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교라고 하면 종교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종교 집단으로서의 '지구교'는 일본 SF 전쟁 소설인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지구교입니다. 해당 소설 속 세계관에서 지구는 인류 발상지이지만, 폐허가 된 곳으로 나옵니다.
90년대 초 해적 번역판 표지와 은하영웅전설 애니 속 지구교 총대교주의 모습(출처 각: https://www.gamet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531, https://sumally.com/p/981753)
우주 스케일의 이야기에서 인간이 지구에 살지 않는 모습을 그리면 통상 오염된 지구에서 인류가 탈출해서 다른 행성이나 항성계에 사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모티프가 많이 쓰인 바 있습니다. 『카우보이 비밥』에서는 우주 이동 수단 사고로 달 파편이 떨어져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서 지구를 그리고 있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지구를 탈출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구에 대한 설정이 역시 오염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그립니다. 오염된 지구를 정화하기 위해 인간에게 해로운 포자를 내뿜는 숲인 '부해(腐海)'를 설정하고 있지요.
달이 파괴되어 파편이 떨어지는 지구를 보여주는 '카우보이 비밥'의 한 장면(출처: https://twitter.com/Rage98306/status/1487208608622264322)
쓰인 글은 “거대 산업문명이 붕괴하고서부터 1000년, 녹과 세라믹조각들로 뒤덮인 황폐한 대지에, 썩은 바다 곧 부해(腐海)라고 불리는 유독한 장독을 내뿜는 균류의 숲이 확대되어,쇠퇴하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livedoor.jp/chaco2008/archives/23614902.html)
다시 『은하영웅전설』의 '지구교'로 돌아가면요, 그 종교 단체(은영전 세계관 속에서는 '사교 집단'으로 그려짐)는 '地球は我が母、地球を我が手に(Terra Is My Mother, Terra In My Hand/지구는 나의 어머니, 지구를 나의 손에)'라는 구호를 외치며 지구를 다시 우주의 중심에 두려 하는 세력으로 묘사됩니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의도는 한 캐릭터(포플랭/해적판에선 '포플란')의 입을 통해서 이렇게 폭로됩니다.
내 생각에, 지구교란 놈들이 사랑하는 건 지구라는 별 그 자체가 아닐 거야. 놈들은 지구를 구실삼아 자기네 선조가 누렸던 특권을 회복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정말로 지구 그 자체를 사랑한다면 전쟁이니 권력투쟁에 끼어드는 짓거리를 왜 하겠어?
'지구를 숭배하며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사교 집단'으로 그려진 지구교였습니다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지구'교'는 그와는 비슷한 듯 다른 것입니다. 어쨌든 이 명칭의 종교 단체는 현존하지는 않습니다.
'-교'를 세계관이나 가치 체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지구교'는 지구와 관련된 모종의 가치 체계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의 이런 용법은 우리에게 지금은 낯설어졌습니다만, 굳이 그런 예를 찾자면 '유교' 같은 게 있습니다. 일각(저 같은 종교연구자)에서는 종교로 여기지만, 철학자들이나 대중의 시선에서는 사상이나 철학 체계 같은 것으로 보기 쉽습니다. 그런 상식에 따라서 보면 '유교'에서 쓰인 '교'는 정확히 세계관, 가치 체계 혹은 사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런 용법이 많이 희석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교'는 그런 의미로 썼습니다. 누군가 교조가 있으며, 그 '敎'를 정리한 텍스트가 있어서 지식인들이 그것을 학습할 수 있는 것을 '-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속'이라 했지 무'교'라 하지는 않았습니다('무속'이란 명칭도 근대에 등장했고, 옛날에는 음사나 무풍, 무격이라 말했습니다). 20세기에 일부 민속/종교학자들은 무속도 종교라고 하면서 '무교(巫敎)'라는 말을 썼습니다만, 이 명칭이 자리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봐도 '-교'에 대한 기본적인 어떤 상식-가르침이라는-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쨌든 지구와 관련된 어떤 신념 체계를 떠올린다면 지금 항간에 퍼져있는 것은 지구 환경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일 겁니다.
기후 위기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고 있지요. 1월에 우리의 북극 한파나 미국이나 유럽의 북극 한파, 눈 폭풍 혹은 이상 고온 현상들이 소개된 바 있습니다. 이 위기는 인간이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소비하여 지구 온도를 높이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가 자초한 일이죠.
