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미신을 떠올리는 마음(뇌)을 생각해 본다면?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9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 ∞∞∞ ───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미신 중에 숫자 미신이 있습니다.

구글 이미지에서 한국과 미국의 엘레베이터 버튼

한국에서는 숫자4를 불길한 수로 여기죠. 건물에 4층을 쓰지 않는 경우가 제법 많이 있습니다. 전국 건물에 4층을 쓰지 않는 건물이 얼마나 되는지, 건물의 용도와 상관관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하네요. 한자문화권에서는 대체로 4를 불길한 수로 여깁니다. 숫자 4[四]와 죽을 사(死)의 중국어 발음이 비슷해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전혀 다른 두 표현이 하나로 묶인 것입니다. (사후적 이유 찾기를 위한 해석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자문화권만 불길한 숫자가 있는 게 아닙니다. 서구에는 13이라는 숫자가 유명합니다. 서양 사람들도 엘레베이터에 13을 두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13이 불길한 숫자가 된 연유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만, 예수의 13번째 제자가 가롯 유다라는 배신자, 악마의 하수인이었기 때문에 13이 불길하게 여겨졌다고 많이 회자됩니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 없이 그저 숫자에 맞춰 추측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 외의 설명들도 대부분 그럴 듯한 '카더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숫자 미신 사례는 이런 사고방식(미신)이 세계에 널리 퍼져있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어떤 숫자를 불길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이 일반성이 있다는 점과 함께 '어떤 숫자가 불길한가'는 문화권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는 점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 줍니다.

  • 미신에 대한 과학: 직관적이고 빠른 정보 처리 장치의 오작동

어쨌든 세계 도처에서 고금을 막론하고, 21세기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에도 미신적 사고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주로 심리학, 신경과학 분야)도 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미신 연구'라기보다는 의사결정 과정의 인지 편향 연구죠. 이런 진화된 인지처리 체계의 부수적 특성이나 오류로 설명합니다.

'시스템1', '시스템2' 이야기를 들어보신 분도 있으실텐데요, 유명한 행동경제학자(심리학자이기도)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이 제안한 이중과정 이론(dual process theory)입니다. 우리 마음의 정보 처리 회로에는 직관적이고 빠른 처리 장치(시스템1)와 의식적이고 분석적인 느린 처리 장치가 있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정말 그런 시스템이 존재하는가는 논란 거리입니다만)

미신은 바로 '시스템1'의 작용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생각합니다. 시스템1은 우리가 세상의 많은 복잡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진화되었다고 설명됩니다. 한정된 에너지로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은 빨리빨리 처리해 버리거나 무시하고, 중요한 데에 집중해야 겠지요. 게다가 위험을 평가하는 문제는 '신속한 처리'를 필요로 하는 일이죠. 당장 위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 시간을 지체하면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요. (길바닥에 줄같은 것이 뱀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다가 물려 죽는..)

이 후자와 관련해서 '사고의 오류 1유형'과 '2유형'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차이나는 클래스'에서 정재승 선생님도 이런 식으로 설명하신 바 있지요. '없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타입1)와 '있는데 없다'고 생각하는 오류(타입2)가 있을 때, 자연상태에서는 포식자 회피를 위해서는 '없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가 훨씬 적합성이 높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NQUzeiVP8s

뭔가 있다고 잘못 판단하거나 인과관계가 없는 데 있다고 여기거나 하는 것이 우리 마음(뇌)이 자연세계에서 패턴을 과장해서 읽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봅니다. 그게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인데, 문제는 어떤 이점이 없지만, 너무 과도하게 작동해서 오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스템2의 사고방식을 적절히 활용해서 비판적 사고, 회의주의적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 오류인가 본능인가?

어쨌든 이런 설명들에서는 미신을 보통 인간의 인지체계가 오작동이나 과잉 작동한 결과로 이야기하는데, 부산물(by-product)이라거나 오류(error)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음 '얼굴 착시' 사진을 보시면서 시스템2를 이용해서 '얼굴'이란 인식을 지워 보시죠.

구글 이미지 검색, 얼굴 착시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사고를 해도 이런 패턴에서 얼굴 표정이나 감정을 읽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머리 속에서 자동적으로 바로 정보가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본능'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만, 학습된 정보도 이런 직관적 추론의 정보가 된다는 점에서, 모두 다 선천적 특성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숫자4와 숫자13의 사례, 불길한 느낌을 불러오지만 자극은 문화권마다 다르다)

적어도 오류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산물은 이야기해 볼 만한 것 같습니다. 어떤 시각으로 보든지, 이런 설명은 그럴 듯한 가설에 입각한 과학적 썰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물질적인 근거를 확보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이미지를 보고, 사람들이 '아' 하고 놀라고, 이 설명이 그럴 듯하게 느껴지는 것 뿐 '빼박 물증'이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신경망의 정보처리 특성 때문은 아닌가

물증을 찾아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음의 작동 방식이 그래서 그런 사고방식이 나타나는 것이다라는 것을 신경생리학적으로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는지 살피는 것이죠.

