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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억까', 스켑틱의 질문(가설)은 비과학적이다

스켑틱'은 종교에 대해서 답을 정해 놓았다. 

'그런 비합리적인 것을 왜 믿느냐. 과학적으로 허무맹랑하다.'

이번에 '종교와 건강' 문제를 얼룩소에서 다뤘는데, 너무 신념에 찬 시각만을 보여준다.
https://alook.so/posts/0kt69lJ
이 질문에 대한 '스켑틱'의 답변은 '건강에 좋지 않다'이다. 그런데 과학적 연구 중에도 종교 활동 혹은 그와 비슷한 활동(특히 명상)이 건강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제법 있다. 그러한 연구들은 아마 '스켑틱' 기고자의 눈에는 '유사 과학'적인 연구이거나 엄밀한 방법론이 적용되지 않은 연구로 보일 것이다.

'답정너' 식으로 종교 문제를 바라보게 되면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종교에 대해서나, 종교를 향유하는 인간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작업을 외면하게 만든다. 특히 반종교적 시각에 경도되면 종교 문제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비평하기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

과학적으로 다루기에 '종교(활동)'에는 함정이 많다

위의 글에서 해리엇 홀은 프랜시스 골턴의 기도의 효능에 대한 연구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 연구가 과학적으로 종교 활동(기도)의 효과를 제대로 검증하기 위해서 잘 설계된 연구인 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종교 연구자들은 전혀 의미 없는 가설과 검증 방법을 사용했다고 판단할 것 같다.

종교 현상은 해리엇 홀이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믿고 있는 명제 그대로 발생하는 게 아니다('남을 위해 하는 기도는 그가 몰라도 효과가 있다' 혹은 '남을 위한 기도에 신이 응답해서 그에게 정말 도움이 된다'는 믿음). 이 점에 대한 이해부터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반종교론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현대의 진화 인지적evolutionary cognitive 관점의 종교 연구에서 사람들이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 종교적 관념과 실천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쉬운 예로, 기독교인들의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생각해 보자. 이들이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떤 식으로 회상하는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신이 여러 사람의 기도를 듣는데, 각각 위급한 경우, 위급하지 않은 경우, 사소한 경우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신이 기도에 응답을 어떻게 했을지 말해보라고 기독교인 피험자들에게 요구했다.

'신학적으로 올바른' 대답은 무엇일까? 전지전능한, 무소부재의 존재이기 때문에 '기도를 동시에 듣고', '모든 기도에 동시에 응답한다'(사소한 문제는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는 게 기독교인의 신관념에 맞는 설명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실제 답변은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급한 기도부터 응답하고, 덜 위급한 기도에 응답한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했을 법하게 신이 행동했다고 생각한 것이다(물론 사람들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면, 이런 식으로 답변하는 비율은 낮아진다).

신을 인간처럼 상상하는 일

의인주의anthropomorphism(옛날 번역은 '신인동형론')라는 어려운 말로 사람들의 신관념의 특성을 설명하곤 한다. 'anthropo-'는 '사람', '인간'이란 의미이고, 'morph'는 '형태', '모습'이란 의미다. 즉, 신을 사람처럼 상상하는 사고방식을 '의인주의'라고 한다.

기독교가 서구 사회에서 주류 종교가 되면서 기독교적 지식인들(성직자 포함)은 늘 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상상하는 일반 사람들의 믿음을 저급하거나 이교도 혹은 이단적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역사상 신을 '아버지', '군주', '재판관' 등으로 상상하지 않은 적이 없다. 현대 기독교인들의 기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종교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게' 혹은 신에게 선택받은 자로서의 '친근감'을 표시하는 정도의 관례적 의미만 갖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은 거의 모든 경우에 '인간'처럼 그려진다. 기도를 '듣고', '말씀'을 하고, '분노'하며, '기뻐'한다. 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우리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 기독교의 윤리관, 정의관, 구원관도 그런 관념을 빼고 정당화할 수 없다. 기독교에서 '사랑'을 빼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경전 이야기를 근거로 정당화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존재라는 '신학적으로 올바른' 설명은 의인주의적 신 관념과 늘 충돌해 왔다.

