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얼룩소 글(23.4.16)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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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와 북어, 출처: https://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30688, http://new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24408 |
비슷한 명칭이라 참 헷갈리는 복어와 북어, 저만 북어를 '복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더군요. 나무위키의 '북어' 설명 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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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 나무위키 |
'복어' 나무위키 항목에는 이런 정보가 붙어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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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나무위키 |
복어를 '북어'*라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북어' 발음이 더 어려워서일까요? 민속신앙과 관련해서 '복(福)'과 관련된 것은 북어입니다. 복(福)과 같은 발음을 사용하는 복어가 행운의 부적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북어는 일반적으로 '말린 명태'를 말합니다. 한자로는 '北魚'죠. '북쪽에서 온 물고기'라는 의미입니다. 황태와 구분하지만, 원래부터 구분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황태는 '더덕북어'라 불리는 북어 중의 최상품을 구분하는 명칭인 듯합니다). 이 명칭은 명태를 말린 형태로 유통하기 시작한 이후에 정착된 것으로 보입니다.종교적 관습(특히 미신으로 불리는)에는 '소리'나 '형태'의 유사성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숫자 4와 죽을 사(死)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숫자 4를 꺼림칙하게 여기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복조리는 소리가 아닌 행동의 유사성 때문에 복과 관련이 됩니다. 조리가 쌀을 일어 불순물(주로 돌)을 제거하는 것처럼 '복조리'는 복을 담을 수 있다는 연상을 한 것이죠. 그런데 '복어'는 '福'과 관련되지 않았습니다.
북어가 왜 행운의 부적 혹은 액막이 도구가 되었을까에 대해서는 제법 그럴 듯한 설명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북어'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이유를 제시합니다.
신에게 바치는 음식은 신성함이 우선이다. 특히 건조된 명태인 북어는 비린내가 나지 않고 건조 후에도 눈과 머리가 뚜렷해서 제 모습을 잃지 않기 때문에 관혼상제, 일반 제례, 고사 등에 빠지지 않고 올려진다. 또한 천지신명에게 바치는 음식은 어느 한군데도 버려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이 있는가운데, 명태는 한 부분도 빠짐없이 다 먹을 수 있는 물고기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게다가 머리가 크고 많은 알을 낳기 때문에 사람으로 치면 훌륭한 자손을 많이 두고, 많은 알처럼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기원을 담을 수 있는 대상도 될 수 있다. 무속에서 말하는 대수대명(代數代命), 즉 자신이 받을 재액을 남에게 옮기는 것과 관련해서도 북어는 건조된 모습이 마치 미라와 비슷해서 인간의 대용으로도 자주 쓰인다.
우선 신에게 바치는 제물의 속성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교식 제사상 차림에는 주로 대구포, 북어포 등을 올린다. 대구포가 북어포보다는 정성을 표하는 제물이다. 무속식 상차림에는 통북어가 오른다. 특히 굿상에서 적(炙)이나 생(牲)이 상위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면 북어는 하위의 신에게 바쳐진다. 이때 통북어는 반드시 눈알이 있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는 예부터 빛을 무서워하는 귀신을 쫓아내는 신성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항상 눈을 밝게 떠서 수행에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긴 사찰의 풍경(風磬)도 그러한 예이다. 전통가구인 괘, 반닫이, 뒤주 등의 자물통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것도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귀중품을 잘 지킨다는 의미이다.
상당히 여러가지 이유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알을 많이 낳는다', '건조된 모습이 미라와 비슷하다', '눈이 있는 북어는 귀신을 쫓는다고 여겨진다' 등입니다. 이런 설명만 보면, 원래 어떤 이유로 종교적 힘(행운, 액막이)을 가진 것으로 여긴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행운의 부적으로 쓰이게 되고 난 이후에 '왜 그것이 행운의 부적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라고 사후에 그럴 듯하게 만들어 낸 이유일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다른 행운의 부적들
행운의 부적이 되는 사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앞서 말한 '복조리'와 '북어' 외에도 소 코뚜레, 명주실 같은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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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액막이 도구 3종 세트(?),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146041 |
소 코뚜레를 검색해 보시면 '만사형통 액막이 소 코뚜레' 상품 광고를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이 산업화, 도시화 되면서 소의 사회적 상징성이 많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점점 잊혀져 가는 민속신앙입니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물건들이 행운의 부적/액막이 도구가 되었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힘센 소가 조그마한 코뚜레에 꿰여 도망가지 못하고 평생을 길들 듯, 집에 들어온 복이 평생 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붙잡아 둘 것이라는 믿음이 풍속으로 이어져 왔습니다(wadiz 상품 광고 중에서).
이런 사고방식을 주술적 사고라고 하며, 유형을 나눠서 이야기할 때, 접촉주술 혹은 감염주술(contagious magic)이라고 합니다. 접촉 혹은 인접한 것이 같은 속성을 유지한다고 여기는 관념을 말합니다. 소를 컨트롤 하려고 소의 코를 꿰어 놓는 도구가 소라는 가축의 여러 특성(근면, 힘, 부, 성공 등)을 가진 사물로 여겨지는 겁니다.
