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종교와 관련된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 입니다. 이런 질문이 제기되면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의 갑론을박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뭔가 시대착오적인 질문 같은 느낌입니다. 믿음의 문제가 사실의 문제로 오인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안될과학〉에서 '귀신 존재에 대한 과학적 증명' 문제를 다룬 바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HgA0Xlzdko당연한 결과를 확인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과학적으로 귀신(죽은 자의 영혼)이 존재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실험의 가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물질이라는 것이고, 물질이라면 질량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도 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분명, '그 가정이 틀렸다'고 하지 않을까요?
우리 마음 속 상상으로 떠올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것은 어딘가 어색합니다. 페가수스를 상상할 수 있다고 해서, 페가수스가 존재했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그러나 신이나 귀신, 유령,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늘 '존재한다, 아니다'라는 논란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너무 확신에 찬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분명 영적 존재나 사후 세계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상상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의도적 상상과 직관적 느낌의 차이
신이나 사후 세계를 믿는 것은 그 사람들이 '무지몽매'해서 벌어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믿음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신이나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뒷받침해 주는 건 아니고, 그런 대상들의 존재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페가수스 같은 상상의 동물, 기괴한 모양의 요괴들은 사람들이 그럴듯하게 상상한 결과물들입니다. 그림이나 영화 속 외계인의 모습도 그런 것입니다.물론 신들이나 귀신, 유령의 모습도 우리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집니다만, 그렇게 그려지기 이전의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의도적 상상이 아니라 우리 뇌의 오작동 혹은 인지 편향 때문에 생깁니다. 어두운 곳에서 유령이나 귀신 같은 존재를 떠올리는 게 그런 인지 작용의 결과로 이야기됩니다. 불확실성이 높은 어두운 곳(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곳 등)에서 사람들은 과도하게 '어떤 존재가 있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고, 그런 의식 때문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고 합니다.
또 뇌의 정보 처리 특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부정확한 정보가 주어지더라도 우리 뇌에서는 이를 보정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로 바꾸어 줍니다. 이런 특성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가 '몬더그린'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주로 외국어)을 익숙한 말(자국어)로 듣게 되는 착각을 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cipk8gsm_4청각적 정보만이 아니라 시각적 정보 처리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잘 확인됩니다.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서 a 이미지는 b로도 c로도 인식될 수 있습니다.이 그림에서도 A와 C는 어떤 것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형태가 다르게 지각될 수 있습니다. 모호한 정보에서 특정 정보를 잘 읽어내는 경향은 사람마다 조금 편차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C에서 할머니를 더 잘 보고, 어떤 사람은 소녀를 더 잘 봅니다.
'옷 색깔 논란'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착시 효과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누가 맞느냐로 뜨겁게 논쟁이 벌어졌었지요.어떤 사람들은 '흰금'으로 보고 어떤 사람들은 '파검'으로 봤습니다. 실제 의상의 색은 '파검'으로 확인되었습니다(참고기사). '흰금'으로 본 사람들이 '착시'를 일으켰다는 결론입니다. '흰금'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아마 이런 결론이 납득 불가일 겁니다. 뇌에서 보정해서 그렇게 인식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정말 '흰금'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신, 귀신 같은 존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 뇌가 그런 인식 결과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존재의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의 현실 감각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 그렇게 봤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필요의 맥락
사람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모두 '사실'이 되지는 못합니다. 애닐 세스라는 신경과학자는 '현실성'이라는 게 뇌과학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환각에 우리가 동의할 때 우리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전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뇌에서 만들어 내는 현실 지각이라는 것이 '환각'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환각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뇌에서 우리 몸을 통해서 들어온 감각 정보를 '그럴 듯하게' 재구성하는 과정이 거쳐진 그런 정보라는 점에서 '환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위의 옷 색깔 사례에서 '파검'이 특정 조명 조건에서 '흰금'으로 인식되게 만드는 효과입니다. 그 사례는 일부 사람들의 착각으로 치부될 수 있겠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착시 사례는 모든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배경을 지우지 않는 이상 A와 B는 다른 색으로 보입니다(실제로는 같은 색입니다).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은 물리적 현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뇌가 초자연적 존재(신, 영혼, 귀신 등)와 초자연적 세계(사후 세계 등)를 '잘' 떠올리게 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사람들이 공유할 때, 초자연적 존재나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 사이에서 잘 퍼질 수 있습니다.
어두운 환경, 위험한 상황 등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죽음'을 표상하는 초자연적 존재의 모습은 너무 현실감이 있었을 겁니다.귀신, 유령, 언데드 등이 죽음을 의인화한 존재로 여겨지긴 합니다만, 옛 이야기들 속에서 그들은 친족이나 마을 사람 같은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이승에서 미처 풀지 못한 한을 품은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무언가 미련을 갖거나 미안함을 갖게 되는 경우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아이를 둔 부모가 아이를 그리워하며 아이가 사후 세계에서만이라도 평안하기를 절실히 바라는 심정을 우리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때 아이의 '영혼'과 그 아이가 사는 '세상'은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누구도 그런 초자연적 존재와 세계를 떠올리는 마음을 '착각'이나 '값 싼 위로를 위한 망상'이라고 폄하할 수 없을 겁니다.
