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노프스키는 트로브리안드 섬 사람들이 “강력한 파도나 태풍, 암초”의 위험요소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배를 만들고, 첫 항해를 하고, 배에서 고기를 잡는 과정 내내 주술적인 의식을 하며, 정말 위험한 순간이 닥쳤을 때도 주술에 의존”하는데 반해서 근해에서 하는 안전한 어로 활동 시에는 주술 의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통제감의 효과
통제감을 갖는 것의 긍정적 효과는 좀 오래된 연구이긴 하지만 주디스 로딘과 엘런 랭어의 연구(1976)*를 들 수 있습니다. 요양원에 있는 노인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뭐든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고 안내하며 시설 거주자(노인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였고, 두 번째 그룹은 시설 내 활동의 자유와 함께 거주자들에 대한 시설 직원의 책임을 강조하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식물을 기를 기회를 줄 때도 첫 번째 그룹의 노인들은 자율성과 책임이 본인들에게 있다는 안내를 받았고, 두 번째 그룹은 직원들이 대신 키워준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3주 후에 보니 첫 번째 그룹이 두 번째 그룹에 비해서 더 행복하고 건강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의 노인들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훨씬 사교적이며, 외출도 자주 했다고 합니다. 18주 후에 추적 조사를 해 보니, 여전히 첫 번째 그룹의 노인들이 더 행복하고 건강했는데, 사망률에서 놀랄 만한 차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 비해서 두 번째 그룹이 두 배의 사망률(15%: 30%)을 보였다고 합니다.
통제감과 생존성 사이의 관계는 이런 연구로 확인이 됩니다만, 미신과 통제감 사이의 관계를 규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의 연구가 직접적으로 미신의 심리적 효과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간접적’으로 미신의 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연구일 따름입니다.
미신과 통제감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통제감과 미신 행동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봐야 합니다. 토머스 더들리(Thomas Dudley, 1999)**는 풀 수 없는 문제(퍼즐)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의 미신에 대한 믿음 수준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봤습니다.
해당 연구는 2개의 실험으로 구성되었는데, 첫 번째는 피험자들을, 토바식Tobacyk의 초자연적 믿음 척도(Paranormal Belief Scale, 1988)***로 초자연적 믿음 정도를 측정하고, 풀 수 있거나 없는 퍼즐에 노출된 후 애너그램(문자재배열 퀴즈 ex. plpae -> apple)을 수행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초자연적 믿음 정도가 높은 사람들이 애너그램을 더 잘 풀었다고 합니다. (함의는 ‘초자연적 믿음이 큰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더 강했다’는 게 되는 것 같습니다)
Dudley 1999, Fig. 1
두 번째 실험에서는 풀 수 있거나 없는 퍼즐에 노출되기 전과 후에 초자연적 믿음 수준의 변화를 보았습니다. 믿음 수준은 역시 토바식 척도로 측정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풀 수 없는 퍼즐에 노출된(더 큰 스트레스에 노출된) 피험자들에게서 초자연적 믿음이 더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Dudley 1999, Fig. 2
이런 내용을 간단하게 도식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불확실한 상황 등) 스트레스 → 통제욕구 ↑ → 미신적 행동/의례화된 행동 (강박 행동과 유사) → 통제감 ↑(느낌만) → 스트레스↓ → 퍼포먼스 향상
이것은 ‘불안’과 연결해서 설명되기도 합니다.