영화 매트릭스 1편에서 스미스 요원이 한 대사는 그런 면에서 '팩트폭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https://jjalbot.com/jjals/rkPop6NMgE
기후위기를 아직 우리가 막을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기후학자들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기후위기 티핑 포인트로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지구 연평균 기온 섭씨 2.0도 상승을 이야기합니다. 이걸 넘어서면 그 이후로는 인간의 노력으로 거의 되돌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1.2도 선에 다다르고 있고, 향후 5년 내에 1.5도에 도달할 확률이 40%가 넘는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나온 게 벌써 2년 전입니다. (1.5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 선에서 탄소배출을 잡아야 2도까지 상승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7306761
1.5도 사수, 세계가 탄소배출 '0'(제로) 정책을 진행하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서는 달성 불가능할 것처럼 보입니다.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심리가 각국에서 득세하고 있고, 정치 지도자가 바뀌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가 정책도 하루 아침에 뒤집어지기 일쑤이죠. 미국도 그랬고, 한국도 그랬습니다.
이 상황에서 위기를 알리고, 변화를 추구하는 환경론자들, 과학자들이 절박한 마음에 과격한 행동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지구를 지키자는 환경론자들에 간혹 '교조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곤 하는 것이죠. 그들이 현실판 '지구교도' 취급을 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기후 위기론은 음모나 왜곡이다'라고 하며 과학적 사실마저 부정하며 기득권을 지키고자 할 때, '종교'라는 라벨은 공격의 무기가 됩니다.
반면 생태주의 운동 중에서도 생태중심주의(ecocentrism)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 '지구교'를 호명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인간 중심주의 관점을 벗어나 생태계 전체(지구마저도)를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 그룹의 일부 사람들은 과거의 애니미즘론을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애니미즘은 만물을 '살아있는 존재'로 여기는 사고방식으로 주로 '원시종교' 혹은 토착종교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관념으로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이것이 기후 위기, 환경 위기 상황에서 조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생태중심주의자들은 옛날옛날 사람들, 혹은 원시 부족들이 가진 종교적 관념은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여겨 자연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판타지 같은 가정을 하고, 그런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이해를 지금 본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한 종교적 관념을 지닌 종교들로는 위카(Wicca), 드루이드교(Druidism), 샤머니즘 및 다양한 토착 종교들이 호명됩니다.
이런 종교들은 대체로, 체계화되어 큰 조직이 만들어지고 교리체계가 정비된 형태의 종교(ex.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등 소위 '세계 종교')와는 다른 소규모 공동체 기반(무속은 과거에 마을 공동체 수준의 규모로 파편화된 종교 관습이었습니다)의 종교 활동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종교적 관념과 실천으로 이루어져 '자연 종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명 이전의 종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니미즘적 관념과 다양한 주술적 실천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자연 종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이 '미신'이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가이아'라고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으로 태초의 카오스부터 올림푸스 12신의 주신인 제우스까지 무수한 남편을 가졌던 존재입니다. 로마 신화의 텔루스 혹은 테라라 불리는 대지의 여신에 대응합니다. 옛날 사람들에게 지구는 지구라는 행성으로 경험된 것이 아니라 대지라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었던 것이죠. 그 삶의 터전인 땅, 우리가 살아가는 기본 환경이 지금의 천문학적 이해 하에서는 지구죠.
이제 지구는 인류에게 '살아있는 존재'로 상상될 필요가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인간적인 발상이긴 합니다. 기후-환경 위기로 인류가 멸종한다고 해서 지구가 사라지진 않을 테니 말입니다. 지구가 우리를 품어 줄 수 있는 범위에서 인간이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그렇게 상상하는 것이죠.
자, 지구교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지구는 살아있는 존재고, 우리는 그 지구를 지키고 존중하기 위해서 몸을 사려야 합니다.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는 살아있는 지구를 해하는 일이고, 그렇다면 지구는 다시 인간을 '암적 존재'로 여기고 처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는 존재이니 우리는 상호주의적 원칙을 적용해서 '관계'를 상상하게 되니, 이런 판단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런 믿음을 갖는다면 우리의 이기심이 조금은 누그러질지도 모릅니다.
Yahoo News UK│Could climate change cause civilisation collapse? (https://uk.news.yahoo.com/)
아니. 지구교와 관련해서도 디스토피아적인 전망이 더 현실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서 애니미즘적 관념을 표방하는 종교들이 '문명 이전'의 종교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철저히 황폐화된 지구에서 인류가 문명 이전 수준으로 퇴보하게 되면서 지구라는 '살아있는 존재', 인간에게 벌을 내리는 존재로서 지구를 처절하게 경험한 후에 그 믿음이 돈독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지구교 신앙을 너무 늦게 갖게 되는 것이겠군요.
