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얼룩소 글(23.3.29)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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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영어에서 crossed fingers는 '행운을 비는 몸짓'으로 이해됩니다. 관용적으로 fingers crossed는 '행운을 빈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본래부터 이 제스처가 행운을 나타낸 건 아닙니다.
서양에서는 사다리 아래를 지나는 것은 불운을 불러오니 피해야 한다고 여기는데, 'crossed fingers'는 그 불운을 '막는'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간혹 '사다리 밑에서 행운을 얻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많은 경우에 '불운에 대한 회피'를 말하고 있습니다.
행운과 관련된 인간의 많은 행위들이 그 근원을 찾아보면, 방어적 동기의 행위인 경우가 많습니다. crossed fingers는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례입니다. 이 손모양이 가진 또 다른 함의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트루먼 쇼〉(1998)의 한 장면에서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이런 인간 행동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통찰력 있게 지적했습니다.
고대 종교의 발전 과정을 눈 여겨 본 사람들은 인류가 ‘부정한 것’으로 알고 체념했던 많은 것들을 신들에게 되돌리고 바로 그 신의 이름으로 자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인류가 부정한 것, 사회적으로 해로운 본능을 신들에게 되돌림으로써 이를 본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 '강박 행동과 종교 행위'(1907)
종교 혹은 미신적 행동이 도덕적으로 정당화 되기 어렵다는 윤리적 비판으로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crossed fingers와 관련된 인간의 근원적인 종교적 동기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춰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전자는 누구나 욕할 만한 일에 욕을 보태는 의미밖에 없지만, 후자는 인간이 향유하는 종교문화의 비밀을 탐색하는 흥미로움이 있습니다.
- crossed fingers의 기원 문제
손가락을 교차시킨다는 말이 '십자가(cross)'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이 손동작을 기독교와 연결 짓곤 합니다. 초기 기독교사에서 기독교인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제스처를 사용했고, 예수의 성화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이야기됩니다.
위 그림은 시나이 반도의 성녀 카타리나 수도원의 Christ Pantocrator*로 6세기 쯤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수 성화입니다. (*pantocrator는 '만물의 통치자', '전능자' 등을 의미하는데, 기독교 도상학에서 '예수에 대한 특별한 그림 양식'을 말합니다. pantocrator는 유대교의 God에 대한 여러 명칭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참고자료)
여기에서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가 약간 교차되는 모습을 보고 'crossed fingers'라고 설명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삼차원에서 시선을 옆으로 옮겼을 때, 손가락을 꼰 것이 아니라 검지와 중지를 약간 구부려 세운 것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고대 로마 웅변가의 손 모양에 대한 설명을 보면, 위 이미지의 좌 하단의 손모양으로 보입니다. 이런 걸 고려해 보면, 기독교와 연관시킨 설명은 그럴 듯한 사후적인 설명의 예가 될 것 같습니다. 기독교화 이후에도 서구인들이 해당 손 모양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의미가 덧씌워진 것 같습니다.
한편 'crossed fingers'의 기원을 다루는 많은 온라인 글에서 기독교 이전의 출처도 이야기합니다.
기독교 이전 시대에는 악을 물리치기 위해 (태양 십자가 모양 같은) 다양한 변형된 십자가에 소원을 빌었다고 합니다. 이후 한 사람이 소원을 빌면 두 사람이 서로의 손가락(검지 위에 검지)을 교차시켰고, 이는 결국 한 사람이 혼자서 손가락을 교차하는 것으로 발전했습니다.
- The Surprising History Behind The Double Meaning Of Crossing Our Fingers
이런 느낌일까요?
기독교 이전에 불운을 막기 위해 사용하던 손가락 제스처가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여기는 게 합리적인 기원 추정일 것 같습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행동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 일본의 '엔가쵸(エンガチョ)'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영향 관계인지도 따져 볼 필요가 있기는 하겠습니다.
여기서 살펴볼 예는 일본의 '엔가쵸'입니다. 영어권에서 crossed fingers를 말할 때는 엔가쵸(エンガチョ)를 말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일본 위키백과 'エンガチョ'를 보면 crossed fingers를 연결해 놓고 있습니다.
