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념의 역사적 변천
인류 역사에서 ‘종교’라는 개념은 보편적이거나 자명한 것이 아니며, 근대 이전 사회에서는 명확히 분리된 범주로 존재하지 않았다(Before Religion: A History of a Modern Concept).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의 religio 같은 용어도 오늘날의 “종교”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으며, 주로 경건한 의례나 의무를 뜻했다.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는 정치·사회 질서와 영적 실천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고, 신성과 속계의 구별도 희미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중국이나 유럽의 중세에는 우리가 현대적으로 말하는 ‘종교’라는 분절된 영역이 존재하지 않았다(Living in the Chinese Cosmos).
신앙과 제의는 일상과 통치 구조에 깊이 통합되어 있었으며, 따로 구분된 “종교” 영역은 근대 유럽의 산물이라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지적이다(Before Religion).
근대 학문에서의 ‘종교’ 개념 형성은 17~18세기 유럽 계몽주의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등장했다. 계몽주의 이전까지 유럽에서도 “참된 종교”와 “미신”을 구분하는 신학적 논의가 있었으나, 계몽주의와 과학혁명을 거치며 ‘종교’는 ‘세속’과 대비되는 하나의 범주로 재구성되었다(Before Religion).
유럽 지식인들은 기독교를 보편 모델로 삼아 전세계의 신앙 전통들을 하나의 분절된 범주(“religion”)로 묶기 시작했다.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 Smith)는 그의 저서 『종교의 의미와 목적/종말』에서, 현대적 의미의 “종교” 개념이 서구에서 발명된 것이며 보편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일찌감치 지적했다(The Meaning and End of Religion).
다시 말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신앙과 의례를 가져왔지만 이를 하나의 추상적 범주로 통칭하여 인식하는 방식은 근대에 형성된 사유의 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브렌트 농브리(Brent Nongbri)도 “정치, 경제, 과학과 별개로 ‘종교’만의 독립된 영역이 있다는 생각은 유럽 역사에서 최근에 등장한 발상”이며, 근대 유럽인들이 자기 개념을 다른 사회와 과거에 투영한 결과 오늘날 종교가 마치 언제나 있었던 자연스러운 범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Before Religion).
요컨대 ‘종교’ 개념 자체의 역사성을 인식하면서, 그것이 근대 이전 시기에는 분화되지 않았던 관념임을 밝혀내는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다.
19세기 식민지 시대와 비교종교학의 탄생과 더불어 학자들은 전세계의 신앙 전통들을 분류하고 보편 개념으로서 ‘Religion’을 정의하려 했다. 그러나 곧 학계에서는 이 개념의 보편성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나타났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르러 근대적 학문 분과로 종교학(Religious Studies)이 성립했지만, 거기서 다루는 ‘종교’의 정의와 범위는 매우 서구중심적이었다는 반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 개념사에 대한 연구는, 특정 시대와 문화권에서 무엇을 종교로 규정하고 무엇을 그렇지 않다고 여겼는지를 역사적으로 검토하면서, 우리가 당연시하는 종교 개념이 실은 특정한 시대적 산물임을 보여준다(「「宗教」概念の形成――近代から見える現代の課題」).
서구 전통에서의 'religion' 개념과 그 비판
서구에서 “religion” 개념은 주로 기독교 전통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다. 라틴어 religio는 원래 신에 대한 경외와 의례적 의무를 의미했으나, 종교개혁과 계몽주의를 거치며 “기독교”를 모델로 한 보편 개념 Religion으로 발전했다(「宗教」概念の形成).