※이 글은 얼룩소 글(23.7.13)을 옮겨온 것입니다. ━━━━━━ ♠ ━━━━━━ 종교라는 주제를 다루려면 '위로'가 필요하다? 이 말을 저는 곳곳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정재승 박사가 총괄자문 및 프리젠터로 참여한 다큐 시리즈 '뇌로 보는 인간'의 마지막 '종교' 편에 제가 자문으로 참여하여 아주 짧은 시간 출연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시청률이 높았던 편이 아니라서 사람들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우연히 EBS 다큐를 보던 친구가 '야, 너 나왔더라...잠깐 ㅎㅎ', 이런 반응을 보인 예가 있었을 뿐입니다. 함께 자문에 참여한 구형찬 박사(인지종교학)가 종교학자로서는 메인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뇌로 보는 인간' - 종교 편의 한 장면┃저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그때 나왔던 미디어 비평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미디어스 기사 캡쳐 해당 다큐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다음에 이런 논평을 내 놓았습니다. 미디어스 관련 기사 '위로가 없다'는 비판 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종교라는 주제를 다룰 때 사람들은 그런 것을 기대하곤 합니다. '종교의 본질', '참된 의미' 같은 것을 발견하고, 뭔가 진리의 말씀이나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종교학도 존재합니다. '현대인의 종교는 병들었다'는 진단을 내리며 '고대인의 지혜'를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거나 모든 종교에 담겨있는 가장 고귀한 가르침(가령 황금률 같은)은 모두 상통하고 그것이 인간이 향유해야 할 소박하지만 분명한 진리라고 이야기하는 예도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출처: Wikimedia Commons 종교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막스 뮐러는 '종교학으로의 초대(Introduction to the Science ...
흥미로운 신경과학 연구 소개를 봤습니다. 친숙한 것과 중요한 것을 먼저 식별하는 뇌 경로에 관한 연구입니다. '신경종교학'에 참고가 되는 논문일 것으로 판단되어,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 * * Brain Circuit Identifies What’s Familiar, Important, or Just Background┃Neuroscience News.com 요약 : 과학자들은 기억과 감정을 통합하여 감각 정보를 빠르게 평가하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뇌 회로를 발견했습니다. 내측후각피질(entorhinal cortex)과 해마(hippocampus) 사이의 이 직접 피드백 루프를 통해 뇌는 중요한 광경과 소리를 거의 즉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알려진 더 느린 경로와 달리, 이 회로는 관련 자극과 배경 소음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PTSD와 자폐증과 같은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발견은 뇌가 정보를 걸러내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감각 및 기억 관련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 익숙한 것을 한눈에 알아보는 뇌 회로, 해마의 비밀 우리는 왜 친숙한 얼굴이나 물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요? 반대로 처음 보는 것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곤 합니다. 이런 능력 뒤에는 우리의 기억 이 큰 역할을 합니다. 뇌의 해마(hippocampus)라는 부분이 과거의 기억을 보관하고 있다가, 현재 들어오는 감각 정보와 비교하여 이것이 익숙한지 새로운지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해마는 “이건 예전에 봤던 거야” 혹은 “처음 보는 거네”라는 신호를 뇌의 다른 부분에 보내 우리의 인식을 조절합니다. 이 덕분에 우리는 중요한 새로운 정보 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미 아는 것은 배경 소음처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해마는 특히 대뇌피질의 한 부분인 내후각 피질 (entorhinal cortex)과 긴밀히 소통합니다. 내후각 피질은 오감에...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부제를 약간 수정) ─── ∞∞∞ ─── 1년의 시작점은 많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은 동지, 설, 정월대보름, 입춘 등입니다. 전에 이야기한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신년 기념일들처럼( 참고 ) 같은 나라 안에서도 여러 신년 기념일이 있는 경우는 특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원래 지역적인 단일성은 있었을 겁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1월 1일이다, 이 동네는 음력 설이다, 이 동네는 입춘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게 어떤 계기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지역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집단들이 묶여서 더 큰 집단으로 통합되면서 시간, 의례 등을 통합하는 과정이 뒤따르게 됩니다. 종교단체 수준에서도 진행이 되지만 국가 수준에서도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은 국가의 흥망성쇠, 종교단체의 흥망성쇠 등 집단 구속력의 변화에 따라서 부침을 겪으며 반복·중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에서는 16세기에 신년 기념일을 단일화하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19세기말 20세기에 시도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수준에서 한 해의 시작일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지만,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첫 날은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이를 문화적 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선조들이 해왔던 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나타남). 여러 신년 기념일은 그런 통합의 힘에도 어떤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과거의 전승이 살아남아 그 흔적을 남긴 덕분입니다. 다만 해당 기념일을 현재에 활용하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면 사라질 운명을 일 겁니다. 그럴 경우 '고유한 문화를 지키자'는 운동이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집단 정체성과 관련된 전통으로 선택되지 못하면 잊혀지는 것이고요. 동지 우리에게는 팥죽 먹는 날 정도의 의미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날도 과거에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기념되었습니다. 그런 동지 축제가 신년 축제인 사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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