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기독교화 된 동지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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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dependent.co.uk와 https://theconversation.com |
이런 말을 기독교인이 듣는다면 불경한 이야기로, 비기독교인이 듣는다면 '이교도 축제 카피캣'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로 들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교도 관습의 기독교화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하등 흥미로울 게 없는 이야기다. 새삼스러울 게 없을 테니 말이다.
또 크리스마스를 현대인이 기념하는 방식을 고려할 때, 적어도 지금 현실과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 현대에 와서는 기독교의 얼굴을 한 연말 축제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한 휴일, 연인을 위한 휴일 등으로 받아들여지며 인간관계의 '(재)결합'(유대감에서 성문화까지)을 유도하는 축제일로 향유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면에선 불경하고, 어떤 면에선 뻔한 이 관습은 역사적 변천을 겪으며 문화의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들을 나무의 나이테처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장 조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다. 지금도 이런 축제일 기념의 문화적 적합성을 유지시키는 인간의 (존재 지속을 위한) 필요에 관한 것이다.
거기에 가 닿기 위해서는 이 축제일과 관련된 다양한 설명의 층위들을 한 꺼풀씩 벗겨 들어갈 필요가 있다.
종교적 관습의 세 층위
종교적 관습을 우리가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려고 할 때, 사회적 권위를 가진 종교의 설명(주로 종교 내부의 정통 역사관에 입각한 설명)과 제일 먼저 만나게 된다. 문화 현상이라는 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 생각을 지배하는 권위를 지닌 설명, 종교의 교리에 입각한 설명은 외면하기 힘든 표준적 설명이 되는 게 당연하다.
이 표준적 설명은 문화 현상이 종교적으로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는 알려주지만, 해당 관습이 왜 만들어져 유지되는지는 설명해 주지 못한다.
또 종교의 설명과는 별도로 세속적 역사관에 입각한 설명도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시기(동지, 시간의 끝과 새로운 시작의 때)의 의례 행동이 문화-역사적 특수성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럽의 비기독교 민속신앙이 기독교적으로 전유 되어 만들어진 문화적 관습이란 설명에 머물게 만든다.
그런데 분명 크리스마스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근거들을 찾아보면, 이 축제가 기독교 시대에서조차도 동지 축제로 기념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크리스마스의 역사적 기원과 전개'에 대해서 다룰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뤄보겠다). 게다가 인류의 수준에서 동지 축제는 일반성을 확인할 수 있다(동지 축제를 기념하는 사례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 참고자료: 7 Winter Solstice Celebrations From Around the World).
크리스마스의 동지 축제적 성격, 바꾸어 말하면 크리스마스와 같은 연말 축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인간의 필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설명, 역사적 설명 외에도 인간의 진화된 본성을 고려하는 자연과학적 설명(인지진화적 관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의 종교적 관습 대부분은 이런 층위들을 가지고 있다. 이 층위들을 한 꺼풀씩 벗겨나가 보려고 한다. 먼저 '예수 탄생일 기념'이라는 외피를 벗겨보자.
예수의 탄생일?
이날을 기념하는 기독교적 이유는 '예수가 태어난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이것이 증명된 적은 없다. 게다가 이날이 기독교 역사 초창기부터 종교적인 중요성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말은 ‘Christ’와 ‘mas’의 합성어다. ‘그리스도+축일’,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예수 탄생일을 사람들이 기념하는 날이라는 의미겠다. 그런데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인지 알 수 있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성경에 예수의 탄생일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성서학자들은 12월 25일이 실제 예수가 태어난 날로 보지 않는다. 저명한 신약 성경 연구자인 조셉 피츠마이어Joseph Fitzmyer의 경우 기원전 3년 9월 11일로 추정한다. 학자들에 따라서 추정하는 날짜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12월 25일은 어떻게 계산되었나?
어떤 근거로 12월 25일이 나왔을까? 세계 창조의 날로 ‘춘분’을 고려한 추정으로 예수 탄생일 12월 25일이 나왔다. 신학적으로 올바른(?) 추론의 결과물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상상의 결과물이다.
성경의 창조가 시작된 날을 ‘춘분’(spring equinox)으로 생각하는 방식--시간의 출발점을 춘분으로 여기는 전통에 입각한 사고방식--에서 창조 4일째(3월 25일쯤), 빛이 만들어진 날에 예수가 잉태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9개월이 있다가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이다(12월 25일)(Encyclopædia Britannica〉Christmas).
신년 전후로 예수의 탄생일을 추정하는 전통은 그의 침례일(주현절, 1월 6일)을 기준으로 그의 탄생일을 기념한 전통에서도 확인된다. 그리스 정교회 국가들에서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하는 것은 그러한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 정교회에서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하는 것은 주현절을 크리스마스로 여기는 전통 때문이 아니라 역법이 다르기 때문이다(일부 정교회 국가에서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하는 것은 과거 정교회 전통을 잇는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 등은 로마 가톨릭이 만든 그레고리력을 쓰지 않고 여전히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현재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의 차이는 13일이 난다).
예수가 태어난 날보다는 예수가 죽고 부활한 날이 기독교에서 더 중요했다
초기 기독교사에서 예수의 탄생일 의례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순교자나 예수의 ‘생일’이 아니라 ‘순교한 날’이 진정한 기념할 날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종교적 가치로 보면 '죽음'이 더 중요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초기 교부들은 생일을 따지는 것을 이교적 관습으로 이해했다.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로 등장한 것은 221년 섹스투스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Sextus Julius Africanus, 3세기에 활동한 기독교 역사가, 성서 기록 기반 기독교 연대기를 만든 것으로 유명)에 의해서였지만(아마도 그의 책 《연대기》Chronographiai(221)에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 축일로 중요하게 여기진 않았다.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여기고 의례를 통해 널리 기념하게 된 것은 상당히 후대(9세기)의 일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수난일(성 금요일Good Friday,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 부활절 전 금요일)과 부활절(Easter, 예수가 부활한 날, 춘분 후 첫 보름달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함)에 비해서 중요도가 높지 않았다.
그러한 경향은 지금도 유지되는 것 같다. 부활절은 기독교인의 축일이지만 크리스마스는 이미 세속적 축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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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 신앙의 기독교적 전유(이교도 신앙을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으로 세탁했다)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설명과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이전의 역사와 대중화된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룰 생각이다.
※ 이 글은 '얼룩소'에 2022년 12월 17일에 게재했던 글이다.
긍정적 피드백 감사합니다. 저도 신뢰할 만한 reference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양한 웹 아티클, 사전, History.com 기사 등을 참조했습니다. '동지 축제'에 대한 착안은 인지종교학적 관점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어어, 이거 이상한데' 하고 찾아보다가 생각한 것이고요. 다른 신년 의례와 연결해서 '위험 예방 행동'과 관련시키는 지점에서 인지종교학적 논의와 연결시켰던 것입니다. 신뢰할 만한 reference가 확인된다면, 논문으로 발전시킬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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