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8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이 글은 Skeptic Korea의 "정신의학의 오래된 과제, 과학적 치료와 처방"에 관한 얼룩소글의 출처를 체크하고, 정신질환 치료의 현실에 대해 박한선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정래해 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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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글인 줄 알고 찾아봤더니 전에 나온 글이군요.
마침 어제(1/27) 정신과 의사 출신 인류학자 박한선 선생님을 통해서 관련 이야기를 듣고, 글쓴이부터 찾아 봤습니다. 다른 저자인 걸 보고, 정신의학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박선생님께서 정신병 진단과 치료에 '정신분석학'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 했었습니다. 심리학계(실험심리가 중심이 된)에서는 배우지 않게 된 분야로 알고 있어서 의학 분야에서도 당연히 퇴출되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인지 모르지만, 효과가 있다'는 면에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정신분석학'도 프로이트, 융 시절의 버전이 아니라 많이 업데이트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부분은 과문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제 박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도 떠올라 흥미롭게 이 스켑틱의 글을 읽다가 문득 출처가 궁금해서 찾아 보니, '한국 스켑틱'에는 14권(2018년)에 "정신의학은 과학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로 실려있었습니다. (스켑틱에서 얼룩소에 올리는 글이 최근호에 실린 글이 아니라는 걸 이제사 깨달은 거죠) 글은 14권의 68~83쪽에 실렸습니다. 이 글을 일부 발췌해서 재편집한 것이 위의 얼룩소에 실린 글이더군요. 원글을 그대로 실었다면 꽤 길었을 테니, 웹페이지에서 보기에는 아마 부담스러워 그렇게 재편집한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영문판으로 보면, 2007년 출판된 Skeptic, Vol. 13, Issue 3의 pp. 37~43에 실린 "The trouble with psychiatry"(정신의학의 문제점)라는 글입니다. '스켑틱'은 출처를 밝히는 데 인색한 것 같군요. 발췌 편집본인 경우도 표기를 해 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언제 처음 나온 이야기인지는 알아야 이 정보의 신선도를 가늠해 볼 수 있으니까요. 저처럼 '최근에 나온 글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생각해 보니 먹물스러운 반응인 것 같군요)
어쨌든 정신의학의 과학성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정신병은 의사들이 만들어 내는 거다'라는 식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볼 여지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약물치료 등의 처치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좋은 효과를 내는 경우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도 어려우니 말입니다. 그렇게 도움을 받는 경우를 저는 살면서 주변에서 종종 보기도 했거든요.
이 지점에서 정신적 수준에서 정상과 병리를 가르는 과학적 진단 기준을 마련하는 방법이 있을까라는 야심찬 문제를 고민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문외한이 다룰 수 있는 질문은 아니겠지만요.
박한선 선생님이 정신과 의사를 그만두고 인류학자로 변신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하시더군요. 저 풀리지 않는 문제를 진화적 관점을 적용해서(가령, 수렵 채집민은 우울할까?) 해결해 보고 싶다는 연구 비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수렵 채집을 하는 미케아(Mikea) 부족에 대한 현지조사 연구를 준비하신다고 하던데, 연구비 마련이 무사히 잘 되어 정신질환의 비밀을 밝혀낼지도 모를 진화-의료 인류학 연구가 잘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연구 계획을 들어서 참 반가운 마음에, 그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었던 정신의학의 과학성 이슈에 대한 존 소보로의 글을 보다가 여기까지 달렸네요.
마침 어제(1/27) 정신과 의사 출신 인류학자 박한선 선생님을 통해서 관련 이야기를 듣고, 글쓴이부터 찾아 봤습니다. 다른 저자인 걸 보고, 정신의학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박선생님께서 정신병 진단과 치료에 '정신분석학'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 했었습니다. 심리학계(실험심리가 중심이 된)에서는 배우지 않게 된 분야로 알고 있어서 의학 분야에서도 당연히 퇴출되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인지 모르지만, 효과가 있다'는 면에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정신분석학'도 프로이트, 융 시절의 버전이 아니라 많이 업데이트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부분은 과문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제 박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도 떠올라 흥미롭게 이 스켑틱의 글을 읽다가 문득 출처가 궁금해서 찾아 보니, '한국 스켑틱'에는 14권(2018년)에 "정신의학은 과학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로 실려있었습니다. (스켑틱에서 얼룩소에 올리는 글이 최근호에 실린 글이 아니라는 걸 이제사 깨달은 거죠)
영문판으로 보면, 2007년 출판된 Skeptic, Vol. 13, Issue 3의 pp. 37~43에 실린 "The trouble with psychiatry"(정신의학의 문제점)라는 글입니다.
어쨌든 정신의학의 과학성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정신병은 의사들이 만들어 내는 거다'라는 식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볼 여지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약물치료 등의 처치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좋은 효과를 내는 경우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도 어려우니 말입니다. 그렇게 도움을 받는 경우를 저는 살면서 주변에서 종종 보기도 했거든요.
이 지점에서 정신적 수준에서 정상과 병리를 가르는 과학적 진단 기준을 마련하는 방법이 있을까라는 야심찬 문제를 고민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문외한이 다룰 수 있는 질문은 아니겠지만요.
박한선 선생님이 정신과 의사를 그만두고 인류학자로 변신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하시더군요. 저 풀리지 않는 문제를 진화적 관점을 적용해서(가령, 수렵 채집민은 우울할까?) 해결해 보고 싶다는 연구 비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수렵 채집을 하는 미케아(Mikea) 부족에 대한 현지조사 연구를 준비하신다고 하던데, 연구비 마련이 무사히 잘 되어 정신질환의 비밀을 밝혀낼지도 모를 진화-의료 인류학 연구가 잘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연구 계획을 들어서 참 반가운 마음에, 그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었던 정신의학의 과학성 이슈에 대한 존 소보로의 글을 보다가 여기까지 달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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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현재 박한선 선생님의 연구팀은 마다가스카르 미케아 부족에 대한 현지조사 및 실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좋은 결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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