특히 프로테스탄트 전통은 종교를 내면의 신앙(믿음)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러한 개신교적 정의가 서구 학자들에 의해 일반화되어 ‘모든 종교는 교리적 신앙체계’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탈랄 아사드(Talal Asad)는, 인류학자나 종교학자가 사용한 ‘종교’ 정의들조차 특정한 기독교 역사에 뿌리박은 개념임을 지적한다. 아사드는 “종교가 본질적으로 상징적 의미체계이며 보편적인 기능을 갖는다”는 관점 자체가 서구 기독교의 산물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개념을 보편적 정의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교에 대한 보편적이고 초역사적인 정의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정의 자체가 역사적으로 특정한 담론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Notes on Talal Asad and Clifford Geertz on the Study of Religion). 이처럼 서구 학자들조차 자신들이 쓰는 ‘종교’ 개념의 기원과 한계를 반성하며, 종교에 대한 보편 정의 시도가 가진 함정을 폭로했다.
조나단 Z. 스미스(Jonathan Z. Smith)는 나아가 “종교란 학자들의 상상 속에서 구축된 범주일 뿐,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데이터는 아니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스미스는 다양한 문화에서 종교적이라고 불릴 만한 방대한 자료들과 현상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한 데 묶어 ‘종교’라는 보편 범주로 명명하는 것은 학자의 비교와 일반화 작업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유명한 언급을 빌리면, “종교란 학자의 연구실에서 창조된 것”이며 “학계 밖에는 종교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Jonathan Z. Smith on the Definition of Religion). 이는 곧 연구자가 무엇을 종교로 간주하느냐에 따라 대상이 구성된다는 뜻으로, ‘종교’ 개념의 자의성과 인위성을 지적한 말이다.
실제로 서구의 비교종교학은 한때 기독교, 불교, 이슬람 등을 동등한 ‘종교’로 분류하면서도, 토착신앙이나 민속신앙은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거나 미신으로 여기는 편향을 보였다. 스미스나 아사드 같은 학자들의 비판은, 이러한 범주화 과정이 지닌 권력관계와 임의성을 드러내어 종교 연구의 자기반성을 촉구한 것이다(Seiwert 2020; Notes on Talal Asad and Clifford Geertz on the Study of Religion).
러셀 T. 맥커천(Russell T. McCutcheon)과 티모시 피츠제럴드(Timothy Fitzgerald) 등도 서구 학계의 ‘religion’ 개념을 해부하며, 종교학이 흔히 종교를 특별하고 자율적인 것으로 가정하는 오류를 비판했다.
피츠제럴드는 특히 “학자들이 책과 논문에서 생산하는 방대한 종교에 관한 데이터는 사실 하나의 신화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기능을 할 뿐”이라고 지적하며 (Seiwert 2020), ‘종교’와 ‘세속’을 구분하는 담론 자체가 근대 서구의 이데올로기임을 역설했다.
다시 말해 ‘종교’라는 학문적 범주가 실제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기보다, 서구의 특정한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Critical Religion이라 불리는 비판적 입장은, 종교학이 다루는 대상과 개념을 끊임없이 역사적으로 반성하면서, 서구 중심의 보편 개념을 해체하려는 흐름을 대표한다(Seiwert 2020).
한편, 이런 비판에 대해 인지과학적 종교연구 진영은 “개념이 인위적이라 해서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예컨대 “어떤 문화에 ‘종교’라는 특별한 말이 없다고 해서 실제로 그들에게 종교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인데, 이는 뒤에 인지종교학 논의에서 다시 언급될 것이다 (Seiwert 2020).
요컨대 서구의 ‘religion’ 개념은 기독교 신학과 근대 세속주의의 산물이며, 초기 종교학에서 그것을 보편 개념으로 삼는 데 따른 문제점들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탈랄 아사드, J.Z. 스미스, 맥커천, 피츠제럴드 등의 논의를 통해, 종교 개념이 결코 중립적이거나 보편적인 틀이 아니며, 역사적·문화적 산물임이 분명해졌다. 이는 서구 학계 스스로도 자신들의 ‘religion’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아시아에서의 ‘종교’ 개념 형성(일본, 중국, 한국)
서구에서 형성된 ‘religion’ 개념은 19세기 후반 제국주의와 선교 활동을 통해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기 서구 문물이 밀려오면서 ‘religion’에 대응하는 번역어로 “宗教(슈교)”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일본에서 ‘宗教’ 개념의 등장은 근대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1850~6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는 지금과 같은 ‘종교’ 범주가 없었고, 불교, 신도, 유교 등은 각기 다른 전통으로 여겨졌을 뿐 이들을 포괄하는 상위범주는 없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이 맺은 조약에서 “종교의 자유”를 요구(실질적으로는 '선교의 자유')하자, 일본 정부는 자국의 전통들을 서구의 종교 개념에 따라 재분류해야 할 필요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불교와 기독교, 신도를 아우르는 “宗教”라는 번역어가 채택되었고, 1880년대 후반 무렵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宗教」概念の形成」; 文部省『百科全書』における「宗教」).