진화 인지적 관점의 과학적 종교 연구 분야에서 '신을 인간처럼 상상하는 경향'에 대한 문제를 '진화된 마음'(뇌신경망)의 특성으로 설명한다. 신을 왜 인간처럼 상상하느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은 식으로 설명한다.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행위자(동물, 신, 다른 사람 등)가 사람이고,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인지 프로세스가 진화되었다. 우리가 실제로 만날 수 없는 행위자(신, 유령, 요정 등)를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인지 프로세스를 통해서 인식할 때,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고 그 대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신처럼 관념적 존재를 '인지적 힘(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을 인식하는 인지 회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경향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우리 뇌는 인지 비용 최소화를 위해 인지 회로 재활용에 탁월하다고 한다. '비슷한 것은 비슷한 정보를 처리하는 회로로', 그래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그런데 신과 같은 존재를 떠올릴 때 사용하는 인지 프로세스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자동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착시'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착시'를 일으키는 마음, 그게 신을 상상하는 도구라면?
https://ko.wikipedia.org/wiki/%EC%B0%A9%EC%8B%9C
체커보드 그림자 착시를 보면, A와 B의 색은 누구나 다르게 보인다. 시지각이나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에 이상이 없는 한은 말이다. A영역과 B영역만을 남겨 놓으면 누구나 그 두 부분의 색이 같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속인다고 생각한다면, 컴퓨터 화면상에서 주변을 가려보길 바란다. 다르게 보이는 두 색이 같아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신을 인간처럼 상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동적으로('무의식적' 혹은 '직관적'이라고도 말한다) 한다.
https://www.donga.com/news/It/article/all/20100730/30217620/1
위의 '화성 얼굴' 이미지를 한 번쯤 봤을 것이다. 얼굴처럼 보인다. 최근에 찍은 고해상도 사진을 보면 얼굴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우리 뇌에는 얼굴 정보를 처리하는 고유한 영역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방추상 얼굴 영역, fusiform face area). 그 부분은 '얼굴 비슷한 패턴'이 인식되면 바로 활성화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얼굴 없는 곳에서 얼굴을 잘 발견한다. '얼굴 착시'로 검색해 보면 많은 흥미로운 사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굴 착시' 중 신적 존재를 떠올리는 사례도 있다. 다음 사진을 보면 누가 떠오르는가?
https://metro.co.uk/2012/06/29/face-of-jesus-christ-spotted-on-side-of-mayho-chinese-takeaway-in-sunderland-485283/
영국 선더랜드의 한 중국 음식점 벽의 무너진 모양을 보고 영국인들은 '예수'를 떠올렸다. '예수 얼굴'을 찾았다는 호들갑은 서구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례다. 서구인들이 그린 예수의 전형적인 모습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면, 아마 '얼굴'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12614000000506
서구인들도 '실제 예수의 얼굴'은 모른다. 자신들이 익숙한 것으로 상상한 것 뿐이다. 몇 해 전 BBC 다큐멘터리 '신의 아들(The Son of God)'에서 법의학 인류학자와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2000년 전 셈족의 젊은이' 모습이 공개된 바 있다. (예수가 꼭 이렇게 생겼다는 의미이기보다는 서구인들이 상상한 예수보다는 당시 중동인의 모습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의미다)

종교에 대한 가설의 문제

사람들이 (유일)신을 설명하는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언어에 근거해서 과학적 검증을 위한 질문 만들면 어떻게 될까? 앞서 말한 의인주의 문제로 생각해 보자. 사실 과학으로 가지 않더라도 논리적으로만 생각해 봐도, 신을 인간처럼 상상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의 교리적 체계에 맞춘다면 말이다(신학적으로 올바른 설명).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질문할 수 있을까? 진화 인지적 이론이 없다면, '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정도의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우리 마음의 도구(얼굴을 인식하고, 행위자를 인식하는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인지 프로세스)가 작동해서 '사람처럼 상상'하는 것이라면, 사람을 인식할 때와 신적 존재를 떠올릴 때, 뇌의 어떤 영역이 반응하는지 비교함으로써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종교를 갖는 것이나 기도하는 것이 건강을 증진하느냐'라는 질문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있다고 믿는다'는 진술에 근거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규명하려는 우를 범하는 것과 똑같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미 답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초자연적 존재는 없다고 말이다.

그 존재를 믿는 게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에 실체가 없는 경우를 우리는 꼭 종교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많이 보지 않는가? 국가는 실체가 있는가? 우리는 모두 상징(물)을 통해서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경제 시스템은 또 어떤가? 신뢰(어떤 믿음)가 무너지면 여지없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경험을 하지 않는가?

여러 사람이 믿는 것(유발 하라리는 '상호 주관적 실재'라고 표현)은 그 믿음의 내용으로 '현실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 믿음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믿음의 내용을 출발점으로 삼지는 않는다. 왜 그런 방식으로 믿음이 작동하는지, 보다 유물론적인 메커니즘(화학 작용, 생리 작용 등)을 고려할 때 설명이 가능하다.

