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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임스의 책,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의 국내 번역본 문제

윌리엄 제임스의 책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의 국내 번역본은 2종이 있다. 한길사에서 나온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2000)과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나온 『종교 체험의 여러 모습들』(2003)이다. 한길사본(좌)과 대한기독교서회본(우) 최근에 두 책을 다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한길사본은 학부 때 읽은 적이 있긴 하지만,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서 완전히 처음 보는 느낌으로 읽었다. 당시에는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 이 책들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번역의 우열을 가리자면 기독교서회 쪽이 조금 더 낫지만, 대체로 기독교적 관점으로 내용이 조금씩 왜곡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한길사본은 장별로 번역어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같은 챕터 내에서도 번역어가 달라서 어리둥절한 경우가 제법 있었다. 도저히 한 명의 역자가 번역한 책으로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다. 한 책은 번역의 기본도 갖춰지지 않은 느낌이고, 다른 한 책은 특정 시각의 왜곡이 가미된 번역이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두 책 모두 윌리엄 제임스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명백해 보인다. 종교심리학 분야의 대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이 국내에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한길사에서 나온 엘리아데 책, '종교형태론'의 경우도 번역에 문제가 많아 종교학 학술서 번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서를 대조해 가면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윌리엄 제임스는 원조 인지종교학자'구나 하는 것이었다. 제임스는 '종교 정의'라는 복잡하고 답 없는 논의를 회피하며 personal religion에 주목하여 그 심리적 차원만을 살피고자 한다. 그러면서 종교적 경험/체험의 최고봉으로 이야기하는 신비 체험을 살핀다.  해당 경험을 한 사람들의 반응 혹은 그들에 대한 다른 사람의 기록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그 경험의 '주관적 현실성'

리마커블2 사용 후기 - 연구자들에게는 좋을지도

40대에 들어와 슬슬 노안이 오다 보니 '눈부심' 없이 논문이나 pdf로 된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e-ink tablet을 찾아봤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reMarkable2였다. 사전조사로 선택(2,3년 전쯤부터 이 태블릿에 주목했다)한 이유는 1. '종이에 쓰는 것 같은' 필기감 (필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전자 메모장이 있었으면 하긴 했다. 무언가 구상을 하며 낙서한 것을 컴에 저장해 놓을 필요성이 있었기에) 2. 디자인이 심플하다 (계속 써야 하는 기기니 디자인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정도였다.  ebook(epub만 가능), pdf를 e-ink로 볼 수 있으면서 그런 조건을 만족한다니 이게 좋겠다 싶었다. 검토 과정에서 후기들을 보니, 결론은 '극악의 가성비 및 사용성 제약' 때문에 "비싼 메모장"으로 불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건 큰 장애물은 아니었지만, 구입을 주저할 만한 이유는 되었다. 더 신경 쓰였던 문제는 해상도였다. 컴퓨터로 메모한 것이나 그림 그린 것을 확대하면 해상도가 좋지 않게 나온다는 지적이 있었다(사실 사용해 보니 그런 건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 같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개선한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컴터로 봐도 매끈하게 나온다). 리마커블2에 메모한 것 pdf로 내보내기 해서 pc로 확대해 본 결과(색깔 쓰기도 된다) 필기구 형태, 글씨 두께, 색깔(검, 회, 백, 파, 빨)을 변경할 수 있다  해상도 문제가 개선되길 기대하며 reMarkable3가 나오면 사보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길 2,3년의 시간이 흘러, re3가 나올 기미도 없고, re2를 사서 쓰다가 re3가 나오면 갈아타자 싶어서 주 초에 '중고나라'를 통해서 re2를 샀다. (신품은 너무 비쌌다. 마커, 커버 등을 갖추니 80만원이라니. 이건 아내의 결재를 받기 불가능했다) 그렇게 싸지도 않게(40) 중고를 구매했다. 커버와 마커