메이지 정부는 근대 국민국가 건설 과정에서 ‘종교’의 범위와 국가 제례의 관계를 둘러싸고 정책을 고민했다. 초기에 신불분리 정책을 펴며 신도(神道)를 국가 의례로, 불교를 배척하려 했으나 혼란이 발생하자, 불교와 기독교 등은 사적 영역의 ‘종교’로 인정하고 신도는 국가가 주관하는 비종교적 전통(즉 국가신도)으로 구분하는 전략을 취했다.
당시 일본 지식인들은 기독교적 기준으로 ‘종교’ 개념을 이해하여, “고등종교”로 간주된 불교나 기독교만이 진정한 종교이고 신도나 민간신앙, 유교 등은 열등하거나 종교 외부에 놓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예컨대 “신사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신사비종교론이 전개되어, 신도는 국가 의례로서 국민 도덕의 근간으로 삼고 대신 불교·기독교 등만을 종교로 취급하는 형태가 나타났다. 이처럼 일본에서 ‘종교’(宗教) 개념은 처음부터 기독교/불교적인 것과 신도/국가의례적인 것을 구분하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종교’란 말 자체가 일본 사회에 새롭게 유입된 근대적 개념이었고, 일본인들은 이 낯선 범주에 대응하며 서구에 맞설 자기 정체성을 모색했던 것이다. 일본의 종교사학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두고 “종교” 개념의 수용과 투쟁이라고 부른다.
현대 일본 종교학자 시마조노 스스무(島薗進) 역시 국가신도 체제와 ‘종교’ 개념의 변천을 연구하면서, 일본에서 종교라는 말이 가진 독특한 쓰임을 조명한 바 있다.
이소마에 준이치(磯前順一) 또한 ‘종교’ 담론의 형성과 신도의 비종교화를 분석하여, 일본에서 서구적 종교 개념이 어떤 담론적 효과를 낳았는지를 상세히 논의하였다(「「宗教」概念の形成」; Religious Trends in Japan).
중국에서도 ‘종교’ 개념은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도입되었다. 전통 중국에는 宗教(쭝자오)란 한자가 있었지만, 이것은 불교의 가르침이나 조상의 가르침을 뜻하는 한정적 용어로 쓰였을 뿐 오늘날의 “종교” 범주와 달랐다(A reflection on making ‘Religion’ in China: The Genealogy of Zongjiao through cultural exchange).
1890년대~1900년대에 일본에서 만든 ‘宗教’(슈쿄)라는 번역어가 다시 중국으로 역수입되어, 이때부터 중국 지식인들은 기존의 敎(교)나 道(도)와 구분되는 새로운 범주로서 ‘宗教’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870년대 일본에서 처음 번역된 ‘religion’ 개념이 ‘宗教’라는 신조어로 정착되었고, 청말의 량치차오(梁啓超)나 캉유웨이(康有為) 같은 개화 지식인들이 이를 받아들여 중국 전통 사상을 재평가하는 데 활용했다.
예컨대 “유교는 종교인가?”라는 문제가 논의 되었고, 유교를 ‘종교’로 인정할 경우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요구하는 서구의 압력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에 신해혁명 이후 유교를 종교가 아닌 ‘문화’로 분류하기도 했다.