신, 영혼, 귀신, 사후 세계는 인간의 인지 방식의 특성, 살아가기 위한 필요, 사람들의 공감 속에서 '현실성'을 갖습니다. 물리적인 실재로서가 아니라 보다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생존 본능과 관련되기에) 마음 속에 '그려내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존재의 문제가 아닌 필요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 영혼, 귀신, 사후 세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그래서 그 존재 규명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인간의 필요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연구들이 점차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연구는 과학의 언어로 종교를 말살하려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종교의 세계가 왜 필요한지, 그것을 잘 활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8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이 글은 Skeptic Korea의 " 정신의학의 오래된 과제, 과학적 치료와 처방 "에 관한 얼룩소글의 출처를 체크하고, 정신질환 치료의 현실에 대해 박한선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정래해 본 글입니다. ─── ∞∞∞ ─── 최근에 나온 글인 줄 알고 찾아봤더니 전에 나온 글이군요. 마침 어제(1/27) 정신과 의사 출신 인류학자 박한선 선생님을 통해서 관련 이야기를 듣고, 글쓴이부터 찾아 봤습니다. 다른 저자인 걸 보고, 정신의학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박선생님께서 정신병 진단과 치료에 '정신분석학'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 했었습니다. 심리학계(실험심리가 중심이 된)에서는 배우지 않게 된 분야로 알고 있어서 의학 분야에서도 당연히 퇴출되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인지 모르지만, 효과가 있다'는 면에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정신분석학'도 프로이트, 융 시절의 버전이 아니라 많이 업데이트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부분은 과문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제 박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도 떠올라 흥미롭게 이 스켑틱의 글을 읽다가 문득 출처가 궁금해서 찾아 보니, '한국 스켑틱'에는 14권(2018년)에 "정신의학은 과학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로 실려있었습니다. (스켑틱에서 얼룩소에 올리는 글이 최근호에 실린 글이 아니라는 걸 이제사 깨달은 거죠) https://www.badabooks.co.kr/SKEPTIC_magazine/?idx=54 글은 14권의 68~83쪽에 실렸습니다. 이 글을 일부 발췌해서 재편집한 것이 위의 얼룩소에 실린 글이더군요.
요즘 핫하다는 '챗GPT'에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를 물어보았다. https://openai.com/ 나: 크리스마스가 동지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챗봇: 크리스마스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축제일이며 종종 북반구에서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와 관련이 있다. 동지는 보통 12월 21일 또는 22일 경에 발생하며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하는 것, 즉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을 표시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원래 기독교 이전의 동지 축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종종 태양의 재생과 낮이 더 길어지는 시기의 복귀와 관련이 있다. 고대 로마인과 고대 켈트족을 포함한 많은 고대 문화에는 동지와 태양의 귀환을 중심으로 한 전통과 축제가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및 종교적 영향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지가 축제일의 기원에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는 광범위한 종교적, 문화적 전통과 연관되어 현재 전 세계의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기념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에 대해서 비교적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지 축제와 관련성을 '논증'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보(동지 축제와 관련되지만 현재는 역사/문화/종교적 설명이 복잡하게 얽혀있다거나 복잡하게 변화했다)는 대체로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인지진화적 설명은 관련 문서가 부족하기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디테일이 부족한 것도 한계라 할 수 있겠지만, 간단한 답변으로서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챗GPT가 3문단으로 설명하는 것을 나는 A4 몇 페이지로 설명했던가. 대학 등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나 시험문제를 내줄 때 이제 안일하게 내면 AI가 답을 써주는 시대가 되어버린 듯하다. ─── ∞∞∞
‘크리스마스와 동지 축제’라는 타이틀의 시리즈물의 마지막 글이다. 이전 글까지 확인하려고 했던 것은 ‘크리스마스’가 동지라는 ‘시간의 마디’에 이루어지는 의례였고, 지금도 그 특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물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시간의 마디에서 인간은 왜 의례 행동을 하는가'가 될 것이다. 동지 축제의 주요 요소라고 할 만한 것들이 ‘주술-종교적 목적의 행동’이라는 점을 지난 글( 핼러윈, 크리스마스, 만우절의 공통점 )에서 언급했다. 팥죽과 주술-종교적 위험 회피 우리의 동지 축제 때 관습으로 ‘팥죽 먹기’가 있는데, 그것도 동지 축제에서 많이 보는 주술-종교적 행동이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풍습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을 보자.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 팥죽에는 축귀(逐鬼)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축귀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악귀를 쫓는 축귀 주술행위’로 팥죽을 쑤어 먹는다는 것이다. 이런 동기는 이 풍습이 관습화되면서 많이 약화되고 새해에 떡국을 먹는 것처럼 ‘한 살을 먹는다’는 의미 정도로 축소되었다. 세계 도처의 ‘동지 축제 풍습’, 또 신년 의례를 보면 시간이 변하는 시점에 귀신이나 악령이 출몰하고 이들로부터 인간이 액, 살과 같은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념이 폭넓게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한 모종의 행동(의례)을 수행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시간의 ‘경계’만큼이나 공간의 ‘경계’에서도 인간의 종교적 상상력은 활발히 작동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누석단이다. 영어권에서는 cairn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할 때 사람들은 민감하게 초자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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