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이단'과 미신은 비슷한 것을 말하는 듯하지만 약간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사이비와 이단이 유교에서 기원한 바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어떤 가르침(敎)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론이나 교리 같은 것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가르침 중에서 정도에서 벗어난 것이란 함의를 갖습니다.
반면 ‘미신’(superstition)은 음사와 마찬가지로 ‘초자연적 존재(신)에 대한 숭배의식’ 중에서 ‘잘못된 신에게 행하는 의식’이나 그냥 ‘잘못된 의식’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확장되어 그러한 종교적 관념과 실천을 일컫습니다.
‘죽을 먹으면 시험을 죽쑨다’는 것은 미신이라고는 하지만 사이비나 이단이라고 말하지는 않지요. 신에게 구원 받기 위해서 전재산과 온몸(가령 성상납 같은)을 바쳐야 한다는 가르침을 가진 종교 단체에 대해서 사이비나 이단이라 말하지만, 그런 가르침을 미신이라 말하지는 않습니다.
미신이 사고방식이라고?
미신으로 지칭되는 것은 어떤 종교적 관념과 실천입니다. 새 이빨을 얻기 위해서 뽑은 이를 지붕 위로 던지는 행위는 미신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신으로 부르는 종교적 관념과 실천은 대개 ‘직관적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과 ‘시험을 죽쑨다’, ‘빵’과 ‘빵점’. 이런 연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일본에선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카츠동’(カツ丼)을 먹는다고 합니다. ‘카츠’는 동음이의어 중에 ‘카츠’(勝)[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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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상법에는 ‘비슷한 것 묶기’(유감주술)가 있고, ‘연결된 것 묶기’(접촉주술)가 있습니다. 앞서 본 사례들이 비슷한 발음, 형태 등에서 연결이 이루어졌습니다. 후자의 사례는 집단과 연결된 깃발을 집단과 동일시하는 것(국기모독죄)이라든지 ‘빨간색 이름 안 쓰기’(사형수 이름 빨간색으로 쓴 문화적 기억에서 연유되었다고)라든지 ‘빵을 뒤집으면 안 된다’(프랑스, 과거 사형수에게 뒤집어진 빵을 준 관습에서 유래되었다고)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은 말 놀이나 문학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언어유희나 문학적 비유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뜬금없게 여겨지시겠지만, 김시습의 시 한 편을 볼까요?
二十樹下三十客 (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 서른(서러운) 나그네가 四十家中五十食 (사십가중오십식): 마흔(망할놈)의 집안(집구석)에서 쉰밥을 먹네 人間豈有七十事 (인간개유칠십사): 사람 사는 세상에 어찌 일흔(이런) 일이 있으랴 不如歸家三十食 (불여귀가삼십식):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설익은) 밥을 먹으리라
이런 유쾌한 언어유희도 있고, 시적 표현으로 ‘내 마음은 호수요/그대 노 저어 오오’ 같은 것도 있습니다. 이런 류를 ‘아재드립(개그)’으로 보기도 하지요. ‘맥주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은? 유언비어’
과학자들은 ‘미신’을 ‘범주 혼동의 오류’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빨간색 글씨’와 ‘죽을 운명’은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고의 비약을 과학자들은 ‘사고의 오류’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어유희나 문학적 비유도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을 연결시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그 경우에 우리는 ‘사고의 오류’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고의 패턴은 같습니다만, 가치판단은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이죠.
미신에 대한 중립적 정의
어쨌든 미신이라 불리는 것은 무관한 것을 연결시키는 사고 방식의 일종인데, 초자연적 인과관계를 기대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신적 존재의 어떤 역할을 기대하기도 하고(기우제), 어떤 결과를 야기시킨 신적 존재를 달래야 하기도 하고(신적 존재가 분노했기 때문에, 가령 역병 퇴치 의식), 초자연적 원리(빵과 시험 빵점, 주로 오염의 원리가 작동, ‘부정 탄다’는 관념)의 작동을 막거나 활성화시키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관념과 실천을 떠올리고 행하는 경우는 대체로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통제하고 싶지만 통제력이 없는 경우들입니다. 가령 과거에는 치통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에게 기도를 했지만, 지금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치통을 낫게 하기 위해서 기도나 어떤 의식을 행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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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중에서도 병원에서 치료가 잘 되는 경우와 진단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 사람들의 행동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지요. 후자의 경우에 ‘동종요법’이라는 대체 의학적 처치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종교활동을 통해서 치병되기를 기대하는 경우도 많지요.
