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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소에서 글쓰기 4개월, 공부인 '중년의 위기' 극복 프로젝트


순수하게 글만 써서 소득을 얻은 것은 처음이다. 강의나 연구재단 과제 말고는 순수하게 글만 써서 돈을 쥐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고 보니 가끔 청탁 원고를 쓴 기억이 있긴 하다. 그걸 제외하고 '내 의지를 가지고 내가 문제를 설정해서 쓴 글', 그러니까 블로그에 썼었을 글로 돈을 번 것이 처음이다.

얼룩소 글쓰기는 정말 충동적으로 갑작스럽게 시작하였다. 공부를 같이 하는 대학원생 친구가 블로그에 글 쓸 거면, 얼룩소에 쓰면 원고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다. 아, 생각해 보니, 글 생산자 모집 공고가 있었다. 그 공모에 참여해 보려는 것도 소소한 동기가 되었다. 물론 도전 결과는 탈락이었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글과 그쪽에서 '시장성' 있게 볼 수 있는 글과는 거리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공부하는 자의 글쓰기라는 한계가 있으니까. 아니, 내가 가진 콘텐츠의 한계일지도, 아니, 내 사고방식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글로 돈을 버는 것은 사실 주 목표는 아니었다. 그러나 동기부여의 요소는 되었던 것 같다. 1타 2피의 부수적 이익으로. 최소 1주일에 글 1개는 써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잘 지켜온 것 같다. 논문 작업으로 바쁠 때는 1주일에 1개를 썼지만, 여유가 되면 2개, 많으면 3개를 쓰기도 했던 것 같다. 확인해 보니 12월 말 쯤에는 1주일에 6개까지 쓰기도 했다(크리스마스와 동지 축제 글이 길어졌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4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작성글 39건, 원고량은 원고지로 1,500매는 넘기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정도를 더 써야 책이 묶일 수 있을지는 아직 감이 없다. 버릴 거, 축약할 거, 새로 써야 할 거를 고려하면 3,000매 분량 정도면 계산이 서지 않을까 싶다.

주 목표는 원고를 모으는 것이었다. 책을 만들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 나면 써야지라고 생각하니 원고가 잘 써지지 않았다. 소소한 동기부여 요소지만,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니까 애초 책을 기획했을 때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소재들이 계속 떠올랐다. 지금도 모니터에는 포스트잇으로 10여 개의 글감이 쌓여있다.

글쓰기는 그냥 내가 아는 것을 쏟아내는 작업은 아니다. 자료 조사가 필요하기도 하고, 관련 분야 연구를 들여다 보기도 해야 했다. 그래서 공부도 되고, 연구 아이디어도 얻게 된다. 일석이조를 노린 것이지만, 실제로는 일석오조, 육조도 넘는 것 같다(최근에 모 잡지로부터 원고청탁을 받기도 했다). 공부를 업으로 삼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글쓰기와 공부가 취미가 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인 것 같다. '문송'이 인문대 박사라고 없을 수는 없으니, 이를 통해서 밥벌이를 하는 게 자존감이 높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재밌는 일'이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 같다.

생산성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작은' 목표를 세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최소 1주일에 1개의 글(A4 3-6매 사이)을 쓴다'는 기준을 세우고 용돈을 버는 상황이 썩 괜찮았다.

40대에 들어와서 지나 온 인생과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김없이 내가 지금까지 이룬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고작 종교학 박사를 받은 게 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면, 견디기 힘든 자괴감에 빠져든다. 이러려고 공부한 것은 아닌데, 그래도 생활해야 하고, 그러면 배운 것으로 그저 밥벌이 하기 급급하고, 그러면 그럴 수록 공부의 재미는 없어진다.

행복하지 않은 삶이다. 재밌는 공부도 하지 못하고, 성취한 것도 없다. 여기에서 맞닥뜨리는 것이 어떤 삶의 회의감과 짙은 불안이다. 나는 그것을 '중년의 위기'라고 부른다. 자리를 잡지 못한 내 또래들이 대체로 같은 불안을 공유하는 것 같다. 사람은 날카로워지고, 생산성은 떨어진다. 공부는 타성적이고, 연구는 자기 복제에 머문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다고 해서 문제를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되진 않는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지 않는가. 자기 문제가 되었을 때는 어쩔 줄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소극적이게 되기 쉬운 것 같다.

그래서 되도록 심플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중년의 위기'에 대한 진단이고 자시고 간에 생존 본능에 따라서 몸부림을 쳐보자고. 재밌는 것들, 그러면서도 몇 년 후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들에 전력투구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 큰 줄기는 내 공부의 자기 효능감을 만드는 것이었다. '응용종교학' 같은 약장수 사짜 같은 주제를 떠올린 것도 그런 이유다. 이 시대의 문제를 호흡하며 공부를 지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높이는 자기 최면도 필요했다. 그때 마침 얼룩소의 보상 체계가 눈에 들어 왔고, 용돈 벌이로 정당화하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4개월을 달리고 나서, 종교학계 선후배를 만나면 '얼룩소에서 활동해 보라'는 전도 아닌 전도를 일삼고 있다. 자기 기분에 빠진 우둔한 짓인 줄은 알지만, '이거 괜찮은 전략인데'라는 판단이 앞서다 보니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게 되는 것 같다.

4개월, 얼룩소의 보상체계에 대해서 느낀 점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정된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보상체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 길이 없다. 내 경우에는 초반에 보상이 많았던 것 같다. '얼룩pick'이나 '오늘의 얼룩소(투데이)'에 걸리면 보상이 좀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조회수, 좋아요 수도 관련이 되는 느낌이고, 신규 가입자 유도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는 느낌이다.

조회수, 좋아요 수 대비 보상은 괜찮은 느낌이다. 별로 반응을 얻지 못하면 거의 밥값 정도고, 호응을 조금 얻으면(얼룩pick이나 투데이 리스트에 실리면) 한 두 주 밥값은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지표가 단순히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만 신경 쓰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기 위해서, 호응을 얻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글을 써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계속 생각하게 해 주는 점도 괜찮은 요소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글쓰기에 익숙해지면, 논문 글쓰기에서 빈틈이 생기긴 한다.

요즘 논문을 써서 내면, '무슨 책 쓰냐?' 이런 핀잔을 종종 듣는다. 학술논문에 적합한 진중하고 공식적인 표현을 쓰도록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내심 청신호라는 생각도 든다. 논문에 적합한 글쓰기는 논문 통과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전공 분야 외의 전문가나 일반 대중에게 이해한 바를 쉽게 설명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능력이 출중하다면야 논문 문체와 기타 다른 글쓰기 문체를 자유자재로 구사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능력은 애초 없는 것 같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잘 포착해서 개선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접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글은 쓰면 쓸수록 '모자란 부분'이 명확해지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고 싶은데, 계속 쓴다고 해서 그게 쉬이 고쳐지지는 않는다. 어색한 문장, 비문 남발은 잘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 문제다. 어디든 글을 쓰고 3,4교를 해도 이상한 문장은 계속 눈에 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눈에 띄는 대로 고치지 뭐, 이렇게 쉽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나중에 책을 만들 때는 뛰어난 편집자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응답을 받기를.


덧>

얼룩소 커버 이미지의 문구는 'imagined line, imagining line'인데, 종교적 관념이 '경계'에서 빚어진다는 인식을 표현한 것이다. 인간의 종교적 특성에 대한 내 공부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경계성'에 모아지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종교적 특성과 종교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혹은 신성하게 여겨온 '경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혹은 다시 그려내는 데 있는 것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설프지만, 굳이 만들어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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