교육 혁신 추세 속에서 인문학(종교학) 교육을 고민하며┃"미래의 교육, 올린" 강연을 듣고

서울대는 첨단융합학부를 신설하기 위해서 잰걸음을 걷고 있다. 아직 그 영향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과거 교육 패러다임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문제 의식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라고 있다. (관련 정치적 배경은 논외로 하고) 우연히 '미래의 교육, 올린'이라는 강연 소식(학내 '전체 메일'로 받음)을 보고, 대학 교육 혁신 바람 속에서 종교학 관련 수업을 어떻게 혁신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해당 강연에 참석했다. 교육 혁신에 대한 공감대를 높일 목적으로 기획된 것 같은 일련의 강연들이 진행되었다는데, 내가 인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마 강연자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눈이 갔던 것 같다. 안내 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기초교육원에서 '첨단융합학부 및 학부대학 신설'과 관련하여 특강을 진행합니다. 최근의 화제작인 "미래의 교육, 올린"을 집필하신 LG전자 조봉수 상무님을 모시고, 학생 주도, 경험 중심의 새로운 교육 방식에 대한 특강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내가 주목한 정보는 '첨단융합학부', '특강', '미래의 교육', 'LG전자', '상무'였던 것 같다. 강연장에서 강연 타이틀이 책 제목인 걸, 사업단에 참여하는 후배를 통해서 인지했다. 그리고 '올린'이 혁신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올린 공과대학'(Olin College of Engineering)의 이름이란 것도. 강연 내용은 '공학 교육'에 초점이 맞춰졌고, 산업과 연계된 교육에 적용해 볼 수 있는 혁신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과연 인문학/종교학 수업에 적용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 ∞ ─── 현재 LG에서 AI빅데이터 CDO(Chief Digital Officer, 최고 디지털 책임자) 자리에 오기까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의 오류를 출판사에 문의했었다

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에 대한 리뷰글을 썼었다. 거기에서 내가 발견한 책의 오류 몇 가지를 정리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에 관한 포스트 이 이야기가 출판사에 전달될 리가 없으니(내 블로그 글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포털에서 제대로 검색되지 않는다),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문의하기'로 관련 내용을 전달을 했었다. 아마 한 두 달 전이었을 것 같다. 이제는 그런 문의를 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해당 문의글은 다음과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을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그런데 보다가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문의드립니다.   1. 35쪽 하단의 '증언 전문'과 '지도 원본', 206쪽에 실었다는 것은 어디에 있는지요? 원본 누락인가요? 번역본에서 뺀 것인가요? 관련 내용을 온라인 상에서 공유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혹은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요?   2. 156쪽 "그러나 먹구름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단락 밑에서 4번째 줄, "관측자들은 그레이트 갤버스턴 허리케인이 상륙하기 1900일 전에 이를 예측했으나 ..."라고 하는 문장은 오역으로 보입니다. "관측자들은 1900년 갤버스턴 허리케인이 상륙하기 수일 전에 예측했지만, ..."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3. 128쪽 뉴욕 재개발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부분의 지도 설명을 하는 부분에서 "① 인우드: 맨해튼에 마지막으로 남은 부담 가능 지역이 리조닝되자 주민들은 들고 일어났고 재판에서 이겼다."라는 문장에서 '리조닝'이라는 표현이 어색해 보입니다. '구역 재조정'이나 '용도 지역 변경'으로 번역하는 게 낫지 않았을지요?   아울러 개정판 계획이 있는지 문의드립니다. 그런데 어제 출판사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문의에 대한 답변만 옮겨보면.. 1.

