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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산당, 서낭당 그리고 사람들┃답사 후기

[2017년 6월에 태백산 일대의 답사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답사는 6월 3일부터 6월 4일까지. 후기 작성일 2017.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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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에 다녀왔다.

천제단, https://www.khan.co.kr/local/Gangwon/article/202204281434001#c2b

난 답사를 싫어한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왜 가야 하나'에 적절한 답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학부 때는 '학술'을 가장한 MT같은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싶었는데,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그마저도 관심이 시들해졌다. '학'은 사라지고 '술'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또 굳이 갈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실제 답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답사에서 무언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박사수료 후부터 조금 달라졌다. 이제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재미가 있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역시 수준 높은 연구자들과 함께 가서 그런 것 같다. 혼자 갔다면 도저히 그곳의 이야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터다. ('자기 문제의식'이 명료화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것 같기는 하다)

'산악신앙'은 상식적으로는 '원시신앙'으로 학술적으로는 자연신앙 내지는 마을신앙과 관련된 민속신앙으로 이야기된다. 고도의 신학적 이야기, 그래서 인생의 의미를 음미하는 따위의 것이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상당히 빈곤하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번에 태백산 답사를 가서, 거기에 '인간'을 들여다 보는 '어떤 창'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산은 '신성한 곳'이다

태백산 같이 높은 산, 주변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은 특히 그렇다. 그런 산들은 일단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위험'하다. 맹수로부터 목숨을 위협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깊은 숲에서 길을 잃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이다. 인간의 목숨이 위험한 곳이라는 특성은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로 해석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산신 혹은 천신을 만나게 되는 일이다. 그러니 그곳의 '입구'에는 '서낭당'(주로 '서낭나무')[마을에서는 통상 마을의 입구에 있다. 장승도 경계에 놓여 있다]이 있다. 인간은 그곳에서 신에게 제사나 기도를 하고(공물을 바치기도 하며) 산에 들어간다. 더 높은 곳을 찾기도 하고, 깊은 계곡으로 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신과 만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은 나와 가족, '우리' 공동체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다. 태백산 꼭대기에는 '천제단'이 있다. 하늘 신과 만나는 장소다.

이런 이야기만 있다면 그저 옛 풍속 이야기일 따름이다. 지금의 태백산이 가지고 있는 종교지형은 70년대부터 큰 변화를 겪었다. 도립공원이 될 때부터 최근 국립공원이 되기까지, 이 산에 정치권력이 개입하면서 종교지형은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이번 답사에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산당과 박정희

영산이라면, 무속인들이 들어가서 기도를 하기 마련이다. 60년대 말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내쫓았다. 그러면서 태백산 일대의 종교지형에 큰 변화를 끼쳤다. 태백산 당골이라는 곳을 가면, '윤씨 산당'을 발견할 수 있다.

당골광장과 산당 이정표 (카카오맵 + 당시 직접 촬영)

'당골광장'에 가면 이정표를 볼 수 있다.

문수봉 방향으로 가다보면, '윤씨산당'과 '유복산당'을 찾을 수 있다.

윤씨서낭 혹은 대서낭 (직접 촬영)

윤씨산당은 위 사진에서 보이는 곳에 서낭당을 조성하고 그 옆(펜스가 설치된 쪽) 작은 계곡을 따라서 움막을 짓고 기도터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1930년대부터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런 '산에 있는 기도터'가 '산당'의 연원인 듯하다. 위의 윤씨서낭은 가운데 큰 나무가 있는데 비교적 최근에 불타 사라졌다고 한다. 왼편으로 문수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자리하고 있다.

이 서낭은 당골 주민들에게 '대서낭'으로 불리고 있다. 윤씨의 후손에 따르면 위 서낭이 자신의 할아버지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믿을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1930년대(윤씨 할아버지가 당골에 터를 잡은 때) 이전에도 제단은 없었을지라도 '서낭나무'가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장공비 사건 이후 정부는 산에 들어와 생활하는 무속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윤씨서낭 인근에 조성된 기도터는 현재 사라지고 인근의 '윤씨산당'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윤씨산당 외에도 당골에 산당이 몇 군데 더 있었는데, 도립공원(1989년)이 조성되면서 몇몇 산당이 사라졌고, 윤씨산당은 사유지인 인근으로 옮겨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윤씨, 배씨, 유복산당이 남아있는 것 같다).