경제학 분야의 '행동 경제학'을 생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 편향에 영향을 받아 인간은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이 되지 못한다. 이런 이론이 없다면, '비합리적 선택'을 비판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계몽할 수 있을 뿐이다. 행동 경제학자들은 '왜 제한된 합리성'을 발휘하는지, 그 심리적 메커니즘을 상정하고 이를 검증하여 이론화했다. 요즘은 이 분야의 성과가 각종 마케팅과 광고 분야에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다시 기도와 건강 문제로 돌아가 보자. '기도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문제를 생각할 때, '기도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건강'만을 비교하는 것은 너무 나이브한 발상이다. 그 영향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보다 자연적인 메커니즘이 상정될 때 과학적인 검증 작업을 할 수 있다.

과학적인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면, 과학적인 답을 할 수 없다 

프랜시스 골턴의 가설은 '영국 왕실 가족은 평균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였다. 여기에 덧붙여진 가정은 '많은 사람의 기도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기도가 건강을 증진한다'는 명제가 전제되어 있다. 이 전제는 과연 타당할까? 여기서부터 문제라면 가설도 헛다리를 짚는 것이 될 것이다.

기도의 효과는 '신의 역사'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적어도 그런 걸 전제한다면 과학적으로 인문 현상을 바라보는 기본자세가 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기도, 특히 중보 기도(남을 위한 기도)가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인지 잘 생각해 보자.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 그 정보가 전달되지 않고 어떤 효과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면 '초자연적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중보)기도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보면 기도 그 자체의 효과라기보다는 종교 활동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사회적 활동이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친밀한 친교 활동은 정신 건강 더 나아가서 신체 건강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심리학, 의학 분야에서 이미 명확하게 증명된 바이다.

주위 사람들의 지지가 사람들이 어떤 일을 처리할 때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인다는 걸 보여주는 실험도 잘 알려져 있다(ex. '브레인 게임4'의 자유투 실험). (중보)기도의 효과를 생각할 때 커뮤니케이션이 수반되어 이런 격려와 지지의 효과가 발휘되어 나타난다고 보는 게 훨씬 과학적인 접근이 아닐까?

이런 이해에 기반해서 종교 활동의 보건학적 효과를 검증하고자 할 때 종교 활동이 사회적 유대 증진에 긍정적 효과를 발휘할 경우에 건강 증진 효과가 있는지를 묻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또 종교의 심리적 위로 기능은 잘 알려져 있는데, 심리적 위안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왔다. 이에 근거해서 종교 활동이 심리적 위안 효과를 발휘할 때, 건강 증진 효과가 있는지를 묻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종교를 과학적으로 비판하는 경우 '스켑틱'처럼 '각주구검'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덧> 
'종교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와 '종교를 갖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전혀 같은 문장이 아니다. 종교단체에 소속된다고 해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종교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응당 효과가 없을 것이다. 종교단체에 속해서 사람들과 반목하고, 죄악에 괴로워하면 좋은 건강도 망칠 것은 자명한 것이다.

불이 인간에게 유용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화를 입는다. 종교도 그런 '도구' 중의 하나로 본다면 쓰는 방식에 따라서 인간에게 이익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다룰 때, '종교 활동'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실험적인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느냐가 그것으로 결정된다.

※ 이 글은 '얼룩소'에 2022년 12월 3일에 게재했던 글이다.

댓글

  1. 좋은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스켑틱은 아마도 강한 환원주의나 물리주의적인 입장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자연과학적 담론/이론이 잘 적용되는 영역과 종교담론/이론이 그 제대로 된기능을 발휘하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한 영역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구요, 각각의 영역들이 어떤 존재의 스펙트럼 상에 동시적으로 구현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과 건강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다리뼈가 부러졌다면 각종 외과 수술도구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감기에 걸렸다면 알약 몇 알과 같은 생리화학적인 방법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심리적인 요인으로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그에 적절한 상담이나 종교적 조언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현대 과학으로 전혀 도울 수 없는 영적인 문제, 빙의(하지만 이는 DSM-5에도 수록이 된 것으로 압니다) 같은 것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는 종교적인 방법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외과적 처치, 내과적 처방, 심리 상담, 엑소시즘 등은 서로 모순되거나 배척적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단지 존재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상응하고 있을 뿐이죠.

    따라서 스켑틱의 물음과 이미 준비된 답은 다소 편협한 논리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언급된 프랜시스 골턴이란 인물이야말로 사이비 과학인 골상학을 연구하고, 역시 사이비적인 우생학에 크게 몰두한 사람이었죠. 여기서 과학주의(scientism)의 폐혜가 오히려 드러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보았어요.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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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omin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저는 자연과학적인 관점/방법론으로 어떤 인간의 종교적 특성의 경우는 잘 규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언어로 종교가 '비합리적인 것'으로 통상 재단되기 쉽지만, 진정한 과학적 시각으로 이 현상을 바라본다면, '왜 그런 믿음이 자연스러운지, 유물론적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지종교학'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트위을 넘어 이곳 블로그까지 고견을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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