"2023 문화/과학 x SeMA 공동 포럼: AI는 생성하는가" 참여 후기

트위터(x로 바뀌었다지만, 아직은 편한 대로 부를 참)를 통해서 포럼 소식을 들었다. 부랴부랴 신청을 했지만, 이미 방청 가능한 120명은 넘긴 상태였다. 아마도 참여는 어렵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변심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나 보다. 27일에 참석 확인 문자를 받았다. '기대를 안 해야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어쨌든 그래서 7월 29일 토요일에 포럼 방청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찍길래, '인증샷'을 위해서 찍어 봤다. 식민지 유산이 이렇게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었던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인생 첫 방문이었기에. "2023 문화/과학 x SeMA 공동 포럼: AI는 생성하는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https://sema.seoul.go.kr/kr/whatson/event/detail) 전체 포럼 주제보다도 2부 주제에 눈이 갔다. "AI와 창작의 미래". 예술 분야의 분들은 AI 환경에서 창작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1부는 '문화/과학' 114호의 특집 원고를 쓰신 분들의 발표였고, 2부는 패널 토론이었다. 1부의 프로그램을 미리 숙지하지 못한 상태였고, 발표자들은 빽빽한 글이 담긴 ppt로 발표를 하고, 게다가 준비한 것이 너무 많아 시간을 넘겨 부랴부랴 정리하며 발표를 해야했기 때문에, 발표 내용을 쉽게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나중에 114호의 글들을 읽어 봐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의도치 않은 '저격'이 될 것 같아, 모자이크 처리했다. 인문학 연구자들이 ppt 발표를 할 때, '프리젠테이션의 금기 사항'(글자가 많으면 안 된다)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1부 순서에서 눈에 띄었던 부분은  1부 세 번째 발표자였던 하승우 선생님(서울시립미술관 ' 행사안내 '에는 「머신 비전과 새로운 사회

과학적으로 '종교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학술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KAIST 인간의기원연구소 1회 학술대회의 주제로 '종교의 기원'이 다뤄진다.  나도 프로그램 기획과 발표자로 참여하게 되었다(2발표). 프로그램 정보 진화인류학자, 심리학자, 종교학자가 모여서 '종교의 기원', '과학적 종교 연구'에 대한 다양한 주제의 발표와 강연을 진행한다. 구형찬 박사와 나는 '인지종교학'(Cognitive Science of Religion) 연구자로 참여한다. 구형찬 박사는 인지종교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종교 행동과 관념을 소개한다.  발표 요지: 종교적 사고와 행동에 횡문화적 보편성과 다양성이 나타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와 인지체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이 질문에 답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나는 과학적으로 종교를 연구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연구 대상의 문제(종교라는 개념)를 다룬다. 과학vs종교의 흑백논리나 과학적 호교론(종교 정당화)을 넘어서 인간의 종교적 행동과 종교문화를 과학적으로 다루는 것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서도 다룬다.  발표 요지: 종교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운 이유는 '종교'라는 대상이 잘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들의 한계를 살펴보면서, 과학적 종교연구를 위해 종교 정의 측면에서 넘어야 할 장애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여기까지가 1부이고 이어서 2부는 조셉 불불리아(Joseph Bulbulia)의 특별 강연이다. 그는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지종교학, 종교심리학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세계적인 학자다. 불불리아는 종교적 행동과 감정이 인간의 친사회적 행동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다양한 심리실험적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이번 강연에서도 그러한 자신의 연구를 소개해 줄 것으로 보인다. 3부 1발표로 박한선(진화인류학/신경인류학)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진화생태학적 관점에서 종교성의 개체 간 차이를 설명해 준다.  발표 요지: 종교는 종 특이적 보편 현상이지만

『한국교회 트렌드 2023』 읽기┃종교문화 트렌드 읽기에 참고, 그러나 영어 남발은...

