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챗GPT로 전문자료 탐색시에 반드시 크로스 체크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글의 원래 제목은 "챗GPT로 잘 모르는 분야 탐색시에 반드시 크로스 체크"라는 것이었는데, 더 적합한 것은 '전문자료 탐색'이 맞을 것 같아서 제목을 수정하였다.


─── ∞∞∞ ───


요즘 챗GPT로 이것저것 해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디지털 인문학' 관련해서 공부를 하다가,
"세르누다의 『현실과 욕망』에 관한 디지털 인문학적 분석 시도-전기 시와 후기 시의 어휘적 특성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https://www.bestialectora.com/2021/09/biografia-de-luis-cernuda.html
세르누다(Luis Cernuda Bidón, 1902~1963)는 스페인 시인입니다. 이 논문을 보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람입니다. 

위 논문은 이 분의 시집  『현실과 욕망(La Realidad y el Deseo)』(1924-1962)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집을 텍스트 분석 기법(빈도값 측정, 감정 분석, 공기어 분석)으로 분석해서 그의 망명 이전 시와 이후 시 사이의 특성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세르누다 시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지만, 시집이 나온지 오래 되었으니 그의 전기 시와 후기 시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는 이미 밝혀져 있을 걸로 추정이 되었습니다. 이걸 챗GPT에 물어 보았습니다. 

Q: 세르누다 시의 전기와 후기 사이의 차이를 알려줘.

A: 루이스 세르누다(Luis Cernuda)는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스페인의 시인이자 문학 비평가이다. 그의 작품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 시기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후자 시기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였다.

전자 시기에 세르누다의 시는 환멸감과 개인적, 사회적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특징지어졌다. 이 시기의 그의 시들은 사랑, 상실, 인간의 상태에 대한 주제들을 탐구했고, 자기 성찰적이고 내향적인 느낌으로 특징지어졌다. 이 시기의 세르누다의 시는 문학에 대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접근으로 유명한 스페인 시인과 지식인들의 모임인 '27세대'의 일원으로서 그의 경험에 영향을 받았다.

세르누다의 생애 후반기 동안, 그의 시는 더 정치적이 되었고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관여했다. 이 시기의 그의 시들은 종종 망명, 이주, 스페인 내전의 여파를 주제로 다루었다. 이때부터의 세르누다의 시는 프랑코 정권에 대한 반대로 스페인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

위 논문의 독창성을 확인하고 싶어서 챗봇에 물어봤던 겁니다. 관련 분야 전문가라면 사전지식으로 판단할 수 있었겠죠. 

위 논문의 텍스트 분석 결과와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후기 시에서 '죽음'이라는 단어 빈도가 높았다는 점은 챗GPT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만.

위 내용은 신뢰할 만하게 보였습니다. 한 발 더 들어가서, 위의 내용을 담은 논문이 뭐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세 논문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각 논문의 핵심 내용에 대한 설명도 해 줬습니다. 여기엔 서지만 옮겨 봤습니다.

  • "Luis Cernuda: The Poet of Exile" by David Arthur McMurray (published in The Modern Language Review, Vol. 87, No. 1 (Jan., 1992), pp. 143-155). 
  • "The Poetry of Luis Cernuda: Between the Avant-Garde and the Tradition" by Beatriz H. Rueda (published in Hispania, Vol. 79, No. 1 (Mar., 1996), pp. 35-44). 
  • "Nostalgia, exile and poetic identity in the work of Luis Cernuda" by José Luis Gómez Martínez (published in Bulletin of Hispanic Studies, Vol. 75, No. 2 (1998), pp. 173-185). 

그런데 말입니다.

이 세 논문은 모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못 찾은 것일 수도 있지요. 실제로 존재한다면 google scholar 같은 데에서 검색이 되어야 할 텐데, 나오지 않더군요.

위에 언급된 저널들은 실제 존재하는 저널입니다. 그래서 해당 저널의 호수를 찾아서 확인해 봤습니다. 그런데 제시된 호수의 페이지에 다른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가령 하나만 보면, 맨 아래  Bulletin of Hispanic Studies 75권 2호의 173페이지에 실린 글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liverpooluniversitypress.co.uk/doi/10.3828/bhs.75.2.173
네, 전혀 다른 논문이죠.
https://chat.openai.com/chat
챗GPT 사용자 화면에 'Limitations' 항목 첫 번째에 이렇게 적고 있죠. '때로 잘못된 정보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 생성 능력도 대단하군요!

