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축제의 지속으로서 중세 크리스마스의 모습
대략 5세기에서 16세기까지의 중세 시기, 12월 25일 전까지 강림절*의 금식을 지키고, 25일부터 만찬과 축제의 시간을 12일간 가졌다고 한다(동지 → 신년 의례). 이 시기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고, 변장을 하고, 게임을 하고, 춤을 추고 다녔다'. 그리고 이 시기 영주는 소작인들에게 12일의 휴가를 주고 만찬을 대접할 의무가 있었다.
* 강림절(대강절[待降節] 혹은 대림절[待臨節]이라고도 함, '예수 강림을 기다리는 시기')은 크리스마스 전 약 4주간의 기간. 크리스마스 전 4번째 일요일부터 시작된다.
![]() |
https://www.history.com/news/middle-ages-christmas-traditions |
중세 크리스마스 축제를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변장 게임과 역할 바꾸기 놀이였다(기독교 이전 이교도 풍습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변장 놀이(mumming)를 하는 사람은 동물 가면을 쓰거나 다른 성(남자가 여자)으로 변장하고서 지금의 'trick or treat'과 비슷한 장난을 집집마다 다니며 하거나 해당 축제와 관련된 민속 노래를 불렀다(‘핼로윈’의 근원을 추적하면 켈트족의 ‘신년 의례’와 만난다. 이에 대해서는 신년이 되면 정리해 볼까 한다).
요리된 동물 머리가 동물 가면으로 자주 사용되었는데, 수퇘지 머리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세 후기로 가면서 나무로 된 수퇘지 가면으로 대체되었다.
12일의 축제 기간 중 1월 1일에 '바보들의 축제'라고 불렸던 행사가 있었는데, 이때 사제, 부제(deacon) 등 교회 직원들이 객기부리는 걸 용인해 주는 풍습이 있었다. 역할 바꾸기가 빈번하게 이루어졌고(하급 부제가 설교를 한다든지),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만우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신년 의례' 글에서 다룰 예정).
15세기 프랑스에서 어떤 이는 이런 풍습을 비판적인 어조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성직자와 교회 직원들은 근무 시간에 가면을 쓰고 괴물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그들은 여성, 포주 또는 음유시인으로 분장하고 성가대에서 춤을 춘다. 그들은 음탕한 노래를 부른다. 집전자가 미사를 드리는 동안 ... 그들은 검은 푸딩을 먹는다. 그들은 주사위 놀이를 하고... 그들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이 교회를 날뛰며 돌아다닌다.”
크리스마스 때 '예수의 탄생'을 기념했다기보다는 시간의 끝(동지)에서 사회 질서가 이완되고, 자선과 환대, 그리고 잔치가 벌어지며, 다가오는 시간에 불운이 빗겨나가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의식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 정신과 상충하는 크리스마스 풍경
어쨌든 난장과 같은 연말 잔치(동지 축제)로서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기독교 정신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영국의 청교도들에 의해서 가열찬 공격이 이루어졌다. 그들에 의해서 묘사된 당시의 크리스마스 모습은 위에서 본 동지 축제의 전형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6세기부터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 축제가 기독교 정신을 오염시키는 이교도의 풍속이며, 이것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퍼지게 된 것은 로마 가톨릭과 교황의 책임이라고 주장하였다. 17세기 중반까지 청교도 사제와 팜플렛 작가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고 부도덕한 활동을 조장하는 낭비적 축제라고 선전하였다.
크리스마스 축제의 '불경함'을 약화시키려는 법률 제정도 뒤따랐다.
1643년 12월 19일, 한겨울 기간을 더욱 엄숙하게 자중하며 보내도록 하는 법령이 통과되었다. 그것은 예수를 기념하는 날 흥청망청대며 육신의 쾌락을 쫓는 죄를 반성하라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축제의 시기로 여기는 것에 대한 거부 움직임은 1644년에 크리스마스의 떠들썩하고 흥청망청하는 연회를 폐지하는 법령으로 다시 나타났다. 1645년 1월, 영국 의회는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축제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것을 명확히 하는 새로운 공공 예배 규칙서를 만들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감시를 피해 크리스마스 축제를 즐겼다고 한다. 1656년에는 런던 인근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폐지로 인해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1660년 왕정이 복고되고 크리스마스도 부활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도 크리스마스에 부정적이었고, 매사추세츠 주에서도 17세기 중반에서 후반까지 크리스마스 축제를 불법으로 다스린 바 있다. 1659년 보스턴에서는 "노동을 하지 않고, 잔치 또는 기타 방법"으로 하는 크리스마스 축제 행위가 금지되었으며 위반자에게는 5실링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 |
https://www.obscurehistories.com/post/the-pilgrims-ban-on-christmas |
공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고
신을 크게 불명예스럽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다른 집단에서 미신적으로 지켜지는 그러한 축제를 일부 사람들이 여전히 수행함으로 인해 이 관할권 내의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무질서를 막기 위해서,
이 법원과 당국은 그러므로 노동을 하지 않고, 축제 또는 기타 방법으로 크리스마스와 같은 날을 준수하는 것이 발견되는 사람은 누구나 5실링의 벌금을 카운티에 지불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1659년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
미국에서도 크리스마스 시기 연말 잔치의 떠들썩함이 청교도들에게 골치거리로 여겨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1856년이 되어서야 매사추세츠 주에서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되었다. 미연방의 공휴일이 된 것은 1870년의 일이다.
중세까지 면면히 이어진 연말 축제의 떠들썩함이 근대까지도 유럽과 미국에서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까지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핼러윈, 만우절, 우리의 설날이나 정월대보름의 잔치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현대적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다음 글에서..
기독교적이지 않은 크리스마스의 현대적 관습(크리스마스 트리, 캐럴, 선물,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
─────────
중세 크리스마스 참고 자료: How Christmas Was Celebrated in the Middle Ages
청교도 운동과 크리스마스 참고 자료: Did Oliver Cromwell Really Ban Christmas?; When Christmas Was Really Under Attack
※ 이 글은 '얼룩소'에 2022년 12월 21일에 게재했던 글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