사회조사 데이터와 디지털 데이터(+소셜 데이터)를 활용해 종교문화의 변동을 설명하는 데에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관심사 때문에 눈이 갔던 책이 바로 『한국교회 트렌드 2023』이었다. 데이터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가가 궁금했다.  물론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지향 자체가 종교 시장에서 무언가 실행 가능하고 효과적인 선교나 목회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기에 이 책은 일종의 교회 목회 실용서라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데이터를 활용해 종교문화 변동을 알아본다는 데에 어느 정도는 충실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하겠다. 목차 서문 1  박재범(희망친구 기아대책 미션파트너십부문 부문장) 서문 2  지용근(목회데이터연구소 대표) 01  Floating Christian  플로팅 크리스천 │ 지용근(목회데이터연구소 대표) 02  Spiritual but Not Religious  SBNR │ 김영수(목회데이터연구소 연구위원) 03  Hybrid Church  하이브리드 처치 │ 조성실(소망교회 부목사) 04  Molecule Life   몰라큘 라이프 │ 정재영(실천신학대원대학교 교수) 05  Active Senior   액티브 시니어 │ 손의성(배제대 기독교사회복지학과 교수) 06  MZ   쫓아가면 도망가는 세대, MZ │ 전병철(아신대학교 교수) 07  All-Line Education   올라인 교육 │ 이기룡(장로회[고신] 총회교육원 원장) 08  Public Church   퍼블릭 처치 │ 백광훈(문화선교연구원 원장) 09  Polarization of Church, Survival Ministry   격차 교회 서바이벌 목회 │ 김영수(목회데이터연구소 연구위원)(?) 10  Climate Church   기후 교회 │ 유미호(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의 센터장) 11  Current Trends in American Christianity   미국 기독교 트렌드 │ 김신권(아주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미주 부록 (저자

The E of the Temple at Delphi(1925)의 요약

'너 자신을 알라'(ΓΝΩΘΙ ΣEΑΥΤΟΝ, gnothi seauton)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델포이 신전과 관련된 종교문화의 흥미로운 이슈를 여럿 발견했다. 그 중의 하나가 '델포이 신전의 E' 문제다. 베이츠(1925)는 E가 아폴로 신앙 이전의 대지모신과 관련이 되며, 델포이 성소의 신이 대지모신 gaia 혹은 Themis에서 아폴로로 대체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Bates, William Nickerson, 1925, " The E of the Temple at Delphi ," American Journal of Archaeology , 29(3), pp. 239–246. -. 1세기에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입구에 '너 자신을 알라'와 함께 문자 E가 쓰인 3개의 모델이 있었다(나무, 청동, 황금 버전). -. 플루타르코스가 한 대화편에서 이 E에 대한 7가지 설명을 제시했다. -. 그 내용은 E와 관련된 그럴 듯한 상상일 뿐이다. 플루타르코스는 그 비밀을 알지 못했다. -. 새로운 각도(고고학적 발굴 유물)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 페르낭 쿠르비(Fernand Courby)가 발견한 델포이 신전의 옴팔로스에 새겨진 문자를 E Γã(e ge)로 볼 수 있다. -. 이 옴팔로스는 기원전 7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부분은 논란이 있다. cf " '델포이 신전의 작은 옴파로스'는 옴파로스가 아니다? " ] . -. 델포이의 신전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아폴로 신이 숭배되기 전에도 신성한 곳이었다. -. 파우사니아스(약110-약180)가 반복적으로 (아폴로 신탁이) 본래 대지의 신탁(an oracle of Earth)에서 유래했다고 했다. -. 파우사니아스가 인용한 옛 시에 대지[가이아]와 포세이돈이 일반적으로 신탁을 관장하는 것으로 나온다. -. 대지(Earth)는 신탁을 테미스(Themis, 정의가 신격화된 신, 티탄 12신 중 하