챗GPT가 알려주는 논문, 참고서지는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확인하는 계기였습니다. 정말 그럴 듯하게 만들어 주긴 하는데 말이죠... 자료 찾을 때 활용한다면 반드시 크로스 체크가 필요한 듯합니다. 제 느낌에는 전문자료 찾아달라는 건 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 ───


2024년 7월 2일 추가>

현재 ChatGPT-4o나 Claude 3.5로 전문자료를 찾으면, 실제 존재하는 유용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6,70% 정도는 된다. 여전히 일부 hallucination이 있지만, 훨씬 쓸만해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댓글

  1. 최근에 설교를 chatGPT를 이용해서 작성하는 목회자들도 많아지고, 각종 신학적 종교적 질문에 대한 답을 chatGPT를 통해서 얻는 종교인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 답을 100%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상 이런 AI 생성 답안이 종교적인 문제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입니다. 모든 목회자나 신자가 답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크로스체크를 하지는 않을 테지요.

    앞으로 인공지능이 종교에 영향을 더 미치는 일은 있어도,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과연 이 시대의 종교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혹은 종교의 종말을 맞이하고 다른 무언가가 등장하게 될지, 무척 흥미로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읽고 이렇게 코멘트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

댓글 쓰기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ChatGPT에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를 물어 보았다.

요즘 핫하다는 '챗GPT'에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를 물어보았다. https://openai.com/ 나: 크리스마스가 동지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챗봇: 크리스마스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축제일이며 종종 북반구에서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와 관련이 있다. 동지는 보통 12월 21일 또는 22일 경에 발생하며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하는 것, 즉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을 표시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원래 기독교 이전의 동지 축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종종 태양의 재생과 낮이 더 길어지는 시기의 복귀와 관련이 있다. 고대 로마인과 고대 켈트족을 포함한 많은 고대 문화에는 동지와 태양의 귀환을 중심으로 한 전통과 축제가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및 종교적 영향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지가 축제일의 기원에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는 광범위한 종교적, 문화적 전통과 연관되어 현재 전 세계의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기념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에 대해서 비교적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지 축제와 관련성을 '논증'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보(동지 축제와 관련되지만 현재는 역사/문화/종교적 설명이 복잡하게 얽혀있다거나 복잡하게 변화했다)는 대체로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인지진화적 설명은 관련 문서가 부족하기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디테일이 부족한 것도 한계라 할 수 있겠지만, 간단한 답변으로서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챗GPT가 3문단으로 설명하는 것을 나는 A4 몇 페이지로 설명했던가. 대학 등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나 시험문제를 내줄 때 이제 안일하게 내면 AI가 답을 써주는 시대가 되어버린 듯하다. ─── ∞∞∞

'정신병', 스캡틱, 박한선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8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이 글은 Skeptic Korea의 " 정신의학의 오래된 과제, 과학적 치료와 처방 "에 관한 얼룩소글의 출처를 체크하고, 정신질환 치료의 현실에 대해 박한선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정래해 본 글입니다. ─── ∞∞∞ ─── 최근에 나온 글인 줄 알고 찾아봤더니 전에 나온 글이군요. 마침 어제(1/27) 정신과 의사 출신 인류학자 박한선 선생님을 통해서 관련 이야기를 듣고, 글쓴이부터 찾아 봤습니다. 다른 저자인 걸 보고, 정신의학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박선생님께서 정신병 진단과 치료에 '정신분석학'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 했었습니다. 심리학계(실험심리가 중심이 된)에서는 배우지 않게 된 분야로 알고 있어서 의학 분야에서도 당연히 퇴출되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인지 모르지만, 효과가 있다'는 면에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정신분석학'도 프로이트, 융 시절의 버전이 아니라 많이 업데이트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부분은 과문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제 박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도 떠올라 흥미롭게 이 스켑틱의 글을 읽다가 문득 출처가 궁금해서 찾아 보니, '한국 스켑틱'에는 14권(2018년)에 "정신의학은 과학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로 실려있었습니다. (스켑틱에서 얼룩소에 올리는 글이 최근호에 실린 글이 아니라는 걸 이제사 깨달은 거죠) https://www.badabooks.co.kr/SKEPTIC_magazine/?idx=54 글은 14권의 68~83쪽에 실렸습니다. 이 글을 일부 발췌해서 재편집한 것이 위의 얼룩소에 실린 글이더군요.

미신과 종교라는 개념에 담긴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미신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그게 무엇이냐 물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행위들이나 관념을 이야기합니다. 뇌과학자 정재승 선생님도 미신 이야기를 하면서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행위가 불길하다는 미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정재승 편 미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할 때, 이렇게 미신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시험 볼 때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시험 볼 때 포크를 선물한다' '손 없는 날 이사해야 한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 팥죽을 먹는다' 그럼 '미신'은 어떤 것이냐 설명해 보라면, 아마 이런 말들을 늘어 놓게 될 겁니다. https://engoo.co.kr/blog/먼나라이웃나라-세계-각국의-다양한-미신들/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로 그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미신' 항목 그런데 이런 개념은 일상에서는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쓸 수 없는 설명입니다.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게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경제적 판단과 믿음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관상은 과학이다', 'ABO 혈액형 성격론', '과시적 소비' 등등. 어떤 종교적 맥락에서 '이상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미신'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종교와는 다른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위 국어사전의 개념 정의는 종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