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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혹은 쓸데없는 비용이 드는 의례는 왜 지속될까

현대 소비문화에 최적화 된 기념일은 '인간의 의례 본능'과 '의례 행동의 의의에 대한 추론' 사이의 갈등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질(빼빼로나 초콜릿)을 소비하는 것만으로 특별한 관계(주로 연인)를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한다는 건 어딘지 '가벼운'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기념일은 아직 인기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기념일 챙기기는 특별한 계기에 의례를 요청하는 인간의 행동 방식과 연관되기 때문에 인간사에서 늘 있었던 모습이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례 행동의 의의에 대한 의심도 같이 나타납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허례허식에 대한 비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인간사에 있었습니다.

상업주의에 물든 기념일을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인간사에서 늘 반복되는 이 길항작용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의례 본능?

인지 인류학자(anthropologist and cognitive scientist)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Dimitris Xygalatas)는 최근 자신의 책 Ritual: How Seemingly Senseless Acts Make Life Worth Living(의례: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이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방법─아직 번역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에서 의례 행동이 동물의 진화된 본성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점을 역설하였습니다.

https://www.amazon.com/Ritual-Seemingly-Senseless-Worth-Living/dp/0316462403

동물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으며, 인간도 마찬가지로 어떤 계기에 사회적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의례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 가설이 '고비용 신호 가설'(혹은 '값비싼 신호 이론'costly signaling theory)입니다. 포식자 위험 회피와 짝 찾기 과정에서 동물들의 비효율적 행동(공작의 화려한 깃털, 영양의 점핑 등)이 생존에 잇점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정보의 신뢰성 평가'와 '무의미해 보이고 비용이 드는 행동' 사이에 비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호의 신뢰성을 신호 발신을 위한 비용에 비례해서 평가하는 경향성이 동물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불필요하고 의미없어 보이는 행동이 동료에게 포식자 위험을 알리는 것, 포식자가 피식자의 회피 능력을 평가하게 만드는 것, 짝짓기의 상대가 높은 생존 능력 갖고 있다는 것을 평가하게 만드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의 의례 행동 중 이해할 수 없는 고비용 의례, 혹은 무가치해 보이는 쓸데 없는 의례들이 이런 이론 틀로 잘 설명이 됩니다. 인간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그런 행동 양식이 지속되는 이유를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과잉된 것은 의미를 만든다

일찍이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가격과 소비가 고전경제학 모델로 설명이 안 되는 사치품의 가격 결정 방식을 '값비싼 상품'의 소비가 경제적 지위를 표시하는 신호가 되는 경우에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요즘은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로 부릅니다. 현대의 명품 시장이 이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의례에서도 '지나친' 것은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연인 관계에서는 사랑의 정도를 표현(신호)한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가족 관계, 신자 공동체에서도 상호 신뢰의 정도를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신호'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북미 원주민의 포틀래치(Potlach)도 그런 대표적 의례입니다. 축제의 주인은 손님들에게 선물을 퍼주어 가산을 완전히 탕진할 정도가 됩니다. 그렇게 재력을 뽑내는 것은 사회적 명성으로 환원됩니다.

유교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를 '과시'하는 대표적 의례가 3년상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경제-사회 활동을 접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합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 시묘살이를 감내한 사람은 유교사회에서 귀감이 되는 '진정한 효자'라는 사회적 평판(명성)을 얻습니다. 그러니 명문가나 왕도 3년상을 해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과도한 의례는 특히 '입문 의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왕왕 연초가 되면 대학생 신입생 환영식에 동반되는 신고식이 너무 폭력적이라 비판하는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값비싼 의례'는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 내기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연애의 신성함과 상업화된 의례 행동

00데이는 통상 연인들 사이에 기념하는 날입니다. 쏠로들을 위한 '블랙 데이'도 있지요. 그러나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정도의 명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요. 미국에서는 가족을 위한 기념일인 크리스마스도 한국에서는 연인을 위한 기념일 성격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연말연시에 모텔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이야기가 몇 년전부터 많이 회자되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족의 신성함이 강조되던 사회입니다. 그러나 산업화-정보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가족주의'는 많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가령 명절 때 '차례'를 지내는 집이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명절 때 고향을 찾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종교 1984-2021' 갤럽 리포트의 '명절 차례 방식' 조사 결과

사회적 집단의 최소 단위로서 핵가족이 사회적 관계를 확인하는 주요한 대상이 되는 맥락에서는 연애는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대표적인 사회적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연인들의 기념일이 세속적 맥락에서 '의미있는 시기'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어떤 선물을 주는 것만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 보면 참 편리한 것입니다. 조금 더 개인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이벤트'라고 불리는 수준까지 정성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지요.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방식이 정식화 되지 않으면 의례 행동은 널리 퍼지거나 지속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의례 행동의 인기와 의례의 편의성 및 형식성은 통상 반비례 관계가 있습니다. 아주 복잡한 의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전문적 사제 계급이 요청되는 것이죠. 세속적 의례 행동은 그런 식으로 유지되기는 어렵겠죠. 종교 서비스 시장에서는 가능합니다만.

그런 점에서 연인들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의식은 소비사회에서 가장 편리하게 연인 관계의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00데이는 그럼 계속 기념될 수 있을까?

00데이의 대부분은 연애와 관련되어 있습니다(참고: 매달 14일은 '○○데이'?). 이 중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발렌타인(밸런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입니다. '빼빼로 데이'는 단일 상품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만, 친구나 연인끼리 '빼빼로 선물'을 주고 받는 날이죠.

검색 트렌드를 보면,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가 두드러집니다. 연인의 관계를 확인하는 의미를 줄 수 있는 날들에도 사람들의 인기에 따라서 더 중요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있습니다.

이런 기념일은 가족 구조, 소비 시장의 구조 변화와 많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대가족이 핵가족화 되고 1인 가구가 늘면서 '차례' 같은 명절 의례는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반면 00데이는 많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43189

1인 가구의 비중이 30%(2019)를 넘어섰고, 2021년에 33.4%에 이르렀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수록 '가족'보다 더 작은 단위의 인간관계(연인)가 주목될 수 있습니다만, 연애까지 포기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는다면 기념일의 인기는 시들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의 삶 자체가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새로운 의례들이 개발되지 않을까요? 그때가 되면 또 상업화 된 혹은 편의주의에 물든 의례 행동에 대한 비판 담론이 비등해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 글은 '얼룩소'에 2022년 12월 20일에 게재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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