84번가의 연인(84 Charing Cross Road, 1987)을 왜 보게 되었을까

 앤서니 홉킨스가 나오고 책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라서 그냥 '넷플릭스'에서 보게 된 영화. '체어링크로스 길 84' 쯤이 적절한 번역일까? '84번가'면 '84th Avenue/84th Street'을 떠올리니 말이 되지 않는다. '연인'이라는 표현의 경우 연애물로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확실히 '낚시' 제목이다. 오역과 낚시성 제목이 만나서 이런 제목이 된 것이다. 내용상으로는 '애서가bibliophile와 중고책상의 편지로 쌓은 우정' 쯤이 적당하겠지만, 멋진 제목은 아니다. 뉴욕에 사는 무명 작가가 싼 중고책을 구하기 위해 대서양 건너 영국의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하면서 한 작가와 중고책 거래상의 펜팔이 시작된다. 그리고 20년 간 우정을 이어나간다는 이야기. 아마 이런 식으로 설명했으면 더 안 볼 영화지 않았을까? 상당히 심심한 영화다. 영문학에 관심이 있고, 1949-1968년까지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의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넷플릭스' 라인업에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 그러나 근래 넷플릭스로 끝까지 본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였다. 액션, 호러, 로맨스 영화든, 일본 애니메이션이든 요즘은 뭐든 끝까지 볼 수가 없다. 유튜브 요약 영상들마저도 끝까지 보지 못하게 되었다. 흥미를 끌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왜 그런 정신상태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들이 뻔하다고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이 '84번가' 영화를 보고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 보단 그들의 편지, 그 편지의 문장, 편지로 매개된 삶, 그리고 그들의 나이듦을 그냥 편안하게 봤던 것 같다. 이 영화를 찍었을 때 밴크로프트는 54세쯤, 홉킨스가 48세쯤이었던 것 같다. 비슷한 연령대 연기자의 연기가 편안하게 다가왔던 것인지도

종교학 공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읽기

혼자 책을 읽을라 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미루기 마련이다. '디지털 종교학' 관련 글을 쓰려고 샀다가 책장에 고이 모셔만 놨었는데, 같이 공부하는 세미나팀에서 이번에 읽기로 해서, 묵힌 숙제를 털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지리적 정보만 보여주는 지도가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결합시킨 지도, 부제가 표시하듯이 '세상을 읽는 데이터'가 덧입혀진 지도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데이터가 지리적 지도에 표시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데이터 시각화 사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이 책은 코로나19가 전지구적 전염병으로 떠오르던 시기에 마무리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 분위기를 머리말에서 느낄 수 있다. 영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시각화 지도로 시작한다. 머리말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지리정보학) 제임스 체셔(James Cheshire)에 의해서 쓰였다.  서문 은 이 책을 만들게 된 핵심적 아이디어를 참조가 된 메시지와 연구 사례를 통해서 제시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다음 말로 장이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것 에 관하여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고, 비교적 확실하게 그 존재를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려면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만. -게르하르트 리히터 MIT 학생 케이티 보먼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블랙홀 촬영,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실험도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 눈으로 확인한 사례로 언급한다.  그렇지만 서문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참고 사례는 바로 자연철학자 훔볼트가 시도한 지도 시각화 사례였다. 실제로 그 작업을 구현한 것은 하인리히 베르크하우스였다. 훔볼트는 그에게 "전 세계 식물과 동물의 분포, 강과 바다, 활화산 분포, 자기 편각과 복각, 자기에너지 세기, 바다 조류, 기류, 산맥, 사막과 평원, 인종 분포, 산 고도와 강 길이 등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 달라고

얼룩소에서 글쓰기 4개월, 공부인 '중년의 위기' 극복 프로젝트

순수하게 글만 써서 소득을 얻은 것은 처음이다. 강의나 연구재단 과제 말고는 순수하게 글만 써서 돈을 쥐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고 보니 가끔 청탁 원고를 쓴 기억이 있긴 하다. 그걸 제외하고 '내 의지를 가지고 내가 문제를 설정해서 쓴 글', 그러니까 블로그에 썼었을 글로 돈을 번 것이 처음이다. 얼룩소 글쓰기는 정말 충동적으로 갑작스럽게 시작하였다. 공부를 같이 하는 대학원생 친구가 블로그에 글 쓸 거면, 얼룩소에 쓰면 원고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다. 아, 생각해 보니, 글 생산자 모집 공고가 있었다. 그 공모에 참여해 보려는 것도 소소한 동기가 되었다. 물론 도전 결과는 탈락이었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글과 그쪽에서 '시장성' 있게 볼 수 있는 글과는 거리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공부하는 자의 글쓰기라는 한계가 있으니까. 아니, 내가 가진 콘텐츠의 한계일지도, 아니, 내 사고방식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글로 돈을 버는 것은 사실 주 목표는 아니었다. 그러나 동기부여의 요소는 되었던 것 같다. 1타 2피의 부수적 이익으로. 최소 1주일에 글 1개는 써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잘 지켜온 것 같다. 논문 작업으로 바쁠 때는 1주일에 1개를 썼지만, 여유가 되면 2개, 많으면 3개를 쓰기도 했던 것 같다. 확인해 보니 12월 말 쯤에는 1주일에 6개까지 쓰기도 했다(크리스마스와 동지 축제 글이 길어졌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4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작성글 39건, 원고량은 원고지로 1,500매는 넘기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정도를 더 써야 책이 묶일 수 있을지는 아직 감이 없다. 버릴 거, 축약할 거, 새로 써야 할 거를 고려하면 3,000매 분량 정도면 계산이 서지 않을까 싶다. 주 목표는 원고를 모으는 것이었다. 책을 만들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 나면 써야지라고 생각하니 원고가 잘 써지지 않았다. 소소한 동기부여 요소지만,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니까 애초 책을 기획했을 때는 생각해 보지