일본 민속을 모른다면, 이게 무엇인지 쉽게 감이 안 잡히실 텐데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의 한 장면을 떠올리시면, '아, 이걸 '엔가쵸'라고 했지'라고 바로 떠올리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중후반부에 치히로가 '하쿠'의 몸 속에서 나온 검은 벌레를 밟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러자 '가마 할아범'이 '엔가쵸(エンガチョ)'라고 말을 합니다.
하쿠에게 내려진 저주가 옮지 않도록 하는 의식 정도로 이해됩니다. 그렇게 볼 때 엔가쵸는 명백하게 '액막이 행동'입니다.
'엔가쵸'가 무슨 말인지 찾아보니, 어의적 설명은 '엔가'(エンガ)의 '엔'을 緣(엔)과 연관시켜 '더러움과 접촉'(穢れの緣, 케가레노엔)의 의미를 나타낸다고 하고, 쵸(チョ)는 쵼(チョン, '싹뚝', 자르는 소리(의성어))을 딴 것으로 '베다, 자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더러움과의) 접촉을/관계를 끊다'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신체에 부정한 것이 감염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는 추임새 같은 말과 그에 따른 몸짓. 배설물 등에 빠졌던 아이가 누군가에 접촉해서 부정한 느낌을 옮기려고 할 때, 주위의 사람은, "엔가쵸카기시메타(엔가쵸 발견(?))" 등의 말을 하고, 특별한 행동을 한다. 이렇게 하면 감염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엔가쵸는 두 가지 버전이 나왔습니다.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만든 원을 자르는 것, 양손 검지로 연결된 것을 자르는 것이 있습니다. 두 번째 버전을 보여준 건 생쥐로 변신한 '보우'였습니다.
이 외에도 버전이 다양하다고 하는데, 지역적 편차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버전이 다양하다고 하는데, 지역적 편차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인은 예로부터 손가락을 교차하는 것, 즉 '×'자를 만드는 것이 '액막이'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태어난 아기의 이마에 먹이나 홍당무로 '×'를 그리는 풍습도 있었다.
- https://plaza.rakuten.co.jp/pogacsa/
문득 '엔가쵸'의 역사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집니다. 너무 짧다면, 자생적 문화이기보다는 외래 문화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드니까 말입니다.
일본에서 '엔가쵸'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 그림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엔가쵸'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 그림이라고 합니다.
엔가쵸라고 하면 『헤이지 이야기 그림책』의 신세이권(信西巻)에 후지와라 도켄의 잘린 목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중에 특이하게 손가락을 맞잡고 있는 사람이 주목된다. 두 사람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우연이 아니라 엔가쵸적인 제스처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그렇다면 엔가쵸의 역사는 꽤 오래된 것이다.
- 위 트윗 내용
이 그림에서 '엔가쵸' 손 모양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은 'エンガチョ'(wikipedia)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지금의 crossed fingers와 유사한 모양입니다. 가마쿠라 막부 시기에 이미 해외에서 해당 제스처가 유입된 탓일까요?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만, 다른 문화 영역에서 서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데, 이것만 접촉을 통해 전파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 이 경우에 서구의 직접적 영향은 배제할 수 있지만, 불교의 전파를 통해서 설명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이 부분은 저도 잘 모르는 분야라..). 손 모양을 종교적 의미로 활발하게 활용한 종교 중 하나가 불교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수인手印). 그러나 아래 이야기가 전파론이 참이라고 해도 무의미한 설명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액막이 행동의 일반성
서양의 사례나 일본의 사례 모두 전형적인 액막이 행동입니다. 이런 면에서 인류의 일반적인 특성이 다른 문화권에서 나타난 사례일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만일 이러한 생각이 맞다고 한다면, 이런 행동의 일반성은 어디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crossed fingers'나 '엔가쵸'나 중요한 아이디어는 '접촉된 것을 끊어 낸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불운을 끊어 내고', '오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본능적으로 이런 식으로 행동하게 만든 위협이 있습니다.
