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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초기 동지 축제의 크리스마스화는 실패

이교도 신앙의 기독교적 전유(이교도 신앙을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으로 세탁했다)

크리스마스의 유래가 로마의 동지 축제에 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유명하다. 그래서 로마의 태양신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이교적 풍습이라는 말이 있다. 일부 기독교계 신종교에서는 현대 개신교 및 가톨릭이 타락했다는 증거로 ‘크리스마스’를 들기도 한다. 이날을 여전히 ‘예수의 탄생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축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건 그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사실 거슬러 올라간다면 로마에서 멈출 이유는 무엇인가 물을 수 있다)

앞 글(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생일이 아니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날이 실제로 예수가 태어난 날은 아니다. 종교적으로 그렇게 믿어질 뿐이다.

Saturnalia (detail) by Antoine Callet, 1783. (historytoday.com)

어쨌든 기독교 이전에 로마에서 동지 전 며칠 동안 사투르누스Saturnus 신을 기리는 축제인 사투날리아Saturnalia 기간(12월 17일에서 23일)이 있었다. 사투르누스(영어로 새턴Saturn, ‘토성’의 영어명이기도)는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에 해당하는 신이다.

이 대목에서 왜 '사투르누스'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태양신'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이 될 수 있다. 그리스 신 크로노스에 대응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요한 포인트가 '시간'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동지-태양신 연결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분기점'이라는 점이다.

이 축제 기간은 역법의 변경 및 여러 사회적 요인으로 동지 날짜 전후로 바뀌었고, 12월 25일이 축제의 절정인 날로 여겨졌다. 시리아의 미트라스 숭배 양식을 채용해 12월 25일은 '솔 인빅타'(Sol Invicta, '정복되지 않는 태양')라는 축일이 로마에 만들어지기도 했다(아우렐리아누스 황제(214-275) 시기). '솔 인빅타'는 태양신-황제의 연결을 통해 동지 축제에 정치적 의미를 담으려 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사투르누스, 미트라스라는 신을 기리는 축제가 크리스마스로 이어졌다는 역사적 설명은 일부는 맞다고 하겠지만, 그런 연결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시간', '태양'이 중요한 상징성을 가졌다는 점이다. 동지, winter solstice, 태양의 고도 변화의 극점 중 하나로 태양이 가장 낮은 고도에서 이제 점차 고도가 높아질 일이 남은 시기다. 이 시기와 의례의 관계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다룰 예정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크리스마스의 역사적 기원을 따지면 어김없이 '동지 축제'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기독교적 대체는 성공적이었을까

'이교도의 동지 축제'로부터 축제의 기독교화가 시도된 것도 역사적 '사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이런 의례의 대체에 대해서 잘 알려진 '썰'이 기독교 지도자들의 기획설이다.

기독교가 유입된 이후 그러니까 약 4세기에 이르러서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기념하게 되었는데, 당시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로마 제국의 이교도들을 이교 풍습에서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의례로 효과적으로 포섭하기 위해서 ‘의례의 대체’를 시도하여 로마의 동지 축제를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동지 전후의 축제 분위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있었고, 그것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전유하고자 한 것은 '솔 인빅타'나 '크리스마스'나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예수의 생일' 이전에 이미 12월 25일은 '태양의 순환'에서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시기였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날의 기독교화는 기독교의 시대에도 성공적이진 않았다. 4,5세기에 남겨진 기록을 보면, 여전히 사투날리아 축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알제리 북부인 로마 해안 지방의 수많은 고고학 유적지는 사투르누스 숭배가 서기 3세기 초까지 그곳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마크로비우스(Ambrosius Theodosius Macrobius, 약370-430)는 로마의 문인들의 사투날리아 잔치를 묘사하는 글을 남겼다(참고: Did the Romans Invent Christmas?).

지난 글(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생일이 아니다?!)에서 언급한 대로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기념하는 의식이 보편화 된 것은 9세기 이후의 일이다. 예수의 생일이 12월 25일로 처음 상상된 3세기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600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 전환은 ‘동지 축제’의 성격을 완전히 지울 수 있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중세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유럽의 전통적인 동지 축제—켈트족의 ‘사우인’, 바이킹의 ‘율’ 등—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참고: How Christmas Was Celebrated in the Middle Ages).


다음 글에 이어서...


※ 이 글은 '얼룩소'에 2022년 12월 20일에 게재했던 글이다.

댓글

  1. '이교적 신앙의 기독교적 전유'라는 말씀이 적용되는 것은 크리스마스 이외에도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바티칸 광장 한가운데에 왜 이교도의 상징인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있는지도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또,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다소 기복신앙적인 면모를 가지게 된 것도 우리 전통적인 신앙이 기독교적으로 변형되거나 기독교와 결합하고 있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보면 인간 믿음의 다양하고 복잡하며 미스테리한 면과 접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보다 확실한 것은 신이라기 보다는 인간 그 자체이며, 인간을 통해 드러난 신의 모습/형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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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네 bomin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기독교는 '순수 절대 진리'를 자임하기 때문에 '비기독교적 기원'을 가진 요소를 찾는 게 흥미롭습니다. '기복신앙적 면모'의 경우는 인간 종교성의 '기본값'(default value)가 아닌가 생각합니다(한국만의 특징이 아니더라고요). 저는 신은 본래 우리의 인지 체계 상에서 '직관적으로 추론된'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경우 신은 대체로 '소망을 처리하는' proxy로 상정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우제에서 가정된 신처럼 말이죠(의례의 형식에서 신은 분명 존재해야 하지만, 신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철학적 맥락에서는 그런 신 관념을 '의인화 된 신'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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