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천문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1월 1일은 왜 새해 첫날이 되었을까?

천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1월 1일은 참 애매한 날입니다.

지난 번에 '크리스마스와 동지 축제'라는 시리즈 글을 다루면서 동지가 '시간의 마디'로 인식된 측면(참고: 절기, 시간의 마디와 의례 본능)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만, 천체의 움직임(태양이나 달)과 1월 1일은 사실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태양 고도의 극점(solstice)이나 평분점(equinox)은 시간 사이클 상에서 변화의 기준점 역할을 하지만 달력에는 애매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21, 22일 혹은 22, 23일입니다(2023 춘분: 3월 21, 하지: 6월 21일, 추분: 9월 23일, 동지: 12월 22일).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역사적 기원으로 이야기하면 율리우스력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새로운 역법을 정할 때 1년을 365.25일로 정하고(소수점 시간은 윤년으로 처리), 춘분을 3월 23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1월 1일이 신년의 첫날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춘분을 4월 1일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럼 동지가 1월 1일이 되었을 겁니다. 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 궁금합니다. 천문학적 기준점을 왜 새해 첫날로 삼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은 계속 해소되지 않습니다.
고대 로마 달력 https://www.througheternity.com/en/blog/history/beware-ides-march-assassination-julius-caesar.html
율리우스력의 기원이 되는 이집트력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집트력은 농경 생활과 천문 지식의 결합을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달력 https://historicaleve.com/ancient-egyptian-calendar/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범람 주기, 천문 현상의 변화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한 달을 30일, 1년을 365일(3개 계절-범람기Akhet, 발아기Peret, 추수기Shemu)로 하는 역법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년 12달 360일에 나머지 5일은 축제일로 기렸다고 합니다.

일 년은 12달이며 일 년의 날짜 수는 360일이었다. 360일과는 별도로 5일은 당시 종교적 대상으로 믿던 ‘오시리스(Osiris)’, ‘이시스(Isis)’, ‘호루스(Horus)’, ‘네프티스(Nephthys)’, ‘세트(Seth)’ 라는 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축제일로 정했다. 이와 같이 360일과 5일을 합쳐 1년의 길이를 총 365일로 정해 사용했고 오늘날과 같이 4년마다 별도로 윤년을 두지는 않았다. (이용복, 1월 1일이 새해가 된 과학적 이유 중에서)

이런 설명을 보아도 명확하게 천문현상을 기준점으로 새해 첫날을 정하지 않은 이유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신년의 첫날'을 3월 25일과 같은 봄이 시작되는 날로 정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로마에서도 카이사르 이전에 1월을 한 해의 첫 달로 삼은 것이 누마 왕(BCE 715-673)이라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도 동지로부터 10여일 이후에 1월 1일이 시작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 연구자로서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 봤습니다. 과거 연말-연초의 축제(동지든 춘분이든)가 10여일 가량 진행되었다는 기록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경우 동지 시기('사투날리아')에 긴 축제일을 두고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동지 축제를 12일간 진행했다고 합니다. 축제가 끝날 즈음 새해 첫날을 카운트한다면 대략 1월 1일에 부합합니다.

이 가설로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축제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천문 현상의 기준점과 달력의 첫날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잉여의 시간'(혹은 애매한 시간-천문의 주기와 인간의 시간 사이의 불일치)을 신성화시킨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근거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은 동지이지만, 해가 가장 늦게 뜨는 것은 1월 초입니다.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해가 가장 늦게 뜨는 시기를 기준으로 새해의 첫날을 삼았을 수도 있습니다.
"동지에 대해 잘못 알려진 상식들", 사이언스타임즈 https://www.sciencetimes.co.kr/
아직은 무엇이 맞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3의 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가르침을 부탁 드립니다.

참고:  1월 1일이 새해가 된 과학적 이유 , Why Does the New Year Start on January 1?


─── ∞∞∞ ───


※ 이 글은 '얼룩소'에 2022년 12월 3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댓글

  1. 다소 허무한 결론일지 모르겠지만 브리태니커 온라인 백과사전을 참고하니 1월 1일이 새해의 첫날이 된 것은 그다지 과학과는 관련이 없는데, 당시 로마에서 Janus 신은 두 얼굴을 가진 신으로서 '모든 시작과 끝'을 관장하는 신이었고, 1월을 의미하는 말이 Janus로부터 나온 'January'인 사실도 새해의 첫날로 삼기에 잘 들어맞는 거라고 여겨졌다고 합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에 따르면 January가 한 해의 첫달이 된 것은 원래 공화정 이전 시기에 로마의 누마 폼필리우스 왕이 March대신 January를 1월로 정한 것에서 기원하는데, 적어도 증거상 BC 153년까지는 1월 1일이 공식적인 새해의 첫날로 정해지지는 않았다가, 이후 율리우스력을 제정할 때 January를 계속 1월로 유지하면서, 오늘날 1월 1일이 한해의 시작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https://www.britannica.com/story/why-does-the-new-year-start-on-january-1

    답글삭제
    답글
    1. *Edit : 첫 문단 끝부분의 '새해의 첫날' --> '새해의 첫달'

      삭제
    2. 위에 제가 쓴 것은 철저하고 자세한 문헌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고, 브리태니커 백과에 의존한 것이에요 (그리고 이미 접하신 내용일테고요), 나중에 더 자세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있으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삭제
  2. 네, 로마의 달력에서 1월이 결정된 것은 그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동지로부터 10여일 정도 떨어진 날이 1월 1일이 된 이유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적절한 설명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신년의 기준점이 되었던 시기는 대부분 동지, 춘/추분, 하지를 기점으로 하고 있거든요.