(불확실한 상황 등) 스트레스 → 불안 ↑ → 미신적 행동 → 불안 ↓ → 스트레스 ↓
이런 측면에 주목한 연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불안과 미신 연구, 통제감과 미신 연구는 불안이라는 정서에 주목하느냐 통제감이 낮은 상황적 조건에 주목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미신적 행동/믿음의 효과에 대해서는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 공포와 미신적 관념과 실천
미신의 효과에 대한 이런 실험심리학적 연구 외에 (실험)인류학적 연구 사례들도 있습니다. 주로 이스라엘에서 조사된 것입니다. 중동의 복잡한 정세로 준전시 상황인 사회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런 연구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기오라 케이난(Giora Keinan, 1994)은 걸프전 때 스커드 미사일로 고통받았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미사일 공격에 노출되지 않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주술적 사고(magical thinking)의 정도가 어디가 높은 지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미사일 공격 위협에 시달린 지역 사람들의 주술적 사고가 더 잘 활성화된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주술적 사고를 ‘주술적 사고 질문지’를 통해서 측정했습니다. 가령 ‘미사일 공격 때 사담 후세인 사진이 있었다면 갈기갈기 찢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에 5점 척도(전적으로 긍정…전적으로 부정)로 답하도록 했습니다. 미사일 위협에 시달린 지역 사람들이 이 질문지에 긍정적 답변을 한 케이스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리처드 소시스(Richard Sosis, 2007)****의 연구도 유명한데요. 그것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갈등이 심했던 2000년대 초반(2차 인티파타) 이스라엘 북부 제파트(Tzfat)라는 지역의 여성들이 테러 위협의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서 시편 암송을 어느 정도로 했는지 조사한 것입니다. 시편 암송은 이스라엘의 여성 종교인들이 정기적으로 하는 종교적 관습이라고 합니다.
Sosis 2007, Fig. 1
귀신이나 유령이 출몰할 것 같은 상황에서 기독교인이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편 암송을 하는 경우에 주목한 것인데요. 눈에 띄는 것은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테러 위협의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시편 암송을 하는 경향성이 높아졌다는 점입니다(위 그림 참고). (종교인들은 별 차이가 없는 결과라고 합니다. 원래 암송을 많이 했으니 스트레스 상황이라고 차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겠죠)
흥미롭게도 비종교인에게서 시편 암송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일상을 더 잘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종교인은 차이가 없었습니다).
Sosis 2007, Fig. 2
이 말은 시편 암송을 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공포에 덜 지배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비종교인 한정). (종교인은 비종교인에 비해서 항상 절대적 수준에서 공포에 덜 지배되는 경향이 보이긴 합니다)
[위의 그래프를 좀 더 설명하자면, 가로축이 시편 암송(0=암송 안함, 1=암송)을 하는 경우를 세로축은 예방적 행동 변화(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다, 공공장소에 나가지 않는다 등) 확률을 나타냅니다. 예방적 행동 변화 확률이 낮아지는 것은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같습니다.]
미신은 스팀팩?!
이런 걸 보면, 미신적 관념/행동은 나름 적응적 이점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어떤 유효한 범위를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미신적 관념/행동을 고수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한다면, 여러가지로 좋지 않은 것이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비유를 끌어와서 설명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미신적 관념/행동은 비용이 크지 않은 일정 범위 내에서는 고통을 잊고, 혹은 공포/스트레스/불안을 낮춰서 삶을 계속 영위해 나갈 힘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마약성 진통제라는 게 약물로 활용되는 이유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과용하면 마약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게 되는 것처럼, 미신적 사고/행동도 과도하게 활용하게 되면, 큰 기회비용(재산 탕진, 건강 훼손 등)을 치르게 되기도 합니다.
‘미신은 나쁘다’, 그것이 하나의 사고의 오류 등으로 표현되는 것은 언제나 ‘남용’ 상황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과도하지 않은 활용이라면, (심리적) 치료제와 같은 효과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미신에 대한 평가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절한 미신의 사용은 당신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문제는 남용/과도한 의존입니다.'
참고자료------------------
*"노인에 대한 선택과 강화된 개인의 책임 효과: 보호시설 환경에서의 현장 실험" Langer, E. J., & Rodin, J. (1976). The effects of choice and enhanced personal responsibility for the aged: A field experiment in an institutional sett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4(2), 191–198.
