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NeuroscienceNews.com에서 '도덕적 환상'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도덕적 환상은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다. 올해(2022) 스웨덴의 린셰핑(Linköping) 대학에서 나온 '박사 학위 논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해당 논문의 일부(서론)는 여기에서 직접 다운로드 받아 확인할 수 있다.
경영공학과(department of management and engineering)* 논문이라서 그런지 논문이 길지는 않다. 전체 분량은 130페이지 정도다. 내용으로 볼 때 행동경제학 분야의 연구로 보인다.
공개된 버전은 '본문'이 생략된 것이다. 본문은 4개의 소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의 공동연구 결과물들이다.
소논문1
Kajsa Hansson, Emil Persson, Shai Davidai, Gustav Tinghög. 2021. Losing sense of fairness how information about a level playing field reduces selfish behavior.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 Organization, 190: 66-75.소논문2
Confident winners in a meritocratic world (출판 확인 못함)소논문3
Finding a moral excuse: How information about relative efforts affects selfish behavior (출판 확인 못함)소논문4
Voting and (im)moral behavior (출판 확인 못함)
핵심적인 메시지는 '이성의 진화(원제는 '이성의 수수께끼The Enigma of Reason'이다)'라는 책을 떠올리게 한다. (해당 논문은 이 책을 참고하지는 않았지만)
'이성의 진화'에서 '이성'이란 '이유에 관한 직관적 추론 능력'으로 정당화와 설득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진화된 인지 메커니즘(상위 인지 모듈)으로 설명한다. 이런 논의를 전제할 때 '도덕'이란 특정 집단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체계화시켜 놓은 공유된 이론으로 생각할 수 있다.
위 논문의 핵심 메시지, "도덕적 환상은 우리의 의사결정을 속여서 우리를 더 이기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이성의 진화'에서 말한 '이유'로서의 도덕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위 논문 저자 캬이싸 혼쏜(Kajsa Hansson)은 '착시(optical illusion)'와 '도덕적 환상'을 비교한다. "뇌가 누락된 정보를 채우려고 할 때, 착시 현상과 같은 방식으로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고 한다.
혼쏜은 배경 효과에 의해서 검은 점의 크기가 동일함에도 다르게 보이는 '델뵈프 착시'처럼 도덕적 환상도 우리의 의사결정 능력을 왜곡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교를 생각하고 있던 터(종교라는 착시?)라 더욱 흥미로웠다.
그런데 사실 '델뵈프 착시'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에빙하우스 착시'가 더 극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도덕적 판단은 공정성에 관한 정보가 명확하지 않을 때 특유의 환상을 형성하는데, 경쟁에서 이기면 시스템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데 반해서 질 때는 시스템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경향성을 보인다고 한다. 게임을 할 때, 우리가 지게 되면 룰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여기고(혹은 그런 이유를 찾게 되고), 이길 때는 자신의 실력이 좋았다고 여긴다.
종종 찾아보는 낚시 예능, '도시 어부'에서 항상 나오는 논란이 있다. '어황은 자리인가 실력인가'라는 문제다. 이것도 도덕적 환상과 비슷한 사고방식이 드러난 것이다. 물고기를 많이, 잘 잡은 이는 '자신의 실력' 때문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리가 나빴다'고 한다.
혼쏜의 설명대로라면 '공정한 경쟁'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ex. 물 밑을 알 수 없다)에서 결과를 우연이나 운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도덕적 환상의 기능론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혼쏜은 게임을 이용한 몇 가지 실험을 진행한다. 독재자 게임이 주로 활용된다. 다양한 상황에서 자원(돈)을 배분하는 행동을 보면서 인간 행동(혹은 마음)의 특징을 살피는 방법이다. 각각의 연구 질문을 서론에 정리하고 있는데, 이는 각각 도덕적 환상이 기능하는 잠정적 진로로 염두에 둔 것이다.
진로 1 (역풍/순풍 비대칭): 공평한 경쟁의 장에 대한 정보가 이기적인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진로 2 (귀인 편향attribution bias): 성공과 확신 수준이 재분배 선호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진로 3 (자기-이미지 관심사): 다른 사람의 노력에 대한 정보를 회피할 가능성이 이기적인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진로 4 (책임의 분산): 투표는 (비)도덕적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첫 번째는 경쟁의 공정성에 관한 정보가 공개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독재자 게임에서 재분배 양상을 살펴서 검토한다. 결과는 정보가 불투명할 때 '도덕적 환상'이 활성화되었다는 것, 승리할 때는 '공정한 룰', 패할 때는 '불공정한 룰'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경쟁의 공정성에 대한 '빠진 정보'가 있을 때 그 부분에 대한 도덕적 사유가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두 번째는 경쟁(퀴즈 풀기 혹은 컴퓨터로 하는 동전 던지기)의 결과가 투명할 때 독재자 게임에서 재분배 양상을 살피는 것이다. 무작위 결과로 승패가 결정될 때, 승자나 패자 공히 능력주의 신념을 비슷한 수준(아마도 낮은)으로 생각하는데, 승패가 투명하게 확인되는 경우에는 승자가 능력주의 신념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승패가 재분배 경향(승자<패자)을 결정하고 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확신 수준은 재분배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한다.
