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7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 신년과 의례, 그리고 점치기
시간의 마디, 특히 한 해의 끝과 시작이 나뉘는 마디는 많은 의례가 행해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이후의 시간, 특히 한 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종교적 의미에서 특히 그렇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이 시간에 한 해의 행운을 불러올 수 있는 의식을 수행했다.
그러한 의식들은 대체로 정화 의식(액운 제거), 특별한 음식 섭취(주술적 의미), 고행(난이도 있는 과제 수행), 특정한 의복 착용(주술적 의미), 특정한 행동 수행(주술, 행운), 그리고 무작위적 제비뽑기(점치기) 등이다.
참고: “50 New Year Traditions From Around the World”
꼭 어느 한 양상의 의식만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이런 여러 의식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신의 뜻을 확인할 때, 제비뽑기 식의 점치기 방식이 사용된 것은 인간사에서 늘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기독교 세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는 점은 '마녀 재판'에서 시죄법으로 사용된 '물에 빠뜨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죄가 있다면 물에 뜨고, 죄가 없다면 물에서 떠오르지 않는다는 논리로 시행된 방법이다(결국 죽는다는 건 같음. 빠져 죽냐 타 죽냐의 차이긴 하지만). '신이 결정할 것이다'라는 속 편한 생각으로 정당화되었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한 해의 행운을 비는 신년 의례는 양력 1월 1일보다는 우리가 ‘설날’이라고 부르는 음력 1월 1일, 혹은 정월대보름, 혹은 춘분 즈음 혹은 봄의 절기 의례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농경 의례와도 어느 정도 관련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런 행동 방식의 ‘원초적 특성’을 고려해 보면, ‘말씀 뽑기’는 단순한 미신은 아니다. 시간의 변화를 인식하는 마디의 시간에 ‘주술적 의례’(주로 행위자의 안녕을 기원하는)를 요구하는 심리는 개신교인 이전에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종교적 욕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가톨릭의 사례
- 사족: 교리적 신앙과 원초적 종교심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보통 교리적 신앙에 입각해서 원초적 종교심이 미신으로 치부되긴 하지만, 종교 서비스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언제나 원초적 종교심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부적, 주술적 신행이 교리 종교에서 횡행하는 것은 늘 있었던 일이다. 종교의 쇠퇴 과정에서 이런 것이 ‘타락상’이자 ‘문제’로 지목되곤 하는데, 무조건 맞다고 볼 수는 없는 이야기다. 그저 빌미가 되기에 좋을 뿐이다.
1) '성경 말씀 중에서 좋은 동기를 부여하는 것들을 선별하고, 인쇄해서, 사람들이 무작위로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신학적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2) '일종의 '신년 운세'를 보는 것'이 된다면 여기서부터 신학적, 성경적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겠죠.
답글삭제그럼 1)과 2)의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발생하는지가 문제될 텐데요, 점술은 무작위적 패턴의 제시와 그것에 대한 점술가의 해석(리딩), 그리고 그것에 대한 믿음과 금전적 비용(복채)의 지급이라는 요소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성경구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점술적인 문맥 내에 위치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행사적인 계기가 교회에 의해 마련되고 (사실상 복채의 변형일 수 있는) 감사헌금이라는 형태로 점술의 요소들이 실현될 수 있다면 (성경이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신학적/성경적 문제로 인식되고 논의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신학자가 아니라 종교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흥미로운 사실로 여겨질 수 있는 '주술의 그리스도교화'를 일부 짧게나마 기술하고 있는 논문이 있는데요.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이상택 교수님의 "마녀사냥(Witch-Hunts)은 왜 유럽에서 발생했을까?"(가톨릭사상. 제42호 (2010년 후기)) 중에서 특히 p. 45 이하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주술과 종교에 대한 구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사탄숭배론'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 나오기도 하죠.
항상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의견 감사합니다.
삭제다만, 주술이 기독교화 되는 현상이 실제로 벌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지종교학의 관점에서 보면 '주술적 사고방식'과 '주술적 행동'은 인간의 인지적 능력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거든요.
그런 현상을 기독교 신학적으로는 합리화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신앙이 타락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종교 내부의 주장이 일반적인 사실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위의 논의는 종교 내부의 시각과는 전혀 관계 없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신 분에게는 불경한 이야기일 수 있을 겁니다. 신앙의 틀 밖에서 볼 때라야 이해 가능한 내용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늘 피드백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