※이 글은 얼룩소 글(23.7.13)을 옮겨온 것입니다. ━━━━━━ ♠ ━━━━━━ 종교라는 주제를 다루려면 '위로'가 필요하다? 이 말을 저는 곳곳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정재승 박사가 총괄자문 및 프리젠터로 참여한 다큐 시리즈 '뇌로 보는 인간'의 마지막 '종교' 편에 제가 자문으로 참여하여 아주 짧은 시간 출연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시청률이 높았던 편이 아니라서 사람들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우연히 EBS 다큐를 보던 친구가 '야, 너 나왔더라...잠깐 ㅎㅎ', 이런 반응을 보인 예가 있었을 뿐입니다. 함께 자문에 참여한 구형찬 박사(인지종교학)가 종교학자로서는 메인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뇌로 보는 인간' - 종교 편의 한 장면┃저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그때 나왔던 미디어 비평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미디어스 기사 캡쳐 해당 다큐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다음에 이런 논평을 내 놓았습니다. 미디어스 관련 기사 '위로가 없다'는 비판 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종교라는 주제를 다룰 때 사람들은 그런 것을 기대하곤 합니다. '종교의 본질', '참된 의미' 같은 것을 발견하고, 뭔가 진리의 말씀이나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종교학도 존재합니다. '현대인의 종교는 병들었다'는 진단을 내리며 '고대인의 지혜'를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거나 모든 종교에 담겨있는 가장 고귀한 가르침(가령 황금률 같은)은 모두 상통하고 그것이 인간이 향유해야 할 소박하지만 분명한 진리라고 이야기하는 예도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출처: Wikimedia Commons 종교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막스 뮐러는 '종교학으로의 초대(Introduction to the Science ...
흥미로운 신경과학 연구 소개를 봤습니다. 친숙한 것과 중요한 것을 먼저 식별하는 뇌 경로에 관한 연구입니다. '신경종교학'에 참고가 되는 논문일 것으로 판단되어,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 * * Brain Circuit Identifies What’s Familiar, Important, or Just Background┃Neuroscience News.com 요약 : 과학자들은 기억과 감정을 통합하여 감각 정보를 빠르게 평가하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뇌 회로를 발견했습니다. 내측후각피질(entorhinal cortex)과 해마(hippocampus) 사이의 이 직접 피드백 루프를 통해 뇌는 중요한 광경과 소리를 거의 즉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알려진 더 느린 경로와 달리, 이 회로는 관련 자극과 배경 소음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PTSD와 자폐증과 같은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발견은 뇌가 정보를 걸러내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감각 및 기억 관련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 익숙한 것을 한눈에 알아보는 뇌 회로, 해마의 비밀 우리는 왜 친숙한 얼굴이나 물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요? 반대로 처음 보는 것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곤 합니다. 이런 능력 뒤에는 우리의 기억 이 큰 역할을 합니다. 뇌의 해마(hippocampus)라는 부분이 과거의 기억을 보관하고 있다가, 현재 들어오는 감각 정보와 비교하여 이것이 익숙한지 새로운지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해마는 “이건 예전에 봤던 거야” 혹은 “처음 보는 거네”라는 신호를 뇌의 다른 부분에 보내 우리의 인식을 조절합니다. 이 덕분에 우리는 중요한 새로운 정보 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미 아는 것은 배경 소음처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해마는 특히 대뇌피질의 한 부분인 내후각 피질 (entorhinal cortex)과 긴밀히 소통합니다. 내후각 피질은 오감에...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부제를 약간 수정) ─── ∞∞∞ ─── 1년의 시작점은 많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은 동지, 설, 정월대보름, 입춘 등입니다. 전에 이야기한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신년 기념일들처럼( 참고 ) 같은 나라 안에서도 여러 신년 기념일이 있는 경우는 특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원래 지역적인 단일성은 있었을 겁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1월 1일이다, 이 동네는 음력 설이다, 이 동네는 입춘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게 어떤 계기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지역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집단들이 묶여서 더 큰 집단으로 통합되면서 시간, 의례 등을 통합하는 과정이 뒤따르게 됩니다. 종교단체 수준에서도 진행이 되지만 국가 수준에서도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은 국가의 흥망성쇠, 종교단체의 흥망성쇠 등 집단 구속력의 변화에 따라서 부침을 겪으며 반복·중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에서는 16세기에 신년 기념일을 단일화하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19세기말 20세기에 시도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수준에서 한 해의 시작일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지만,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첫 날은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이를 문화적 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선조들이 해왔던 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나타남). 여러 신년 기념일은 그런 통합의 힘에도 어떤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과거의 전승이 살아남아 그 흔적을 남긴 덕분입니다. 다만 해당 기념일을 현재에 활용하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면 사라질 운명을 일 겁니다. 그럴 경우 '고유한 문화를 지키자'는 운동이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집단 정체성과 관련된 전통으로 선택되지 못하면 잊혀지는 것이고요. 동지 우리에게는 팥죽 먹는 날 정도의 의미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날도 과거에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기념되었습니다. 그런 동지 축제가 신년 축제인 사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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