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지구평평론자들이 지구를 평평하다고 믿는다고 '평평한 지구가 실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아이스블루님의 "귀신과 초능력은 없는게 아니라 사람이 모르는게 아닐까요?" 글에 대한 답변으로 아래 내용을 작성하였습니다. '이어쓰기'로 위 글에 붙이고자 했지만 해당 탭이 활성화되지 않아 부득이 원글에 이어쓰기를 했습니다.


                                                                             

https://aleteia.org/2017/10/17/why-is-satan-depicted-with-horns-red-tights-and-a-pitchfork/

신은 존재하는가?
악마는 존재하는가? 
천국은 존재하는가?
귀신은 존재하는가?

종교학 연구자로서

어떤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세상에 많은 신과 천국과 악마가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종교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종교(신화 및 전설 등 포함)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만, 종교학 연구자들은 교육과 학술활동 과정을 통해서 제법 많은 종교들의 세계관과 신관을 살펴보게 됩니다.

신을 인간과 비슷한 행위자로 상상하는 건 모든 사례들에서 공히 발견할 수 있지만, 신의 모습과 신이 사는 세상, 신과 경쟁하는 '사악한 신'의 모습이나 그들이 사는 세계(주로 지옥이죠)의 모습은 문화권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마다, 더 세세히 나눈다면 부족 수준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는 신, 사후세계의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그런 걸 이것저것 보아오면, 자연스럽게 그런 존재의 실재성을 믿을 수는 없게 됩니다. 물론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은 종교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요청되는 덕목이긴 합니다.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더라도 상대의 믿음을 존중해 주는 태도가 기본 소양이 되는 것이죠. 연구를 위해 실제 종교인들과 접촉해야 할 경우들이 많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종교인들은 당연히 '옳은 게' 있고 '그른 게' 있다고 가릅니다만, 그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니, '내로남불' 종교론이 되겠지요(나는 맞지만 넌 틀렸어). 종교학 연구자들의 일반적인 관점을 가치 상대주의에 불과한 태도라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만, 실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근대적 학문 활동의 기준점은 '휴머니즘 기반 윤리'와 '과학적 객관주의' 같은 것이겠지요. 때문에 종교에 대해서 '어떤 종교는 사교(邪敎)다', '이단이다', '사이비다', 이런 게 발 붙이기 어렵습니다. 그런 연구는 통상 특정 종교 배경의 연구라서 적어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종교학 연구라 하긴 어렵습니다.

종교학에서는 통상 종교인의 가치판단(믿음)을 판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특정 신앙 배경의 종교 연구와는 그런 점에서 차별점이 있습니다. 신적 존재에 대한 태도도 보통 '불가지론' 정도의 포지션을 취합니다. ('종교 전쟁'이란 책에서 종교학자--김윤성--의 시각을 참조해 보세요)

종교학에서 신의 존재를 규명하거나 논증하는 일, 초자연적 현상의 존재를 규명하거나 논증하는 일 등은 '학술적 가치'를 평가받기 어렵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과학적으로 종교연구를 하자면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귀신이나 초자연 현상이 존재한다'는 게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초자연적 현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존재한다는 건 사실이고, 그런 현상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초자연적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과학이 모든 존재의 증명을 위한 절대도구가 되진 않겠습니다만, 무언가를 '증명'하는 행위에 가장 탁월하며 신뢰할 만한 접근 방법이 과학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마지노선이 되지 않을까요?

나만의 기준이 아니라 누구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그러한 현상이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걸 확인한 후에야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과학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고,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했다고 믿는 사람이 존재하니, 그 현상은 존재해'라는 논리는 '초자연적 현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인정할 만한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울 겁니다.

지구 평평론자들이 지구를 평평하다고 믿는다고 '평평한 지구가 실재한다'고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을까요?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지만 실제로 지구가 자전하며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죠.

인간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종교와 관련된 현상을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려 할 때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설명이 되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인지 편향에 의해서 귀신과 같은 존재를 떠올린다는 이야기를 지난 번에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단순히 '착각'이라는 것만을 말하려 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현실감 있게 느끼는 것들이 우리의 진화된 인지체계의 특성에 의해서 너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틀린'(착각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귀신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지 편향(착각)의 산물이다'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를 우리가 믿는 게 아니라 너무 현실감 있게 느껴져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며, 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다양한 인지 편향의 효과로 설명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귀신 같은 건 없어, 믿지 마'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강요를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지구평평론을 과학의 언어로 비난하는 것도 그런 면에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저는 '과학적인 오류'라서 믿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고, 그 판단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믿음과 설명은 다른 차원의 문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개인의 선택 문제입니다. 개인 신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는 건 별개 영역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종교 현상을 '종교인의 기억, 발화'를 기준으로 다룬다면,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문화 현상을 이야기하게 되면, 그 이야기는 내집단의 자기 확증형 서사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해당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같은 층위에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후자의 이야기가 전자를 불가능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자의 이야기가 후자를 불가능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에 대한 믿음의 이야기와 과학의 이야기는 별개의 논리로 따로 있어도 나쁠 게 없어 보입니다. 양자를 뒤섞을 때 혼란과 불필요한 싸움이 빚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이 글은 '얼룩소'에 2022년 12월 19일에 게재했던 글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예수 가족의 무덤, '예수 신화'에 이야기를 더하다

