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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애도 베일(Mourning Veil)

영국 여왕 조문과 장례식 때문에 요즘 관심을 받은 여성 조문객 패션이 '애도 베일(mourning veil)이다. 트위터 상에서는 영부인의 과도한 따라하기가 빚은 결례로 보는 시각이 퍼지고 있는데, 일부 언론 등에서는 과도한 해석이란 평가다.

해당 기사에서 "미국 폭스뉴스는 “모닝 베일은 왕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신문이 외신을 인용하는 방식을 고려하면 원문 확인이 필수겠다. 신문들은 외신 인용할 때 '기사 제목'이나 '링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수고가 들 수 있지만 이번엔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다.

폭스뉴스에서 "모닝 베일은 왕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Mourning veils, however, are not just limited to royalty." 그런데 그 다음 나오는 문장은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1963년 11월 워싱턴 DC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과 장례 행렬에서 애도 베일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First lady Jacqueline Kennedy famously wore a mourning veil during President John F. Kennedy’s funeral and funeral procession in Washington, D.C., in November 1963)"라는 것이다.

폭스뉴스 기사로 보면 '애도 베일'은 영국 왕족의 전유물이 아니고 다른 장례식에서도 쓰인 예가 있다는 취지의 말이다. 조선은 자신들 입맛대로 인용하긴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선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닌 듯하다.

항간에 떠돌듯이 '미망인만 착용'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BBC 등에서 '영국 왕실의 전통'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직계존비속만 애도 베일을 착용한다'는 배타적 규정으로 존재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조선에서 포착한 대로 다른 나라 정상 부인들도 애도 베일을 착용한 것으로 볼 때, 장례식에서 슬픔을 표시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직계가족들이 착용하는 예가 더 많은 것 같기는 하다.

다음 글들을 참고해 보면 좋을 듯하다.

Mourning glory: Two centuries of funeral dress (BBC)

What’s the Purpose of a Mourning Veil? (cake.com)

국외(영어 위키의 mourning veil)나 국내(네이버 사전 정보)나 '애도 베일'이 주로 미망인이나 망자의 여성 가족이 착용하는 것이라는 암묵적 이해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예(엘리자베스 2세, 케네디 재클린)처럼 검은 면사포로 머리를 완전히 감싸는 거라면 '망자 가족 전용'으로 볼 수 있겠지만 성긴 그물 모양(맨 첫 이미지)의 패션 아이템이라면 그런 분위기가 많이 약해 보이긴 한다.

반현정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놀림감으로 삼는 게 과해 보이긴 하지만, '애도 베일'에 대한 관성적 이해에 따르면 '틀린 드레스 코드'로 보일 수 있다. 친현정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반윤 사람들의 '가짜 뉴스'로 보일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영부인 의복 논란만 보아도 명확한 일이다. 전정부의 야당(국힘)이 김정숙 여사 의복 논란을 제기한 바 있다. 윤정부의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현 야당 지지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양지지자들이 '극단적 대립'을 이어나가는 상황을 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베일 논란'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  .

'애도 베일'의 유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은 대개 종교와 관련시킨다. 위에서 본 폭스뉴스 기사에서도 기독교 성경 구절이 언급된다.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를 밀어 버린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 11:4-5, 새번역)

종교적 교리는 '사후 정당화 논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역사적 기원보다는 실제 어떤 관념의 산물인지 따지는 것이 '기원'을 논하기에 더 적절해 보인다.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문화가 어떤 동기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비교 문화적 견지에서 생각해 보면 답이 명확해진다.

영문 위키의 설명 중에 "여노예와 창녀는 베일을 쓰는 것이 금지되었고, 그렇게 할 경우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여성이 남성의 배타적인 성적 소유물일 때 '베일 쓰기'가 적합하고 그 배타성이 없을 때는 베일은 부적절한 것이다.

애도 베일에 대해서도 양가적인 이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남성과의 단절(차단/보호)의 의미로서 여성의 정절과 성실성, 경건성을 드러내는 표시로 이해하는 게 하나고 다른 하나는 여성의 우아함과 성적 매력의 표시로 읽는 것이다.

문화적 코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될 수 있지만, 다양한 문화적 코드를 관통하는 생물학적이고 생태학적 코드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여성의 베일 쓰기에는 분명 후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례에서 종교 교리는 널리 퍼져 있는 믿음과 관념 및 관행을 '승인' 혹은 '정당화'시키는 장치로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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