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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크리스마스, 만우절의 공통점

‘시간의 마디’에서 의례 행동을 하는 인간의 진화된 본성을 살피기로 했는데, 이 부분도 내용이 길어져서 두 부분으로 나눴다. 첫 번째는 ‘핼러윈, 크리스마스, 만우절의 공통점’에 대한 이야기다. 왜 크리스마스의 동지 축제적 특성을 살펴봐 왔는지 정리해 보기 위한 출발점이다. 종교적, 역사적, 자연적 층위들이 어떻게 복잡하게 어우러져서 종교적 관습—크리스마스—이 지금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인지 살펴보는 작업의 마지막 부분이다.

동지 축제적 요소들

인간의 의례 행동은 종교 전통 속에서 너무 복잡하게 그려진다. 종교적으로 체계화된 어떤 세계관 혹은 어떤 종교적 사건을 기념하는 의미가 강조되다 보니 의례 행동은 종교적 믿음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처럼 비춰진다.

크리스마스가 동지 축제의 모습을 ‘동지’ 날짜와 이틀의 시간 차이가 있음에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4편의 글을 통해서 살펴봤다.
크리스마스와 동지 축제(1) - 예수의 탄생일? [블로그]
크리스마스와 동지 축제(2) - 기독교 초기 동지 축제의 크리스마스화는 실패였다 [블로그]
크리스마스와 동지 축제(3) - 기독교 시대의 크리스마스도 연말 잔치 느낌 [블로그]
크리스마스와 동지 축제(4) - 크리스마스는 타락한 적이 없다, 덧칠되었을 뿐 [블로그]
기독교적 의미가 두드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기독교 이전에도 기독교사 초기에도 중세에도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과거 동지 축제의 영향이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다.

‘크리스마스’라는 이름과 ‘산타클로스’(성 니콜라우스를 떠올리지만 그는 엘프다)라는 이름에서 기독교적 외피를 찾아볼 수 있지만, 실제 이 시기의 축제 감각은 ‘시간의 끝과 시작’이라는 시간의 마디에서 의례를 요청하는 인간의 본능적 감수성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게 드러난다.

동지 축제의 요소는 ‘떠들썩한 잔치, 자선, 베풂’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향성은 지금도 두드러진다. ‘죽은 자/영혼의 출몰, 가면극, 액막이’ 등의 요소는 지금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런 주술-종교적 행동들이 하나의 관습으로 종교적 색깔이 배제된 상태로 향유되고 있다.

현대의 가족 기념일로서 크리스마스가 정착되기 이전에 청교도들의 눈총을 받았던 크리스마스 풍속에는 ‘떠들썩한 잔치’ 외에도 ‘trick or treat’ 같은 장난이나 '바보들의 축제'라는 역할 바꾸기 놀이가 있었다. 이런 장난은 크리스마스 풍습 중에서 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또 변장, 가장, 역할 바꾸기 놀이 등도 눈에 띄는 요소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장난스러운 행동들은 핼러윈과 만우절에 정착되어 있다. 지금에 와서는 가면극, trick or treat 같은 것은 핼러윈 데이로, 바보스러운 장난은 만우절의 특징인 것처럼 되어 있다.

왜 이렇게 겹치는 행동 패턴이 있을까? 역사적-종교적 설명 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핼러윈 데이와 신년

핼러윈, 동지 축제(크리스마스 포함), 만우절의 공통점이 그때 행해지는 행동 양식의 유사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축제일들은 모두 시간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핼러윈 데이가 그런 날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만우절도 그렇다.

핼러윈 데이가 기독교화 되어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기원을 통상 켈트족의 사윈(samhain)*에서 찾는다. 그 이상은 뒷받침할 자료가 없어서 이야기를 못하는 것일 게다. 그보다는 고대적 관습이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아무튼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의 세계에 방문하는 10월 말에서 11월 초는 켈트족의 캘린더에서 해가 바뀌는 지점이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신년 의례’ 글에서)
https://www.history.com/topics/holidays/samhain
{*Samhain, 보통 ‘삼하인’으로 읽지만 ‘사-윈’이 올바른 발음에 가깝다. Cf. Samhain, Wikipedia 여기에서 발음을 /ˈsɑːwɪn/ SAH-win, /ˈsaʊɪn/ SOW-in, Irish: [ˈsˠəunʲ], Scottish Gaelic: [ˈs̪ãũ.ɪɲ]; Manx: Sauin [ˈsoːɪnʲ]으로 소개. ‘사아윈’, ‘사우인’, ‘스어운’, ‘소오인’ 등의 발음.}