만우절 장난과 빙의의 관계

원글: 만우절 장난과 빙의의 관계│놀이와 주술적 사고 핵심요약 만우절은 신년 의례에서 기원했다. 신년 의례에서 빙의를 가장하여 귀신/유령 속이기 풍습이 존재한다. 귀신 속이기에 대해서는 다음의 영상을 참고하라. 귀신/유령 속이기는 '귀신 달래기'처럼 불운, 액을 막는 '예방 의례' 기능을 한다. 장난과 거짓말은 귀신을 속이기 위해 '귀신으로 가장'(빙의된)하는 연극과 관련된다. 장난과 거짓말은 액땜과 소규모 공동체의 해원과 관련된다. 자세한 내용은 본 글을 참고.

종교문화 연구에 뇌과학을 어떻게 활용할까? - 2023 서울대 뇌주간 행사에 다녀와서

 뇌 주간 행사가 오랜만에 열려서 참여하게 되었다. 여러 순서 중에서 눈이 갔던 것은 '뇌파의 원리와 활용', '합리적/비합리적 의사결정'이었다. 종교문화 연구에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이 다뤄질 걸로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3시부터 참여해야지 하다가 당일날 '내 머리 속의 내비게이션'도 흥미롭겠다 싶어서 시작할 때부터 듣게 되었다. 전체 주제는 '대중강연'에 맞춰서 '일상 속의 필수 뇌기능 지식과 활용법'이었는데, 거기에 초점이 맞추어진 강연은 첫 번째 '뇌에게 자연스러운 학습법'이었다. 이인아 선생님과 이상아 선생님 정도가 중고생들과 학부모를 염두에 두고 강의안을 만든 것 같았다. 특히 이인아 선생님은 '학습'에 포커스가 맞춰졌었다. 이 강연의 하이라이트는 유튜브로 공개되어 있다. # : 블로그에 정리하며 추가한 내용 * : 메모해 놓은 연구 질문들 ① 강연-뇌에게 자연스러운 학습법- 에 대해 메모한 것 '연합 학습 - 같이 활성화된 신경에 의해 정보 전달이 이루어진다' * 이런 정보 처리 특성은 주술적 사고방식과 관련될 걸로 보인다. '일회성 이벤트에 대한 기억은 해마(hippocampus)가 담당하며, 기억은 골자만 저장하고, 인지 지도가 있으며, 상상과 공감을 담당한다. 훈련에 의해서 해마 사이즈가 변할 수 있다. ' ex. 런던 택시 기사 연구 사례. # 아마 이런 연구 사례를 말했던 것 같다. https://www.pnas.org/doi/10.1073/pnas.070039597 '반복적 이벤트, 절차 기억은 기저핵(basal ganglion)이 담당한다.' key point: 반복 숙달이 필요한 정보와 일회적으로 접한 정보 학습을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 ② 강연-내 머리 속의 내비게이션- 에 대해 메모한 것 해마의 인지 지도에 대한 내용 생존을 위한 길찾기를 해마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