 얼룩소에 2023년 8월 2일에 쓴 글입니다. *  *  * 최근에 『예수의 무덤: 역사를 뒤집을 고고학 최대의 발견』(2007)이란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무덤』의 표지(출처: 교보문고) 원제는 The Jesus Family Tomb: The Discovery, the Investigation, and the Evidence That Could Change History (예수 가족의 무덤: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발견, 조사, 그리고 증거, 2007)입니다. 이 책을 보고 '제임스 카메론'이 등장할 것을 알기는 어렵지요. 관련 논란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리 놀라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책을 펼치면 '추천의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이 제임스 카메론(캐머런)이었습니다. 『예수의 무덤』 17쪽, '추천의 글' 글쓴이 그런데 이 책의 문제 의식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역사학자, 성서학자의 '예수의 실존'에 관한 일반론에 대한 반박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물리적 증거(예수 가족의 무덤)가 심차 자코보비치(Simcha Jacobovici)와 찰스 펠리그리노(Charles R. Pellegrino)에 의해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전문가들이 예수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는 한다. 이교도들의 신, 죽음과 부활의 신화, 1세기경 유대인들의 메시아 전통 등이 결합되어 조작된 존재로, 예수 역시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처럼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가 크리스마스도 동지를 축하하는 이교도의 전통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한다. 동정녀 잉태와 부활 등 예수의 이야기에서 기본적인 틀을 이루는 많은 부분이 예수의 존재보다 적게는 수백 년을 앞서고 있기 때문에,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이유로 조작된 신화적 인물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이 땅에서 살았다는 물리적 증거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

태백산, 산당, 서낭당 그리고 사람들┃답사 후기

[2017년 6월에 태백산 일대의 답사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답사는 6월 3일부터 6월 4일까지. 후기 작성일 2017. 6. 7.] · · · 태백산에 다녀왔다. 천제단, https://www.khan.co.kr/local/Gangwon/article/202204281434001#c2b 난 답사를 싫어한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왜 가야 하나'에 적절한 답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학부 때는 '학술'을 가장한 MT같은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싶었는데,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그마저도 관심이 시들해졌다. '학'은 사라지고 '술'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또 굳이 갈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실제 답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답사에서 무언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박사수료 후부터 조금 달라졌다. 이제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재미가 있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역시 수준 높은 연구자들과 함께 가서 그런 것 같다. 혼자 갔다면 도저히 그곳의 이야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터다. ('자기 문제의식'이 명료화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것 같기는 하다) '산악신앙'은 상식적으로는 '원시신앙'으로 학술적으로는 자연신앙 내지는 마을신앙과 관련된 민속신앙으로 이야기된다. 고도의 신학적 이야기, 그래서 인생의 의미를 음미하는 따위의 것이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상당히 빈곤하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번에 태백산 답사를 가서, 거기에 '인간'을 들여다 보는 '어떤 창'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산은 '신성한 곳'이다 태백산 같이 높은 산, 주변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은 특히 그렇다. 그런 산들은 일단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위험'하다. 맹수로부터 목숨을 위협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높...

"뇌 회로는 친숙한 것, 중요한 것과 단순한 배경을 식별합니다."(논문 정리)

흥미로운 신경과학 연구 소개를 봤습니다. 친숙한 것과 중요한 것을 먼저 식별하는 뇌 경로에 관한 연구입니다. '신경종교학'에 참고가 되는 논문일 것으로 판단되어,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  *  * Brain Circuit Identifies What’s Familiar, Important, or Just Background┃Neuroscience News.com 요약 : 과학자들은 기억과 감정을 통합하여 감각 정보를 빠르게 평가하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뇌 회로를 발견했습니다. 내측후각피질(entorhinal cortex)과 해마(hippocampus) 사이의 이 직접 피드백 루프를 통해 뇌는 중요한 광경과 소리를 거의 즉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알려진 더 느린 경로와 달리, 이 회로는 관련 자극과 배경 소음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PTSD와 자폐증과 같은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발견은 뇌가 정보를 걸러내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감각 및 기억 관련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  익숙한 것을 한눈에 알아보는 뇌 회로, 해마의 비밀 우리는 왜 친숙한 얼굴이나 물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요? 반대로 처음 보는 것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곤 합니다. 이런 능력 뒤에는 우리의 기억 이 큰 역할을 합니다. 뇌의 해마(hippocampus)라는 부분이 과거의 기억을 보관하고 있다가, 현재 들어오는 감각 정보와 비교하여 이것이 익숙한지 새로운지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해마는 “이건 예전에 봤던 거야” 혹은 “처음 보는 거네”라는 신호를 뇌의 다른 부분에 보내 우리의 인식을 조절합니다. 이 덕분에 우리는 중요한 새로운 정보 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미 아는 것은 배경 소음처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해마는 특히 대뇌피질의 한 부분인 내후각 피질 (entorhinal cortex)과 긴밀히 소통합니다. 내후각 피질은 오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