실존적인 문제(생존, 건강, 시험, 연애 등등)에 직면했을 때, 절박하게 좋은 결과를 얻고 싶은데, 그 결과를 보장할 방법이 없다면, 사람들은 연상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어떻게든 원하는 결과가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이 소망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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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가 ‘미신’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보다 중립적으로 표현한다면, 생의 위기 상황에서 위기 극복을 바라며 관념연합(비슷한 것, 인접한 것)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떠올리는 관념과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사용되는 인간의 상상 능력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뇌가 정보 처리를 하는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덧>
종교와 미신은 같은 층위의 개념이 아닙니다. 미신이라 불리는 것은 인간의 사고방식이자 행동방식이고, 종교는 그것을 이용하는 문화적 체계(조직, 신념체계 등을 갖는 문화적 복합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 안에 미신적 사고방식과 실천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제도화되어 하나의 전통/의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미신적 사고와 실천을 할 수 있는 것이고요. 다만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수준이나 정도로 미신적 사고와 실천을 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미신적으로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지요. 그러나 미신에서 100퍼센트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미신과 사이비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신이든 사이비이든 혹은 과학적 사실이나 최첨단 이론이든, 그것에 대한 '믿음'이란 것의 의미와 본성에 대한 깊은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닐 세스가 '우리가 공동으로 빠져 있고 공동으로 인정하는 환각상태를 '현실'이라고 부른다'고 말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진짜 현실로 작용하는 것처럼 여겨진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러한 공동의 '믿음'에 의하여 만들어진 현실이 지난 역사상 우리가 객관적이라 생각해온 현실이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립하여 객관적 실재를 찾고 증명하고 설명을 제시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노력도 분명 있어왔죠.
옥스포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는 “그 어떤 이상적 지식의 근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다고 믿었던 지식이 이따금 우리가 오류를 범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인간은 오류를 발견하고 제거하는 객관적인 설명을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하죠. '믿음'이 생성해낸 공동의 환상 vs 객관적 실재에 대한 지식을 향한 탐구, 이런 식으로 문명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소 거칠고 세부적인 것이 생략된 것이지만요) 오늘 글도 재미있었고, 감사히 읽었습니다.
'믿음'은 상당히 불투명한 개념이죠. 인간의 믿음이 어떤 특성을 가진 것인가는 상당히 복잡한 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종교적 행동과 관념에 대해서 볼 때, 기본적 동기(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요인)와 그 행위와 관념에 대한 '이유'(사후적으로 추론되는)는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으며, '믿음' 운운하게 되는 것은 대개 후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미신적 행동과 사고는 그러나 전자와 관련됩니다. 종교를 말하는 맥락에서 '미신'도 그 말 자체에 '믿음' 개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이 경우 사람들의 실제 행위나 상상 양식은 직관적 특성을 가집니다. '달에는 홍학이 살고 있지 않다는 믿음' 같은 믿음이죠. 누구나 그런 추론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을 애써 기억하고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믿음은 아니죠.
[2017년 6월에 태백산 일대의 답사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답사는 6월 3일부터 6월 4일까지. 후기 작성일 2017. 6. 7.] · · · 태백산에 다녀왔다. 천제단, https://www.khan.co.kr/local/Gangwon/article/202204281434001#c2b 난 답사를 싫어한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왜 가야 하나'에 적절한 답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학부 때는 '학술'을 가장한 MT같은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싶었는데,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그마저도 관심이 시들해졌다. '학'은 사라지고 '술'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또 굳이 갈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실제 답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답사에서 무언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박사수료 후부터 조금 달라졌다. 이제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재미가 있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역시 수준 높은 연구자들과 함께 가서 그런 것 같다. 혼자 갔다면 도저히 그곳의 이야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터다. ('자기 문제의식'이 명료화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것 같기는 하다) '산악신앙'은 상식적으로는 '원시신앙'으로 학술적으로는 자연신앙 내지는 마을신앙과 관련된 민속신앙으로 이야기된다. 고도의 신학적 이야기, 그래서 인생의 의미를 음미하는 따위의 것이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상당히 빈곤하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번에 태백산 답사를 가서, 거기에 '인간'을 들여다 보는 '어떤 창'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산은 '신성한 곳'이다 태백산 같이 높은 산, 주변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은 특히 그렇다. 그런 산들은 일단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위험'하다. 맹수로부터 목숨을 위협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높...
