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독교의 신년 점치기, '말씀 뽑기'┃미신론을 넘어서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7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51524

연말 혹은 신년에 기독교계에서는 '말씀 뽑기'를 한다. 모든 교회나 성당에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의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구글링만 해 보아도 알 수 있다.

google 검색 결과, 편집된 것임

개신교계 일각에서는 주술적이고 샤머니즘적이고 이교적인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교회에서 송구영신예배 혹은 신년 예배에서 ‘말씀 뽑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런 예를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오미쿠지, 출처: https://blog.naver.com/ky7000/110123986893

아니면 ‘포춘 쿠키’를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https://www.pinterest.co.kr/pin/573012752578857208/

‘포춘 쿠기’ 속 운명의 메시지로 성경 구절을 사용하는 경우도 눈의 띈다.

https://www.amazon.com/Fun-Express-Fortune-Cookies-Edibles/dp/B00ATEEIG4

개신교도들이 이런 ‘미신적 행위’를 일삼는 것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위선자라느니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년 점’의 풍습이 예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는 점,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신년 운세를 점치는 의식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런 행위는 단순히 미신이 아니라 인류의 일반적인 종교적 특성이 반영된 행위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 신년과 의례, 그리고 점치기

시간의 마디, 특히 한 해의 끝과 시작이 나뉘는 마디는 많은 의례가 행해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이후의 시간, 특히 한 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종교적 의미에서 특히 그렇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이 시간에 한 해의 행운을 불러올 수 있는 의식을 수행했다.

그러한 의식들은 대체로 정화 의식(액운 제거), 특별한 음식 섭취(주술적 의미), 고행(난이도 있는 과제 수행), 특정한 의복 착용(주술적 의미), 특정한 행동 수행(주술, 행운), 그리고 무작위적 제비뽑기(점치기) 등이다.
참고: “50 New Year Traditions From Around the World

꼭 어느 한 양상의 의식만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이런 여러 의식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신의 뜻을 확인할 때, 제비뽑기 식의 점치기 방식이 사용된 것은 인간사에서 늘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기독교 세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는 점은 '마녀 재판'에서 시죄법으로 사용된 '물에 빠뜨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죄가 있다면 물에 뜨고, 죄가 없다면 물에서 떠오르지 않는다는 논리로 시행된 방법이다(결국 죽는다는 건 같음. 빠져 죽냐 타 죽냐의 차이긴 하지만). '신이 결정할 것이다'라는 속 편한 생각으로 정당화되었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한 해의 행운을 비는 신년 의례는 양력 1월 1일보다는 우리가 ‘설날’이라고 부르는 음력 1월 1일, 혹은 정월대보름, 혹은 춘분 즈음 혹은 봄의 절기 의례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농경 의례와도 어느 정도 관련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ZqWhbV0Gws

요즘 한국 사람들은 새해에 좋은 기운을 받고자 산이나 바다로 향한다. 경우에 따라서 랜선 해맞이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출 맞이를 하며 태양을 바라보고 한 해의 소망을 기원한다. 랜선 해맞이 사례에서는 '소원 채팅'을 통해서 이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행동 방식의 ‘원초적 특성’을 고려해 보면, ‘말씀 뽑기’는 단순한 미신은 아니다. 시간의 변화를 인식하는 마디의 시간에 ‘주술적 의례’(주로 행위자의 안녕을 기원하는)를 요구하는 심리는 개신교인 이전에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종교적 욕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가톨릭의 사례
http://m.sjfrancesco.kr/bbs/board4/98078

찾아보니 가톨릭계에서도 비슷한 행위가 있는 것 같다. ‘성령칠은뽑기’ 혹은 ‘성령칠언말씀뽑기’라고 불리는 행사다. 성령강림대축일(예수 부활 후 7주가 지난 다음 날, 오순절)에 하는 행사라고 한다. 신년의례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능상에서는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 사족: 교리적 신앙과 원초적 종교심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보통 교리적 신앙에 입각해서 원초적 종교심이 미신으로 치부되긴 하지만, 종교 서비스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언제나 원초적 종교심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부적, 주술적 신행이 교리 종교에서 횡행하는 것은 늘 있었던 일이다. 종교의 쇠퇴 과정에서 이런 것이 ‘타락상’이자 ‘문제’로 지목되곤 하는데, 무조건 맞다고 볼 수는 없는 이야기다. 그저 빌미가 되기에 좋을 뿐이다.

댓글

  1. 1) '성경 말씀 중에서 좋은 동기를 부여하는 것들을 선별하고, 인쇄해서, 사람들이 무작위로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신학적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2) '일종의 '신년 운세'를 보는 것'이 된다면 여기서부터 신학적, 성경적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겠죠.

    그럼 1)과 2)의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발생하는지가 문제될 텐데요, 점술은 무작위적 패턴의 제시와 그것에 대한 점술가의 해석(리딩), 그리고 그것에 대한 믿음과 금전적 비용(복채)의 지급이라는 요소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성경구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점술적인 문맥 내에 위치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행사적인 계기가 교회에 의해 마련되고 (사실상 복채의 변형일 수 있는) 감사헌금이라는 형태로 점술의 요소들이 실현될 수 있다면 (성경이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신학적/성경적 문제로 인식되고 논의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신학자가 아니라 종교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흥미로운 사실로 여겨질 수 있는 '주술의 그리스도교화'를 일부 짧게나마 기술하고 있는 논문이 있는데요.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이상택 교수님의 "마녀사냥(Witch-Hunts)은 왜 유럽에서 발생했을까?"(가톨릭사상. 제42호 (2010년 후기)) 중에서 특히 p. 45 이하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주술과 종교에 대한 구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사탄숭배론'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 나오기도 하죠.