제가 최근에 본 글은 "인지 편향을 위한 신경망 프레임워크(A Neural Network Framework for Cognitive Bias)"라는 것입니다. 인지 편향이 신경망 작동 메커니즘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전제하는 연구입니다('인간의 의사 결정은 신경 정보 처리 자체의 기본 설계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신경망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런 인지 편향이 나타난다라는 걸 설명하기 위한 기본 지도(모델)를 만드는 것이죠. 그걸 통해서 세부적인 신경망 작용에 대한 연구를 그려 볼 수 있을 겁니다.

기본적인 그림은 '네 가지 기본 신경망 원칙인 (1) 연관(association), (2) 호환성(compatibility), (3) 유지(retainment) 및 (4) 초점(focus)'의 측면에서 신경망의 작동 방식과 인지 편향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 패턴 인식, 확증편향, 신념편향 등 인지 편향(+미신적 사고)이 유사하고 인접한 형태로 나타나는가,

1) 신경 세포가 함께 점화되고, 함께 연결되기 때문이다. 
2) 신경 촉진에 의해 이전 활성화 직후에 셀이 더 쉽게 활성화 된다(활성화 임계값 저하), 강화와 같은 신경 가소성으로 이전 활성화 정보를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하게 된다.
3) 신경계에 들어오는 모든 자극은 물리적-화학적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연결주의적 특성에 영향을 준다. '분홍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가 불가능한 이유. 신경 가소성, 자극의 변화가 신경망 변화 일으킴. 그래서 새로운 정보 처리가 기존 정보의 영향을 받음.
4) 신경 회로의 측면 억제(lateral inhibition)는 활성화 수준에 비례하여 (경쟁하는) 뉴런의 상호 억제를 포함한다. 이렇게 약간 더 활동적인 (그룹의) 뉴런이 빠르게 우세해질 수 있다. 측면 억제는 처음에는 작은 차이를 증폭시키고 지배적인 연관성으로 이어지는 차별적 프로세스를 가속화 한다('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 꽂힌 것만 본다.

이런 이론적 프레임워크는 실제 정보 자극에 대한 신경망의 반응 양상을 통해서 검증되고, 업데이트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연구 사례

개인적으로 '뇌의 의미론 지도' 연구(Huth et al. 2016)를 보면서,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https://gallantlab.org/huth2016/

특정 뇌 영역에 맵핑된 단어를 보면(우측 하단), 'mothers, murdered, children, child, cousin, mother, marry, son, who, wife, family, sons, death, murder, daughter, father, brother, whom, innocent, nephew'가 나와 있습니다. 의미론적으로 연결(mother, family, child ...)되기도 하지만 음성학적으로 연결된 것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mother, murder).

그렇지만 다양한 뇌의 voxel(3차원의 픽셀/3D 화소)을 검토해 보면, 의미론적으로 연결된 어휘들은 많이 확인할 수 있지만 음성학적 연결 사례는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미론 지도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의미론 수준에서는 유사와 인접의 원리를 어느 정도는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미신적 사고가 적어도 '오류'는 아니다, 미신적 사고의 '문제'는 새로 정의되어야

만일 신경망의 물리적 구조 및 작동 방식으로 미신적 사고를 설명하는 게 증명될 수 있다면, 아마 앞으로는 '사고의 오류'라고 부르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노이즈나 부산물 취급은 계속 되긴 하겠습니다만. 그런데 기능이나 효과를 같이 시야에 넣게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개연성도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미신적 사고의 심리적 기능에 대한 연구는 논외로 했습니다. '무언가 생존에 도움이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라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진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진화에 의한 선택적 특질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이런 관점은 관련 분야에서 상당히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뭔가 좋은 효과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게 진화론적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는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져야 보다 명확해 질 것 같습니다. 조만간 '미신적 사고의 심리적 기능'을 다루는 연구들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태백산, 산당, 서낭당 그리고 사람들┃답사 후기