명주실은 일반적으로 장수(실의 길이)와 복을 붙잡는(실을 이용한 묶음) 역할을 한다고 여겨집니다. 주술 유형으로 유감주술(homeopathic magic) 혹은 모방주술(imitative magic)에 해당하는 발상입니다. 비슷한 것(실의 모양, 사용 방법)은 비슷한 결과(장수, 부, 행운 등)를 불러온다는 관념입니다.
해석은 '이현령 비현령' 같은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꿰어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운의 부적이 어떤 의미에서 행운을 불러온다고 혹은 액을 막아준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만, 왜 어떤 것은 행운의 부적이 되지만 어떤 것은 되지 않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설명은 아닙니다.
- 북어는 언제부터 행운의 부적으로 쓰였을까?
애초 행운의 부적으로 쓰인 시기를 알면, 복어는 안 되고 북어는 되었던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간단한 발상을 가지고 관련 연구를 찾아보니, 북어가 종교적 맥락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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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민정, 「조선시대 명태어장과 어로기술」, 『조선시대 해양환경과 명태』, 40쪽. |
위 그림은 조선시대 '무태어(無泰魚)'*와 '명태(明太)'의 어장 분포를 보여줍니다. 각각 역사 기록(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비변사등록, 각사등록 등)에 근거해서 표시한 것입니다. 이를 보면 어장이 남하하다가 북상하는 것을 대략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 '무태어'는 연구자들이 '명태'라는 이름이 유행하기 전에 사용된 이름일 것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만, 역사 기록만으로 이를 확정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명태'는 한랭 어종이라 수온이 차가워야 잡을 수 있다고 하죠. 요즘 한국에서는 명태가 나지 않아서 오오츠크해 등의 바다에서 원양어업으로 잡거나 러시아와 일본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합니다(수입량이 10배 정도는 더 많습니다. 2020년 수산물 생산 및유통산업 실태조사, 155-161쪽).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한반도 일대의 수온이 상승해서 한랭성 어종인 명태가 동해안까지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참고자료).
조선시대에 명태 어장이 남하한 이유는 16-18세기 소빙기 영향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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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lownews.kr/71299 |
그래서 조선후기 명태가 많이 잡혔고, 같은 시기의 기후 위기로 흉작이 드는 일이 겹치면서('여름에 명태가 많이 나면 흉년이 든다'는 의미의 속담이 있었음), 명태를 활용한 교환경제가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유통을 가능하게 한 것이 명태 가공법(동건법-말리기, 염장법-소금/고추가루)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냉장 보관이 가능했지만, 과거에는 부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먼 곳으로 생물을 옮기긴 어려웠지요.
명태가 많이 잡히는 곳에서, 농사가 흉년이 들면 이 명태를 유통 가능하게 가공하여 다른 지역의 곡식을 사는 데 사용하면, 기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8세기에 관에서 이런 식으로 교환경제를 활성화시켜 함경도 기후 문제로 발생한 흉작, 그로 인한 기근을 대처하고자 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북도감진어사** 홍계희(洪啓禧)에게 하달하는 명령 목록 중에서).
**감진어사: 조선 시대에, 기근이 들었을 때 임금이 지방에 파견하던 특명 사신. 기근의 실태를 조사하고 지방관들의 구제 활동을 감독하기 위한 것(표준국어대사전)
본도의 곡물 생산 방법으로는 다만 명태(明太)를 많이 교역하는 데에 있다. 명태를 혹 덕원·함흥 등에 쌓아놓고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영남으로 보내 쌀상인에게 권유해서 곡물을 싣고 들어오면 값을 감해서 고기를 팔겠다는 뜻으로 분명이 약속하고 쌀상인이 한 번 와서 이를 보고 가면 소문이 들리는 곳에 반드시 모두 모일 것이요, 또 본도에서 뱃삯을 후히 주어 연일(延日) 등으로 실어보내 쌀을 사게 하고 이어서 떼어준 곡물을 실어 머리와 꼬리가 서로 접하게 하면 이는 백성을 구제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므로 도신과 상의하여 하도록 할 것.
비변사등록, 영조17년(1741), 10월 26일
이렇게 명태를 말린 북어가 전국에 유통되면서 북어가 제사상에도 올라갈 수 있었고, 행운의 부적이 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 시작되었다고 딱 시점을 못 박을 수는 없지만 16세기 이후에나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 행운의 부적이 되는 조건들
소빙기라는 기후 위기가 한반도 동해안에서 명태를 많이 잡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말리는 가공법으로 북어가 탄생했고, 이 북어가 한반도 구석구석으로 유통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어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생선이 되었습니다. 제사상에도 오르게 되었습니다. 19세기 고종이 즉위할 즈음에는 왕실 공납품이 되었고, 궁인들의 월급에 사용된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대구가 비싸지고 북어가 싸서 공납 품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행운의 부적은 우리의 일상에서 구하기 쉬운 것(비싸지 않고 흔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장식물이라는 점에서 '마른 것', 그래서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도 기본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유통되는 다른 물고기와 차이가 큰 부분이 바로 이 점인 것 같습니다.