    항상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답글삭제
    답글
    1.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주술이 기독교화 되는 현상이 실제로 벌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지종교학의 관점에서 보면 '주술적 사고방식'과 '주술적 행동'은 인간의 인지적 능력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거든요.

      그런 현상을 기독교 신학적으로는 합리화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신앙이 타락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종교 내부의 주장이 일반적인 사실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위의 논의는 종교 내부의 시각과는 전혀 관계 없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신 분에게는 불경한 이야기일 수 있을 겁니다. 신앙의 틀 밖에서 볼 때라야 이해 가능한 내용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늘 피드백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삭제

댓글 쓰기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태백산, 산당, 서낭당 그리고 사람들┃답사 후기

[2017년 6월에 태백산 일대의 답사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답사는 6월 3일부터 6월 4일까지. 후기 작성일 2017. 6. 7.] · · · 태백산에 다녀왔다. 천제단, https://www.khan.co.kr/local/Gangwon/article/202204281434001#c2b 난 답사를 싫어한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왜 가야 하나'에 적절한 답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학부 때는 '학술'을 가장한 MT같은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싶었는데,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그마저도 관심이 시들해졌다. '학'은 사라지고 '술'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또 굳이 갈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실제 답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답사에서 무언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박사수료 후부터 조금 달라졌다. 이제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재미가 있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역시 수준 높은 연구자들과 함께 가서 그런 것 같다. 혼자 갔다면 도저히 그곳의 이야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터다. ('자기 문제의식'이 명료화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것 같기는 하다) '산악신앙'은 상식적으로는 '원시신앙'으로 학술적으로는 자연신앙 내지는 마을신앙과 관련된 민속신앙으로 이야기된다. 고도의 신학적 이야기, 그래서 인생의 의미를 음미하는 따위의 것이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상당히 빈곤하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번에 태백산 답사를 가서, 거기에 '인간'을 들여다 보는 '어떤 창'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산은 '신성한 곳'이다 태백산 같이 높은 산, 주변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은 특히 그렇다. 그런 산들은 일단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위험'하다. 맹수로부터 목숨을 위협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높...

"명상 수련이 뇌와 면역 체계에 급속한 변화를 일으킨다"(논문 이미지 설명)

 신심미약종교학 채널 에서 다뤘던 " Neural and molecular changes during a mind-body reconceptualization, meditation, and open label placebo healing intervention " 논문 리뷰글에 이어서, 해당 논문의 핵심 메시지를 논문의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이곳에 정리한다. 논문 소개 Neurosciencenews.com 기사 "마음과 몸의 재개념화, 명상 및 공개 라벨 위약 치유 중재 과정에서의 신경 및 분자적 변화"(2025)의 연구 실험 설계를 담고 있는 그림1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2003-025-09088-3 Fig. 1: Study design, participants, data collection, and recruitment에 대한 설명 이 그림은 7일간의 집중 명상 프로그램이 인간의 뇌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연구의 전체적인 설계를 보여주고 있다. A. 연구진은 먼저 뇌와 신체의 생물학적 변화를 포착하기 위한 다양한 측정 방법을 준비했다. 뇌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MRI를 통한 기능적 연결성과 구조적 변화를 측정하고, 신체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혈액 샘플에서 신경 성장 인자, 대사 물질, 단백질, 그리고 엑소좀 내 RNA까지 광범위하게 분석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B. 연구에는 총 20명이 참여했는데, 이 중 14명이 여성, 6명이 남성이었으며 평균 연령은 46세였다. 참가자들은 명상 경험 수준에 따라 초보자와 숙련자로 구분되었고, 각 참가자의 생체 표지자 수준도 사전에 측정되어 분류되었다. C. 프로그램은 9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실제 개입 프로그램은 Day 1부터 Day 7까지 7일간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은 매일 4-6시간의 명상, 2-4시간의 재개념화 교육(고통과 치유에 대한 인식 전환), 그리고 1시간 내외의 치유 의식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오늘이 토끼 해의 시작? - 양력 1월 1일과 계묘년 (얼룩소 글)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양력 1월 1일이 밝았네요. 종교가 없더라도 해맞이, 떡국먹기, 덕담 등을 하게 되는 날입니다. 저도 새해 첫날 일출을 보며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것을 소원으로 빌 계획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 시기가 되면 늘 호들갑 떨며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OOO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위화감 없이 양력 설에 'OOO년 새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https://www.gy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1376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이었고, 2023년은 계묘년(癸卯年)입니다. '검은 토끼의 해'라고들 합니다. 일단 'OOO년'은 60갑자로 만드는 거 다 아실 겁니다. 10간: 갑을병정무기경신임 계 12지: 자축인 묘 진사오미신유술해 색은 10간에 배당되어 있죠. 오방색이라 해서 청·적·황·백·흑색을 말하죠. 각각 방위가 배당되어 있어 오'방'색이라 하는 것이죠. https://blog.naver.com/patorry '임계'에 흑색이 배당되어 있어서 '검은 토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십갑자 기년법(紀年法)과 오방색이 결합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 것 같습니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과거 기록에서는 볼 수 없었다고 말하니 말입니다( 자료 1 ).  이걸 두고 사이비 종교나 상업주의에 물든 무지성 추종이라 핏대 세워 비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민속(문화)은 사실 계속 변하는 것이죠. 육십갑자 기년과 오방색을 결합해 이야기하는 것은 현대 소비문화에 최적화된 민속 관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양력 체계와 음력 체계가 뒤섞였다는 점이죠 뭐 새삼스러울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음력만 쓰지 않고 양력도 써 왔죠. 그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