바로 전염병입니다. 과거에는 병인론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병의 전염은 그저 '상상된 접촉 위험'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병인론이 아닌 불운/액운론이 병의 전염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설명 체계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무언가 (악귀 같은 존재에 의한) 연결이 불운과 병, 죽음으로 인도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위험 예방 행동은 종교적 특성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 공통의 위협에 비슷한 상상으로 대처했을 때, 우리의 직관적 상상(접촉 분리 → 끊어 내기)은 가장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신체를 활용해서 기본적인 (방어적) 대응 행동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았을 겁니다.
'연결된 것을 끊는다'는 것은 교차된 손가락을 떼 놓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죠. 인간의 주술적 사고방식이자 우리 뇌의 인지 방식 특성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cf. 미신의 과학(1): 미신을 떠올리는 마음).
이런 제스처가 실질적으로 전염병을 막는데 기여하진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마음 가짐은 다르게 만들었을 것이고, 위험에도 불구하고 생존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들어 줬을 겁니다.
- crossed fingers는?
'연결된 것을 끊어 낸다'는 것을 손 제스처로 잘 만든 사례들은 두 손가락이 접촉된 것을 떼게 하는 경우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이야기의 핵심 소재였던 '꼰 손가락'은 '끊어 낸다'는 의미가 두드러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표면적으로만 그렇지 않을 뿐, '꼬였다'는 것이 접촉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고, 이내 풀 수 있다는 것이 위험 접촉의 해소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 쉽게 납득되는 설명은 아닐 겁니다.
뭔가 다른 요인이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연구가 몇 년 전에 나왔습니다.
'손가락을 교차하면 통증이 감소할 수 있다'는 연구입니다.
이 실험은 가운데 손가락에 '통증 착각'을 만들고, 이 착각이 발생할 때, 손가락을 교차시키면 통증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증 착각'을 만들어 낸 방법은 "열 그릴 착각(thermal grill illusion)"이라고 합니다. 조직 손상을 야기하지 않는 따뜻한 온도와 차가운 온도를 검지(따뜻)-중지(차가움)-약지(따뜻)에 교차로 자극 하면, 중지에서 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위 실험은 통증이 신체적인 측면 뿐 아니라 심리적 측면(통증에 대한 뇌의 정보 처리 특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인데, 공교롭게도 crossed fingers의 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심리학적, 신경과학적 이해가 깊어지면서 마음과 몸의 연결성에 대한 이해가 바뀌었습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는 게 밝혀졌습니다(참고: The Mind Body Connection).
통증과 불안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본능적 행동이 어떤 위협으로 야기된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선택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증명을 위해서는 과학적인 실험이 필요한 사안이긴 합니다)
'crossed fingers'가 '심리적' 통증을 완화한다는 것은 사실이니, 이런 행동을 '미신이야'라고 치부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픈 갑작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군요. 물론 통증/불안 완화에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하진 않을 겁니다. 약간 마음의 고삐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요.
- 하나의 또 다른 결론
crossed fingers, 엔가쵸 사례는 '종교적 설명'이 실제 우리의 종교적 동기와 유리되는 측면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종교적 의미를 갖는 행동을 왜 하는지 설명한 것은 이미 그런 행동을 하고 있고 나서입니다. 관습화 된 행동의 기원을 우리는 역사적 자료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고려한 설명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성공적이진 않겠지만, crossed fingers/엔가쵸는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 설명하는 게 현상을 더 투명하게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미신적 행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진화-생존적 이익'이 고려된 행동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자연 선택'의 원리가 작동한 결과라는 점에서 인간의 의도적 선택이 아니라 생존한 인간이 어느새 그런 행동 전략을 용이하게 만들어 내는 '진화된'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crossed fingers나 엔가쵸 행동은 인간의 비합리성의 발로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인간의 무의식적 합리성의 발로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인간이 속한 자연의 합리성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그렇게 '우연히' 빚어진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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