀로 인간의 종교적 관념과 행동을 바라보면, 개인의 신앙 체험부터 집단의 종교 의례까지 모두 인지 메커니즘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종교적 기억과 신념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토대가 되며, 나아가 인간 두뇌가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질 것입니다.

신경종교학'신경신학'의 신학적 전제를 배제하고 인간의 종교적 관념과 행동의 기작을 신경 메커니즘 수준에서 규명하는 연구 분야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기억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는 해당 연구를 전개하는 데 꼭 참고해야 할 연구라고 생각됩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은 많다?│시간과 종교적 본능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부제를 약간 수정) ─── ∞∞∞ ─── 1년의 시작점은 많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은 동지, 설, 정월대보름, 입춘 등입니다. 전에 이야기한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신년 기념일들처럼( 참고 ) 같은 나라 안에서도 여러 신년 기념일이 있는 경우는 특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원래 지역적인 단일성은 있었을 겁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1월 1일이다, 이 동네는 음력 설이다, 이 동네는 입춘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게 어떤 계기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지역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집단들이 묶여서 더 큰 집단으로 통합되면서 시간, 의례 등을 통합하는 과정이 뒤따르게 됩니다. 종교단체 수준에서도 진행이 되지만 국가 수준에서도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은 국가의 흥망성쇠, 종교단체의 흥망성쇠 등 집단 구속력의 변화에 따라서 부침을 겪으며 반복·중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에서는 16세기에 신년 기념일을 단일화하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19세기말 20세기에 시도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수준에서 한 해의 시작일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지만,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첫 날은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이를 문화적 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선조들이 해왔던 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나타남). 여러 신년 기념일은 그런 통합의 힘에도 어떤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과거의 전승이 살아남아 그 흔적을 남긴 덕분입니다. 다만 해당 기념일을 현재에 활용하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면 사라질 운명을 일 겁니다. 그럴 경우 '고유한 문화를 지키자'는 운동이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집단 정체성과 관련된 전통으로 선택되지 못하면 잊혀지는 것이고요. 동지 우리에게는 팥죽 먹는 날 정도의 의미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날도 과거에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기념되었습니다. 그런 동지 축제가 신년 축제인 사례도...

미신과 종교라는 개념에 담긴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미신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그게 무엇이냐 물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행위들이나 관념을 이야기합니다. 뇌과학자 정재승 선생님도 미신 이야기를 하면서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행위가 불길하다는 미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정재승 편 미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할 때, 이렇게 미신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시험 볼 때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시험 볼 때 포크를 선물한다' '손 없는 날 이사해야 한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 팥죽을 먹는다' 그럼 '미신'은 어떤 것이냐 설명해 보라면, 아마 이런 말들을 늘어 놓게 될 겁니다. https://engoo.co.kr/blog/먼나라이웃나라-세계-각국의-다양한-미신들/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로 그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미신' 항목 그런데 이런 개념은 일상에서는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쓸 수 없는 설명입니다.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게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경제적 판단과 믿음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관상은 과학이다', 'ABO 혈액형 성격론', '과시적 소비' 등등. 어떤 종교적 맥락에서 '이상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미신'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종교와는 다른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위 국어사전의 개념 정의는 종교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신과 종교가 구분되지 않는다면, 어딘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미신'은 과학적 개념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시하는 많은 개념은 편견의 산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서 그런 게...

미신에 대한 중립적 개념은 무엇일까?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5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 ∞∞∞ ─── 미신, 사이비, 이단 이 말들은 종교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들입니다. 미신은 종교적 의식(儀式)이지만, 종교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비과학적인 믿음을 통칭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이비(似而非), 말뜻은 ‘비슷하지만 틀린 것’이죠. 영어의 ‘pseudo-’에 대응되는 말입니다. 사이비 종교를 ‘pseudo religion’이라고 하지요. ‘가짜’라는 의미가 두드러집니다. '사이비'란 말은 『맹자(孟子)』, 「진심장구하(盡心章句下)」 편에 수록된 말입니다.  孔子曰: 惡似而非者(공자왈: 오사이비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을 싫어한다." 출처: 다락원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darakwonchild) 이 언급의 자세한 맥락은 다음의 글을 참고하세요( 사이비-나무위키 ). 겉만 그럴 듯하고 속은 빈 경우를 말합니다. 사이비란 말은 참된 종교와 거짓 종교를 말하는 맥락에서 많이 쓰이게 되면서 애초 의미에서 '거짓 가르침'으로 변하였습니다(사이비과학, 사이비종교 등등). 이단(異端), 말뜻은 ‘끝이 다르다’이고, 의미상으로 ‘사이비’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맹자집주』의 주자주(朱子註) 중 '맹자는 양주와 묵적과 같은 이단에게서 유교를 지켰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유교의 맥락에서 '이단'의 대표주자는 '양주와 묵적'입니다. 양주는 '위아설'(나만 위하면 돼), 묵적은 '겸애설'(모두 무차별적으로 사랑하라)로 이야기됩니다. 유가들이 곡해해서 '무부무군(無父無君)의 가르침'으로 평가되는 것이지, 그리 허무맹랑한 가르침은 아니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참고: 양주(전국시대)-나무위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