한편, 불교·도교 등은 명백히 ‘종교’로 간주되었으며, 민간 신앙은 미신(迷信)이나 민속으로 불리고 종교 범주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서구적 분류법이 중국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비롯된 변화였다(A reflection on making ‘Religion’ in China; Living in the Chinese Cosmos).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에는 한동안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주의에 따라 종교를 부정적 현상으로 보는 관점이 지배했으나, 개혁개방 이후 다시 전통문화 논의 속에 종교 개념의 재정립과 종교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현대 중국 학자들도 전통적 礼教(예교)나 神道(신도) 등의 개념과 서구적 ‘종교’ 개념의 충돌과 접합을 연구하면서, 중국적 맥락에서 ‘종교’(宗教)라는 번역 개념이 어떻게 토착화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A reflection on making ‘Religion’ in China).
한국의 경우 ‘종교’라는 용어는 1880년대 이후 일본과 중국을 통해 도입되었다. 한자어 “宗敎”는 일본에서 건너온 번역어였으며, 개화기 이전의 조선에서는 불교, 유교, 도교, 무속 등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유교를 도(道) 또는 교(敎)라 하고, 불교를 불법(佛法) 등으로 불렀지만, 이들을 한 범주로 묶는 개념은 없었다. 1880년대 개화 지식인들과 선교사들의 글에서 비로소 “종교”란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1890년대 천도교나 개신교 운동이 활발해지며 ‘종교’ 개념이 대중화되었다.
대한제국(1897-1910) 헌법 격인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에도 “종교 자유” 조항이 포함되면서, 법적으로도 ‘종교’라는 범주가 공인되었다. 이는 일본의 영향과 서구 열강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변화였다.
한국의 종교학자 장석만은 그의 연구에서 “근대적 종교 개념은 서구의 religion 개념이 ‘종교’로 번역되어 유입됨으로써 형성되었다”는 통설을 소개한다. 실제로 일본 식민통치기(1910-1945)에 조선총독부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만 공식 ‘종교’로 인정하고, 무속이나 민간신앙은 종교로 보지 않아 단속하거나 방치하는 정책을 폈다. 이는 ‘종교’에 대한 서구적 이해가 식민 행정에 적용된 사례였다.
흥미롭게도, 일각에서는 한국 전통사회에도 서구적 의미와는 다르지만 고유한 종교 개념이 존재해 왔다는 시각을 제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종서 같은 학자는, 근대 이전 한국에서는 ‘교(敎)’나 ‘도(道)’와 같은 개념을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체계를 인식해 왔으며 그것이 근대에 서구적 종교 개념과 조우하여 분화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조상 제사, 풍습, 민간신앙 등이 이미 넓은 의미의 종교적 기능을 해왔다는 관점인데, 다만 이 ‘미분화된 종교 개념’이 근대 서구의 영향으로 의식적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견해에 대해서는, 전통의 ‘도’ 개념과 근대적 ‘종교’ 개념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한국의 ‘종교’ 개념 형성에 일본과 서구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는 입장이 우세하며, 그 과정에서 전통 신앙에 대한 인식도 변화했음을 지적한다(심형준 2022).
예컨대 단군 숭배나 천신 신앙 같은 전통 신앙이 일제시대에 ‘민간신앙’이나 ‘미신’으로 규정되어 주변화되었고, 광복 후에는 다시 민족종교로 재평가되는 등, ‘종교’ 개념의 도입이 전통 신앙의 위상 변동을 초래한 면이 있다.
정리하면, 동아시아의 ‘종교’ 개념은 서구의 Religion 개념이 이식되며 형성되었고, 일본은 이를 가장 먼저 수용·재해석하여 국가 정책과 연결시켰으며, 중국과 한국도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각각 고유한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무엇을 종교로 보고 무엇을 종교 밖에 둘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일어났고, 그 기준은 상당 부분 서구 기독교적 모델을 반영했다(「「宗教」概念の形成」).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알면,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통용되는 ‘종교’ 개념이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것이며 서구적 영향력 아래 만들어진 범주임을 이해할 수 있다.