두 서낭당의 변천

도립공원이 조성되면서 '당골광장'이라는 게 만들어졌고, 애초의 등산로에 변화가 일어났다. 현재 매표소 옆의 주차장에 '서낭당'이 건물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태백산 성황당

그런데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니 이곳은 '여서낭'이었다. 애초 서낭으로 불렸을 곳이 관에 의해 정비가 되니 '성황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성황당을 '여서낭당'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성황당 내 서낭신 그림에서 할머니-여서낭-가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성황당 내 성황신 그림

[서낭과 성황의 명칭에 대해서는 무엇이 먼저였는가 논란이 있다. 음가로 보면, 성황 > 서낭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 명칭과 관계없이 서낭과 성황은 구분될 수 있다(현재는 구분 없이 사용되지만). 서낭은 마을의 입구나 경계에 위치하고, 성황은 보통 도시/고을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전자는 종교-주술적 의미만 두드러지지만, 후자는 국가/지방 권력이 투사되는 종교-정치적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보통 강원도에는 '할머니 서낭'이라는 게 있는데(한국의 마을신앙에서 할아버지신-할머니신의 짝은 강원도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곳에서 발견된다), 아무래도 그런 구분에 따른 것 같다. 이 서낭당에는 '태백산대성황지위'라는 신위가 모셔져 있는데, 이 서낭이 여서낭이라면, 적어도 저 신위는 '태백산신지위'와 '여서낭지위', 두 개가 놓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에게 이곳이 '여서낭'이라는 인식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몰랐지만 사람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정부의 소개령, 도립공원 조성 과정에서 종교지형이 변화된 결과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할머니 서낭'이 있으면 '할아버지 서낭'이 있기 마련이다. 장승도 두 개가 놓여 짝을 이루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위의 '윤씨 서낭'을 '대서낭'이라고 부르면서 이 '성황당'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이야기를 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른 거주민들의 증언을 쫓아서 '잊혀진 할아버지 서낭'을 찾아냈다.

계곡가에 잊혀진 할아버지 서낭

당골광장 한 구석의 아래쪽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할아버지 서낭이 있었다. 도립공원으로 조성되며 등산로가 정비되기 전까지 이 서낭 앞으로 등산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윤씨 서낭이 있는 길은 이 할아버지 서낭의 등산로와 연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당골의 등산로에 위치한 서낭은 현 주차장의 여서낭과 이곳 서낭이 짝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등산로'의 변동에 따라서 '남서낭'이 잊혀지고(나이 든 할머니들은 이곳에 와서 기도한다고 한다), 여서낭이 단일한 '성황당'으로 자리매김하고, 마을 주민들에게는 윤씨 서낭이 '대서낭'으로 기억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기억이 변하게 된 조건은 정부의 소개령, 윤씨 산당의 이전, 도립공원 조성으로 인한 등산로의 변화(윤씨 서낭과 연결된 '등산로'의 출현), 그리고 원래 살던 사람들의 이주와 외지인의 대량 유입이겠다. 이곳에 오래 살았던 원주민에게서 '할아버지 서낭'의 존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도립공원 조성 이후에 들어온 외지 출신 거주민은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


단군성전과 팔보암

당골에는 '단군성전'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이 '대종교'와 관련될 것으로 쉽게 상상될 수 있겠지만, 이곳은 어느 무속인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골광장에 인접한 단군성전

도립공원을 만들기에 앞서 시에서 이곳을 관리하게 되면서 해당 무속인이 떠나게 되었고 시에서 관리인을 정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관리인도 무속인 중에서 선정한다고. 이곳을 만든 사람은 사길령 쪽에 '팔보암'을 조성해 옮겨갔다고 한다. 그곳은 후손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팔보암은 '대웅전', '단군성전', '칠성각', '허공', '용궁' 등을 가지고 있다. 일반 사찰이 아닌 '무속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팔보암

단군성전이 지금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무속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답사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다. 팔보암은 정말 종교 연구자들에게 흥미로운 공간이다. 이곳을 '혼합주의'(syncretism)로 설명해 버리면 무언가 참 아쉬울 것 같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주로 '기도하러 온 무당들'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청원사의 용담과 도심의 황지와 관련된 이야기, 사길령의 '산령각', 정암사의 '적조암' 등.


답사가 의미있기 위한 조건, 훌륭한 답사 인도자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이가 없는 답사는 그저 무의미한 것 같다. 이번 답사가 알찰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김도현 선생님, 최종성 선생님, 김동규 선생님, 구형찬 선생님, 심일종 선생님의 공이다. 유적이 무미 건조한 '화석'이 아니라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숨결이 담긴 종교문화의 보고임을, 이 선생님들의 해석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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