신심미약종교학 채널 에서 다뤘던 " Neural and molecular changes during a mind-body reconceptualization, meditation, and open label placebo healing intervention " 논문 리뷰글에 이어서, 해당 논문의 핵심 메시지를 논문의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이곳에 정리한다. 논문 소개 Neurosciencenews.com 기사 "마음과 몸의 재개념화, 명상 및 공개 라벨 위약 치유 중재 과정에서의 신경 및 분자적 변화"(2025)의 연구 실험 설계를 담고 있는 그림1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2003-025-09088-3 Fig. 1: Study design, participants, data collection, and recruitment에 대한 설명 이 그림은 7일간의 집중 명상 프로그램이 인간의 뇌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연구의 전체적인 설계를 보여주고 있다. A. 연구진은 먼저 뇌와 신체의 생물학적 변화를 포착하기 위한 다양한 측정 방법을 준비했다. 뇌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MRI를 통한 기능적 연결성과 구조적 변화를 측정하고, 신체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혈액 샘플에서 신경 성장 인자, 대사 물질, 단백질, 그리고 엑소좀 내 RNA까지 광범위하게 분석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B. 연구에는 총 20명이 참여했는데, 이 중 14명이 여성, 6명이 남성이었으며 평균 연령은 46세였다. 참가자들은 명상 경험 수준에 따라 초보자와 숙련자로 구분되었고, 각 참가자의 생체 표지자 수준도 사전에 측정되어 분류되었다. C. 프로그램은 9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실제 개입 프로그램은 Day 1부터 Day 7까지 7일간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은 매일 4-6시간의 명상, 2-4시간의 재개념화 교육(고통과 치유에 대한 인식 전환), 그리고 1시간 내외의 치유 의식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양력 1월 1일이 밝았네요. 종교가 없더라도 해맞이, 떡국먹기, 덕담 등을 하게 되는 날입니다. 저도 새해 첫날 일출을 보며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것을 소원으로 빌 계획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 시기가 되면 늘 호들갑 떨며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OOO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위화감 없이 양력 설에 'OOO년 새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https://www.gy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1376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이었고, 2023년은 계묘년(癸卯年)입니다. '검은 토끼의 해'라고들 합니다. 일단 'OOO년'은 60갑자로 만드는 거 다 아실 겁니다. 10간: 갑을병정무기경신임 계 12지: 자축인 묘 진사오미신유술해 색은 10간에 배당되어 있죠. 오방색이라 해서 청·적·황·백·흑색을 말하죠. 각각 방위가 배당되어 있어 오'방'색이라 하는 것이죠. https://blog.naver.com/patorry '임계'에 흑색이 배당되어 있어서 '검은 토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십갑자 기년법(紀年法)과 오방색이 결합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 것 같습니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과거 기록에서는 볼 수 없었다고 말하니 말입니다( 자료 1 ). 이걸 두고 사이비 종교나 상업주의에 물든 무지성 추종이라 핏대 세워 비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민속(문화)은 사실 계속 변하는 것이죠. 육십갑자 기년과 오방색을 결합해 이야기하는 것은 현대 소비문화에 최적화된 민속 관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양력 체계와 음력 체계가 뒤섞였다는 점이죠 뭐 새삼스러울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음력만 쓰지 않고 양력도 써 왔죠. 그래서 ...
미신과 사이비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신이든 사이비이든 혹은 과학적 사실이나 최첨단 이론이든, 그것에 대한 '믿음'이란 것의 의미와 본성에 대한 깊은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닐 세스가 '우리가 공동으로 빠져 있고 공동으로 인정하는 환각상태를 '현실'이라고 부른다'고 말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진짜 현실로 작용하는 것처럼 여겨진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러한 공동의 '믿음'에 의하여 만들어진 현실이 지난 역사상 우리가 객관적이라 생각해온 현실이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립하여 객관적 실재를 찾고 증명하고 설명을 제시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노력도 분명 있어왔죠.
답글삭제옥스포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는 “그 어떤 이상적 지식의 근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다고 믿었던 지식이 이따금 우리가 오류를 범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인간은 오류를 발견하고 제거하는 객관적인 설명을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하죠. '믿음'이 생성해낸 공동의 환상 vs 객관적 실재에 대한 지식을 향한 탐구, 이런 식으로 문명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소 거칠고 세부적인 것이 생략된 것이지만요) 오늘 글도 재미있었고, 감사히 읽었습니다.
'믿음'은 상당히 불투명한 개념이죠. 인간의 믿음이 어떤 특성을 가진 것인가는 상당히 복잡한 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종교적 행동과 관념에 대해서 볼 때, 기본적 동기(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요인)와 그 행위와 관념에 대한 '이유'(사후적으로 추론되는)는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으며, '믿음' 운운하게 되는 것은 대개 후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미신적 행동과 사고는 그러나 전자와 관련됩니다. 종교를 말하는 맥락에서 '미신'도 그 말 자체에 '믿음' 개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이 경우 사람들의 실제 행위나 상상 양식은 직관적 특성을 가집니다. '달에는 홍학이 살고 있지 않다는 믿음' 같은 믿음이죠. 누구나 그런 추론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을 애써 기억하고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믿음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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