동서양 종교 개념의 차이: 형성 배경과 실천 양상
위와 같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서양과 동양의 종교 개념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형성 방식과 철학적 배경에서 볼 때, 서구의 종교 개념은 기독교-세속 이분법을 바탕으로 정립된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상 신성(聖)과 속(俗)의 구분이 희박하고 통합적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다.
서양에서는 중세 후기에 교회와 세속 권력이 갈등을 빚으며 ‘종교’와 ‘정치’의 분리 개념이 싹텄고,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종교는 사적인 믿음의 영역, 정치·경제는 세속 공적 영역이라는 사고방식이 확립되었다. 이에 따라 종교 = 개인의 신앙 및 예배, 세속 = 합리적 질서라는 구도가 생겼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고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없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하늘(천)과 인간 사회, 자연이 하나로 연결된 통합적 우주론이 전제되었고, 도를 따른 정치와 예교(禮敎)가 곧 신성한 질서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별도로 추상화된 ‘종교’ 범주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하늘과 조상에 제사 지내는 행위나 도덕 실천은 따로 “종교”라기보다 전체 사회 질서의 일부였고, 신성과 인간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연속체로 여겨졌다. 이러한 “통합된 코스모스” 개념에서는 성스러움과 일상, 인간과 신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고, 모든 전통(유·불·도)이 우주 질서 안에 포섭되어 상호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이해되었다(Living in the Chinese Cosmos).
반면 서구의 일신교 전통에서는 하나의 참된 신앙만이 절대적 진리를 갖고, 다른 신앙은 배척되거나 배제되는 경향이 있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 같은 배타적 일신교 환경에서 ‘진정한 종교’ vs ‘이교’ 구도가 뚜렷했던 것이, 근대에 와서 여러 ‘종교들’이 병렬적으로 비교되는 상황으로 바뀌면서도 여전히 상호 배타적 단위로 상정되는 경향으로 이어졌다. 즉, 서구에서는 하나의 개인이 두 개 이상의 종교에 동시에 소속되기 어렵고, 종교 정체성은 배타적 선택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한 사람이 여러 신앙 실천을 겸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서로 다른 전통 간에 독점적 충돌보다는 상호 보완적 역할이 강조되었다. 예를 들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한 사람이 불교 의례에도 참여하고, 신사나 도교 사원에도 가며, 조상 제사도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를 그들은 문화적 관습이나 가문의 전통으로 여겼지, 자신이 동시에 복수의 “종교”에 속한다고 의식하지는 않았다. “무슈쿄(無宗教)”, 즉 “자신은 특정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일본인 상당수가 실제로는 불교 장례, 신토 제사, 신년 참배 등 종교적 관행을 일상에서 행하는 모습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의 50% 이상이 스스로 무종교라고 응답하지만, 학자들은 약 80%가 일생에서 신도의 관습을 실천한다고 본다. 이는 많은 일본인이 신도를 ‘종교’라고 인식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런 인식 자체가 “종교 = 서구식 조직신앙”이라는 근대적 개념에 영향받은 결과라는 지적이 있다. 1872년 시마지 목라이(島地黙雷)가 “신토는 소위 말하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한 이래로, 신도를 생활 문화나 국가전통으로 보고 종교 범주에서 분리하는 경향이 지속된 것이다(Religious Trends in Japan).
또한 동서양의 종교 개념 차이는 제도화된 종교와 생활속 실천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서구에서는 종교를 주로 교회나 교단 같은 조직화된 형태로 이해해왔다. 가령 ‘교회에 다닌다’거나 ‘어느 종파에 속한다’는 식의 제도적 소속이 종교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였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가족의 제례, 마을의 축제, 개인의 신앙 수행 등이 제도권 밖에서 광범위하게 유지되어 왔다. 중국의 민간신앙이나 한국의 무속, 일본의 가미(神) 신앙 등은 공식 교단이나 경전 없이도 일상의 관습으로 전승되며 사람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다.