[2017년 6월에 태백산 일대의 답사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답사는 6월 3일부터 6월 4일까지. 후기 작성일 2017. 6. 7.] · · · 태백산에 다녀왔다. 천제단, https://www.khan.co.kr/local/Gangwon/article/202204281434001#c2b 난 답사를 싫어한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왜 가야 하나'에 적절한 답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학부 때는 '학술'을 가장한 MT같은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싶었는데,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그마저도 관심이 시들해졌다. '학'은 사라지고 '술'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또 굳이 갈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실제 답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답사에서 무언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박사수료 후부터 조금 달라졌다. 이제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재미가 있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역시 수준 높은 연구자들과 함께 가서 그런 것 같다. 혼자 갔다면 도저히 그곳의 이야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터다. ('자기 문제의식'이 명료화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것 같기는 하다) '산악신앙'은 상식적으로는 '원시신앙'으로 학술적으로는 자연신앙 내지는 마을신앙과 관련된 민속신앙으로 이야기된다. 고도의 신학적 이야기, 그래서 인생의 의미를 음미하는 따위의 것이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상당히 빈곤하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번에 태백산 답사를 가서, 거기에 '인간'을 들여다 보는 '어떤 창'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산은 '신성한 곳'이다 태백산 같이 높은 산, 주변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은 특히 그렇다. 그런 산들은 일단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위험'하다. 맹수로부터 목숨을 위협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높...

"명상 수련이 뇌와 면역 체계에 급속한 변화를 일으킨다"(논문 이미지 설명)

 신심미약종교학 채널 에서 다뤘던 " Neural and molecular changes during a mind-body reconceptualization, meditation, and open label placebo healing intervention " 논문 리뷰글에 이어서, 해당 논문의 핵심 메시지를 논문의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이곳에 정리한다. 논문 소개 Neurosciencenews.com 기사 "마음과 몸의 재개념화, 명상 및 공개 라벨 위약 치유 중재 과정에서의 신경 및 분자적 변화"(2025)의 연구 실험 설계를 담고 있는 그림1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2003-025-09088-3 Fig. 1: Study design, participants, data collection, and recruitment에 대한 설명 이 그림은 7일간의 집중 명상 프로그램이 인간의 뇌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연구의 전체적인 설계를 보여주고 있다. A. 연구진은 먼저 뇌와 신체의 생물학적 변화를 포착하기 위한 다양한 측정 방법을 준비했다. 뇌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MRI를 통한 기능적 연결성과 구조적 변화를 측정하고, 신체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혈액 샘플에서 신경 성장 인자, 대사 물질, 단백질, 그리고 엑소좀 내 RNA까지 광범위하게 분석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B. 연구에는 총 20명이 참여했는데, 이 중 14명이 여성, 6명이 남성이었으며 평균 연령은 46세였다. 참가자들은 명상 경험 수준에 따라 초보자와 숙련자로 구분되었고, 각 참가자의 생체 표지자 수준도 사전에 측정되어 분류되었다. C. 프로그램은 9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실제 개입 프로그램은 Day 1부터 Day 7까지 7일간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은 매일 4-6시간의 명상, 2-4시간의 재개념화 교육(고통과 치유에 대한 인식 전환), 그리고 1시간 내외의 치유 의식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오늘이 토끼 해의 시작? - 양력 1월 1일과 계묘년 (얼룩소 글)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양력 1월 1일이 밝았네요. 종교가 없더라도 해맞이, 떡국먹기, 덕담 등을 하게 되는 날입니다. 저도 새해 첫날 일출을 보며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것을 소원으로 빌 계획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 시기가 되면 늘 호들갑 떨며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OOO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위화감 없이 양력 설에 'OOO년 새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https://www.gy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1376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이었고, 2023년은 계묘년(癸卯年)입니다. '검은 토끼의 해'라고들 합니다. 일단 'OOO년'은 60갑자로 만드는 거 다 아실 겁니다. 10간: 갑을병정무기경신임 계 12지: 자축인 묘 진사오미신유술해 색은 10간에 배당되어 있죠. 오방색이라 해서 청·적·황·백·흑색을 말하죠. 각각 방위가 배당되어 있어 오'방'색이라 하는 것이죠. https://blog.naver.com/patorry '임계'에 흑색이 배당되어 있어서 '검은 토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십갑자 기년법(紀年法)과 오방색이 결합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 것 같습니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과거 기록에서는 볼 수 없었다고 말하니 말입니다( 자료 1 ).  이걸 두고 사이비 종교나 상업주의에 물든 무지성 추종이라 핏대 세워 비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민속(문화)은 사실 계속 변하는 것이죠. 육십갑자 기년과 오방색을 결합해 이야기하는 것은 현대 소비문화에 최적화된 민속 관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양력 체계와 음력 체계가 뒤섞였다는 점이죠 뭐 새삼스러울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음력만 쓰지 않고 양력도 써 왔죠. 그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