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찬 박사님을 따라서 참석하게 되었다. 귀차니즘의 노예라 웬만하면 학회에 잘 가지 않는데, 진화적 관점의 종교문화 연구를 펼칠 수 있는 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크게 발심을 해 보았다.
심포는 2022년 9월 24일 토요일 13시, 이화여자대학교 종합과학관 B동 102호에서 진행되었다.
학회측에서 제공한 지도는 위와 같았다. 이대에서 진행한 학회에 참여하는 건 아마 내 인생에서 이번이 두 번째였던 것 같다. 수 년 전인지 10여 년 전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대의 지형, 학교의 구조에 대해 이미지가 전혀 없었다.
이럴 경우 나는 지도를 기준으로 '가장 짧은 동선'을 찾는 편이다. 긴 동선을 선택할 경우 충분히 '부족한 운동'을 보충할 기회를 갖기도 하겠지만, 복잡한 길에서 가장 빠른 길 찾기를 일삼는 내 성향에 충실한 선택을 내렸다.
후문을 통해서 '별표'가 되어 있는 종합과학관 B동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가장 적게 걷는 방법은 물론 승용차로 가는 것이었겠지만, 주차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몰라 포기했던 터)
내가 계획한 경로는 저랬다. 실제로 가보니 이 경로는 '언덕'을 올라야 했다. 게다가 공사로 중간에 길이 막혀 있기도 했다.
실제로는 파란 경로로 움직여야 했다. 낯선 곳이었기 때문에 계속 지도를 보고 움직여야 하는 불편이 있었는데, 약학관 B동을 지나쳐 가고 있을 때, 우연히 좌측 인도를 빠르게 걷고 있는 한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뒷모습이 낯이 익었는데, 잘 보니 최재천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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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통성명을 한 적은 없지만 2002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심포에서 발표하셨을 때(당시 현장에서 뵌 건 아니었다. 해당 심포엔 참석하지 않았으니) 이후로 종종 학회 등에서 뵐 기회가 있었다. 최근에는 선생의 유튜브를 찾아 보고 있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나나 구형찬 박사님이나 '신앙도 정신 진화의 산물'이라는 시각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올해 1월에 배포된 컨텐츠, '인간이 신을 믿는 이유'. 마이클 셔머의 '믿음 엔진'을 언급하고 있어서 업데이트가 필요한 이야기이지만 자연과학자로는 유별나게 종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비판을 하면서도). 도킨스 같은 '회의주의적 무신론' 태도를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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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최선생님 뒤를 졸졸 따라가기로 했다. '한국진화학회 심포'에 가시는 중일 게 분명할 테니까. 종합과학관 B동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쫓아가지 않았다면 분명 D동 앞에서 헤맸을 것이다.
D동 입구에 이르러서 최선생님은 후다닥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아마 누군가 들어가면서 문이 열렸던 듯). 나는 느긋하게 뒤를 쫓았는데, 입구의 자동문이 닫히고 나서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웬걸 문이 열리지 않았다. 보안 조치가 되어 출입 카드가 없으면 열리지 않는 출입구였던 것이다. 서울대도 그런 식으로 하기에 낯선 풍경은 아니라 열린 출입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아다녀야 할 참이었다.
다행이 이대생이 한 명 와서 그에게 입구를 양보하고 뒤를 따라 건물에 진입할 수 있었다. D동 B1층이었다(응당 1층이라 생각함). 저 멀리 최선생님이 엘베로 향하는 걸 보았다. 거리는 이미 2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한 번 낭패를 보았지만 이제 건물에 들어왔으니 B동 102호야 어렵지 않게 찾으리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뒤를 쫓았다. 복도를 지나 모퉁이를 도니 'B1 엘레베이터' 앞이었다. 이미 최선생님은 올라가신 뒤. 아뿔싸...
D동 1층은 과연 B동 1층과 연결이 되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냥 엘베에 올라타 1층에 내렸다. 1층으로 나와 어디로 가야 B동으로 가나 싶었지만 지도의 기억을 쫓아 오른쪽으로 꺾어 걸으며 바닥을 보니 그 방향으로 '한국진화학회 심포장 가는 길' 화살표시가 되어 있었다. 채 5m를 가지 않아 좌측으로 꺾으니 B동 102호가 앞에 나타났다. 심포장은 이곳 '대형강의실'이었다.
식은 땀을 흘리며 등록 줄에 서니 노교수도 줄을 서서 등록 절차를 밟고 계신 게 보였다. 프리 패스로 들어가실 법도 하였지만 '순서'를 지키고 계셨다.
사전등록을 했던 터라 이름을 적고 이름표를 받아 심포 팜플렛과 '한국진화학 저널 1호'를 받았다. 해당 저널은 사실 '심포 자료집'이라 생각하고 손에 쥐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A4 사이즈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보통 학회 저널들은 단행본 책 사이즈(국판A5, 신국판A5) 아니면 그보다 약간 큰 사이즈(B5) 정도이고, 심포 자료집은 B5-A4 사이즈 정도이다.
진화생물학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대체적인 발표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정충원 교수의 타림분지 미라의 유전체 분석 연구 발표(관련기사, 해당논문), 강창구 교수의 동물 보호색 사용 전략에 관한 발표(관련자료)는 문외한이 듣기에도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나나 구형찬 박사님의 관심사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는 전중환 교수의 '진화 심리학'에 관한 소개 발표는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진화 행동과학 연구자의 설움, 진화생물학회가 아니라 진화학회로 이름을 정한 이유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인지종교학은 그의 말로 보면 '더 불쌍한' 위치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화 행동과학, 진화심리학 분야에서도 메인 스트림은 아니니 말이다.
그는 진화생물학계에서도, 심리학계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진화심리학자의 신세를 이야기했는데, 종교학계에서도, 자연과학계에서도 환영 혹은 인정 받지 못하는 인지종교학자의 신세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어서 아주 공감이 되는 발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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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진화생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물학계에서도 '진화 연구'가 바로 그러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같다. 이제야 한국에서 (생물)진화학회가 만들어진 것만 보아도. 그렇게 따지니 진화인지적 종교 연구가 이 위계의 사다리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암울하구만. 어쨌든 이런 지위를 '강요'하는 이슈는 '경험적 증거로 측정할 수 있는가', '얼마나 돈이 되는가'하는 문제인 것 같다.
기운 빠지게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더 기운이 빠지는 것이고, 배운다는 자세로 보면,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신승리를 위해서는 후자의 사고 회로를 따라야 할 것이다. 다행히 '통섭적 학문 분야'로 인지종교학 연구자가 끼여들 틈이 이 학회에 마련되어 있긴 하다.
(정관의 정회원 자격) 생물 진화학이나 이와 관련된 통섭적 학문 분야의 (석)박사학위소지자, 대학 전임강사, 연구소 선임연구원 또는 이와 동등한 자격이나 그 이상의 자격을 가진 자로서 독립적 학술 활동이 가능한 자
물질 데이터를 활용한 측정 방법론이 빈약하고, 해당 연구의 산업적 가치가 적기는 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으로 인간의 종교적 관념과 행동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한국 학계에서 유의미하리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진화학회에서 교류하는 일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인류학자들(박한선, 유지현)과 진화학회의 변방 연구자들로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점도 이번 학회 참석의 큰 수확이었다.
그런데 한국진화학회의 홈페이지가 만들어져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왜 검색이 안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직 공식 출범을 하지 않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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