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서양에서의)음수 수용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이너스)라는 개념이 중국에서는 기원전 기록에서부터 확인되고(BCE 200), 이것이 인도와 이슬람 세계를 통해서 유럽에 전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1800년대까지 이 음수는 수로서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이야기가 되지만 실생활에서는 경험해 볼 수 있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잘못된 수'로 이해했다고 한다.
꾸역꾸역 대응시켜 본 것이 '이익'과 '빚'으로 +와 -를 이해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경우는 (-1)x(-1)=+1 같은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익-빚 모델은 -(-1)=+1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이라고 한다. (빚이 1 있다. 채무자 -1. 채무자의 빚이 감소하는 것을 -로 표현할 때, -(-1)은 빚이 없어진 것이고 채권자는 다시 +1이 되므로 위 식을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유적 이해는 오로지 저 식을 '납득'해 보자는 취지이니 조건을 조금만 달리해도 현실의 문제와 수식은 불일치 한다. 가령 채무자의 경우만 보면 -(-1)이 아니라 (-1)+(+1)=0으로 생각할 수 있다.
(-1)x(-1)은 위치나 위상을 고려할 때 우리가 구체화해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지금 우리는 위의 문제를 수직선[수를 나타내는 직선]에 나타내서 이해한다.
수학자들조차도 현실에 대응되지 못하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수백 년이 걸렸고, 결국 낯선 개념이 일상에서 친숙해지는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이해 가능한 구체적인 개념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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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와 내가 관심을 가져왔던 '종교 개념사' 논의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종교'라는 말이 쓰인 사례들을 통해서 이 말의 개념이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새롭게 조명하려 한 나의 연구에서 중요한 착목점은 바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체화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종교'라는 말은 새로운 어휘였지만 한자문화권에서 익숙한 기준점은 그 한자 낱글자들이었다. 바로 '宗'(으뜸, 마루), '敎'(가르침)이다. 기왕에 '敎'는 성현/성인들의 가르침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표현이다. 그러니 익숙한 것으로 낯선 것을 파악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다.
한편 '종교'라는 개념의 새로움이 우리의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그것이 행정-법령의 공식 용어로 사용되고 그에 따라 일상의 제도적 형태(종교 단체, 건물, 의례 주기 및 양상 등)가 정비된 이후의 일이었다는 것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한국의 경우 빨라야 1910년대 중반의 일로 생각된다).
'다름'을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 그것은 '익숙한 무엇'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틀에 부합하지 않으면 '틀린 것'이 되는 것이고, 기존의 틀에 부합하면 그건 이미 알던 그것일 따름이다.
음수가 '잘못된 수'에서 '현실의 수'가 되는 변화에 '체감'이 중요한 것처럼 종교가 '이미 알던' 敎에서 '새로운' 宗敎가 되어 가는 데도 체감은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그리고 '체감'은 사람마다 다른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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