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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번가의 연인(84 Charing Cross Road, 1987)을 왜 보게 되었을까

 앤서니 홉킨스가 나오고 책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라서 그냥 '넷플릭스'에서 보게 된 영화.

'체어링크로스 길 84' 쯤이 적절한 번역일까? '84번가'면 '84th Avenue/84th Street'을 떠올리니 말이 되지 않는다. '연인'이라는 표현의 경우 연애물로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확실히 '낚시' 제목이다. 오역과 낚시성 제목이 만나서 이런 제목이 된 것이다. 내용상으로는 '애서가bibliophile와 중고책상의 편지로 쌓은 우정' 쯤이 적당하겠지만, 멋진 제목은 아니다.

뉴욕에 사는 무명 작가가 싼 중고책을 구하기 위해 대서양 건너 영국의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하면서 한 작가와 중고책 거래상의 펜팔이 시작된다. 그리고 20년 간 우정을 이어나간다는 이야기. 아마 이런 식으로 설명했으면 더 안 볼 영화지 않았을까?

상당히 심심한 영화다. 영문학에 관심이 있고, 1949-1968년까지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의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넷플릭스' 라인업에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

그러나 근래 넷플릭스로 끝까지 본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였다. 액션, 호러, 로맨스 영화든, 일본 애니메이션이든 요즘은 뭐든 끝까지 볼 수가 없다. 유튜브 요약 영상들마저도 끝까지 보지 못하게 되었다. 흥미를 끌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왜 그런 정신상태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들이 뻔하다고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이 '84번가' 영화를 보고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 보단 그들의 편지, 그 편지의 문장, 편지로 매개된 삶, 그리고 그들의 나이듦을 그냥 편안하게 봤던 것 같다.

이 영화를 찍었을 때 밴크로프트는 54세쯤, 홉킨스가 48세쯤이었던 것 같다. 비슷한 연령대 연기자의 연기가 편안하게 다가왔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요즘은 내가 비슷한 연령대를 위아래 10년 쯤은 잡는 것 같다).

책 이야기, 문장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편지를 읽으며 대화하는 듯한 모습 등이 정겹게 느껴졌다. 주인공처럼 책 읽기를 사랑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봤다. 문장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문장이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지려면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다. 갖지 못한 능력에 대한 동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앤서니 홉킨스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걸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의 미묘한 미소, 대사를 전달하는 톤에서 느껴졌던 위화감이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는 것 같다. 그게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캐릭터의 특징처럼 느껴졌으니까.

보라고 추천을 하진 못하겠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잔잔한 평안을 느꼈을 뿐. 

책과 커피와 담배, 타자기와 독수리 타법, 그리고 문장의 음미, 아련한 추억의 느낌이 좋았다.

영화의 한 장면, 그녀의 책상에는 타자기, 한 잔의 음료, 재떨이 위 담배가 놓여져 있다. 그녀는 독수리 타법으로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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