서구인들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종교’로 뚜렷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동아시아인들에게는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신성한 전통이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는 종교를 반드시 조직화된 교단과 동일시하지 않고, 생활문화 속에 녹아있는 신앙적 요소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이 필요하다.
정리하면, 서양의 종교 개념은 신앙을 세속과 구분된 개별 영역으로 설정하고 제도화된 측면에 주목한 반면, 동양에서는 종교성과 일상, 공동체 관습이 분리되지 않은 채 전개되어 왔다. 그 결과 제도 종교에의 귀속 의식, 교리적 신앙의 강조는 서구적 특징이고, 복합적 전통의 혼재, 실천 중심의 신앙 생활은 동양적 특징으로 부각된다.
물론 이러한 구분도 절대적이지는 않으며, 현대에는 상호 영향으로 많이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religion)’ 개념을 동서양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역사·문화적 형성 배경의 차이와 종교 생활의 양상 차이에 기인한다는 점은 분명하다(Living in the Chinese Cosmos).
근대 이후의 변화: 제도종교의 쇠퇴와 자연종교적 전통의 유지/부흥
19~20세기를 거치며 전세계적으로 근대화, 산업화, 세속화 현상이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전통적 제도종교의 영향력은 많은 지역에서 쇠퇴하는 양상을 보였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교회 출석률이 급격히 감소하고, 미국 등지에서도 기성 교단에 소속되지 않는 이른바 “종교 없음(nones)”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27%는 자신을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고 규정하며, 이러한 비율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이다(More Americans now say they’re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이는 전통 교회나 성당에 소속되진 않아도 영적인 관심은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세속화 이론이 한때 지배적이어서,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종교는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다(Forget the numbers. The big story is that religion has lost social ...). 실제로 공적 영역에서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교육·법률 등 제도에서 종교의 영향이 축소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피터 버거나 스티브 브루스 등의 사회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들어 “종교의 몰락”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는 종교의 완전 소멸이 아닌 변형과 사적 영역으로의 이행이 일어났다는 점이 강조되었다(The Rise of Spiritual but Not Religious: What Does It Mean?; The Decline of Religion).
토마스 럭만은 이미 1960년대에 눈에 보이는 교회 종교는 약화되어도, 보이지 않는 개인적 종교성(invisible religion)은 지속된다고 지적했다. 현대인들은 전통 교리보다는 개인적인 의미 추구와 영성(spirituality)을 중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 명상, 요가, 뉴에이지 운동, 심리치유 등 비제도권 영성 활동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동아시아의 상황도 유사하면서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기 이후 국가신도 체제가 1945년 패전으로 해체되고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주어졌으나, 이로 인해 국민 다수가 특정 종교에 귀속되지 않은 무종교 사회로 변모했다.
오늘날 일본인은 스스로 무종교를 표방하는 비율이 높지만, 동시에 전통 행사나 신사·사찰 방문은 생활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Religious Trends in Japan-Non-Religious in a Religious Culture). 이는 공적 제도종교(예: 국가신도, 혹은 조직된 신앙집단)의 약화와 대비되어, 생활 문화로서 자연종교적 관습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사에 처음 참배하는 하츠모데, 오본절 조상 제사, 절에서의 장례 등은 여전히 대다수 일본인이 실천하며, 점술이나 부적 구입, 민속신앙적 행위도 흔하다(Religious Trends in Japan). 즉 제도화된 종교는 쇠퇴했지만 자연스러운 생활종교의 모습은 지속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1970~8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새로운 영성 운동이 유행하여, ‘Spiritual boom’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시마조노 스스무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성장한 영성 문화는 전통 종교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들이 채널링, 파워스팟 순례, 요가, 명상 등을 통해 영적 체험을 추구하는 흐름이었다. 이는 기성 종교에 대한 대중의 신뢰 하락과 대안 영성에 대한 관심 증대를 반영한다.