제사상에 오르게 되는 물고기도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외형이 온전한 상태로 말린 것이라는 점은 다른 생선들과 비교되는 특성입니다. (통)북어와 함께 참돔(도미), 황돔(벵꼬돔), 민어, 조기, 대구 등이 제사상에 오르지만, 북어를 제외하고는 외형이 온전하게 말려진 생선이 없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용하기 간편한' 특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소 코뚜레, 명주실과 비교를 해 보면, '일상 생활에서 구하기 쉬운' 특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교해 보면 '경제적 맥락'이 눈에 띄게 들어옵니다. 농경 사회의 재산 1호 소와 관련된 소 코뚜레(소보다는 저렴해서 구하기 쉽고, 크기가 적당해 집에 걸어 놓을 수 있죠), 농한기에 부업으로 농가 소득의 한 축을 형성한 잠사업(양잠/누에치기와 제사/실뽑기)의 결실인 명주실(역시 구하기 쉽고, 걸기 좋죠)입니다.
서민들의 일상에서 풍요와 부의 상징성을 가질 수 있는 산물이 이러한 행운의 부적이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물고기가 풍요와 부, 행운 등의 상징성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전근대 시기에 물고기 잡이는 그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 후기 기근이 들 때, 많이 잡힌 명태는 쌀을 사올 수 있는 교환 수단이 되어 주었으니 그 가치가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복어가 '福'과 연결되지 않은 이유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장기 보관이 용이하고, 많은 양이 유통되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직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 독이 있는 물고기가 복을 가져온다고 여기기는 쉽지 않았겠지요. 다만 '귀신 쫓기'와는 관련이 될 법도 하지만, 아무래도 말린 형태로 대량으로 유통되는 물고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종교 시장에서 채택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 더 생각해 볼 점
종교적 행동의 원초적 이유와 그럴 듯한 이유는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원초적 이유는 우리의 생존 환경의 제약 때문에 생기지만, 그럴 듯한 이유는 우리가 말이 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이 후자의 이유가 문화적 유행을 더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의 설득력이 높을 수록 많은 사람들이 채택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북어가 미라 같아서 사람을 대속할 수 있다든지, 눈을 뜨고 입을 벌리고 있어서 귀신을 쫓을 수 있다든지, 말랐기 때문에 오래도록 변치 않으므로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든지 하는 상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주술적 사고방식은 우리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누구나 쉽게 그러한 연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연상이 힘을 가질 수 있는 때는 삶의 많은 어려움들을 어떻게든 이겨내보고자 하는 절박한 생의 의지가 발휘될 때입니다.
보통 우리가 새로운 시작(집, 가게, 차 등)을 하게 될 때, 그러한 생의 의지가 활활 타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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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와 북어, https://www.ohmynews.com/NWS_Web/Mobile/img_pg.aspx?CNTN_CD=IA000319301,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rall80&logNo=221185340510 |
우리 일상에서 목격되는 민간신앙 관습은 보통 ‘종교문화’ 혹은 ‘종교’ 현상의 저 구석에 놓인 먼지 쌓인 별 가치 없는 골동품 취급을 받습니다. 너무 익숙하고, 별특별한 것 없고, 어떤 종교 교리상의 복잡성이 없는 것이라서 종교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굳이 세세하게 분석할 필요가 없는 현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간신앙 풍속 중에서 액막이도 그저 미신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민간신앙을 민속종교로 격상시켜 부르기도 하고, 인류의 기층 종교 문화로서 주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이 이슈는 가쉽성으로 다뤄질 수 있을 뿐 진지한 이야기 소재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민간신앙 풍속 중에서 액막이도 그저 미신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민간신앙을 민속종교로 격상시켜 부르기도 하고, 인류의 기층 종교 문화로서 주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이 이슈는 가쉽성으로 다뤄질 수 있을 뿐 진지한 이야기 소재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렇지만 액막이 관습 하나에도 우리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종교 문화를 만들어낸 인류, 좁게는 우리 선조의 종교적 상상력에 관한 풍부한 이야기거리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미신, 혹은 일상에서 일반 사람들(보통 비교양인?)이 별 깊은 의미가 없는 주술적 신행으로 격하시켜 생각하는 편견 때문에 그 이야기를 읽어내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 놓고, 발에 채는 종교적 관습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종교적 상상력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부경대 해양문화연구소, 『조선시대 해양환경과 명태』, 서울: 국학자료원, 2009.
특별감사:
'종교와 음식'이란 주제의 전문가이신 심일종 인류학 박사(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조언이 글 작성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핵심 참고자료(위 책)도 소개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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