    답글삭제
    답글
    1. 네. 그렇군요. 이곳을 참고해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https://www.quora.com/Why-is-the-start-of-the-calendar-year-not-the-winter-solstice-Why-is-it-10-days-later

      삭제
  3. 해당 글을 통해서 제 질문이 더 명확해질 수 있겠군요. 문화적 시간이 왜 천문 사이클과 10일 차이가 있었을까,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기준점이 동지였던 건 분명해 보이고, 다른 '신년일'[춘/추분 기준]도 새해의 기준점이 춘/추분에서 10여일 가량 차이가 나거든요)[트윗인용]

    답글삭제

댓글 쓰기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ChatGPT에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를 물어 보았다.

요즘 핫하다는 '챗GPT'에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를 물어보았다. https://openai.com/ 나: 크리스마스가 동지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챗봇: 크리스마스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축제일이며 종종 북반구에서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와 관련이 있다. 동지는 보통 12월 21일 또는 22일 경에 발생하며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하는 것, 즉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을 표시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원래 기독교 이전의 동지 축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종종 태양의 재생과 낮이 더 길어지는 시기의 복귀와 관련이 있다. 고대 로마인과 고대 켈트족을 포함한 많은 고대 문화에는 동지와 태양의 귀환을 중심으로 한 전통과 축제가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및 종교적 영향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지가 축제일의 기원에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는 광범위한 종교적, 문화적 전통과 연관되어 현재 전 세계의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기념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에 대해서 비교적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지 축제와 관련성을 '논증'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보(동지 축제와 관련되지만 현재는 역사/문화/종교적 설명이 복잡하게 얽혀있다거나 복잡하게 변화했다)는 대체로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인지진화적 설명은 관련 문서가 부족하기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디테일이 부족한 것도 한계라 할 수 있겠지만, 간단한 답변으로서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챗GPT가 3문단으로 설명하는 것을 나는 A4 몇 페이지로 설명했던가. 대학 등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나 시험문제를 내줄 때 이제 안일하게 내면 AI가 답을 써주는 시대가 되어버린 듯하다. ─── ∞∞∞

'정신병', 스캡틱, 박한선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8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이 글은 Skeptic Korea의 " 정신의학의 오래된 과제, 과학적 치료와 처방 "에 관한 얼룩소글의 출처를 체크하고, 정신질환 치료의 현실에 대해 박한선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정래해 본 글입니다. ─── ∞∞∞ ─── 최근에 나온 글인 줄 알고 찾아봤더니 전에 나온 글이군요. 마침 어제(1/27) 정신과 의사 출신 인류학자 박한선 선생님을 통해서 관련 이야기를 듣고, 글쓴이부터 찾아 봤습니다. 다른 저자인 걸 보고, 정신의학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박선생님께서 정신병 진단과 치료에 '정신분석학'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 했었습니다. 심리학계(실험심리가 중심이 된)에서는 배우지 않게 된 분야로 알고 있어서 의학 분야에서도 당연히 퇴출되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인지 모르지만, 효과가 있다'는 면에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정신분석학'도 프로이트, 융 시절의 버전이 아니라 많이 업데이트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부분은 과문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제 박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도 떠올라 흥미롭게 이 스켑틱의 글을 읽다가 문득 출처가 궁금해서 찾아 보니, '한국 스켑틱'에는 14권(2018년)에 "정신의학은 과학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로 실려있었습니다. (스켑틱에서 얼룩소에 올리는 글이 최근호에 실린 글이 아니라는 걸 이제사 깨달은 거죠) https://www.badabooks.co.kr/SKEPTIC_magazine/?idx=54 글은 14권의 68~83쪽에 실렸습니다. 이 글을 일부 발췌해서 재편집한 것이 위의 얼룩소에 실린 글이더군요.

미신과 종교라는 개념에 담긴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미신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그게 무엇이냐 물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행위들이나 관념을 이야기합니다. 뇌과학자 정재승 선생님도 미신 이야기를 하면서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행위가 불길하다는 미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정재승 편 미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할 때, 이렇게 미신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시험 볼 때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시험 볼 때 포크를 선물한다' '손 없는 날 이사해야 한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 팥죽을 먹는다' 그럼 '미신'은 어떤 것이냐 설명해 보라면, 아마 이런 말들을 늘어 놓게 될 겁니다. https://engoo.co.kr/blog/먼나라이웃나라-세계-각국의-다양한-미신들/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로 그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미신' 항목 그런데 이런 개념은 일상에서는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쓸 수 없는 설명입니다.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게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경제적 판단과 믿음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관상은 과학이다', 'ABO 혈액형 성격론', '과시적 소비' 등등. 어떤 종교적 맥락에서 '이상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미신'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종교와는 다른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위 국어사전의 개념 정의는 종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