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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타락한 적이 없다, 기독교의 덧칠이 있었을 뿐

크리스마스의 현대적 관습(크리스마스 트리, 캐럴, 선물,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등)은 기독교적인 게 아니다. 게다가 그 형성 시기도 비교적 최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클로스의 기원을 살펴보자.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트리의 경우 직접적으로 유럽 북부의 상록수 가지를 이용한 장식 관습—동지 축제 풍습—과 관련되어 있다. 기독교 이전에도 동지 축제 때 상록수를 사용한 예를 여럿 찾아 볼 수 있다. 서구인들은 주로 유럽과 연관된 지역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집트에서는 동지의 태양신 라 숭배 의식 때에 녹색 종려 나뭇잎으로 집을 장식했다. 이집트인들은 겨울을 태양신이 아프거나 어디론가 떠나버린 때라고 여겼고, 동지 이후에는 다시 낮이 길어지니 라 신이 회복되어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은 푸르른 종려 나뭇잎을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로마의 동지 축제인 ‘사투날리아’ 때 로마인들도 상록수로 집과 신전을 꾸몄다. 로마인들도 동지 이후로부터 생명이 움트는 풍요의 시기가 도래하게 된다고 여기며 이러한 상록수 장식을 했다고 한다.

북유럽에서는 고대 켈트족의 사제인 드루이드도 영원한 생명의 상징인 상록수 가지로 사원을 장식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이킹은 상록수를 태양신 발드르(Balder)의 특별한 식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나오는 ‘겨우살이’와 관련이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직접적 전파 과정은 16~19세기에 걸쳐 독일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전해져 뿌리내리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6세기 독일 개신교도들에 의해 가톨릭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을 바꾸기 위해 트리와 촛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국에 전해진 것은 독일계 영국 왕실로부터였다. 영국 왕실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과 나무 주위에 선물을 놓는 풍습이 유행하고 점차 부유한 중산층에도 확산되었지만, 대중화의 결정적 장면은 빅토리아 여왕 가족 행사 보도를 꼽는다.

1848년 London Illustrated News에 빅토리아 여왕이 독일인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윈저 성에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에 둘러 선 모습이 그려졌는데, 이를 계기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왼쪽 영국 London Illustrated News의 삽화, 오른쪽 미국의 Godey's Lady's Book에 소개된 관련 삽화 출처: https://theconversation.com/the-christmas-tree-is-a-tradition-older-than-christmas-195636

미국의 경우 19세기 초반 독일 이민자들에 의해서만 산발적으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관습이 행해지다가, 빅토리아 여왕 가족의 트리 장식 행사가 소개된 19세기 중반 이후에 비로소 주류 중산층에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찰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트리'(1850)라는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주지하다시피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과 트리 밑에 선물을 놓는 풍습은 미국을 통해서 세계로 확산되었다(크리스마스 기념 풍습,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이는 20세기의 일이었다.

덧> 

서구인들은 주로 '상록수 장식'을 자연의 순환과 관련된 풍요의 상징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트리의 '신목'(神木)적 특성이 더 원초적인 것이다. 나무는 신을 상징하고, 신목 숭배는 신을 나무에 강림시켜서 나무를 공동체(현재는 가정이지만)의 터전으로 모셔와서 그의 가호를 구하는 행위다.

우리 민속 중에서 '강릉단오제의 영신행차'가 바로 그와 비견되는 신목 숭배 의식이다(의식의 시기와 규모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신목은 신적 존재와 인간의 매개물로서 '액막이', '풍요 기원' 등의 주술-종교적 함의를 갖는다. 현대의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이런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말이다. 완전히 사라진 것이라기보다는 무의식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산타클로스

지금의 크리스마스에서 산타클로스를 빼 놓을 수 없다.

4세기에 터키 지역에서 활동한 성 니콜라우스라는 주교의 자선 활동,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던 일을 기념하는 전통 덕분에 지금의 산타클로스가 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산타클로스는 분명 성 니콜라우스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가 세 명의 매춘 소녀를 구출한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중세에는 죽은 세 소년을 살려내 구출한 이야기도 회자되었다고 한다.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수호성인 이미지는 그런 전승을 통해서 확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 니콜라우스 전승만으로 산타클로스를 말할 수는 없다. 성 니콜라우스 축일은 12월 6일이었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은 크리스마스와는 별개로 존재했다. 게다가 성 니콜라우스를 묘사하는 그림은 지금의 산타 이미지와는 구별된다.