이 시기에 가면을 쓰고, 손님을 초대해 환대하고, 집에 찾아온 악령을 속이는 놀이, 집집마다 악령 변장을 하고 방문하는 놀이 등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새해 운수 대통’을 기원하는 행동들이다. 동물 변장은 악령 쫓기이고, 악령 변장과 잘 먹여 돌려보내기 의식(trick or treat)은 액땜의 예방책 같은 것이었다. 우리의 고수레와 비슷한 종교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또 무속의 거리굿도 비견될 수 있다. 거리굿은 통상 남무가 잡귀를 흉내내 노는 굿인데, 취지는 잡귀를 대접해서 액을 막는 것이다.

핼러윈에 등장하는 악령은 우리의 귀신/도깨비, 중동의 지니, 북유럽의 요정처럼 ‘잘 속이면 복을 주는’ 약간은 아둔한 영적 존재다. 그러나 그가 분노하면 인간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의례를 통해서 약간의 비용으로 이런 악령의 원한을 사지 않게 만드는 게 trick of treat이다. 이게 지금은 놀이 요소만 남은 느낌이다.

만우절과 신년

만우절의 장난도 trick or treat과 연관된 놀이로 이해하면 투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그 전에 만우절이 시간의 새로운 순환이 일어나는 시기라는 것부터가 납득이 어려울 수 있다. 만우절의 기원은 베일에 싸여 있어, 시간의 마디에서 행하는 축제와 관련될 것이란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봄의 시작점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기는 감각에 기반한 춘분 축제에서 만우절이 연유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이에 근거해서 만우절을 생각해 보면, 그 기괴한 놀이의 종교적 기원이 잘 이해된다.

한 해의 시작이 나라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었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동지를 ‘옛날 설’(혹은 까치 설)로 이야기한 바에서 그 시기에 시간을 구분했던 전통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한 해의 시작점으로 기념하는 날들에는 설날, 정월대보름, 입춘 등이 있다.

시기별로 신년을 따지던 관습이 각각 유행했고 그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의 캘린더에도 ‘신년’을 기념하는 날들이 여러 날이며 업종에 따라서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음력 설을 없애려는 지난한 시도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음력 설을 쇠려는 문화적 관성이 제도 변화를 막아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 행정적으로는 양력 1월 1일, 풍속으로는 음력 1월 1일, 명리학적으로는 입춘(양력 2월 4일)을 신년이 시작되는 날로 여기고 있는 상태다.

유럽에서도 캘린더의 재정비, 지역마다 신년을 기념하는 날이 다른 문화가 유지되면서 다양한 새해 첫 날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4월 1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는 풍습이었다. 이런 풍습과 만우절의 연결은 16세기 프랑스의 역법 정비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3월 25일을 신년으로 삼는 관습에서 축제가 끝나는 시점이 4월 1일이다).

서구의 ‘만우절’은 16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 신년 첫 날을 그레고리력의 1월 1일로 정리하면서(Édit de Roussillon, 1564) 공식 신년 기념일과 지방의 관습이 어긋나게 된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명하다.
Édit de Roussillon이 반포될 때 프랑스 지역별 신년 기념일. 지도 구글맵, 자료 'Edict of Roussillon', Wikipedia.com
4월 1일을 신년 기념일로 기리는 사람들을 놀리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서구의 ‘April Fools’라는 명칭이 연유되었다는 설명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세 크리스마스 때 '바보들의 축제'라는 역할 바꾸기 놀이가 있었던 점을 떠올려 보면, 만우절을 특징짓는 ‘장난’, ‘농담’, ‘악의 없는 거짓말’ 등이 여러 신년 의식과 비슷한 의례적 동기에서 나온 행동 양식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액막이 행동에서 유래된 놀이로 만우절 장난을 이해해 볼 수 있다.

만우절과 신년의 관계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근거들 밖에 없어서 '그럴 듯한' 개연성을 가진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다른 시간의 마디에서 이루어진 의례 행동들과 비슷하다는 점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어쨌든 이런 의례 행동의 일반성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필요가 있는 문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2편으로..

인간의 의례 본능을 설명할 수 있는 두 가설(행동면역체계 가설, 고비용 신호 가설)을 다룰 계획이다.

※ 이 글은 '얼룩소'에 2022년 12월 25일에 게재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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