동시에 일본에서는 오움진리교 사건(1995) 등의 충격 이후 신흥종교에 대한 경계가 커지기도 했지만, 완전히 종교성이 사라지기보다는 형태를 바꾸어 나타난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근대 이후 전통 유교 질서와 불교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기독교가 급성장하여 한때 제도종교의 부흥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교회 이탈과 종교 인구 감소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의 무종교 인구는 현재 약 60%에 달하며(2020년 갤럽조사), 이는 제도권 종교의 권위 하락과 함께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산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주풀이, 타로, 운세 앱 등 젊은 층의 운명 탐구와 미신 행위는 오히려 유행하고 있으며, 무속 신앙에 대한 열린 태도도 예전보다 높아졌다. 이는 제도화된 종교 대신 개인 맞춤형 신앙과 영성을 찾는 경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전통 종교문화의 부흥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한국의 민간신앙과 샤머니즘은 한때 미신으로 천대받았으나, 근래 문화콘텐츠로 재조명되면서 젊은 무당의 등장과 굿판 유튜브 방송 등으로 공개적 활동이 늘었다.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명 시기 극심한 종교 탄압으로 사원과 사찰이 파괴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 전통 신앙과 민간 종교의 부활이 뚜렷하다. 현재 중국 농촌에서는 마을의 용왕제, 조상제사, 지방신 축제 등이 부흥하고, 도시 중산층 사이에서는 불교나 도교적인 정신수양, 기공 수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공식적으로 무신론을 표방하는 국가 체제 하에서도 인간의 종교성이나 영성 추구 욕구는 형태를 바꿔 지속됨을 보여준다.
요약하면, 근대 이후 ‘제도종교의 쇠퇴’는 여러 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지만, 동시에 ‘비제도권 영성’이나 ‘전통 신앙 관행’의 유지 또는 부흥도 병행되었다. 사회 전반의 세속화에도 불구하고 개인 차원의 신앙심이나 의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Factors Contributing to Decline in Religious Affiliation and Church ...; The Rise of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이는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개념 역시 변화하여, 과거처럼 교단 소속 여부만이 아니라 영성(spirituality), 문화전통, 윤리의식 등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요즘 학자들은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다”(SBNR, Spiritual But Not Religious)라는 표현을 쓰면서, 현대인의 다층적인 종교성을 포착하려 한다.
앞으로도 제도화된 종교와 자연발생적 종교심 간의 긴장과 상호작용은 계속될 것이며, 이에 따라 ‘종교’ 개념도 고정된 정의보다는 유동적 범주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인지과학 및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종교’
현대에는 과학적 방법으로 종교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인지과학과 진화심리학 분야의 연구자들은 종교를 인간 마음의 보편적 작동 원리나 진화 과정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 접근법에서는 ‘종교’라는 범주도 학문적 구성물이라기보다 인간 인지의 자연스러운 산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Seiwert 2020).
예컨대 인지과학자들은 전세계 어느 사회에서나 신이나 영혼에 대한 믿음, 의례, 금기가 발견되는 이유를 인간 두뇌의 공통된 특성에서 찾으려 한다.
파스칼 보이어(Pascal Boyer)는 “어떤 문화에 ‘종교’라는 특별한 단어가 없다고 해서 실제로 그들이 종교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언어에 ‘문법’이라는 말이 없어도 그 언어에는 문법 구조가 존재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Seiwert 2020). 이는 종교성이란 인간의 사고 구조에 깊이 뿌리박은 것이어서, 개념 유무와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인지과학자들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목적론적(teleological)이고, 보이는 세계 뒤에 숨은 인격적 원인을 상정하는 경향이 있음을 여러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저스틴 배릿(Justin Barrett) 등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별도로 가르치지 않아도 초자연적 존재의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는 인지적 준비성이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종교적이다”라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종교적 믿음과 행위가 인류 진화 과정에서 어떠한 적응적 이점을 가졌는지 혹은 부수적 산물인지를 놓고 활발한 논쟁이 있다(Sosis 2009).
