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10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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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뇌과학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TED 강연 중 "Your brain hallucinates your conscious reality"(당신의 뇌가 당신의 의식적 현실을 환각으로 만들어 낸다)라는 게 있습니다.
애닐 세스(Anil Seth)라는 신경과학자가 인간의 '현실 인식'이 가진 '시뮬레이션'으로서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강연입니다.
핵심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TED 강연 중 "Your brain hallucinates your conscious reality"(당신의 뇌가 당신의 의식적 현실을 환각으로 만들어 낸다)라는 게 있습니다.
애닐 세스(Anil Seth)라는 신경과학자가 인간의 '현실 인식'이 가진 '시뮬레이션'으로서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강연입니다.
핵심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환각에 대해 동의할 때 우리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부릅니다.
신경과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무척 신기했습니다. 종교라는 '내로남불 체계'가 딱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남의 종교는 거짓이고 우리의 종교는 진리라 여기는 발상 잘 아실 겁니다.
정치와 미디어(+언론)의 문제는 사실과 거짓의 싸움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록위마'의 고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힘 있는 사람들이 '현실'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죠.
한국 사회의 지배계급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국제 질서 상에서 '사실'은 언제나 '전략적 사실'(남을 해롭게 하고 나를 이롭게 하는 서사가 가미된 사실)-강대국의 이익이 고려된 사실입니다.
종교학이나 신화학을 배우면서 이런 문제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화나 종교 같은 것은 내부자의 시선에서는 한 없이 아름다운 세계관입니다. 그러나 외부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 하나를 과장해서 진정한 종교/신화는 무엇이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러한 삶을 살지 않지요. 우리는 진리나 사실의 소유자가 아니라 그걸 이용해서 살아가야 하는 롤 플레이어에 가깝습니다.
거짓은 나쁘다,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가 발달해서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을 결정하는 일의 허들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손쉽게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사람들을 악마화 합니다. 주로 상대편이죠.
그게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 현실이 되는 현상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러니 가짜 뉴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확증 편향을 가지고 현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은 아마 그럴 겁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말의 정의'가 아니라 '힘의 정의'가 관철되는 세상입니다. 물론 힘의 정의는 절대적 정의, 언제 어디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죠. '지연된 정의'가 실현되며 그 마각이 드러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네 그 정의는 올바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정의를 결정하는 힘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정의는 어느 훗날의 법정에서, 어느 글쟁이의 원고 속에서는 관념적 올바름으로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하는 먹물에 갇힌 정의일 것입니다.
'기레기'가 보통 명사가 된 시대입니다. 그가 돈을 받았든, 정치적 지향이 그렇든, 몇 조각의 사실과 진영 논리에 의한 프레이밍으로 현실을 왜곡한 정보(그것도 믿음이겠습니다만)가 '언론'의 기사란 이름으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자신들 만의 정의관에 입각해서 현실을 만들고 그 현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하는 행위, 꼭 종교에서의 선교 행위와 비슷합니다. 미디어가 언론이 전한다고 하는 사실은 여기에서 벗어난 순백의 팩트들이던가요?
심상치 않은 부동산 투자로 거액을 번 한 언론인이 법조계 인사 및 언론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언론인입네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의혹을 보도한다며 단장취의와 견광부회 한 팩트의 단편이 우리의 현실을 결정하는 상황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김어준이 언론인이 아닐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저는 사실과 현실, 정의라는 절대적 기준에서 그를, 그리고 소위 개혁-민주 세력들을 비평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정의의 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적 평가를 위한 저울이 필요한 일일 테니 말입니다.
누구에게 정의인가? 그 정의가 우리 사회의 어떤 구성원들, 어느 정도의 사람들을 이롭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을 빠뜨리고 현실의 선과 악을 논한다면, 그만큼 우활(迂闊)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저울에 달아 볼 때, 김어준은 저쪽의 언론인들보다는 조금은 나은 것 같습니다. '음모론자'의 모습을 그래서 덮어줘야 한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만, 음모론의 경쟁적 상황(누구의 음모론이 진실이냐의 싸움)을 빼 놓고 판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종교들의 상호 배타적인 태도에 대한 말씀이 특히 공감됩니다. 참과 거짓이 진정으로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작용하지 않고, 힘과 권력을 위해 봉사해 온 그 동안의 역사와 현실을 이 글을 통해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답글삭제오늘도 이렇게 읽어주시고,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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