세 번째는 노력에 따라 보상을 받고 다른 참여자의 노력 정도에 대한 정보를 알거나 혹은 회피할 수 있는 경우에 재분배를 어떻게 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대체로 노력 정도에 따라 재분배를 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타인의 노력 정보를 회피한 그룹에서 재분배를 다소 적게 하는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확연한 차이가 아니기에 제한적 결과라고).
타인 정보 회피율이 도덕적 환상과 상관성이 있지만 이기적 행동과의 관련성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불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 자기 정보를 오픈하지 않는 경향성이 더 주목되는 것 같다. 이를 검토하기 위한 실험으로 이 연구가 적절했는지는 해당 소논문을 확인하지 않고 서론만 봐서는 판단이 좀 어렵다)
네 번째는 피험자들에게 자신을 위한 돈과 자선 단체에 대한 기부 사이에서 재분배를 결정할 때 투표 조건 또는 개별 조건, 즉 투표를 통해 집단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했을 때 재분배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큰 집단(49명)과 작은 집단(5명) 상태에서도 살펴봤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집단 결정을 내린다고 유의미하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연구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불확실성은 경쟁 승자의 이타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경쟁 공정성에 대한) 확신 정도가 재분배 선호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투표는 이기적인 행동을 조장하거나 책임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이런 내용으로 볼 때, 이 논문의 내용은 '이성의 진화'에서 이성의 기능을 이야기한 것과 호응이 잘 되는 것 같다. '이유'(도덕)에 관한 직관적 추론(이성 혹은 도덕적 추론)은 자기 정당화와 남을 설득하는 데 활용이 되며, 최적 퍼포먼스는 '집단 지성' 상황에서다.
저자는 착시와 비교를 통해서 도덕적 환상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어떤 수준에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설명한다. 실생활에서 이런 걸 이해하는 건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령 착시가 일어난다고 알더라도 델뵈브의 검은 원은 양자의 크기가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에빙하우스 착시 참고). 마찬가지로 도덕적 환상의 작용을 우리는 '끌'(off)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인간의 이런 편향을 이해하는 것은 '전략적 선택'의 공간을 넓힐 수 있다.
이런 이해는 종교에도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곧 풀어낼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하나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는 도덕적 추론 능력 일반과 도덕적 환상의 관계를 혼쏜이 명확히 해서 논의를 전개했다면 더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성의 진화'를 놓고 생각해 볼 때, '도덕적 환상'(혹은 도덕적 착각)이 도덕적 추론의 일반적 사고방식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해당 개념이 연구 질문·실험 등과 다소 괴리된 느낌이었다. 교통정리를 잘 해서 연구 결과를 보다 투명하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일반적인 논의 지평을 명확히 하고 왜곡된 버전이 만들어지는 것을 설명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다.
가령 이성의 진화에서 이성을 그 왜곡된 버전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이유에 대한 직관적 추론 능력'으로 일반화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작용 때문에 '어떤' 상황들에서 논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고 설명하는 식이었다.
도덕적 착각이 착시와 온전히 비교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추론의 일반적 특징을 규명하는 큰 줄기 안에서 해당 문제가 다뤄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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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연구자에게 낯선 린셰핑대의 경영공학과를 알아보자면, 국내 경영공학과나 산업경영학과와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학과인 것 같다. 린셰핑 대학의 경영공학과 학과소개에 이렇게 나와 있다.
우리의 교육과 연구는 경제 및 경영에서부터 기술과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강화하기 위해 혁신, 개발, 혁신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는 학과이다.
반면 한국의 상명대 경영공학과 소개는 이렇다.
경영공학과에서는 마케팅, 생산운영관리, 회계, 금융공학, 경영과학, 데이터 사이언스 등의 과목을 교육한다. 또한 조직관리를 위한 리더쉽과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한다.
린셰핑의 해당 학과는 경제학+경영학+공학 느낌인 반면 상명대 버전은 경영+기술과학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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