적응론적 입장의 학자들은, 종교가 집단의 협동을 강화하고 도덕 규범을 내재화하여 생존에 이바지했을 것으로 본다. 가령 데이비드 슬론 윌슨(D.S. Wilson)이나 조나단 하이트(J. Haidt) 등은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는 신념과 예배가 집단 단합을 높여, 종교적인 집단이 비종교적인 집단보다 생존 경쟁에서 우위에 섰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또 조셉 불불리아(Joseph A. Bulbulia)나 리처드 소시스(R. Sosis) 등의 연구는 고통스러운 의례나 금욕 규범을 통해 “신앙 신호”를 보내는 집단이 프리라이더를 걸러내고 협력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편 부산물(byproduct) 이론의 학자들은, 종교 자체가 직접 선택된 적응이 아니라 두뇌의 다른 기능들이 빚어낸 부수적 결과물이라고 본다(Sosis 2009).
예를 들어 스티븐 제이 굴드의 영향을 받은 시각에서는, 인간의 과잉 행위자 탐지 체계(Hyperactive Agency Detection Device) – 즉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을 보고도 무의식적으로 “어떤 존재가 있다”고 추측하는 경향 – 가 생존에는 유리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보이지 않는 영혼이나 신을 상정하는 믿음이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파스칼 보이어 역시 종교는 “뇌의 여러 모듈 기능들이 우연히 결합한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신 개념은 우리의 얼굴인식 능력, 사회적 지능, 서사 기억 등이 합쳐져 생겨난 산물일 수 있다고 논했다.
스콧 애트런(Scott Atran)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본능적 두려움, 부모에 대한 애착, 죽음 회피 등의 심리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종교적 믿음 형성에 활용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비적응론적 입장에 따르면, 종교 자체가 특별한 진화적 목적을 띠지 않아도 인간 두뇌의 인지 편향들(예: 의도적 사고, 목적 지향적 설명, 영혼 불멸에 대한 희구)이 결합되어 종교 현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Evolutionary Perspectives on Religion; An Introduction to Evolutionary Perspectives on Religion).
물론 종교의 진화에 대한 논쟁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영역이다. 그러나 이 논쟁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현대 과학자들은 종교를 더 이상 초자연적 혹은 특별 불가해한 영역이 아니라 인간 정신활동의 일부로써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지과학적 접근은 종교 현상을 심리학, 뇌과학, 진화생물학의 어휘로 설명함으로써, 종교에 대한 자연주의적 이해를 시도한다. 예를 들어 신경과학자들은 명상이나 기도의 뇌 활성 패턴을 연구하여 종교적 경험의 생물학적 기제를 밝히려 하고, 진화생물학자들은 종교적 행위가 협동 진화와 어떤 관련을 가지는지 통계모형으로 검증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종교 개념 자체에도 도전을 제기한다. 전통적으로 신학이나 인문학에서 규정하던 “종교”의 범주를, 과연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어디까지 확장하거나 축소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따른다.
예컨대 어떤 인지과학자는 “미신, 예술, 도덕성까지 포함해 인간의 궁극적 관심사 전체를 종교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반대로 “초자연적 에이전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종교라고 부를 수 없다”고 엄격히 선을 그을 수도 있다.
요컨대 과학적 연구는 종교 현상의 세부 메커니즘을 해명하면서도, 종교 개념의 정의 문제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인지과학자들의 발견은 종교성이 인간 본성의 일부일 가능성을 시사하며(Seiwert 2020), 이는 앞서 언급한 종교 개념의 문화적 상대성과 긴장관계를 이룬다.
한편으로 “종교는 학자들이 만든 분류일 뿐”이라는 비판과, 다른 한편으로 “종교성은 인간 두뇌의 보편 작용”이라는 주장이 공존하는 것이 현대 종교담론의 흥미로운 국면이다(Seiwert 2020). 이 둘은 상반되어 보이지만, 결국 인간이 무엇을 ‘종교’로 인지하도록 학습되고 또 타고났는지를 함께 탐구함으로써 종교 현상의 총체적 이해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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