왼쪽 13세기 성 니콜라우스 초상화, 오른쪽 2010년 산타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anta_Claus

이름은 그에게서 나오긴 했지만, 북극에 살고, 엘프와 일을 하며, 빨간 복장을 하고 순록 썰매를 타고 전 세계를 하룻 밤 만에 돌아다니는 이미지는 성 니콜라우스와 직접적 관련성은 없다.

북구의 민속신앙과 합쳐진 '신터클라스'sinterklaas(네덜란드어로 '성 니콜라우스')의 모습이 지금의 산타클로스의 직접적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모습으로의 변모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존재를 성 니콜라우스에서 예수로 바꾸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이후 북유럽에서 벌어진 것으로 설명된다.

16세기 이후 날짜는 12월 6일에서 12월 25로 변경이 되고(네덜란드 등에서는 12월 6일을 아이들에게 선물 주는 날로 기념하는 풍습이 일부 남아 있다고)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는 사람은 신터클라스와 나쁜 아이들에게 체벌을 내리는 악신과 같은 존재(Pieten-네, Père Fouettard-프)가 함께 아이들을 찾아간다는 설정으로 발전되었다.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등지에서는 이런 관념이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고 한다.

성 니콜라우스와 페르 푸에타흐Père Fouettard 출처: https://www.ambiance-noel.fr/traditions-de-noel/le-pere-fouettard-hans-trapp-punitions-et-coups-de-fouets-174_B

산타클로스의 수염, 풍채, 하늘을 나는 모습 등은 게르만 신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설명된다. 동지 축제(고대 게르만의 율Yule) 즈음 오딘 신이 출몰하는데, 그는 긴 흰색 수염을 하고 말(8개의 다리를 가진)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것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이런 이미지가 신터클라스에 투사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산타클로스의 모습은 19세기에 형성되었다. 1823년의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통상 '크리스마스 전야'로 알려져 있고,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가 썼다고 알려져 있지만, 작자에 대한 논란이 있다)에서 산타클로스는 8마리의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굴뚝을 통해 집에 들어가 선물을 전해주는 마음씨 좋게 보이는 할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다('old elf'로 표현되기도). 여기에서 '루돌프'나 '빨간 옷'은 등장하지 않았다.

통통함을 넘어서 뚱뚱해 보이고 빨간 옷을 입은 산타이미지가 전형화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토머스 내스트(Thomas Nast)의 1881년 삽화가 회자된다.

Thomas Nast via Wikimedia Commons

내스트에 의해서 빨간 옷과 모자, 흰색 모피 안감, 버클이 달린 검은색 벨트로 치장한 산타이미지가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산타 이미지의 확산에 '미국 크리스마스 카드의 아버지' 루이스 푸랭(Louis Prang)도 기여한 것으로 언급된다. 그가 제작한 카드에 ‘빨간 산타’ 그림이 실렸다.

20세기 초까지 '빨간 옷' 산타가 완전한 전형적 모습이 되지는 않았다. 그 완성은 1931년 코카콜라의 광고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줘서 '산타는 이런 모습이다'라는 고정관념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https://www.chron.com/business/article/This-is-how-Coca-Cola-invented-Santa-Claus-16727869.php

어쨌든 크리스마스 트리나 산타클로스의 기원을 따져보면, 지금의 현대적 크리스마스도 유럽의 '동지 축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는 타락하지 않았다, 원래 그대로

현대사회에서 크리스마스의 흥행은 기독교적 가치가 확산된 결과가 아니다. 가족, 친구, 연인 사이의 유대관계 향상 혹은 유지를 위한 상징적/상업적 교환의 절기의례로서 적합성을 갖기 때문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동지’, 혹은 ‘연말’이라는 시간적 분절이 발생시키는 ‘새로운 시간의 창조’, 그것을 준비하는 특별한 시간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시간에는 축제를 통해 그 동안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들과 관계를 재점검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맞설 준비를 하게 된다. 그래서 운명에 대한, 예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이름’의 가치가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이 휴일의 명칭 탓에 특정 종교의 교조를 떠올리고 특정 종교의 신화적 사건을 되새기는 일이 사회적으로 벌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시간의 분절기(끝과 새로운 시작)에 사람들이 축제의 감각을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를 그렇다면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적 해석이, 연말연시의 ‘들뜬’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만들어 내는 축제의 감각에 덧칠되어 기생하고 있다고 말이다.

크리스마스는 인간의 본성과 종교적 코드가 연결되는 방식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종교인들의 전유는 시효가 있을테지만, 일반 사람들이 축제로 기념하는 일은 계속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Santa Claus

History of Christmas Trees

The History of the Holiday Evergreen 

The Christmas tree is a tradition older than Christmas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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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얼룩소'에 2022년 12월 24일에 게재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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